2015/10 제9호
87년 6월 민중봉기와 넥타이 부대 사이에서
1979년 유신체제 붕괴가 김재규의 총구에서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것처럼' 다가왔듯이, 1987년 6월 10일도 그랬다.
김원
1979년 유신체제 붕괴가 김재규의 총구에서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것처럼' 다가왔듯이, 1987년 6월 10일도 그랬다.
미완의 쿠데타와 성공한 쿠데타 한 개인에게 모든 국가권력을 집중시키고 종신 집권을 가능케 했던 유신체제는 그 개인이 사라지면 붕괴할 운명이었다.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에서 일어난 학생들의
1971년 8월 10일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에 건설된 광주대단지에서 박정희 정권 최초이자 최대의 도시봉기가 일어났다. 주민 3만에서 6만명이 참여했다고 알려진 이 사건은 오전 11시에 시작해 6시간 뒤인 오후 5시에 끝났다. 사건은 언론에 대서특필됐고 그러면서 배가 고파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전해지게 됐다.
1960년 4월혁명은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싸운 결과 이승만 독재를 무너트린 역사적 사건이다. 그리고 우리는 흔히 4월혁명의 주인공으로 대학생들을 떠올린다. ‘피의 화요일’이라 불리는 1960년 4월 19일의 대규모 시위를 주도한 주인공은 분명 대학생이었다. 그러나 그들만의 힘으로 4월혁명이 가능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