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칼럼
  • 2018/02 제37호

거북시장

  • 박진우
추운 겨울바람과 미세먼지로 가득한 날씨로 외출조차 꺼려지는 어느 일요일. 우다야 라이와 루드라, 오쟈, 율도 등 이주노조 활동가들이 명함과 유인물을 들고 인천으로 출동했다. 이주노동자노조는 몇 년 전부터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이 있는 수도권 지역에서 순회 집회·교육·캠페인을 줄기차게 기획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우리는 인천 부평역에서 80여 명 규모의 순회 집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바 있다. 이날 캠페인을 펼치는 주된 지역은 인천 석남동 쪽에 위치한 한 재래시장이었다. 일명 거북시장! 경인고속도로와 마주한 비좁은 2차선 도로를 따라 가정오거리를 지나면 신현동 콜롬비아공원이 나온다.
 
 
여기서 좀 더 가면 석남동이란 곳인데, 고속도로 위를 가로지르는 그늘진 육교 바로 옆에 거북시장이 있다. 시장 주변에 영세사업장들이 많이 위치해있고, 다른 지역에 비해 땅값이 저렴한 편이라 이주노동자들이 많이 모여 산다.
 
거북시장을 돌며 이주노동자들을 만났다. 예전보다 상권이 많이 침체됐고,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이 동네에서 오래 살고 있는 한 이주노동자는 작년 한 해 출입국단속이 심해서 이곳을 왁자지껄하게 채웠던 이주노동자들이 죄다 어디론가로 떠났다고 했다. 정부는 2018년 이주노동자에 대한 주요 정책을 결정한 제25차 외국인력정책위원회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 강화, 미등록 체류율이 높은 송출국가에 대해서는 국가별 외국인 도입규모 결정시 불이익 등 단속 추방 강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합동 단속 기간은 20주에서 22주로 늘리고, 단속 인력 역시 340명에서 400명으로 확대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더욱 음지로 피할 수밖에 없다.
 

일요일에 장을 보러 나온 조합원을 만나 라면과 음료수 등을 사들고 그가 사는 공장 기숙사를 함께 방문했다. 4층에 위치한 기숙사는 작은 부엌과 방이 2개였는데 각각 네팔 이주노동자 2명과 베트남 이주노동자 1명이 나눠 쓰고 있었다. 한 달에 10만 원씩 숙식비를 내고 있고 공과금은 별도로 낸다고 했다. 올해 인상된 최저임금 때문에 언제 또 숙식비가 인상될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의 표정이 썩 좋아보이진 않았다. 방에서 쉬고 있던 다른 이주노동자는 우리를 보자마자 맛있는 요리를 해주겠다고 하면서 네팔식 전통요리인 ‘치우라’를 만들어줬다. 말린 물소고기와 네팔식 쌀을 곁들인 요리인데 식감이 무척이나 좋았다.

온 종일 인천 곳곳을 돌아다닌 고된 하루였지만, 많은 노동자들을 만나진 못했다. 그래도 조합원 기숙사도 방문하고, 깊은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 소중한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한 이주노조의 지역 탐방은 계속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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