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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 제36호

노조 합법화 이후 지속성장 중인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수도권 넘어 전국으로 확대해 갈 것”

  • 박진우

이주노조 정기총회에 모인
이주노동자들

지난 12월 3일은 매서운 추위가 여느 때보다도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이주노조 정기 총회가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마침 민주노총 직선제 투표기간이었기 때문에 총회 사전부터 투표를 하려는 이주노동자들로 붐볐다. 현재 한국에서 어떠한 투표권도 없는 이주노동자들이 자기 손으로 직접 뽑는 유일한 대표는 민주노총 위원장뿐이다. 그런 만큼 소중한 한 표를 던지기 위한 고심이 엿보였다.

오후 2시가 되자 총회 장소에는 여러 나라 출신의 이주노동자들과 총회 참관을 위해 참석한 연대 단위 조합원·활동가들로 가득 찼다. 개회선언 후 안건 순서대로 재정결산과 회계감사 보고, 이주노조 활동보고 및 평가 등이 이어졌다.
 
ⓒ노동과세계 변백선
 
이번 총회에서 가장 중요한 순서이자 조합원들의 활발한 토론이 벌어진 안건은 ‘규약 변경안’이었다. 첫 번째 변경안은 기존의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라는 명칭을 ‘이주노동자노동조합’으로 개정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수도권 지역에 지역지부를 두는 조직규약에 대해서도 향후 필요할 경우 전국적으로 확대할 수 있는 개정안도 통과됐다.

기존의 5000원인 조합비를 1만 원으로 인상하는 안건에서도 조합원들 간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기존에 조합비를 5000원으로 정했던 건 가입에 대한 부담을 낮추고, 보다 폭넓게 조직을 확대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제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니 재정을 탄탄히 다지는 것도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계획이었다.

타 노조도 조합비를 정액에서 정률로 바꾸거나 금액을 인상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그 때문에 이주노동자노조는 총회 준비 과정에서 평택·의정부·수원 등 지역지부를 몇 개월간 순회했다. 이 자리에서 앞으로 이주노조가 나아갈 방향을 정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재정·상근자 확충이 필수적임을 확인했다.

결국 조합비 인상을 포함한 규약변경안은 과반수를 넘는 찬성으로 변경됐다. 투표 후에는 2018년도 이주노동자노조의 사업계획과 새로운 간부 인준이 이어졌다.  

총회 후엔 단체 사진도 찍고, 뒤풀이도 성대하게 치렀다. 뒷풀이 자리에는 대구에서 온 성서공단노조도 함께 했는데, 향후 이주노조가 전국적으로 확대하는데 있어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눴다.
 
 

백만 명에 다다르는 이주노동자

2017년 10월 기준으로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이주민은 총 2,135,049명이다. 이중 이주노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숫자는 등록·미등록을 포함해 100만 명 내외로 추산하고 있다. 이미 한국 사회 전체 인구의 약 4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이주민의 숫자가 급증했다.

2015년 이주노조 합법화 이후 이주노조 조합원도 꾸준히 증가했다. 이번 직선제투표 선거인단에 포함된 조합원 숫자가 3년 전 1기 직선제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을 정도다. 이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순회교육과 집회 등 조합원 조직화를 위해 계속 노력한 성과다.

사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을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여전히 노동조합 조직률은 전체 이주노동자의 0.1퍼센트 수준이다. 이주노조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오랫동안 정주·이주노동자를 함께 조직해온 성서노조나, 건설노조·금속노조 내 일부 지역지부에서도 이주노동자를 조직해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밖에도 공단지역 조직화를 하고 있는 노조나, 노조는 아니더라도 이주공동체로 오랫동안 활동해온 지역도 있다.
 

특히 조선소나 건설 하청업체나 농·축산업에서는 이주노동자 비율이 매우 높다.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경우 수도권보다 지역 농공단지에서 일하는 비율이 훨씬 높아서 지역으로 내려갈수록 한국 사람보다 이주노동자가 더 많이 살고 있는 읍이나 면소재지도 존재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국에 너르게 흩어져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어떻게 노동조합으로 모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생긴다. 이는 최근 몇 년 간 이주노동 운동진영에서 계속 토론해온 주제이기도 하다. 이 토론의 잠정적 결론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주노동조합이 합법화를 쟁취함과 동시에 꾸준히 조직화를 진행하고 금속·건설과 같은 산별노조에서의 이주노동자 조직화 경험을 바탕으로 정주 조합원이 있는 현장에서부터 이주노동자를 조직하자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각 지역본부마다 이주노동자 조직사업 담당을 두고,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특별위원회 산하에 ‘전국이주사업담당자회의’(이하 이주담당자회의)를 매달 각 지역을 순회하며 진행하고 있다. 이주담당자회의에서는 현안 대응, 이주노동자 집중투쟁, 이주노동자 상담법률학교 등을 논의한다.

이주노조는 수도권 조직화를 바탕으로 이주노동자들의 단결을 전국으로 확장할 수 있는 방안 또한 계속 모색해왔다. 단순히 명칭을 바꾸고 지역으로 확대하자는 선언으론 충분치 않기 때문에, 인적·재정적 확대 방안 역시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이번 총회에서 규약 개정이 이뤄진 만큼, 2018년에는 구체적인 실행이 남아 있다. 먼저 지역별 간담회를 시작으로 이주노동자 조직화 거점을 여러 곳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영하 17도 추위에 치러진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매해 12월 18일은 UN에서 제정한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이다. 그보다 하루 전인 지난 17일 광화문 파이낸스빌딩 앞에는 이주노조 조합원을 비롯, 여러 출신국가·공동체에 소속된 이주노동자들이 모였다.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을 기념하고, 한국 정부에 이주민에 관한 협약 비준을 촉구하는 취지의 ‘이주노동자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올 한 해 이주노동자들을 특히 힘들게 했던 문제는 ‘숙식비 강제 징수 지침’이었다. 올해 2월에 노동부가 발표한 이 지침은 근로계약을 할 때 상호 동의만 있으면 이주노동자에 대한 숙식비를 임금에서 사전에 공제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지침에는 숙식비 명목으로 통상임금의 최대 20퍼센트를 징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월 200만 원을 버는 이주노동자는 숙식비로 40만 원까지 공제가 가능하다. 특히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거의 숙식비를 받지 않다시피 했던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등도 최대 13퍼센트까지 숙식비를 징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지침에 포함되었다. 집회에서 발언한 이주노동자들은 중노동을 하면서 제대로 된 잠자리도 보장 받지 못해 힘들다는 말을 거듭 반복했다.
 

매년 세계이주노동자의 날에는 열악한 노동 조건에서 죽어간 이주노동자에 대한 묵념을 진행한다. 지난 이주노동자대회 때도 마찬가지였다. 머나먼 타지에서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며, 한국인들에게 ‘타자’로서의 이주노동자는 어떤 존재인지 다시금 생각했다. 완벽한 타자의 죽음은 슬픔을 일으키지 않는다. 
 

누구도 죽으러 오진 않는다

누구도 ‘죽으러’ 서울행 비행기를 타진 않는다. 죽지 않고, 사람답게 일하기 위한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된다. 고향과 출신 국가는 다르지만, 노동조합을 통해 서로를 의지하며, 각자의 언어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올해는 우리의 요구 중 단 하나라도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조합원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10년 간 줄기차게 투쟁해 ‘이주노조 합법화’를 마침내 이뤘듯, 이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조직화와 더 넓은 연대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쟁취해나가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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