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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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9 제8호

10년 만에 설립필증 받은 이주노조의 지킴이들

  • 홍명교 편집실 미디어국장
이주노조 합법화 결정에 기뻐하는 모습. 왼쪽부터 순서대로 서찐 라이, 우다야 라이, 무하마드 가델,
섹 알 마문(여기까지가 인터뷰에 등장하는 네 사람), 정영섭, 나즈몰 호세인이다. (출처:민중의소리)

 

구르카용병이 되고 싶었던 소년

서찐 라이의 꿈은 구르카용병이었다. 구르카용병은 200년 전 영국이 네팔 산악지대까지 쳐들어왔을 때 고향 땅을 지켜낸 용감한 병사들의 후예다. 이후 영국은 막대한 자금으로 이 네팔인들을 고용해 용병부대를 만들었고, 오늘날까지 해체되지 않고 남아있다. 20세기 숱한 전쟁터에서 수만 명이 죽었고 고향엔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가져다주었다.
구르카 용병

서찐은 네팔 동부 다란에서 태어났다. 예로부터 다란 출신 구르카용병이 많았다고 한다. 서찐의 아버지도 영국군 소속의 용병이었으니까. 하지만 서찐은 용병이 되는 길을 포기해야 했다. 쿠크리검(구르카용병들의 칼)을 차려면 163센티라는 기준을 넘어야 하지만 서찐의 키는 158센티였기 때문이다. 흥미롭게 서찐의 이야기를 듣다가 물었다. “그래서 한국에 온 거예요?” “네, 돈 벌라고요. 신나게 놀고 싶어서.”

서찐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는 것 좋아하고 축구가 좋은 20대 초반의 청년 노동자다. 2년 전 부산을 통해 한국으로 왔고 대구와 울산을 거쳐 파주까지 왔다. 얼마 전 그만 둔 공장은 일이 너무 힘들고 돈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바람이나 쐴 겸 바닷가에 갔던 서찐은 이주노조가 설립필증 발급을 거부하고 있는 서울노동청 앞에서 노숙농성에 돌입했단 소식을 듣고 바로 서울로 올라왔다.

서찐에게 왜 이주노동자노동조합에 가입했냐 물으니 또박또박 말했다. “친구들한테 문제가 많이 있었어. 근데 MTU(이주노조)가 많이 도와줬잖아요. 그래서 필요하고. 빨리 이주노조가 합법화 설립필증이 나와야 돼. 문제가 생기면 갈 데가 없잖아요. 이주노조 있으면 네팔 사람들 가입 많이 할 거 같아. 잘 모르겠지만.” 키는 작지만 적어도 용기만큼은 구르카용병보다 훨씬 뜨겁지 않을까?
 

무하마드 가델에게 MTU는?

가델은 방글라데시에서 왔다. 그는 한국에 있는 모든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MTU는 한국에서 ‘사장님’이 이주노동자들에게 ‘갑질’을 하면 그걸 막아내는 조직이다. “모든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해야 돼. 왜냐하면 정부가 그런 문제 해결 못하니까.  정부가 시정하라고 말해도 사장님들이 맘대로 하면 해결 못해. 그래서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이 하는 거야. 해야 돼. 그래서 우리 이주노조가 있어야 돼.”

무하마드는 농성 기간 내내 요리사 역할을 했다. 딱 한번 얻어먹었지만 소고기가 잔뜩 있는 카레가 무척 맛있었다. 개성 있는 조합원들이 저마다의 역할을 갖고 이주노조를 바로 세우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제각각의 사연을 뒤로 하고.
 

“내 고향 치트완”

 
치트완 국립공원의 코끼리 관광
노조에 가입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비제이 라마는 2년 전 네팔 남쪽의 정글도시 치트완을 떠나 한국에 왔다. 큰 강이 흐르고 나무가 빼곡한 아름다운 곳이지만 매년 뱅골호랑이에 사람들이 물려 죽을만큼 무시무시한 곳이기도 하다.

수도 카트만두에서 차로 4시간을 달려야 갈 수 있는 치트완 면적의 대부분은 세계자연유산이기도 한 치트완국립공원이 차지한다. 비제이에 따르면 숲에 코코넛 나무와 뱅골호랑이, 코뿔소나 코끼리가 많다. 끝없는 고향 자랑에 당장이라도 고향에 돌아가고 싶냐고 물었다. “지금 말고. 돈 많이 벌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가족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많이 돈 벌어서 집에 가서 결혼할 거예요.” 그러면서 비제이는 네팔에 있는 어린 여자친구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한국에 오려고 한국말을 배우고 있단다.

“처음엔 부산으로 들어와서 의령에서 1년 3개월 일했어요. 철로 산소밸브 만드는 일을 했어요. 거긴 많이 힘들었어요. 노동조합도 없고, 기자나 우리한테 관심 가져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일이 너무 고되 파주로 왔지만 예전보다 더 힘든 곳이었다. “일하다 다쳐도 아무 보상도, 산재처리도 없어요. 휴식 시간도, 점심 시간도 없어요.” 3~4시가 될 때까지 쫄쫄 굶으며 일하면서도 월 120만 원도 받지 못 했다. 그마저도 물량 감소라는 이유로 보름 전에 해고됐다. 그 후 비제이가 서울에 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고 헤맬 때 이주노조에서 활동하는 네팔 사람들이 많이 도와줬다. 그래서 이주노조에 가입했다. 남아있는 3년여의 시간이 비제이가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되려면 이주노조는 꼭 필요했다. 

“치트완에서 작은 가구공장 열고 싶어요. 책상이나 문짝 만들 거예요. 한국에서 가구 어떻게 만드는지 보고, 더 특별하고 멋있게 만들고 싶어요.” 특별한 목수가 되려는 비제이의 꿈이 부러웠다.
 

섹 알 마문에게 종교란?

섹 알 마문은 이주노조의 수석부위원장이기도 하지만 독립영화 감독이기도 하다. 그의 종교관은 참 독특하다.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났고 이슬람교를 믿는 부모님을 만나 이슬람을 종교로 삼게 됐지만 그의 말을 듣다보면 그저 삶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기대의 표현같기도 하다.

“우리 엄마아빠가 이슬람교니까 내가 가족에서 태어나서, 그동안 내가 ‘되게 이슬람주의자’라기보단 그냥 살아왔죠. 엄마아빠 하는 대로 하고. 다른 종교는 모르겠는데, 어떤 종교든 오래 전에 시작했잖아요. 현대는 컴퓨터도 나오고 TV도 나오고 많이 변했는데 거기에 맞춰서 종교가 발전하지 않았잖아. 거기에서 멈춘 거죠. 그럼 과연 거기에 맞게, 생각, 맞을까?”

종교가 시대의 변화에 맞게 변화하고 있는지 자문하기 시작한 마문은 종교를 믿는 인간이 과연 주체적인지 묻는데 까지 나아갔다. “이맘(이슬람교의 지도자)이 얘기하면은 그걸 따라서 그냥 하는 거고, 근데 이거에 대해서 ‘왜 해야 되는지’ 우리가 물어보지 않아요. 가끔 물어보는 사람이 있긴 한데, 대게는 물어보지 않고, 그냥 무조건 따라야만 돼. 그건 문제 조금 있어.”

마문이 왜 노조를 하게 됐는지, 혹은 활동하면서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내 나라를 안 좋아한다거나 불만이 있는 건 아닌데. 우리 동지들도 누가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고 싶었겠어요? 미국에서 태어나고 싶다고 하겠지. 근데 이슬람에선 태어나는 건 하느님 손에 달렸다고 하거든. 누군가는 나를 컨트롤하는 거 같은데, 그 누군가에 대해 나는 불만이 많은 거지. 내가 생각하는 종교는, 다른 사람한테 피해 안 주고 올바른 삶? 욕심내지 않고, 더불어 살고.”

한국에서 태어나 내내 이곳을 떠나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에겐 다소 이질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이슬람교도인 마문이 던지는 상식적인 질문들이 나와 그리 무관한 것 같지도 않았다.
 
 

우다야 라이에게 고용노동청이란?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우다야 라이 위원장에겐 10년 만에 내려진 대법원 판결마저 부정하고 설립필증 발급을 두 달여간 미룬 서울고용노동청에 대한 생각과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고민을 물었다. 짧은 대화였지만 권력에 대한 분노와 희망 찬 다짐이 모두 섞여 있었다.

“노동자들의 정의를 위해, 노동자를 위해 세운 게 노동조합이잖아요. 우리 규약엔 정당한 요구들(현행 고용허가제를 반대하고, 노동허가제 도입을 요구)이 있어요. 근데 여기 노동청에서는 우리 규약을 인정할 수 없다고 얘기했죠. 개정하라고. 진짜 잔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려고 꼬투리 잡는다고 느꼈어요. 이분들 말이 거의 안 통해요. (고용노동청은) 우리 이주노동자들한테, ‘니네는 한국에 일하러 나오는데 우리가 니네 먹여살리고 있다’ 이렇게 말해요. 그리곤 우리한테 왜 니네 시위하냐. 그런 식으로 얘기하는 거예요. 제도에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비판을 안 해요. 문제 있으니까 비판하지. 그런 거로 봤을 때 이분들은 약자들한테 정말 맘대로 해요. 찍소리도 하면 안 된다 이런 생각이 있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만 일하는 거 같아요.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 정부 이런 사람들 위해서만.” 우다야 라이는 농성을 하면서 고용노동청 담당자들과 두 차례 면담을 했었다. 청장 면담도 요청했었지만 ‘따로 할 말이 없다’며 거부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이주노동자들 안에서 얘기 많고, 그런데 왜 아직 안되고 있냐 그런 질문 많아요. 설립필증 받으면 노동자들한테 긍정적인 메시지가 가요. 그 사람들이 조합원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는 탄압 받았지만 앞으로는 조금 많이 조직되고 그럴 것 같아요. 고용노동청 진짜 독해요. 어차피 대법원 판결 있었는데도 자기들이 지기 싫다는 거예요. 문구 조정해도 우리는 투쟁 똑같이 계속 할 거고, 제대로 할 거예요. 또 시비 걸지 모르겠지만.”
 

더 많은 꿈들을 위해

우다야의 말처럼 고용노동청은 노조 규약에서 ‘고용허가제 폐지’나 ‘이주노동자 합법화’같은 문구가 ‘정치운동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며 설립필증 발급을 거부해왔다. 부당한 현실에 대한 변화를 요구해야 하는 노동조합의 외침이 정치적이라서 안 된다니. 납득하기 어려운 억지 주장이었다.

이주노조는 대중적인 조직화에 대한 현실적 고민으로 해당 문구를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며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지위향상을 꾀한다’고 수정해 지난 8월 20일 설립필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2005년 4월 출범하고 강제추방과 착취에 맞선 투쟁들을 벌인 지 10년 4개월 만이다.

문구 수정이 고용허가제에 맞서 싸우지 않을 것이라거나 합법화 쟁취를 위해 투쟁하지 않겠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부당한 현실이 바뀐 것도, 이주노동자들의 인식이 변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주노조는 자신의 길을 갈 것이고, 임금체불과 폭력·폭언 등 노동권 탄압에 노출된 이주노동자들의 노예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더 많은 노동자를 조직해 싸워나가리란 즐거운 각오를 다지고 있다. 

합법화된 이주노조에서 함께 할 더 많은 서찐, 무하마드, 비제이, 마문, 우다야의 꿈을 응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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