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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15/01 창간준비3호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 87년 헌법의 모순을 드러내다

  • 김준우 변호사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가 내린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이라는 사건을 두고 말을 보태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번 사건은 1987년 헌법으로 헌법재판소가 생긴 이후 처음 있었던 정당해산 심판사건이었던 만큼 다양한 쟁점을 갖고 있는 사안이었고, 실제로 그 결과가 대단히  폭력적인 결론에 이른만큼 상당한 논란과 쟁점을 남겨두고 있다. 주요한 몇 가지 주장을 살펴보자. 

우선 헌법재판소 결정문의 비논리성을 지적하는 견해가 있다. 헌법재판소 다수의견의 결정문은 현행 헌법이 천명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가치들을 이야기하면서 정당해산제도는 대단히 엄격한 기준하에서만 활용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이와 동시에 분단의 현실이라는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스스로 제시한 원칙들을 바로 무너뜨렸다. 이 뿐만 아니라 형사판결과 유사한 성격을 지니는 정당해산을 결정하면서 증거에 대한 판단이나, 각종 진행 절차에서는 민사사건에 준하여 판단한 문제, 헌법과 법률상 국회의원직 박탈에 대한 어떠한 명문의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직 상실까지 선고하는 점 등에서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지켰어야 할 법치주의의 원칙들을 훼손했다는 지적은 타당한 분석이다. 아니 별도의 검토 없이 1인의 소수의견을 읽어도 결정문이 갖는 비논리성은 바로 폭로된다. 다만 이러한 다수의견 결정문의 비논리성에 대한 지적‘만’으로는 현재의 법제도가 짜여진 체계를 인식할 수 없게 된다는 점에서 일면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헌법재판관들이 과도하게 정치적 판단을 했다고 하면서, ‘사법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1987년 이후의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 항상 정치적 결정을 내놓았을 뿐 아니라, 헌법재판의 성격 자체가 정치적 정책적 성격을 띄어왔다.  따라서 두 번째 주장은 중립적인 법에 대한 신뢰라는 성립 불가능한 전제를 염두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적이다. 오히려 신자유주의 이후 의회권력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의 문제를 사법의 영역으로 끌고 오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는 점에 대해 더욱 주의깊게 볼 필요가 있다. 

세 번째로 헌법재판관 개개인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차제에 소수자 인권 등을 보장하기 위하여 헌법재판관 구성의 다양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좋은 재판관을 임명하여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으로 재판이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람에 의해서 좌우지될 수 있음을 긍정한다는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세 번째 주장에서는 제도적 개선방안으로 헌법재판관 임명에 있어서 현재는 대통령이 거의 대부분의 임명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편향적이며 의회에 의한 헌법재판관 임명 동의 절차 요건을 독일처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러한 주장은 현행 헌법을 그대로 인정하는 틀 안에서는 유효적절한 제도개선 방안 중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에 항의하다 제지 당하는 권영국 변호사 (사진출처 공동취재단)

오히려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통해서 드러난 것은 1987년 헌법의 민낯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흔히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의 양대 기둥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라고 한다. (의외로 자본주의는 헌법에 전면적으로 등장하지 않고, 개인의 재산권 보장이나 무분별한 기업의 국·공유화 금지 정도로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서로 다른 사상적 배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양 자 간의 필연적 연관성이 큰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법치주의를 채택한다고 해서 반드시 민주주의 국가는 아니며, 때문에 양 자는 종종 긴장관계를 갖는다. 1987년 헌법에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로서 민주주의적 요소로는 대통령 직접선거 원칙과 지방자치제라고 한다면, 법치주의적 요소로는 헌법재판소의 설치를 꼽을 수 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이름으로 의회의 입법권을 제한하고, 정당해산 및 탄핵심판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의회주의적이고, 반민주주의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랑은 별 상관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를 설치한다면 재판관 구성의 방법에 있어서 민주적 정당성을 보충해야 할 필요성이 있으나 현행 헌법은 헌법재판소의 임명권을 대통령에게 우선적으로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적 요소가 취약한 구조다. 이 때문에 법치주의적 이념의 산물인 헌법재판소의 권한 행사는 민주주의 및 법치주의 원리 안에서 제한되어야 한다고 해석되어 왔고, 특히 정당해산 제도의 운용에 대해서는 엄격한 운용이 필요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였다. 

한편 헌법재판소의 심판 권한 중에 정당해산 제도는 ‘전투적 민주주의’ 개념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고유한 특질을 갖는다. ‘전투적 민주주의’ 개념은 방어적 민주주의로도 표현되는데, 제2차 대전 직후의 서독의 정치상황과 법제도에서 유래한 것이다. 서독은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나치당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하면서, 민주주의는 상대주의이며 다원적 세계관을 인정하지만,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세력은 용인할 수 없다는 논리를 근간으로 하는 전투적 민주주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전투적 민주주의 개념을 바탕으로 독일은 개인의 기본권 실효제도나 위헌정당해산 제도 등의 법제도를 두게 된 것이고, 이것이 영향을 미쳐 우리 헌법의 정당해산 제도가 생겨난 셈이다. 

그런데 현행 헌법 제8조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할 때 정당해산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행 헌법에서 정당해산 제도를 통해서 수호하고자 하는 민주적 기본질서의 성격은 무엇인가? 연혁적으로 보면 4.19혁명 이후에 1960년 헌법에서는 ‘헌법의 민주적 질서’라는 표현이 사용되었던 반면에, 이후에 5.16군사정변 이후에는 ‘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으로 대체되었다. 한편 헌법 전문(前文)과 헌법 제4조에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유신헌법 당시 도입된 개념이었다. 학자에 따라서는 둘의 관계를 이음동의어라고 보는 견해가 있지만, 단어가 다르니까 양자가 가리키는 것이 다르게 해석될 수 있고, 실제 우리 헌법재판소의 해석도 약간은 다르다. 쉽게 이야기하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하는 경제질서를 포함하여 해석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는 경제질서에 관한 부분은 배제하여 해석하고 있다. 이렇게 해석하게 된다면 사민주의적 정당의 이념 등을 갖는 정당을 정당해산 제도를 통해서 해산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을 통해서 결과적으로 이런 해석상의 차이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렸다. 

결과적으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1987년 헌법이 갖는 고유한 자기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으로 보인다. 1987년 헌법이 민주화운동의 산물이라는 평가는 사실 대통령제 및 지방자치제 직선과 기본권 보장의 신장이라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전히 반의회주의적 요소들과 냉전 및 군부독재의 잔여들이 곳곳에 스며들어있는 헌법이다. 그동안 일부에서는 비록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과 반민주적 요소들을 갖고 있는 현행 헌법이라도 그 운용의 묘를 통해서 자기 결함을 보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고자 했지만, 이번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그런 가능성의 지평을 스스로 닫아버린 셈이다. 1987년 헌법개정 당시에도 개정을 추동한 외인은 민주화운동이었지만, 실질적인 기초작업을 한 이들은 김종인, 현경대와 같이 독재정권에 부역한 인사들이었다는 점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헌법재판소 역시 때로는 소수자인권 보호 등을 위한 결정을 한 적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은 입법부 및 행정부의 정치적 정당성을 보충해주는 역할로 기능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법치주의의 산물이라는 구조적 제약도 넘어설 수 없는 기구임이 판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결정은 1987년 헌법체계의 역사적 종언을 보수분파가 스스로 고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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