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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2 창간준비2호

미국의 안보전략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가?

  • 임필수 노동자운동연구소 정책실장
미국의 안보전략은 전통적으로 억지 이론에 기초했다. 억지란 자국이 원하지 않는 행동을 상대국이 하려할 때 그런 행동을 하면 감당할 수 없는 손실을 입히겠다고 위협함으로써 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다. 이 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확실성(신빙성)이다. 즉 상대국이 금지선을 넘으면 미국이 반드시 보복한다는 사실을 상대국이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 전략가를 괴롭히는 현실은 억지가 작동하지 않고, 따라서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 합병, 시리아-이라크에서 이슬람국가(IS)의 부상, 북한의 반복된 핵실험,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사용. 이러한 사례는 미국이 위협을 억지할 수 있는 확실성을 상실했다는 증거로 인용된다. 물론 오바마 정부로서는 여러 현실적 난점을 열거할 수 있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유럽이 러시아에 에너지를 의존하는 현실 장벽에 직면했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은 협상을 통해 막을 수 없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분명해졌다,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사용은 미국 국민에게 사활적 국익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등등. 하지만 문제는 억지가 실패할수록, 또는 실패한 것처럼 보일수록 미국의 보복 위협은 점점 확실성이 떨어질 것이고, 이는 더 많은 도전을 낳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 안보전략 환경의 세 가지 변화

미국은 여전히 압도적인 군사력 우위를 보유하고, ‘정교한’ 경제제재를 도입하며, 지칠 줄 모르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안보전략을 부식시키는 내외적인 요소가 있다. 

첫째, 국방예산 삭감에 따른 재래식 전력의 해외주둔 축소. 미국은 러시아의 크림 합병 후 미군 600명을 발트 지역에 배치하고, 폴란드에 미군을 증강했다. 이는 나토 가입 국가에 대한 안보위협이 있을 경우 ‘지상군을 투입한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이는 ‘제한적, 소규모’ 배치였다. 현재 미국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재래식 전력을 지녔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 대규모 전력 배치가 가능한 수준은 아니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만약 소규모 재래식 전력을 배치하는 것이 오직 억지를 위한 상징적 수준이라면, 위협이 현실화된다면 소규모 전력으로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대규모 전력을 배치한다면 그 후 거의 자동적으로 대규모 군사적 개입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는 미국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둘째, ‘2차 핵시대’의 도래. 오바마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핵무기에 대한 의존을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미국이 가장 강력한 재래식 전력을 지녔기 때문에 가능한 정책이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의 정책은 모순에 직면한다. 여러 국가가 미국의 핵전력뿐만 아니라 재래식 전력에도 대항하기 어렵기 때문에 핵무기 옵션을 추구한다. 

예를 들어 현재 러시아의 작전참모는 재래식 전력이 우세한 군대(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와 충돌할 때,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러시아가 핵무기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에 관한 교리를 작성 중이다. 즉 핵무기로 나토의 재래식 전력의 우위를 상쇄한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재래식 전력이 약한 국가로서는 핵무기가 최후의 수단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미국과의 재래식 장기전은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초기에 핵무기를 사용하여 미국이 후퇴하도록 하는 것이 상대국의 시각에서 유일한 선택일 수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미국은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 조달하고자 한다. 결국 미국은 핵무기 의존을 줄이겠다는 정책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갈 뿐만 아니라, 대량살상무기의 세계적 확산을 억지하겠다는 구상의 실현 가능성은 점점 더 낮아진다.   

셋째, 비국가 행위자의 영향력 증대. 비국가 행위자에 대해서는 보복과 보상이라는 전통적인 억지 이론이 적용될 수 없다는 분석이 많다. 지난 수십 년간의 경험으로 볼 때, 레바논의 헤즈볼라나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의 사례처럼 비국가 무장집단은 제거될 수 없었다. 이는 새롭게 부상한 IS에도 적용될 수 있다. 무장집단은 새로운 제약에 맞추어 스스로 조정하고 모든 기회를 활용하며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 자신을 재창조한다. 

게다가 무장집단에 군사력을 사용한다는 결정은 그들을 강화할 수 있다. 전장에서의 승리는 최선의 경우에 교착상태로 해석되며, 최악의 경우에는 지역적 맥락에서 정치적 손실로 해석된다. 무장집단은 전쟁이 야기한 불안정과 경제적 쇠락 속에서도 성장할 수 있다. 미국의 군사력은 무장집단에 대해 전략적으로 불충분하다. 
 

서방의 러시아 제재, 의지의 대결? 

2014년 3월 18일 러시아의 크림 합병은 미국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2009년 폴란드 대통령은 오바마에 공개서한을 보냈다. “러시아는 [팽창주의적] 19세기 어젠다를 21세기 전술로 추구한다. 러시아는 공공연한 또는 은밀한 경제전쟁 수단을 활용한다. 이는 에너지 봉쇄, 정치적 동기에 따른 투자로부터 뇌물과 미디어 조작에 이른다.” 예를 들어 불가리아의 경우,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불가리아 경제의 3분의 1을 러시아가 소유하고 있다(특히 에너지, 금융, 미디어). 

푸틴이 처음 두 번 대통령으로 재임한 기간 중, 러시아 경제는 연간 7퍼센트의 성장을 기록했다. 세계경제위기 이후에도 러시아 경제는 2010~11년 4퍼센트 성장을 보였다. 이 기간 동안 푸틴은 수직 권력을 구축했다. 러시아 정치경제는 국가 중심적으로 재구축되었고, 경제적 파이는 푸틴 충성파에 분배되었다. 이는 푸틴 권위주의의 원천이 되었다. 하지만 2012년 푸틴이 대통령으로 복귀했을 때 경제적 정체가 이미 가시화되었다. 이제 푸틴은 새로운 정치적 전환으로서, 더 전통적인 러시아 가치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푸틴은 짜르 시대의 용어인 신러시아(노보로시야)를 재도입했는데, 이는 지리적으로 동남부 우크라이나를 포함한다. 푸틴은 크림 공식 합병 연설에서 매우 국수적인 러시아 민족주의를 공언했다. 
 
하지만 현재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에 가한 제재는 누가 백기를 들 것인가를 두고 양측 간 ‘의지의 대결’로 전환 중이다. 유럽은 추가적인 경제적 고통을 감내할 의지가 점점 더 약화될 수 있다. 이미 많은 국가가 ‘트리플 딥’ 경기침체에 직면했고, 제재의 경제적 영향이 가시화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11월 23일 이렇게 말했다. "현대사회는 상호 의존적이어서 제재, 유가와 루블화 가치 하락이 러시아에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러시아는 엄청난 고통을 동반하는 의지의 대결을 얼마든지 수용하겠다는 메시지를 서방에 보내고 있다. 
 

미국과 중동, 13년 전쟁의 미래는? 

중동, 북아프리카는 대부분 사막이며 현재 대수층, 강 유량, 강우량이 감소 중이다. 엄청난 인구 압력도 존재한다. 이 지역 인구는 1950년 8300만 명이었으나 2014년 4억 400만 명으로 늘었다. 특히 14세 미만 인구가 28~38퍼센트에 이른다(미국은 19.4퍼센트, 일본은 13.2퍼센트). 그러나 교육과 일자리가 매우 부족하다. 게다가 많은 국가에서 여성은 교육과 직업이 허용되지 않고, 장래성이 없는 일자리만 주어질 뿐이다. 이 지역 주민들은 고향을 떠나 도시의 슬럼으로 모여들었다. 그에 따라 가장 부유한 석유수출국에서도 고도 도시화가 나타났다. 정부는 주택, 인프라, 교육 투자는 물론 전기, 물도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자리와 사회 인프라의 부족은 2011년 아랍의 봉기가 발발한 기본적 요인이 되었다. 고도 도시화와 부족한 사회인프라는 종파, 종족, 부족 간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지역분쟁이나 국제분쟁에 의한 난민은 이러한 상황을 악화한다.  

이제 모든 미군 사령관, 정책가, 정보전문가는 군사적 승리나 반테러 공격이 주변적 효과를 지닐 뿐이라고 말한다. 반미 무장집단을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식 민주주의, 인권 이념이 확산되어야 하고 그 전제는 효과적인 민간투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미국의 반테러 전쟁이 10년이나 수십 년 후까지 이어지리라 전망한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미국의 딜레마가 있다. 중동, 북아프리카에서 근본적 사회개혁의 전제조건은 부패하고 시대착오적인 정부의 교체다. 하지만 미국이 지금 당장 필요한 군사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 정부의 지원이 필수불가결하다. 미국은 IS 파괴를 천명했는데, 그 실행을 위해서는 중동 각국의 군부, 정보기관, 권위주의 지도자와 더욱 밀접하게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걸프 아랍국가 동맹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아랍의 봄 당시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 퇴임 압력을 가해 중동에 카오스를 야기했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 미국은 과연 단기적 목표와 장기적 목표를 동시에 추구할 수단을 보유하고 있는가? 
 

미국은 아시아 재균형을 이행할 능력이 있나? 

미국의 전략가들은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중시’ ‘아시아 재균형’ 전략이 구체적으로 실행될 수 있는지 의구심을 품고 있다. 첫째,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전략은 현재 딜레마에 빠져 있다. 미국이 러시아-유럽, 중동에 더 깊숙이 개입한다면 아시아 재균형이 약화될 것이다. 반면 유럽, 중동에서 미국이 결단력과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면, 아시아에서도 미국이 안보 도전에 확고히 대응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남기게 될 것이다. 

둘째, 오바마 정부 아시아 정책의 핵심을 이루는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에 대해서 미국 행정부와 의회는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미국 의회는 TPP 관련 신속협상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중국이 주도하는 경제 제도를 만들려고 시도 중이다. 중국은 현존하는 제도를 대체하거나, 최소한 아시아 수준에서 구축하고자 한다. 대표적 사례는 중국 주도로 창설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다. 아세안 국가는 인프라 투자를 필요로 하지만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세계 민간부문의 투자가 불충분하다고 느낀다. 

중국이 한국 정부에 AIIB 가입을 요청한 것이 알려지자 미국은 한국 정부에 “한국의 참여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통보할 정도로 이 사안에 민감하다. 미국은 중국이 급속한 경제성장에 기초해 경제적 지렛대를 이용해 아시아 지역에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확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셋째, 미국은 북한과 비핵화 협상이 거의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따라 진지한 시도를 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오바마 정부 남은 임기 동안 북한 문제는 정책적 우선순위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딜레마를 낳는다. 북한이 위기를 고조시키는 행동을 취한다면(핵, 미사일 실험) 백악관은 주목하겠지만, 그 반응은 일시적 해결책에 머물 것이다. 즉 일련의 경제적 보상을 통해 위기를 더 이상 고조시키지 않겠다는 합의를 이끌어내려 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지난 25년간 반복된 패턴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 북한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백악관은 북한에 주목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아무 제약 없이 진행된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미국의 군사 헤게모니가 약화되는가? 

2015년에는 2016년 미국 대선 경쟁이 시작된다. 미국의 정치인, 전략가, 언론은 이 모든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일 것이다. 질문은 ‘미국이 퇴각 중인가’로 모아질 것이다. 그들은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분명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다음 정부도 동일한 문제에 직면한다면, 그것은 미국에 진정한 해답이 없다는 뜻이다. 

현재 미국의 군사적 헤게모니에는 비가역적인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 즉 ‘제국의 평화’의 균열은 곧 평화롭고 평등한 새로운 세계질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새로운 무질서일 수도 있다. 달리 보면, 세계적 무질서가 미국 군사 헤게모니의 한계를 드러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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