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칼럼
  • 2015/05 제4호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는 것

  • 최예륜 사회진보연대 회원
“자기 일을 열심히 하면 되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 있어.”

작년 4월, 소위 진보적 학자임을 자처하는 모 연구기관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그 분은 가슴이 아파 관련 뉴스를 아예 못 보겠다고 했지만, 유가족들이 진도에서 청와대에 가겠다며 길을 나선 것은 선동꾼의 부추김 때문이라는 소문을 믿고 있었다. 반박했지만 그 분은 내가 자식이 없어 모른다며 자식 잃은 부모가 외부 개입 없이 그럴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올해 4월, 유가족들이 광화문광장에 주저앉은 날, 곁에 앉아 《세월호를 기록하다》를 읽었다. 그날의 배 안이 생생하게 그려져 숨이 막혀오는 듯 했다. 배가 기울자 조타실 선원들은 모두 얼이 빠져 손을 놓았다. 기관실 선원들은 공포에 질린 채 탈출할 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갑판부 선원 일부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승객들의 탈출을 도왔지만 이준석 선장이 내렸다는 퇴선 지시를 들었는지는 영원히 알 수 없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선원들은 조리원 이묘희 씨가 다친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환자가 발생했다는 보고는 없었고 그녀는 3개월 후 3층 주방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선원들이 탈출하며 지나쳐 간 시스템 배전반에는 잡아당기기만 하면 울리는 비상벨이 있었지만 그 벨은 끝내 침묵을 지켰다. 해경123정과 헬기들은 배의 상황이 어떤지 승객이 몇 명이나 있는지 어떻게 구조작전을 펼칠지 판단하지 않은 채 세월호로 달려왔다. 갑판에 사람들이 나와 있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던 그들은 눈에 보이는 사람을 구조하느라 최선을 다했지만 배 안의 사람들이 탈출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승객들은 자리를 지켰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었다. 그 말을 믿지 않은 어른들 일부와 우연히 집단에서 떨어져 스스로 판단해야 했던 학생들 일부가 살아남았다. 그것이 정부와 해운사와 선원들과 해경,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일한 결과였다. 

나는 한동안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안전한 대한민국, 진실을 밝혀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무엇이 나 스스로의 구호가 되어야 하는지 몰랐다. 어떤 경로로 만나게 된 한 유가족의 친지가 내 친오빠와 직장동료라는 사실을 알고 역시 세상이 좁구나, 결국 우리는 먼 친척쯤 되는 관계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희생된 단원고 아이들의 이모이자 언니가 되겠다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내 가족, 내 아이’라는 또 다른 가족주의의 틀에 갇힌 것이란 걸 어느 순간 깨달았다. 세월호는 묻고 있었다. 돈과 관행이 지배하는 사회를 넘어서 복원해야 할 인간 공동체의 가치는 무엇인가, 무고한 죽음을 낳는 체제에 맞서는 생명의 언어는 무엇인가. 사지가 들려나가던 자식 잃은 부모의 야성 그대로의 울음에 무어라 답해야 할까. 차벽담장 앞에서 등 돌리지 않고 기어이 광장으로 나아가, 갇혀 있는 유가족에게 손 내밀고자 함께 싸운 사람들이 답을 만들 수밖에. 내게도 가족이 있다는 사실에 앞서, 우리는 생명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이 그 답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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