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보다
- 2016/01 제12호
건설산업과 이주노동자 조직화
건설업과 이주노동자, 그 오랜 딜레마
고대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건설했던 노동자들(노예가 아니다)은 이집트 전역에서 온 이주민들이었다.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건설산업과 이주노동자는 산업의 특성상 긴밀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건설업의 특징 중 하나는 현장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규모 건설공사가 발생한다거나 건설경기 때문에 투자액이 줄어들면 지역 노동시장의 한계를 초과하는 수요나 공급이 종종 발생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외지의 노동자들이 그 공백을 보충하거나, 일이 없어진 지역의 노동자들이 외지로 일을 나가게 된다. 일자리를 따라 타 지역에 가서 일하는 것은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마찬가지이다. 국경을 넘는 노동자들의 이동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 역시 건설업이다.
일자리를 둔 이주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 사이의 갈등은 마르크스 당대부터 이미 노동자운동의 중요한 쟁점이었다. 마르크스는 아일랜드 노동자들의 유입으로 말미암은 경쟁에서 연유하는 “잉글랜드 노동자와 아일랜드 노동자 사이의 엄청난 적대감”이 “영국 혁명의 장애”이며 이것이 “지배계급에게 능수능란하게 악용”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아일랜드의 해방이 잉글랜드 노동자 계급의 해방과 실질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주장했다(1871년 런던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회의에서의 연설). 이때 아일랜드 노동자들이 종사했던 주요 산업 중 하나도 건설업이었다.
이렇듯 건설산업에서 이주노동자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오랜 딜레마 중의 하나다. 물론 결론을 간단하게 내릴 수도 있다. 건설노동자의 노동조합이 국적을 불문하고 해당 국가의 모든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보자면 내국인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모두 같은 노조 조직 안에 조직되면 서로 경쟁을 지양하고 노조의 힘으로 동일한 노동표준을 강제할 수 있다. 이럴 경우 노동조건 향상과 함께 동일한 노동표준을 강제해 일자리를 만들어낼 힘도 생길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누가, 어떻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다.
대부분은 중국동포가 차지
한국에서 건설산업 이주노동자는 중국동포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는 제조업과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다. 이들은 ‘일반고용허가제’와는 달리 외국국적 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특례고용허가제’ 중에서도 2007년부터 국내에 연고가 없는 외국국적 동포에게도 취업을 허용하는 방문취업제(소위 H-2비자)를 통해 들어와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또한 중국동포들은 취업이 허용된 36개 업종에서는 사업장 이동의 제한 없이 자유롭게 취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고용허가제(E-9)를 통해 들어온 이주노동자와는 처지가 크게 다르다.
다만 건설업의 경우 방문취업자로 인해 내국인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2009년부터는 중국동포를 대상으로 건설업취업등록자의 수를 연 5만 5000명 수준으로 통제하고 있다. 건설업에 중국동포가 집중되는 이유는 이주노동자의 입장에서는 구직 경로가 다양하지 않아 타 직종으로의 취업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또 건설사들이 팀별 작업을 기본으로 하는 건설현장에서 언어소통이 필수라는 점과 임금이 싸다는 이유로 동포노동자를 선호하기도 한다.
조직화에 유리한 점
그러나 노동조합 입장에서도 말이 통한다는 점은 조직화에 무엇보다 큰 이점이다. 건설업에서 동유럽 이주노동자의 비율이 높은 유럽의 경우, 건설노조는 우리나라로 치면 이주노조에 가까울 정도로 이주민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전체 조합원의 대부분이 이탈리아와 동유럽 출신 이주노동자로 구성된 스위스 건설노조의 경우 6개 주요 송출 국가의 언어별로 조직가를 채용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언어를 쓰는 중국동포 노동자의 경우 이러한 추가적인 자원 지출 없이도 조직을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이들은 이주노동자를 조직하는 데 문제가 되는 단속추방으로부터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미 자신들의 가족이나 친인척이 국적 회복이나 귀화, 또는 재외동포자격, 영주권 취득 등의 경로를 통하여 한국에 정주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따라서 이들도 가족 초청 등의 방식으로 앞으로 한국에 장기 거주하는 비율이 높고, 스스로도 재외동포 자격을 취득하기가 용이하기 때문에 한국에 정주할 가능성이 높다.
건설업 숙련형성을 담당
다단계 하도급을 기본으로 하는 건설 산업에서는 고용주가 책임을 회피하기가 쉽다. 한국의 종합건설업체와 전문건설업체 모두 건설노동자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현장이 발생할 때마다 일용노동자를 그때그때 고용한다. 사용자로서 이윤을 최대화하고 책임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다.
이러한 경우 건설사들로서도 한 가지 큰 문제가 있다. 바로 건설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직업훈련 및 숙련형성, 그리고 그에 따르는 비용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부실시공에 따른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은 건설사가 떠안기를 거부한 숙련형성의 비용을 사회가 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여기서 그나마 숙련형성의 부재를 보충해 온 것이 중국 현지에서 일을 배운 이주노동자의 끊임없는 공급이었다. 따라서 좋건 싫건 이들 없이 현재 한국의 건설업 노동시장은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 한편 이러한 건설업 노동시장의 현실과 정부의 저숙련 외국인력의 단기순환 원칙 사이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즉 내국인 노동자의 숙련 형성 기회(다시 말하면 양질의 고용 기회다)는 이주노동자의 존재로 가로막히고, 이주노동자는 정부의 저숙련 단기순환 원칙 때문에 숙련을 유지하기 힘들어 지는 것이다.
건설노조의 이주노동자 포괄 정책
건설업에는 명확한 사용자가 없지만, 건설산업이 가지는 사회적 중요성 때문에 건설노조의 핵심 역할 중 하나는 정부와의 교섭이었다. 노조의 대정부 교섭 방향은 내국인 노동자를 차별적으로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이주노동자에게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적용할 수 있는 제도를 통해 모든 저소득 건설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전반적으로 개선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보면 지금 건설노조가 추진하고 있는 적정임금(공공발주 사업에서 건설 직종별 적정임금을 정하고 지급을 보장하는 제도) 논의에서 이 제도가 이주노동자에게도 반드시 적용되게 만들어야 한다. 단가·임금 후려치기가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나타나는 건설산업의 특성과 국가의 법 집행력이 미치지 못하는 건설현장을 고려하면 적정임금이 소위 합법·불법 이주노동자를 차별해서 적용될 경우 내국인 노동시장 자체를 깡그리 없애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공격은 차별이란 외양을 갖추고 들어온다. 이주노동자들이 제값 받고 제시간 일하는 것이 곧 내국인 노동자들도 보호하는 것이다.
조직화로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
건설수주를 기준으로 단기적으로 향후 건설투자액(건설공사에 실제 투입되는 자금액)을 전망해 보면 수도권은 향후 2~3년, 지방은 1~2년 이내에 큰 폭의 투자 감소가 예상된다. 또 대략 2020년경을 전후로 단순한 경기변동에 따른 변동 수준이 아니라 건설시장 구조가 선진국형으로 탈바꿈하게 되면서 건설시장 자체가 급변할 것이다. 민간부문의 경우 지금과 같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 조성 공사 중심에서 기존 건물의 유지보수 및 고도화, 소규모 주택 건설로, 공공부문의 경우에도 신규 SOC 발주보다는 기반시설 유지 보수에 중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이럴 경우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격화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노동자 내부에서 인종주의를 재생산하는 고유한 물질적 조건을 의제로 올리고, 이에 맞서기 위한 이념과 운동을 만들어 내야 한다. 외면과 배제로는 늘어나는 이주노동자들을 막을 수도, 내국인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아무리 바깥에서 비난한들, 이 문제를 돌파할 수 있는 대안적 분석과 이념, 운동을 만들지 못하는 한, 돌아오지 않는 외침으로 끝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동포 건설노동자 조직화에 상당한 성과를 이룬 경기 중서부 건설지부의 사례는 그 자체로 고무적이다. 건설일용노동자의 조직화가 불가능해 보였지만 지금은 증가일로에 있는 것처럼, 건설 이주노동자의 조직화 역시 불가능의 영역에서 상상가능한 현실의 전략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제 방울은 우리 손 안에 놓여 있다. 건설노조 안팎에서 이 방울을 달기 위한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