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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 제29호

이주노동자 상대로 ‘신종 숙박업’하라는 정부?

  • 박진우

네팔에서 온 타망의 이야기

 

24살 김군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경기도 안산의 제조업 공장에서 3개월째 아르바이트 중이다. 이 공장의 생산직 직원은 총 6명인데 한국인이 절반, 네팔에서 온 이주노동자가 절반이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한국말을 잘하고 김군과 나이도 비슷해서 곧잘 수다를 떠는 네팔 이주노동자가 있는데, 그의 이름은 ‘타망’이다. 

어느 날 잔업이 끝난 뒤 김군은 타망에게 맥주를 한 잔 하자고 했다. 얼큰하게 취해 김군은 늘 궁금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주말에도 거의 쉬는 일 없이 특근, 야근을 뛰고 잠자는 시간을 빼면 거의 항상 일을 하는 타망은 과연 돈을 얼마나 벌고 있을까? 타망은 잠깐 기다려보라며 가방 속에 넣어둔 꼬깃꼬깃한 근로계약서를 꺼내 김군에게 보여주었다. 김군도 파견회사를 통해 공장을 소개를 받을 때 잠깐 계약서를 본 적은 있다. 하지만 어차피 월급은 알아서 잘 나오겠거니 하고 따로 받아두지는 않았기에 늘 계약서를 가지고 다니는 타망이 신기했다. 

계약서에는 한국어와 네팔어가 같이 쓰여 있었다. 타망의 이름, 연락처, 주소와 함께 몇 시간을 일해야 하는지, 월급은 얼마를 받는지가 적혀 있었다. 궁금했던 월급은 135만 2230원이었다. 김군이 스마트폰으로 검색해보니 2017년 최저임금 액수와 똑같았다. 김군은 당황했다. 타망은 김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겠다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는 “괜찮아. 한국에서 이주노동자 모두 이렇게 계약서를 써. 나중에 돈 못 받으면 노동부 갈거야”라며 맥주를 들이켰다. 

김군이 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계약서 뒤에 붙어있는 ‘공제 동의서’라는 제목의 종이 한 장이었다. 종이에는 “사용자는 외국인 근로자 타망에게 매월 임금 지급 시 다음과 같이 숙식 비용을 공제하고 지급하기로 한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공제항목인 숙식비는 월 정액임금의 13퍼센트라고 했다. 마지막에는 타망의 사인도 있었다. 한 달에 최저임금인 135만 원을 받는 타망에게 숙식비로 17만원을 공제한다는 게 김군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았다. 

김군은 타망에게 맥주를 따라 주며 “어차피 회사에서 일하려고 거기서 먹고 자고 하는 건데 무슨 돈을 따로 이렇게나 많이 받는 거냐. 이거 잘못된 거 아니냐”며 팔을 허공에 내저었다. 타망은 “이거 노동부에서 합법적으로 받는 거야. 우리 이거 싸인 안하면 회사에서 일 못해. 어쩔 수 없어” 라며 고개를 저었다. 
 

김군은 타망과 이야기를 나누고서야 회사 옆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컨테이너가 이주노동자의 기숙사라는 걸 알았다. 타망은 정 궁금하면 오늘 기숙사에 가서 같이 하룻밤 자고 가라고 했다. 타망의 방에 들어서자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빨간색의 커다란 대야였다. 대야에는 흔히 돼지꼬리 히터라고 불리는 것이 달려있었다. 타망이 웃으면서 “여기 온수 안 나와, 이걸로 물 끓여. 근데 잘못하면 불 날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해”하고 말했다. 

좁은 입구를 지나 침실에 가보니 어디서 주워 온 것 같은 매트리스 3개가 나란히 붙어있었고, 옆에서 다른 네팔 이주노동자 두 명이 카드를 치고 있었다. 김군이 어디선가 찬 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아 창문을 닫으려고 보니 창문 한쪽이 깨져있었다. 타망은 늘 있는 일인 듯 어느새 비닐을 가져와서 자연스럽게 창문 위를 덮었다. 김군은 내일 사장한테 깨진 창문을 고쳐달라고 대신 이야기해주겠다고 했다. “전에 몇 번 말했어. 온수 안 나오는 것도 말했고 쌀이 너무 오래된 거라 먹기 힘들다고도 말했어. 그리고 가스비랑 전기비도 따로 내야해. 차라리 우리가 먹고 싶은 거 따로 만들어 먹고 식비 안내고 싶다고 했는데 그것도 안 된대. 이미 계약서에 다 사인해서 할 수 없대.” 타망이 말했다. 그리고는 술이나 더 먹자고 했다. 김군은 술에 취해서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으냐고 횡설수설하다 잠이 들었다.

 

 

임금갈취 합법화 지침

위 이야기는 지난 2017년 2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외국인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 지침>(이하 지침)과 관련해 실제 이주노동자들과 상담한 사례를 재구성한 것이다. 

지침은 사업주가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는 경우, 표준근로계약서에 관련 내용을 표시한 뒤 계약 시 해당 이주노동자의 서면동의를 받으면 임금에서 해당 항목을 사전 공제할 수 있다는 게 요지다. 공제 가능한 숙식비는 최대 20퍼센트다.

이에 따르면 이주노동자가 통상임금으로 200만원을 벌고 아파트형 기숙사에 살 때 최대 40만원까지 숙식비를 공제 가능하다. 심지어 냉난방비 등 계절에 따라 변동이 있는 요금이나 전기, 인터넷 사용료 등 이용에 따라 부과되는 비용은 숙식비에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실제 공제금액은 더 많다. 이러한 지침은 근로기준법 42조 1항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라는 임금 전액지급의 원칙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대부분 최저임금에 맞춰져 있는 이주노동자의 임금을 더 쥐어짠다. 

또한 지침은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같은 ‘임시시설’을 합법적인 기숙사로 인정하는데, 이는 지금도 난립하고 있는 임시거주시설을 더욱 늘리게 될 위험도 있다.

요컨대 지침은 최저임금을 받고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감수하면서 열악한 기숙사에 사는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전혀 개선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용자가 합법적으로 임금을 갈취할 수 있도록 한다. 하나의 컨테이너에 5명의 이주노동자를 몰아넣고, 한 명당 20~30만원씩 숙식비만 걷어도 한 달에 최소 한 사람 인건비만큼 이득을 본다. 이쯤 되면 사업장이 이주노동자를 고용하여 일을 시키는 것인지,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신종 숙박업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다. 
 
 

이주노동자의 들끓는 분노

지침이 발표된 후, 이주노동자들은 두려움과 동시에 분노를 느끼고 있다. “숙식비 강제징수 지침 폐기”를 기조로 지난 4월 30일 열린 이주노동자 메이데이에는 평소의 2~3배가 넘는 이주노동자들이 투쟁에 동참했다. 집회 중에 손피켓을 나눠주며 본인이 내고 있는 숙식비를 써달라고 했더니 32만원을 내고 있다는 이주노동자도 만날 수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이주노동자운동은 행정부 권한으로 이 지침을 당장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8월에는 고용허가제 폐지 투쟁의 핵심 의제로 지침 폐기를 내걸고 전국적 집중투쟁을 준비하려고 한다. 모든 노동자는 하나라는 기치 아래 숙식비 지침 폐기를 위한 투쟁에 모두 함께 하자! ●
 
 
필자 소개

박진우 | 서울경인이주노동자노동조합 사무차장, 몸튼튼 마음튼튼 즐겁게 운동하자는 모토로 노래를 사랑하는 활동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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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숙식비 공제 공제동의서 숙식비 지침 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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