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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 제28호

네팔로 돌아간 이주노조 활동가들의 근황

네팔이주노동자연대센터 방문 후기

  • 정영섭
지난 4월 10~15일 희망연대노조 활동가들과 함께 네팔에 다녀왔다. 서울경인이주노동자노조(이하 이주노조) 조직국장으로 활동했던 선집 씨를 비롯해 네팔이주노동자연대센터(Solidarity Center of Nepalese Migrant Workers, SCENEMIGWO 이하 신미고)의 다른 구성원인 데이빗, 버즈라, 서멀도 만났다. 7년 만의 해후였다. 옛 친구이자 동지들을 만나자 지난 십수 년간 이어진 이주노동자운동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당시는 한국의 노동자운동에 있어서도 인상적인 시간이었다.
 
네팔이주노동자연대센터에서 만난 네팔과 한국의 활동가들
 

이주노동자운동이 걸어온 길

1990년대부터 여러 차례 일었던 이주노동자들의 집단적 투쟁은 2002년 ‘평등노조 이주노동자지부(ETU-MB, 이하 이주지부)’가 결성되면서 더욱 격렬해졌다. 2003년 당시 노무현 정부는 고용허가제 시행을 앞두고 전국적으로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단속·추방을 자행했다. 이에 맞서 이주지부는 이주노동자 공동체들과 함께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농성을 전개했다. 당시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서멀 타파가 농성단장을 맡아 앞장섰는데, 불행히도 표적 단속으로 추방되고 만다. 그 뒤로 많은 이들이 노무현 정부의 폭압적 방침에 의해 강제추방 당해야 했다.

2005년 4월엔 이주노조가 결성됐다. 노동부는 설립필증 교부를 거부했고, 이주노조는 10여 년 간 법외노조로 활동해야 했다. 당시 이주노조 활동가들은 정부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아 줄줄이 추방당했다. 설립 직후 단속된 아느와르 후세인 위원장은 1여 년간 보호소에 구금됐다. 병으로 일시 석방돼 다시 활동하다가 방글라데시로 돌아가야 했다. 다음 집행부를 맡은 까지만 까풍, 라주 구릉, 마숨 역시 2007년 겨울 한날한시에 잡혀갔다. 2008년 5월엔 토르너 림부 위원장과 압두스 소부르 부위원장마저 동시에 단속됐다.

극심한 폭력과 착취에 시달리거나, 추방당하거나. 참혹한 시간이었다. 이주노조의 역사는 이주노동자 권리를 위한 투쟁의 역사인 동시에 탄압과 추방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네팔로 돌아간 활동가들

삶의 터전을 잃고 네팔로 강제추방된 이들의 마음을 짐작하기란 어렵다. 젊음을 바쳐 일한 나라에서 권리를 깨우치고 누구 못지않은 활동가로 살았지만,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의해 강제출국되고 다시는 한국에 올 수 없게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억압이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의지를 꺾진 못 했다. 한국에서의 활동을 고향에 돌아가서도 이어나갔다. 서멀은 네팔노총(GEFONT) 이주노동자데스크에서 10년 이상 활동했다. 한국과 중동, 말레이시아에서 싼값에 힘든 일을 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안전한 이주(safe migration)’ 활동을 펼쳤다. 또 현지로 간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위해 각지에서 ‘네팔노총지지모임(Gefont Support Group, GSG)’을 만드는 활동도 했다. 버즈라 씨의 경우에는 대학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며 네팔노총의 이주노동자 지원활동에 함께 하기도 했고, 예비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며 한국의 노동현실과 노동자의 권리 역시 함께 가르쳤다. 방글라데시로 돌아간 활동가들 역시 저마다의 활동을 이어나갔다.
 

국제이주노동자연대네트워크

2008년 6월, 네팔과 방글라데시의 활동가들, 한국의 이주노조 활동가들은 카트만두에서 ‘본국 노동자와 한국 이주노동자운동의 연대를 위한 국제회의’를 열었다. 국제연대를 통해 본국과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운동을 더 발전시키자는 취지였다. 여기에는 네팔 활동가들의 헌신이 컸다. 작지만 소중한 성과였다.

세 나라 활동가들은 체계적인 소통과 공동행동을 위해 국제이주노동자연대네트워크(International Migrant Workers Solidarity Network)를 결성했다. 이에 더해, 고용허가제(EPS)를 통해 한국에 오는 노동자들에 사전교육 제공, 이주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 한국에서 이주노조에 소속됐다가 귀국한 이들의 활동 지원, 이주노조 합법화를 위한 캠페인, 각국 한국대사관 앞에서의 실천을 결의했다. 매년 국제회의를 열자는 다짐도 있었다.

하지만 이 결의는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 생계와 본국 사정의 어려움 때문에 네팔이나 방글라데시에 있는 활동가들이 모이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함께 이주노조를 했다는 것만으로 같은 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 이주노조의 자원 투여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중 선집 씨가 네팔로 돌아간 것을 계기로 네팔 활동가들은 2012년에 ‘신미고’를 결성했다. 한국으로 갈 노동자들에게 한국의 현실과 노동법 등을 교육해 이들이 한국에 왔을 때 이주노조에 가입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또한 이주노조 활동을 확대해 이후에 네팔로 돌아갈 이주노동자들이 신미고 활동에 참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한글 교육과 함께 활동이 지속됐고, 고용허가제 시험을 보는 이들에게 책자를 만들어 나눠주기도 했다. 어려움 겪는 이주노동자를 돕고, 노동절과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에는 직접 행동을 펼치기도 했다.
 

어떤 국제연대여야 할까

2014년 4월 발생한 대지진으로 네팔 곳곳은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한국에서도 민주노총을 비롯한 많은 단체에서 네팔노총과 신미고 등을 통해 재난 피해자 치료와 복구 사업을 지원했다. 당시에도 신미고는 피해지역을 다니며 지진 피해자들에게 긴급구호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신미고는 학교 지원도 하고 있다. 한국의 희망연대노조, 이주희망센터가 초등학교 건설과 운영비·급식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이번 방문에서 찾은 두 학교가 희망연대노조가 지원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강가의 한 곳은 불가촉천민 마을의 학교이기도 했다.
 
신미고에서 운영하는 초등학교
 
해외 운동을 지원한다고 해서 ‘국제연대한다’고 자족할 순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주 지적되는 것은 자기 필요를 중심으로만 국제연대 사업이 이뤄진다는 점이다. 한국 단체나 노조가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에 대해 시혜적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작년 말 진행된 신미고와 희망연대노조 간담회에서 ‘체계나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많은 것을 요구 받고 너무 많은 일을 하고 있다’, ‘네팔이주노동자연대센터로서 본래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한국 측의 책임이 크다’ 등의 비판적 평가가 나왔다. 더 많은 고민과 교류가 필요한 시점이다.

학교를 지원하든 예비 이주노동자 교육을 진행하든 어린이 장학금을 지원하든, 돈은 한국에서 네팔로 간다. 지금 이것은 바꿀 수 없는 조건이다. 이 때문에 동등한 관계보다는 갑을 관계 같은 분위기가 형성될 수도 있다. 실제 네팔에 진출한 서구 출신의 많은 NGO들이 이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면 평등한 주체로서의 연대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모종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테면 네팔 활동가들이 논의를 거쳐 지원을 당당하게 요청하고, 한국의 단체들은 이를 지원하면서 정기적으로 방문해 현지 상황과 조건을 면밀하게 파악하는 것은 어떤가. 그래야 함께 호흡을 맞추는 국제연대하지 않을까? 연대운동의 지향을 꾸준히 확인하고, 서로의 활동에 대해서도 평가함으로써 평등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에서도 국제연대 사업의 발전을 위한 세심한 논의가 진척되어야 한다.

신미고 역시 새로운 이들을 받아들이고 활동에 참여시킬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의 활동이 기반이 되어야 네팔에 돌아가서도 신미고 활동에 결합할 수 있다. 즉 한국에서 네팔 이주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을 경험하고,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야 귀국 시 신미고를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네팔 노동자들을 조직·교육하고, 그들의 권리를 찾는 활동을 하고 있는 이주노조에 대한 지원 역시 강화되어야 한다.
 

국제연대를 위한 노동자운동 역할 확대를

이번 네팔 방문에서 두 차례 간담회를 갖고, 현지 활동가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현재 신미고는 역량과 조건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상근자를 두기도 어렵고, 사업을 강화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어학원을 중심으로 노동권 교육을 활성화하려 하지만 네팔 활동가들 스스로의 고민과 논의가 우선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네팔 트리부반 국제공항에는 사망한 이주노동자의 관이 하루 열 개씩 들어온다. 카타르, 말레이시아 등 세계 각지에 흩어진 네팔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목숨을 잃고 있기 때문이다. 신미고 활동가들의 고민은 여기에도 있다.

한국의 노동자운동 역시 자신의 역할을 보다 확대해야 한다. 국제연대의 동지로서 NGO의 지원사업 같은 활동보다는 현지의 노동자운동과 한국 내 이주노동자운동을 발전시키기 위한 연대에 고민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10여 년간의 이주노동자운동을 바탕으로 밀접해진 양국의 노동자운동이 각자의 발전 속에서 아시아 국제연대를 구축해나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
 
덧붙이는 말

정영섭 | 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면서 이주노동자 권리를 위한 연대체인 이주공동행동 공동소집자 활동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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