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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 제23호

트럼프 당선과 미국의 탈세계화

탈세계화의 대중적 토대가 형성되는가?

  • 임필수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장
 
“우리는 인류의 경제적 번영에 관한 심원한 비관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한 논자가 한 말이다. 2007-9년 금융위기는 진정된 듯 보이나 경제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경제학자 로버트 고든이 올해 1월에 낸 베스트셀러, 《미국 경제성장의 흥망성쇠》는 비관주의의 중대한 사례다.
 
그는 187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이어진 경제혁신은 미국인의 삶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꿔 놓았지만, 이제 그런 혁신이 반복되리라 기대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전직 재무장관 출신 경제학자 래리 서머스 역시 우리가 장기침체 시대를 살고 있고, 세계경제는 영구적으로 저속주행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2016년에 벌어진 놀라운 사건,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은 정치적·경제적 사건이다. 그것은 세계경제의 장기침체에 대한 정치적 반응이자, 세계화의 경로 변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무수한 돌출적 발언으로 종종 조롱의 대상이 되었으나, 그에게는 일관된 메시지가 있었다. “이주자가 당신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세계화가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당선되었다.

 

‘이주자가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미국시민자유연합은 올 7월, <트럼프의 공식발언과 정책제안에 대한 헌법적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의 주장은 이민, 무슬림 감시, 고문, 낙태, 명예훼손법, 대중감시에 관한 트럼프의 발언이 미국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남긴 놀라운 어록 중 몇 가지를 인용해보자.
 
“멕시코가 멕시코인을 미국에 보낼 때, 수많은 문젯거리를 지닌 사람들을 보냈다. 멕시코인들은 마약을 가져왔다. 그들은 범죄를 가져왔다. 그들은 강간범이다.”
 
트럼프는 2년 내에 모든 미등록 이주자를 강제 추방하겠다는 약속을 반복하며, “우리는 그들은 매우 인간미 있는 방식으로 추적, 체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 미등록 이주자는 1100만 명이 넘는데, 그의 주장대로라면 매일 1만 5000명을 체포해야 한다.
 
트럼프의 계획은 1954~55년 아이젠하워의 ‘젖은 등 작전(Operation Wetback)’에 비견된다. ‘젖은 등’은 리오그란데 강을 헤엄쳐 건너온 멕시코 노동자를 비하하는 말이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이 작전 과정에서 수많은 인권유린이 벌어졌다. 예를 들어 멕시코 사막에 방치되어 88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2015년 12월 15일 LA 샌버너디노에서 무슬림 부부의 총기 난사로 14명이 사망한 참사가 발생하자 트럼프는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총체적으로, 완벽히 폐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2016년 6월 12일 올랜도의 LGBT 나이트클럽에서 무슬림 청년의 총격으로 50명이 사망한 사건 후 이 입장을 재천명했다. 트럼프는 미국 내 무슬림에게 특별신분증 소지를 요구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솔직히 우리는 1년 전이라면 생각할 수 없는 어떤 일들을 해야만 한다”고 답했다.
 
미국이 고문을 다시 도입해야 한다며, 트럼프는 “물고문 이상의 무언가를 완전히 승인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트럼프는 2015년 11월 파리 테러 후 CNN과의 인터뷰에서, 용의자 처우에 관해 “그는 진술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문을 받는다면 더 빨리 진술할 것이다”고도 말했다.
 
보고서는 트럼프 단 한 명이 미국에 헌법 위기를 야기하고 있다고 단호히 결론을 맺는다.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매일 수만 명의 이주자를 추방하기 위해 새로운 무장력, 이른바 ‘추방군’을 창설하고, 특정 종교를 지닌 시민에게 특별신분증 소지를 의무화하고, 부시 정부 당시 행해진 물고문 이상의 고문도 승인하겠다는 발상이 가당할까?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는 사실이다. 트럼프 당선이 초래할 헌법적 위기, 즉 종교·언론·출판의 자유나 수색·체포로부터의 안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될 위험보다 더 긴급한 어떤 상황이 있는 것인가?
 

‘세계화가 일자리를 빼앗았다’

시야를 돌려보자. 미국 공영라디오 PRI에는 이런 기사가 실렸다. “트럼프의 반세계화 메시지가 펜실베니아의 ‘잊힌’ 도시에서 울려 퍼지다.” 피츠버그에서 30마일 떨어진 모너센이란 소도시의 시장, 루는 60년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철소에 취업했다. 그는 괜찮은 임금을 받았고 착실한 중간계급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이제 모너센은 그때와 아주 다른 장소가 되었다. 제철소는 1980년대에 문을 닫았다. 주민은 1만 8000명에서 7500명으로 줄었고 과세 기반은 바싹 말랐다. 시내에는 400개의 폐가와 30개의 버려진 건물이 있으나, 이를 철거할 돈조차 없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아름다운 고향이었지. 이제 여기를 보시오. 비현실적이라오. 쓰레기 더미를 보시오. 잊힌 도시, 그것이 바로 우리라오.” “이 모습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처럼 보이시오?” “세계경제라니, 바보 같은 소리야.”
 
그는 평생 민주당원이었고 의원들과 오바마 대통령에게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썼으나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했다. 그는 트럼프 후보에게 연락했다. 트럼프는 그의 요청에 응했고, 놀랍게도 직접 모너센에 왔다.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나는 어떻게 미국이 다시 부유해질 수 있는지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미국이 생산한 강철이 우리나라의 등뼈가 되게 할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대규모 일자리를 창출할 것입니다.” “세계화의 물결이 우리 중간계급을 완전히, 완전히 쓸어내 버렸습니다. 우리는 이를 되돌릴 수 있습니다.”
 
시장 루는 트럼프의 연설을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가 왜 다른 나라를 신경 써야 하나요? 지금까지 도시를 둘러보지 않았습니까? 나의 도시만 유일한 사례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마도 트럼프에 투표할 것입니다”, “당신이 나를 위해 뭔가 해줄 수 있다면 내 표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당신이 내게 해줄 게 아무 것도 없다면 나도 그렇다는 겁니다.”
 
미국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트럼프가 헛된 희망을 판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피츠버그 카네기 멜론 대학의 브랜스터 교수에 따르면, “우리는 그처럼 거대한 철강 산업을 소생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모든 고등학교 졸업생, 심지어 중퇴한 학생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철강 산업, 그것은 피츠버그에서 지난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다시 생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 그런가? 그에 따르면, 미국은 이제 더 이상 다수의 제조업 노동자가 필요하지 않을 것인데, 극적인 기술진보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또한 대통령이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거나 무역협상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의회 승인이 필요하므로, 대통령의 권한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런 설명이 모너센 시민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었을까?
 
몰락한 소도시 모너센의 쓰레기더미 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는 트럼프
 

탈세계화의 대중적 토대

경제전문가들은 트럼프경제학이 실현되면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오히려 하락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가 언급한 현존 자유무역협정(FTA)의 폐기, 세계무역기구(WTO)로부터 철수는 논외로 하더라도, ‘전면적인 무역전쟁 시나리오’가 실행될 경우, 즉 중국과 멕시코에 각각 45퍼센트, 35퍼센트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과 멕시코도 미국 수출품에 동일한 관세를 부과하면 2019년까지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다는 말이다. 수입품이 가격이 오르면 인플레이션 상승이 점화되고 이자율도 오를 것인데 그러면 투자가 감소하여 결국 산출과 고용이 감소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전문가의 경고는 별무신통했고 승리한 것은 트럼프였다.
 
트럼프만 보호무역을 옹호한 게 아니라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클린턴 역시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에 대해 “현재로서는 지지할 수 없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물론 클린턴은 국무장관 당시 TPP를 직접 설계한 사람이므로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해석할 수 없다. 어쨌든 두 사람이 모두 TPP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낸 것은 미국 내 저변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정치공학적 관점에서 이번 선거는 부시 2기의 격렬한 네거티브 전략과 유사하다. 보통 중도파의 선거 전략은 ‘삼각형 만들기’라는 외부적 확대전략이다. 즉 삼각형 위의 정점에서 아래 밑변의 양 꼭지점(좌우)의 장점만 뽑아서 활용하여 부동층을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네거티브 비방과 탈동원화, 이를 통한 내부적 자기강화라는 방법도 있다. 자신을 지지할 가망성이 높은 특정집단의 지지를 모으기 위해서는 더욱 명료한, 즉 극단적인 정치메시지를 전달하고 나머지 집단에서 대해서는 탈동원화 전략을 적극 활용한다는 것이다. 즉 비방광고나 추문을 통해 대중의 정치적 혐오를 확산시켜 유권자의 선거 참여를 일반적으로 억제하거나, 상대방 후보를 선호할 것 같은 집단의 투표 참여를 억제한다. 부시 2기 대선캠페인의 주요 이슈가 동성애, 낙태와 같이 종교적 쟁점과 관련되었다면, 트럼프의 이슈는 이주민과 세계화라는 사회경제적 쟁점이었다. 놀랍게도 미국 대선에서 자유무역 이슈가 주요 쟁점으로 부상한 것은 이번 선거가 처음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트럼프가 제기한 이슈는 단순히 정치공학적 계산에 따라 선택된 소재에 불과한 게 아니다. 브렉시트가 실제 상황인 것처럼 미국의 TPP 탈퇴 공언도 실제 상황이다. 트럼프는 11월 21일 취임 100일에 관한 계획을 발표했는데, TPP 탈퇴를 첫 번째 과업으로 제시했다. 또한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앗아가는 비자 남용 문제를 조사하도록 노동부에 지시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미국-멕시코 장벽이나 추방군, 무슬림 감시 공약이 모두 실행되지는 않겠으나, 아무 것도 안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역시 세계사적으로 보편적 문제가 된 이주, 난민 문제에 새로운 표준이 되지 않을까?
 
세계 민중들이 주도하는 ‘아래로부터 세계화’를 주창하는 ‘대안세계화’와 달리, 트럼프가 대표하는 보수주의적, 포퓰리즘적 반세계화는 ‘탈세계화’라 명명할 만하다. 그리고 브렉시트와 마찬가지로 트럼프의 당선은 서반구에서 탈세계화의 대중적 토대가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직 그 결과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지만, 탈세계화는 우리가 알던 세계에 심원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촉발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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