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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 제23호

노동조합이 이주노동자와 함께 가는 길

스위스 건설 이주노동자 조직화 사례

  • 조은석 건설노조 정책국장
세계 금융위기 이후 우니아 조합원들이 노동자의 단결된 힘(큰 물고기)으로
민중을 약탈하는 금융자본(상어)을 쫓 아내는 플래시몹을 하는 모습
 
스위스 최대 노조인 우니아(Unia)는 건설, 금속, 시계공예 및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한 다부문 노조로 그 중에서도 건설과 서비스 부문이 핵심을 이룬다. 놀라운 점은 우니아의 전체 조합원 20만 명 중 10만 명이 이주노동자라는 점이다. 스위스 건설과 서비스업 노동자 대부분이 이주노동자임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이는 크게 놀라운 수치다. 한국에서도 건설 부문에 이주노동자의 비중이 크고, 특정 직종과 지역의 경우 이주노동자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스위스 우니아의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을 것이다.

 

스위스 노동이주 제도의 변화

20세기 초부터 이주를 허용해 온 스위스에서는 1970년대에 이미 이주민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퍼센트를 상회했다. 당시 이주노동자는 대부분 쿼터제를 기반으로 한 계절 노동자였다. 이들은 8~10개월의 단기 노동계약을 맺었고, 체류허가 역시 특정 사업자에 국한되어 있어, 사회적·시민적 권리가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실업보험도 없었고 계약기간 이후에는 스위스에 체류할 수도 없었다. 가족동반이나, 이직, 사업장 변경은 어떠한 경우에도 불가능했으며, 심지어 거주 이동의 자유도 없었다. 따라서 1980년대 후반 들어 이주노동자를 대규모로 조직하는 데 성공한 노동조합은 계절노동자 제도가 폐지되도록 압박했다.
 
건설업의 이주노동자 비율은 특히 높았다. 1890년대부터 이탈리아 노동자들이 스위스 인프라 공사에 동원되었고, 1910년경에는 건설노동자의 40퍼센트가 스위스인이 아니었다. 1960~70년대 들어 이탈리아인들은 스위스 건설현장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게 되었다. 스페인, 포르투갈, 유고슬라비아에서도 건설노동자들이 유입되었다. 스위스 정부는 위의 나라들과 협정을 체결하여 건설 산업에 연간 고용할 수 있는 쿼터제를 유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위스는 유럽경제지역(EEA) 가입을 추진했고, 노동조합은 유럽경제지역 가입과 계절 노동자 철폐를 모두 지지했다. 하지만 1992년 국민투표에서 국수주의적 보수 정당의 반대와 노동시장 개방으로 인한 노동자간 경쟁 심화를 우려한 노동자들의 반대로 EEA가입은 부결된다. 계절노동자 제도는 2004년에 EU와의 양자간 협정이 체결되며 폐지되었다. 물론 단기 노동계약은 상존했고 단기 노동자의 수도 늘어났다.
 

노동시장 개방에 어떻게 대응했나

여느 노동조합과 마찬가지로 스위스의 좌파 노동조합은 딜레마에 처했다.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 보호라는 정치적 지향과 이주 노동의 유입 통제를 통한 경쟁 감소와 노동조건 보장이라는 노조 고유의 이해가 상충됐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개방에 따른 충격 이외에도 이미 1990년대 들어 스위스에서는 완전고용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노동조합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이 저하됐다. 2차 대전 후 지속적 경제성장 속에서 스위스의 노동조합은 성장의 열매를 나누는 코포라티즘(사회적 합의주의)의 하위 파트너로 존재해 왔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기조가 관철되고, 새 세대의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들어서면서 노동조합의 전략이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EU와의 양자간 협정 체결 국면에서 노조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스위스 정부와 사용자단체는 EU와의 양자간 협정을 강력히 원했지만, 민족주의·보수주의 세력의 반대로 인해 노동조합과 사민당의 지지 없이는 협정을 체결하기 어려운 조건에 놓여 있었다. 노동조합은 협정을 지지하는 동시에 전체 노동자의 임금 및 노동조건 저하를 막기 위한 협정의 ‘우회조치’ 도입을 국민투표에 부쳐 통과시켰다. 우회조치의 내용은 노동조합, 정부, 사용자 단체에 이주노동자의 임금 및 노동조건의 준수 여부를 정기적으로 확인할 권한과 의무를 부여하고, 사용자 단체와 노조 사이에 체결된 단체협약에 국적을 불문하고 산업 전체에 적용되는 일반적 구속력을 부여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 결과 단체협약 적용자의 숫자는 1999년 10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오르기 시작했고, 2007년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이주노동자에게 내국인과 동일한 조건을 제도적으로 부여함으로써 사용자들이 저임금으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유인 자체를 제거한 것이다.
 
이러한 대응은 노동조합 운동의 혁신 전략 아래 이루어졌다. 혁신의 방향은 정치적 행위자로서 역할 강화, 새로운 조직화 전략 도입과 파업 역량 강화, 노조 병합을 통한 자원 집중 등이었다. 노동조합은 우회조치 이외에도 국민투표를 발의해 실업급여 축소, 전력시장 규제완화, 연금 축소 등을 막아내었다. 또한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저임금 이주·여성 노동자에 대한 대규모 조직화를 활발히 벌였다. 특히 강조해야 할 것은 코포라티즘의 전통을 넘어 노동쟁의를 다시 부활시켰다는 점이다. ‘경제호황 노조주의’에서 ‘경제위기 노조주의’로 변모를 꾀한 것이다.
 

이주노동자 조직을 위한 노력

우니아는 전체 건설노동자(건물이나 인프라 공사의 주요 공종 노동자로 전기원이나 도장공, 용접공 등 인접 분야는 제외된다) 중 60퍼센트 정도인 4만 7000명을 조직하고 있고, 이중 75퍼센트가 이주노동자이다. 가장 취약한 처지에 있는 노동자를 조직함으로써 노조의 대표성을 강화한다는 원칙을 견지하는 동시에, 이미 건설 산업의 필수 구성원인 이주노동자를 조직하지 않고서는 노조로서 존립이 어렵다는 판단을 가지고 강력하게 조직화를 추진한 결과다.
 
우니아는 이주노동자를 조합원으로 조직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거듭해 왔다. 가장 먼저 강조하는 것은 언어장벽 극복이다. 노조의 조직가가 모국어로 노동자와 대화함으로써 혼란을 줄이고, 신뢰를 얻고 관계를 형성해 나갈 수 있다. 또 같은 나라 출신일수록 노동자들에게 더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우니아에는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조직가가 활동하고 있다.
 
또한 노동자 조직화와 지원에서 정보는 매우 중요하다. 과거의 계절 노동자는 정해진 날짜에 입국해 집단적으로 위생 검사 등을 받았으므로, 노조가 국경에서 이들과 접촉하기가 쉬웠다. 반면 지금은 송출국 노조와 협력하여 이주노동자가 입국 전에 해당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모국어 유인물 제작도 이주노동자 사업에서 중요한 요소다. 이주노동자의 노동권과 시민권에 관한 유인물이나 임시직과 단기 노동자에 대한 브로셔, 특정 직종과 부문의 단체협약 공지 등이 있다. 또 우니아는 독일어, 이태리어, 프랑스어 3개 언어로 된 소식지를 발행하고, 이에 대한 보충자료가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알바니아어, 세르보-크로아티아어, 터키어로 발행된다.
 
게다가 우니아는 조합원들에게 모국어 법률자문을 제공한다. 이러한 법률자문 변호사 역시 같은 동유럽 지역 출신인 경우가 많다. 또한 사업장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노동 문제와 노조 정치에 관한 교육훈련도 실시한다. 이를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노조와 현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니아에 가입한 폴란드 이주노동자들이 체불임금을 받아내고 환히 웃고 있다.
 

배제에서 기준 적용, 조직화로

역사적으로 보면 이주노동자에 대한 스위스 노조의 입장은 배제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이주노동자의 대규모 유입은 스위스 저숙련 건설노동자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하지만 EU와의 관계 속에서 이주노동자를 배제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스위스의 노조운동은 산업별 노동표준을 향상시키는 것과 함께 노동조합의 힘을 증가시킬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도입하는 영리한 선택을 내렸다.
 
하지만 전체 노동표준 향상과 표준의 일괄 적용만으로는 부족하다. 덴마크의 사례가 방증이 될 수 있다. 덴마크 노총(LO)은 2004년 EU의 확장을 앞두고 동유럽 출신 이주노동자가 덴마크로 와서 일할 경우 산업별 단체협약을 준수토록 만든다는 명확한 방침을 세웠고, 건설노조도 이러한 방침을 지지했다. 그러나 실제 폴란드 출신 노동자들이 들어와 일하기 시작하는 순간 이러한 전략의 문제점이 발견되었다. 덴마크의 목수노조가 단체협약 체결을 거부하는 현장을 틀어막고 싸웠지만 이주노동자의 조직화 없이 이주노동자들에게 단체협약을 적용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것이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80~90퍼센트에 달하는 덴마크에서도, 물밀듯 치고 들어오는 동유럽 건설사들과 이주노동자들이 흩어져 있는 모든 현장을 상대하는 일은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결국 덴마크 노조는 EU 확장 1년이 지난 시점에서야 폴란드 출신 조직가를 고용해 폴란드 노동자를 조직하기 시작했으나, 처음부터 잘못 풀리기 시작한 사업은 노조가 점점 더 현장 감독관 같은 역할로 변질되는 쪽으로 귀결되었다.
 
스위스와 덴마크 사례가 보여주는 잠정적인 결론은 이렇다. 노동조합은 국내 건설 노동시장에서 이주노동자의 배제를 통해 노동시장의 하방 압력을 완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배제가 불가능하다면 고려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최저 노동표준을 향상해서(이주노동자와 내국인의 임금 격차를 완화해서) 이주노동자의 고용 유인을 완화시키는 것이다. 이 역시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그러한 노동표준의 집행이 쉬운 일은 아니다. 결국 그러한 기준을 적용시키기 위해서라도 이주노동자의 조직화가 필요하고 조직화와 기준적용의 선순환을 이끌어낼 수 있는 노조의 전략적 시야가 필요하다. 제도적으로는 노조가 먼저 이러한 선순환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 고용제도의 변경을 요구하여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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