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2016/11 제22호
필리핀에서 다시 만난 미쉘 동지
2010년 12월 24일, 이제 막 이주노동자 한글교실 활동을 시작했던 난 이주노조 사무실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에 부푼 마음을 안고 방문했다. 당시 이주노조 위원장이었던 미쉘 동지의 요리 솜씨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는데 그 후에도 집에 초대해서 직접 필리핀 돼지요리와 김치를 대접해주신 게 기억에 남는다. 요리뿐만 아니라 유창한 영어실력과 활발한 연대 활동, 그리고 동지들과의 음주가무를 즐겨했던 미쉘 동지에게 난 금방 빠져들었고 언젠가 함께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꿈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2012년 4월 30일 청천벽력과 같은 연락이 왔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필리핀에 잠시 귀국했던 미쉘 동지가 한국에 재입국하는 과정에서 인천공항에 억류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는 인물이라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미쉘 동지와의 재회가 그 뒤로 5년이 흐르고서야 가능할지 그땐 정말 몰랐다.
지난 9월 26일, 이주노동희망센터와 함께 필리핀 이주노동자 현장 조사 요원으로 참여하게 된 나는 마닐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미쉘 동지와의 재회를 어떻게 준비해야할지 몰라 잠이 오지 않았다. 첫날 저녁 호텔 로비에서 만난 미쉘 동지는 예전보다 훨씬 편안한 모습이었고 보고 싶었다며 따뜻하게 나를 안아주었다. 그것만으로도 지난 몇 년 동안의 고민과 어려움들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의 이주노조 경험을 바탕으로 미쉘 동지는 필리핀에 돌아와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을 지원하고 조직하고 있었다. 우리는 마닐라와 다바오시를 오가며 다양한 이주노동자들을 만났다. 중동에서 수십 년 동안 가사 노동자로 일한 무슬림 여성도 만나고, 아주 어릴 때 부모님이 이주노동을 하러 가서 십년 넘게 만나지 못했다는 이들도 만났다. 어떤 여성 이주노동자는 노동자를 해외로 수출하는 정책을 멈춰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미쉘 동지와 밥을 먹다가 한국에 있는 동지들이 보고 싶지 않은지 넌지시 여쭤보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한국에서 이주노조 위원장을 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하다 보니 어느새 심한 우울증에 걸려 있었다는 걸 필리핀에 돌아와서 깨달았다는 이야기였다. 주변 동지들에게 쉽게 화를 내고 매우 예민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많이 미안하고 꼭 다시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미쉘 동지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있었다. 나도 가슴이 뭉클해서 이주노조에서 일하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점들에 대해 미쉘 동지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한국에 돌아오기 하루 전날 미쉘 동지는 내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이 미쉘 동지를 기억하는 모든 한국인 동지들에게 하는 말 같아서 옮겨보고자 한다.
“당신은 조력자도, 코미디언도 아닌 똑같은 이주노조의 동지이다. 우리는 수직이 아닌 수평적 관계를 추구하기에 주변 동지들에게 본인의 어려움을 꼭 이야기하고 함께 해결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고 분명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이주노동자에게 도움을 주는 것 이상으로 우리가 많이 뭉치면 뭉칠수록 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신이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