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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집
  • 2016/10 제21호

탈북 이주민의 현실과 인권

  • 정영섭 사회진보연대 사무처장
탈북 이주민들은 대개 중국을 경유해서 한국으로 오는데,
대다수가 2개 이상의 나라를 거쳐서 입국한다. 
예컨대 태국, 몽골, 캄보디아, 베트남 등을 거쳐 왔다. 
특정 국가를 경유하는 루트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면 
다른 나라 루트가 개척된다. 
 
얼마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일하던 태영호 공사가 한국에 입국했다. 통일부 대변인은 “북한의 핵심 계층 사이에서 김정은 체제에 대해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북한 체제가 이미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지배 계층의 내부 결속이 약화되고 있지 않느냐 하는  판단을 해본다”고 밝혔다. 북한 고위 관료들이 속속 이탈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체제 붕괴에 대한 기대를내비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8월 하순 “북한의 주요 인사들까지 탈북과 외국으로의 망명이 이어지는 등 심각한 균열 조짐을 보이면서 체제 동요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 북한의 체제 동요가 커지고 있다는 증거는 별로 없다. 1997년 황장엽 노동당 국제비서 사례 같이 1990년대 이후 북한 고위층의 탈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정부나 보수 세력의 주장대로 북한이 붕괴해도 벌써 붕괴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탈북이 정치적 공세로만 활용되면서, 정작 남한 내에 있는 일반적 탈북 이주민들의 삶에  제대로 초점이 맞춰지고 있지 않다. 진정으로 통일을 준비하고 한반도 주민들의 인권을 증진시키고자 한다면 이 현실부터 살펴보고 상황을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
 
 

탈북 이주민의 증가

1990년대 초 소련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북한에 대한 국제적 지원이 줄었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이 오랫동안 경제 제재를 가해왔다. 설상가상으로 대규모 수해 등 자연재해까지 발생하면서 ‘고난의 행군’이라고 하는 식량난과 기근이 심각해졌다. 그래서 1990년대 중반 이후 생존을 위한 탈북이 증가하였다. 주로 중국 접경지역으로 나가 식량을 구해서 돌아가거나 중국 내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형태였다. 1990년대 말까지 남한으로 입국한 사람 전체는 1000명 수준이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외부 세계의 정보 유입이 늘어나면서 생존을 넘어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찾기 위한 탈북이 늘어났고 매년 1000~3000명이 입국했다. 여기에는 기독교회, 보수단체 등의 기획 탈북 활동도 맞물려 있다. 통일부 통계를 보면 2016년 8월 전체 입국자는 2만 9688명이다. 2007년에 1만 명을 넘어섰으니 10년 만에 세 배에 이른 것이다. 이 가운데 여성이 2만 1000여 명으로서 남성의 두 배가 넘는다. 2009년 이후 입국자는 국경 단속 강화, 탈북 비용 증가 등으로 인해 해마다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지만 전체 숫자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브로커를 통한 입국 과정

탈북 이주민들은 대개 중국을 경유해서 한국으로 오는데, 대다수가 2개 이상의 나라를 거쳐서 입국한다. 주요 경유국은 태국, 몽골, 캄보디아, 베트남 등인데, 특정 국가를 경유하는 루트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면 다른 나라 루트가 개척된다. 이 과정에서 기획 탈북 단체들이나 브로커들이 금전을 대가로 안내를 하고 입국 후 탈북 이주민이 정착 일시금을 받으면 그 비용을 치르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북한에서 중국까지 탈북하기 위해 브로커에게 주는 비용이 국경 경비 강화로 인해 1000만 원 이상으로 올랐고, 중국에서 동남아시아 국가까지 안내받는데 드는 비용도 200~250만 원으로 올라서 탈북 비용이 거의 1500만 원 가까이 든다는 보도도 있었다(<노컷뉴스> 2016.4.19.). 10년 전에 비해 10배로 뛰었다고 한다. 먼저 탈북해 있던 가족이나 친지가 돈을 벌어서 이 비용을 대야 하고, 도움을 받을 연고자가 없으면 탈북은 어렵다. 
 
 

구금과 인권침해

탈북 이주민은 한국에 들어오면 1997년에 제정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국가정보원에 의해 보호 및 정착 여부를 결정하는 합동 신문을 최대 6개월까지 받는다. 그 이후에는 한국 사회 적응을 위하여 정착 지원 시설인 ‘하나원’에서 3개월간 교육을 받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외부 접촉은 철저하게 통제된다. 즉  탈북 이주민에게 합동신문센터(2014년에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로 명칭이 변경)와 하나원은 9개월 동안의 구금 시설인 것이다. 여기서는 변호사 접견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위장 탈북자라는 혐의가 있으면 이의 제기 절차도 없이 한국에서 추방되기도 한다.
 
최근 기획 탈북 의혹이 제기된 류경식당 종업원 사건에서 보듯이 민변의 접견 신청도 거부되고, 변호인들이 법원에 청구한 인신구제 청구(위법한 행정처분으로 수용시설에 수용된 개인을 구제하기 위한 인신보호법상의 절차)도 기각됐다. 법원은 종업원들의 의사를 직접 확인하지 않은 채 국정원의 주장만 받아들였다. 

공익인권법재단의 황필규 변호사에 따르면, 합동 신문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를 대리하여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는데 대법원 판결로 패소했다. 법원은 구금이 “원고에 대한 절차·보장 없는 감금 조사가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필요 최소한의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하였다. 즉 위장 탈북자나 간첩을 가려낸다는 명목이 모든 인권침해적 관행을 정당화한 것이다. 합동신문센터는 한국의 관타나모 수용소라고 비판을 받아 왔는데 자의적인 구금과 인권침해는 반드시 없어져야 할 것이다. 2015년에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이를 국제인권 기준에 맞게 개선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황필규, <탈북자의 인권은 어디까지인가>, 2013.).
 

낮은 삶의 질

정부는 탈북 이주민에게 정착금으로 1인 기준 700만 원을 지급한다. 금액이 적은 이유는 탈북 이주민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근로 의욕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2005년부터 정착금을 3분의 1로 줄이고 대신 취업을 1년 이상 유지하면 장려금을 주는 방식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그 외 임대아파트 전세금 지원(1300만 원)이 있고, 학생에게는 학비 지원도 한다. 그렇지만 생활은 어렵다. 자본주의 사회의 물정에 어두워 정착금을 사기 당하거나 범죄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북한에서의 직업 경력은 인정받지 못한다. 

북한에서는 의사였는데 남한에서는 유리창 닦는 일을 하다가 지난 8월에 추락사한 어느 탈북 이주민의 안타까운 사례는 이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직장 내 차별을 가장 힘들어 했다고 한다. 일기장에는 “편법이 용납되는 결과주의와 일등주의 세상의 물결에 휩쓸리고 싶지 않다 … 성공이라는 봉우리를 향해 나름 열심히 하고 있다. 그 길이 통일을 앞당기는 길이며 그리운 혈육과 상봉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기에 열심히 또 열심히…”라고 씌어 있었다. 
 

표에서 보듯이 탈북 이주민의 실업율은 일반 국민에 비해 두 배에 이르고 월 평균 소득은 65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생계급여 수급율은 매우 높다. 즉 노동시장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낮은 소득으로 인해 생활이 불안정하다. 2014년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탈북 이주민의 3분의 2는 스스로를 하류층으로 생각한다. 이 조사에서는 낮은 경제활동 참가율, 높은 사회안전망 의존도, 청소년의 학교 부적응 등이 여전히 문제로 제기되었고 열악한 건강 상태로 인한 노동 의욕 저하, 학력과 경력의 단절, 남북한 직장 문화 차이, 사회적 편견 등이 주요 원인으로 분석되었다. 한국에서 좌절을 겪고 다시금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으로 향하는 탈남 현상이 지속되고 있기도 하다. 결국 노동시장으로의 안정적 편입, 사회적 인식의 차별 해소, 청소년 교육과 자립이 핵심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정부 정책과 사회의 변화가 있어야 늘어나는 탈북 이주민의 권리와 사회적 지위도 높아질 수 있다.
 

과잉대표되는 탈북 이주민

하지만 3만여 명의 탈북 이주민의 목소리가 다양하게 표출되지는 않고 있다. 탈북 이슈가 미국과 한국 정부 등에 의해 북한에 대한 정치적 공세의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고, 국내에 온 탈북 이주민들도 주류 집단이 원하는 대로 발언하는 것에 주로 동원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탈북 이주민 관련 단체들은 반북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어버이연합이 세월호 반대집회에 탈북 이주민들을 일당 알바로 활용한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관변 극우보수 단체들과 긴밀한 관계이기도 하다. 정부의 민간단체 지원 예산이나 각종 지원금이 이런 단체들로 많이 들어간다. 

그런데 이러한 집단이 탈북 이주민들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탈북 이주민들도 젊은 세대에서 생겨나고 있다. 예컨대 정부나 보수단체의 지원으로부터 독립적인 탈북청년들의 모임이 생겨났다(주간경향, <진보도 보수도 아닌 탈북청년들 모임>, 2014.4.8.).
 
사람들이 탈북 이주민을 빨갱이 혹은 못사는 사람으로 보는 게 싫어서 아프리카TV에서 인터넷 방송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셋넷학교’ 같은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도 있다. 
 
 

탈북 이주민 주체화

한국 사회는 탈북 이주민을 한편으로는 같은 민족으로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타자로 차별한다. 경제적 기준에 따라, 가난한 나라에서 오는 이주민들을 무시하는 인종차별이 탈북 이주민이나 중국 동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탈북 이주민에 대해서는 이데올로기적 잣대까지 들이댄다. 

그런데 사실 진보운동 진영에서는 이들과 함께하지 못해왔다. 앞으로 노력이 필요하다. 몇 가지 과제를 생각해보자. 
우선 입국 과정과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 하나원 수용 등에 있어서 기본적 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탈북 이주민이라고 해서 신체에 관힌 기본적 인권이 유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둘째, 탈북 이주민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확대되어야 한다. 특히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여성과 청소년들의 인권, 노동권, 교육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 나은 삶의 기회와 자녀 교육을 위해 이들의 노동과 교육에 지속적인 지원 노력이 있어야 한다. 

셋째, 다양한 탈북 이주민들의 목소리가 발굴될 필요가 있다. 미디어가 고정적인 이미지와 목소리만 내보내지 않도록 비판하는 활동도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에서 주민들 사이의 교류도 활발해져야 할 것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동등한 주체로서 탈북 이주민이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특히 젊은 세대에서 서로 이해를 높이는 활동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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