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오늘만나다
  • 2015/08 제7호

홈리스 운동을 일구는 부지런한 발걸음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를 만나다

  • 인터뷰 정리 김유미 편집실 기획국장
 
 
반갑습니다. 홈리스행동에서 항상 헌신적으로 활동하시는 모습 인상깊게 봐 왔습니다. 언제 어떻게 이런 활동을 하시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빈곤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그 중에서도 왜 홈리스 문제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시게 되었나요?
 
제가 시골 출신이에요. 충남 홍성의 아주 작은 소농 집안에서 자랐는데, 부모님은 농사지으시고 농한기에는 아버지가 농공단지의 레미콘 공장에서 일하셨어요. 경운기, 이양기 사면 빚 갚느라 돈 없고, 어머니가 아프셔서 일 년에 한두 번은 입원을 하시는데 그러면 있는 돈이 다 들어가고 그런 일이 반복되곤 했어요. 가난이란 건 늘 함께였죠.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
 저희는 삼남매였는데요. 형제 중에 한 명만 대학에 갈 수 있는 형편이었어요. 제가 제일 잘났던 건 아닌데 형 누나가 양보를 해서 막내인 제가 대학에 가게 됐죠.

신학대학에 입학해 ‘도시빈민선교회’라는 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판자촌에 들어가서 공부방 하고, 주민들 조직해서 철거 싸움 하고, 그런 활동을 1학년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쭉 했어요. 그 공부방들이 지금은 지역아동센터 같은 걸로 다 바뀌었거든요. 제가 졸업할 때쯤에도, 판자촌 공부방의 기능이 아이들과 주민들을 조직해 운동하는 곳보다는 과외 방 비슷한 양상이 됐어요.
그래서 졸업학기에 공부방을 그만두고, 우리 써클이 어느 빈민들과 함께하면 좋을까 물색을 하는 세미나를 했어요. 그게 2001년도였는데요. 90년대 후반부터 실직노숙인이라는 문제가 사회적으로 중요하게 떠올랐었거든요. 그래서 이 활동을 하게 됐어요. 
 
IMF 이후 급증한 실직노숙인의 문제에 주목하고, 관련 활동을 해보자고 써클에서 같이 얘기를 했다는 말씀이시죠?
 
네, 맞아요. 마침 2002 월드컵을 앞두고 서울시가 노숙인들을 지역의 수련원으로 집단 연수 보내려 하는 일이 있었어요. 홈리스의 역사는 원래 단속과 수용의 역사에요. 형제복지원 사건도 유명하잖아요. 이른바 ‘빈곤의 비가시화 전략’이죠. 당시 서울시의 조치에 반발하면서 저희 홈리스행동의 전신인 노실사(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를 주축으로 해서 여러 단체들이 함께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을 만들고 상담활동이나 캠페인을 했어요. 저는 그때 처음으로 홈리스 문제와 관련된 활동을 시작하게 됐고요.
 
돌이켜 보면, 가난은 제 삶에 익숙했던 것 같고요. 근데 가난이라는 게 사회적 문제라는 것은 대학에 들어와서 써클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됐지요. 대학 4년을 경과하면서 자연스럽게 이 활동으로 업을 삼아야겠다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노실사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단체인가요? 그리고 이 단체가 홈리스행동으로 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노실사는 2001년 12월에 만들어졌어요. 그때까지 노숙인 운동이라는 게 실무자나 단체를 통해 대변되는 운동이지 당사자 주체는 없었기 때문에, 당사자 운동을 만들자는 문제의식이 한 축으로 있었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실무자 조직화도 하려 했어요. 그때까지는 부랑인이라는 말만 있었지 노숙인이라는 게 법적으로 인정받는 개념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연히 실무자들 처우도 굉장히 좋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실무자 문제보단 당사자 조직화 운동이 단체 성격의 중심이 되었어요. 그리고 2009년에 당사자 조직화 운동을 조금 더 잘 해보자는 것과 함께 용어를 홈리스로 바꾸면서 ‘홈리스행동’으로 조직을 바꾸게 되었어요.
 
단체 이름에 들어가는 명칭을 노숙인에서 홈리스로 바꾼 이유를 알려주세요.
 
노숙인이라는 용어의 노가 ‘이슬 로’ 자에요. 이슬 맞고 잔다는 의미죠. 생활하는 형태를 묘사하는 용어일 뿐인데요. ‘홈리스’라는 표현에는 ‘집(home)'이 ’없다(less)‘, 즉 주거가 박탈되어 있다는 의미가 있잖아요. 주거를 통해 생겨나는 가족관계 등 사회적 관계, 휴식이라든지 재충전 등의 생활이 결핍되어 있는 상태를 표현하고 있죠.
 
또 하나는, 2011년에 한국에서 최초로 ‘비주택 거주민에 대한 조사’라고 해서 해외에서 보면 홈리스 조사라고 할 수 있는 조사를 했는데, 25만 명 정도가 나왔어요. 그런데 그 중에 거리와 홈리스 수용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은 2만 명 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거리나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 말고도 불안정하고 부적절한 주거 상태에 처해 있는 분들이 그보다 훨씬 많다는 거죠. 집이 없이 여관방, 쪽방, 고시원, PC방, 만화방, 사우나 같은 곳들을 전전하는 분들이요. 이렇게 사시는 분들 역시 동일한 계층이고, 사회복지 지원이 필요하다는 측면에서 홈리스란 개념을 쓰게 되었습니다. 
 
 
 홈리스행동의 일상 활동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요?
 
월화수 저녁에는 홈리스 야학을 하고, 목요일에는 2002년도부터 만들어진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으로 여러 단체들과 거점을 나누어 야간 상담을 나가요. 금요일에는 홈리스행동이 자체적으로 야간 상담을 하고요. 주로 저녁이 바빠요. 낮에는 연락오거나 찾아오는 분들이 있으면 상담을 하거나, 다른 실무적인 일들을 처리하고요. 또 홈리스행동에 함께하는 당사자분들이 이 공간에 많이들 놀러 오셔요.
 
2만 원으로 20명이 먹을 밥상을 차리는 ‘기적’이 매일같이 벌어진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여럿이 밥 해먹는 게 되게 큰 일이에요. 한 끼 식대가 2만원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밥값이 한 명당 천 원이거든요. 그렇게 천 원씩 걷은 돈을 가지고 당번이 밥을 하는 거예요. 한정된 돈으로 20~30인분의 메뉴를 구상해서 먹게끔 만들려면, 음식 솜씨가 문제가 아니라 다년간의 노하우와 순간적인 판단이 필요해요. 물론 실제로는 짜장과 카레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고요. (웃음) 이게 쉽지가 않아서 얼마 전부터 밥값 후원도 따로 받고 있어요.
 
야학에선 뭘 배워요? 저기 벽에 붙어 있는 ‘화를 다루는 방법’에 관해 토론한 것도 야학에서 한 건가요?
 
홈리스 야학은 기초학문, 문화·취미, 홈리스 권리 이렇게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어요. 직장인이나 대학생 등으로 구성된 자원 교사가 지난 학기에 열다섯 명 정도 있었고요. ‘화를 다루는 방법’은 홈리스 권리 수업에서 한 거예요. 
 
기초학문은 국어, 영어 수업이 있고요. 중급 영어는 간단한 회화까지가 목표였는데 초급은, 요즘 간판이나 상표에도 영어 참 많이 쓰이잖아요. 그런 단어들을 읽을 수 있게 하려는 거였죠. 영어 선생님들이 되게 실력자들이셔서, 하버드대 나온 선생님이 알파벳 가르치고 그랬어요. (웃음) 문화·취미 교실에는 컴퓨터, 스마트폰 영상 촬영, 바둑, 탁구, 요가 등이 있어요.

홈리스 권리는 약간의 의식화 교육 같은 거예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해요. 토론 수업도 있고, 5.18이나 이런 때에는 그 주제로 강의를 하기도 하고요. 외부 강사를 부르기도 해요. 이주노조에서 와서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강의했고, 사회진보연대에 요청해 마르크스주의 기초도 했었죠. 

사실 컴퓨터 자격증 반이 있기는 했지만 자격증은 한 명도 못 땄어요. (웃음) 야학의 목적이 인적자원을 쇄신해 취업을 시키겠다 이런 건 아니고, 오시는 분들도 그런 기대보다는 뭔가를 ‘같이 한다’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홈리스들은 인간관계가 다 파탄 난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같이 관계 맺고, 놀고, 배우고, 그런 일상 자체에 대한 의미부여가 훨씬 크더라고요. 그래서 주말에 이 공간이 문 닫는 걸 되게 아쉬워하세요.
 
홈리스들을 이용한 범죄도 많다고 들었어요. 
 
2000년대 초반까지는 인신매매가 워낙 많았고 이슈였어요. 아직까지도 홈리스들은 숙식제공하며 돈 벌게 해 준다는 반인신매매 형태의 염전노동 같은 데에 많이들 가시죠.
 
시간이 흐르면서 인신매매보다는 경제범죄 형태가 더 많아졌어요. 2006년도에 거리홈리스 2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봤더니 명의도용범죄 제안(돈이나 숙식 제공 조건으로 개인정보와 각종 서류를 넘겨달라는 것)을 받아본 사람이 60퍼센트, 실제 명의도용을 당한 경우가 25퍼센트 정도였어요. 명의도용범죄의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대포차, 대포폰, 허위사업자(바지사장) 등록, 부동산 명의신탁, 신용카드 발급 등등. 

거리홈리스들은 대부분 중졸 이하 학력이기 때문에 서류 좀 떼어 간다고 뭐 큰 일 있겠냐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많고, 그냥 될 대로 되라고 포기하는 경우도 있어요. 노숙인복지에 대한 실망감이 많은 상태에서 도피하듯 선택하는 거죠.

경찰과 함께 명의도용범죄 합숙소에 간다든지, 홈리스들을 수용해 정부 보조금을 받아먹는 사기 요양병원을 신고한다든지, 증거확보·현장탐방·고소·고발 같은 일들을 많이 했어요. 
 
여러 사연들을 들어보셨을 텐데, 당사자 분들은 왜, 어떤 과정을 거치며 홈리스 상태에 처하게 되나요?
 
사회구조적 문제와 개인적 문제가 섞여서 서로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일단 노동이나 주거, 의료 등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위험성을 사회가 어떻게 다루느냐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있겠죠. 북유럽권 국가와 비교해보면 영미권 국가에 홈리스가 훨씬 더 많거든요. 여기에 개인이 갖고 있는 취약한 지점들, 낮은 학력이라든지 과거의 불우한 경험 등이 작용을 하면서 노숙에 이르게 되는 거죠. 당사자 분들 만나보면 고아 생활, 머슴 생활 등의 불안정한 삶을 평생 사셨던 분도 계시고,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에 다니거나 자기 사업을 했는데도 그것들이 무너지고 가족이 해체되면서 노숙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보통 사람들이 홈리스 활동이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 중 하나로 ‘빅이슈 판매’가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빅이슈 처음 시작할 때 빅이슈 팀이랑 홈리스행동이 간담회를 하기도 했어요. 저는 빅이슈가 홈리스에 대한 착한 일자리사업이라고 생각해요. 홈리스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해 홈리스월드컵, 발레단 같은 활동을 하는 것도 일정 부분 긍정적이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구걸이 아니라 판매입니다’라는 빅이슈의 슬로건에서도 드러나듯이, 일하지 않는 홈리스는 도울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는 있지요.
 
홈리스 당사자분들이 ‘우리 권리를 찾는 활동’을 같이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는 건 어떤 과정에서 이루어지나요?
 
2005년도에 서울역에서 홈리스 두 분이 연달아 돌아가신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직원들이 그 시체를 손수레에 짐짝처럼 싣고 치우니까, 홈리스 분들이 ‘나도 죽으면 저런 취급을 받겠구나’하는 충격을 받고 분노를 표시했어요. 신문에 폭동이라고 표현될 정도였죠. 서울역 강제퇴거 조치가 있었을 때에도 서울역 대합실에 대자로 눕고 점거하고 그랬거든요. 이런 집단적인 저항을 통해 결심하는 경우가 있고요.
 
일상적으로는 상담지원활동을 통해서 당사자분들이 참여하게 되죠. 임시주거지원, 긴급복지지원, 임대주택, 기초생활보장 같은 여러 제도들이 있는데 그걸 잘 모르시고 서류 준비도 어려워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걸 같이 하다 보면 고마운 거죠. 내가 여기서 뭐 할 수 있는 것 없을까 고민하시기도 하고요. 빵이 급한데 곧바로 깃발 들자 할 수는 없잖아요. 홈리스들의 경우에 현실에서 급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차원의 지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게 또 당사자분들이 운동에 발 들여놓을 수 있게 하는 계기도 되고요.
 
 
2014년 12월 21일 서울역에서 열린 <거리에서 죽어간 홈리스 추모제>에 참가한 몇몇 이들
 
 
홈리스에 대한 복지가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노숙인에게 일반적으로 하는 얘기가 ‘왜 시설에 안 들어가냐?’라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 지금 노숙인 시설은 포화 상태거든요. 안 가는 게 아니에요. 저는 시설입소보다는 주거지원 사업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봐요. 한국은 장애인, 노인, 노숙인 복지 모두 ‘시설 입소’ 중심으로 짜여 있어요. 지역사회에 거주하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게 우선이라는 인식이 부족하죠. 
 
최근 서울시에서 하고 있는 임시주거지원 사업은 노숙인들에게 최소 3개월에서 최장 6개월까지 주거를 제공해요. 통계를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발표에 따르면 탈노숙 비율이 80퍼센트 정도라고 하더라고요. 사회복지 제도는 당사자들의 욕구에 잘 부응하는 정책이 좋거든요. 홈리스들의 요구는 일자리와 주거인데, 그래서 성과가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직까지는 이 사업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숫자가 턱없이 부족해요. 

노숙인 복지정책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어요. 2011년에 노숙인 등을 대상으로 하는 복지법이 만들어졌는데 모든 조항이 임의조항으로 되어 있어요.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인 거죠. 주거지원, 의료지원, 급식지원이 있는데 정부에서 예산을 편성하는 근거로 기능한다는 것 외에는 얼마만큼의 예산이 필요한지 판단하는 기준이 없어요. 이걸 의무조항으로 바꿔야 돼요. 
 
마지막으로 시, 군, 구 단위의 지역사회에 홈리스 복지 자원의 기본적인 배치가 필요해요. 지금은 영등포권, 서울역권에만 지원 사업이 있고 다른 지역에는 없거든요.
 
앞으로 홈리스행동의 활동 전망에 대해 듣고 싶어요.
 
홈리스행동이 가장 큰 과제로 여기는 건 홈리스 당사자들이 운동의 주체로 서는 거예요. 그래서 당사자분들이 집회나 투쟁현장에 연대하며 현장에서 배울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한편 올해는 일부 홈리스 당사자 분들과 함께 당사자활동가 조직사업을 하고 있어요. 홈리스에게 주로 필요한 제도들을 공부해서 이분들이 또 다른 당사자들을 돕기도 하고, 연락이 끊어지거나 고립된 분들을 찾아뵙는 일들을 하는 거죠.

홈리스 복지가 워낙 열악하다보니 정책대응 활동의 비중도 큰데요. 문제는 이런 활동이 대리주의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소폭의 정책개선 효과가 있다한들 이게 홈리스 조직의 강화와는 무관한 거죠. 홈리스 당사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정책대응 활동의 전형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오늘보다》를 통해 홈리스운동을 알릴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여러 사회운동들과 함께하는, 힘이 되는 운동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덧붙이는 말

※ 이번 호는 <노조 할 권리> 연재를 한 번 쉬어갑니다. 대신 <오늘 만나다> 코너와 엮어서 홈리스행동 집행위원인 임재원 씨의 이야기를 <단결툰>으로 실었습니다. ※ 이 기사에 실린 모든 사진은 최인기 민주노점상전국연합 사무처장님이 찍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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