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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 제37호

이주자 혐오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 홍명교
언젠가 한국의 우익 포퓰리스트들은 성소수자나 페미니즘을 향한 공격이 효과적이지 않다고 느끼기 시작할 때, 사회배외(국가 혹은 한 폐쇄적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의 대상으로 또 다른 공격 대상을 찾으려 할 것이다. 나는 아무래도 그게 조선족을 포함한 이주노동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불안한 예감은 몇 가지 징후들을 근거로 한다. 첫째, 세계 곳곳(특히 유럽과 미국)에서 발호하고 있는 우익 포퓰리즘.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마주하자, 이를 배제하고 억압할 대상을 찾아냈다. 다름 아닌 동유럽과 북아프리카에서 온 불법체류자들과 난민들이다. 오늘날 유럽과 미국에서의 극우 정치 부상은 이런 대중 이데올로기의 반영이다. 좌파는 이를 극복하고 넘어설 대안 운동을 구축해야 하는데, 그런 이념적 혁신을 이루는 데에 실패하고 있다. 몇 가지 형식적 변신을 시도하고 있을 뿐이다. 이중 가장 진일보한 것처럼 보이는 흐름은 스페인의 포데모스나 영국 노동당의 코빈과 그 청년 지지자들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각자가 마주한 ‘민족-국가’의 모순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전자에겐 카탈로니아 독립 문제가 걸려있고, 후자에겐 브렉시트(Brexit)가 걸려있다.

둘째, 국내로 눈을 돌리면 구체적 형상이 눈에 띈다. 바로 급증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혐오다. 이주자 범죄가 내국인 범죄율보다 높지 않은 게 통계적 사실임에도 미디어는 이주자 범죄를 부각시켜서 선정적으로 보도하고 있고, 동시에 대중들은 경제적 위기와 억압의 불만을 이주자들을 대상으로 쏟아내고 있다. 

10년 전 <완득이>나 <방가방가>가 다문화주의를 ‘용납할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이제 사람들은 다문화주의를 ‘사치스러운 것’으로 여길 정도로 여유가 없다. 그러니 국가 역시 별 다른 책무를 느끼지 않는다. 논란 속 흥행을 기록한 〈청년경찰〉와 〈범죄도시〉가 보여주듯, 거추장스러운 ‘문제 집단’으로 여길 뿐이다. 

기실 충무로의 기민한 기획으로 만들어진 모든 영화들은 대중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업자들은 ‘팔릴 만한 얘기’를 찾는 게 시장의 생리니, 세상이 어떻든 영화와 무슨 상관이냐는 식으로 여길 것이다. 문제는 미디어가 이를 어떤 입장으로 재생산하는지, 날카로운 비평이 존재하는지다. 불행히도 한국의 미디어와 비평은 공히 갈팡질팡 헤매고 있다.

셋째, 안정적인 일자리가 크게 줄고, 노동에 대한 통제의 힘이 자본과 권력에 쏠려 있는 객관적 현실 때문이다. 사회운동이 대중의 불만에 발본적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고 조직적 힘을 갖추지 못하면, 분노는 계급 내의 상대적으로 약한 집단을 향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점증하는 이주자를 향한 혐오는 단순한 도덕적 호소만으로 누그러뜨릴 수 없다. 계급 대중이 공유할 수 있는 좌파적 비전을 발굴해야 하며, 죽어있는 비평도 재생시켜야 한다. 노동자들 스스로 불만의 근원을 묻고, 단결할 수 있는 공동의 구호와 비전을 도출해야 한다. 이를 가장 잘 대비할 수 있고, 책임을 안고 있는 것은 여전히 노동자운동이다. 이주자에 대한 정주자 대중의 불만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삶의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불만을 이주자에게 돌림으로써 축적되어왔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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