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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 제19호

8시간 노동을 위해 150일째 싸우는 노동자들

  • 유다해 사회진보연대 인천지부 사무처장
고공농성 중인 크레인 위로 밥을 올려주고 있는 모습 ©건설노조 경인지역본부
 
7월 27일 현재 인천시청 앞에는 검단신도시 건설 현장 문제로 150일째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덤프트럭, 굴삭기, 레미콘 등 건설노조 경인지역본부 수도권서부기계지부 소속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지난 2월부터 발주처인 LH공사 인천본부, 원청 시공사인 대방건설, 하청업체인 대성과 인성건설, 이제는 인천시청을 상대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오랫동안 사태가 해결되지 않아 지난 6월 7일부터는 검단신도시 타워크레인 위에 두 명의 노동자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전국 최저단가 인천, 그나마도 후퇴?!

인천 최대이자, 마지막 신도시 공사라는 검단신도시 택지개발공사는 2015년 12월경 착공했으며, 기간만 4년에 달하는 대규모 공사다.

인천의 건설기계 노동자들, 특히 덤프트럭 노동자들의 경우 2000년대 중반 덤프연대 창립 이후, 끊임없는 현장 투쟁을 통해 8시간 노동의 원칙과 덤프트럭 일당 38만 원이라는 인천 내 보편적인 노동기준을 정립해왔다. 그러나 그나마도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임금이다. 그런데 시공사인 대방건설에서 이러한 노동기준을 무시하고 하루 10시간 38만원으로 한국노총 조합원과 비조합원을 채용하고 있다.


8시간과 10시간 노동은 천지 차이

곽병주 씨(건설노조 수도권서부건설기계지부 서인천지회)는 보통 새벽 5시반에 집을 나서서 7시부터 일을 시작하고, 오후 5시에 퇴근한다. 그러면 집에 들어와 잠에 들기 전까지 친구와 소주 한 잔 할 수 있고, 여유 시간도 생긴다. 그런데 10시간 노동으로 후퇴하면, 오후 7시에 일을 마치고 퇴근 시간 정체 때문에 8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온다. 이튿날 5시반에 집을 나서야 하는데, 그 시간에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대방건설은 지난 10년의 투쟁으로 지킨 8시간 노동을 되돌리고 있는 것이다.
 

6개월은 놀고 6개월은 일한다

건설노동자에게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을 물어보면, 하나같이 ‘일이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 달에 20일이라도 일을 하면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한데, 고작해야 10일 정도 일하니 생계가 어렵다. 게다가 장마철이나 겨울 같은 경우 원래 있던 일도 없어지니 이런 계절엔 한 달에 고작 하루만 일했던 적이 있다는 노동자도 있다. 10년 전엔 하루 일을 나가면 타이어 두 짝을 사고도 남았는데, 지금은 한 짝을 살 수도 없다.

건설기계 노동자의 일당에는 1억 2000만 원에서 2억에 이르는 건설 장비 할부금과 보험비, 수리비, 주유비 등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1년 중 3~6개월은 일을 못 한다고 가정했을 때 덤프 노동자들의 임금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평균 200여만 원으로 예상할 수 있다.
 

빚이 줄지 않는다

“올해 4월에는 차량 수리비로 630만 원이 들었네요” 작년 11월에 120만 원을 들여 차량을 수리한 뒤로 할부금이 끝나기가 무섭게 ‘큰 건’이 터졌다. 차가 어딘가 이상한 것 같았지만 할부금만 끝나고 고치자 하고 기다렸던 게 폭탄이 되어 돌아왔단다. 정비소 한 번 갔다 하면 기본 100만 원이니, 차에 이상한 소리가 조금만 나도 오금이 저릴 수밖에. 이런 사정이니 건설기계 노동자들의 차량 할부금 혹은 생계를 위한 대출금은 줄지를 않는다. “이 할부 갚으면 또 새 할부 생기고, 할부 인생이다.” 검단신도시 타워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는 이춘무 서인천지회장의 이야기다.
 

‘방지턱만 있어도 안 죽었을 사람’

건설업체들의 배 채우기는 노동자들의 생계를 쥐어짤 뿐만 아니라 안전도 위협한다. 지난해 청라 공사현장에서는 롤러(땅을 다지거나 아스팔트를 미는 작업에 사용하는 중장비)가 굴러 떨어져 이를 운전하던 노동자가 즉사하는 일이 있었다. 방지턱만 제대로 설치되어 있었어도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었다.

작년 12월 청라의 다른 현장에서는 뻘에 흙을 덜 덮은 곳으로 덤프트럭이 진입했다가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제대로 된 신호수만 있었어도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택지공사에서 신호수는, 정돈되지 않은 공사현장에서 진입해도 되는지, 어느 위치에서 어떻게 작업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사람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비용절감을 이유로 대부분은 전문 신호수를 두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덤프트럭 전복 사고가 날 위험이 커진다.
 
고공농성 중인 이춘무 지회장과 심명보 사무장
 

“눈앞에 현장을 보고도 일하지 못하는 심정을 아느냐!”

하루하루 일 나가는 것에 목마른 건설 노동자들이 일손을 번갈아 놓고 투쟁을 한 지 벌써 5개월째다. 생계는 물론 이런저런 가정사까지 모든 것이 불안하다.

그럼에도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것은 단결하여 투쟁하는 것이 내 일자리의 미래를 지켜준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동안 만들어온 성과에서 한 발 밀리는 순간, 그 여파는 인천은 물론이고 수도권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눈 앞의 현장’을 두고도 이를 꽉 깨물고 투쟁하는 이유다. 이 싸움은 노동조합이 십여 년 간 쟁취해 온 인천지역 건설 현장의 노동표준을 방어하는 투쟁이자, 목숨줄과 같은 노동조합을 지키는 투쟁이다.

건설노동자들은 노가다에서 노동자로서, 자신의 노동조건을 스스로  향상시키기 위해 단결해왔다. 그 결과 노동자들이 찍소리도 못하던 현장에서 이제는 8시간 노동을 요구하고 안전을 요구한다. 흙먼지 묻은 작업복이 자랑스러워질 수 있는 그날까지 건설노동자들의 투쟁에 아낌없는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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