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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2 창간준비2호

노동운동과 반빈곤운동의 만남

반빈곤운동 돌아보기, 내다보기 2 - 왜 만나야 하는가, 어떻게 만날 것인가

  • 전준범 사회진보연대 정책선전위원장

빈곤의 확산과 반빈곤운동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이후 가난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금융세계화로 인해 임금과 고용의 불안정성이 커지고, 복지정책도 빈곤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최소 수준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한국의 절대빈곤율과 상대빈곤율은 IMF 경제위기 이후 꾸준히 증가하다가 2009년 정점을 찍은 후 다소 낮아진 상태지만, 1990년대 중반보다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민중운동은 신자유주의가 확산하는 빈곤에 맞선 운동을 ‘반빈곤운동’으로 명명하고 새로운 형태의 운동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실업자운동, 주거권 운동, 기초생활보장을 위한 운동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반빈곤운동은 한미FTA 반대 투쟁, 불안정노동 철폐 투쟁과 같은 반신자유주의 운동의 일부로 사고되었다. 반빈곤운동에 대한 민중운동의 의지는 2004년 빈곤사회연대(준)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반빈곤운동에 대한 노동운동의 관심은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다. 단적으로 연대체로서 빈곤사회연대의 구심력이 강화되지 않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운동 전반이 어렵다는 사정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하게는 반빈곤운동이 진보진영의 힘을 모아 성장시켜야 할 전략적 부분으로 인식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현재 진보운동 내 부정적 역할분담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먼저 반빈곤운동부터 살펴보자. 그 동안 빈곤사회연대는 ‘부양의무제 폐지’를 중심으로 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혁 운동을 핵심과제로 설정했고, 소속단체 중 장애인운동과 홈리스운동이 주 동력을 형성했다. 그러나 소속단체 중 노동조합이나 사회단체가 이러한 활동에 깊숙이 결합한 경우는 많지 않다. 지지하지만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려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빈민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요구하는 운동이 반빈곤운동이고, 임금과 노동기준을 상승시키기 위한 운동은 노동운동이라는 이분법이 자리잡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다음으로 노동조합운동을 살펴보자. 신자유주의로 인해 가난해진 많은 노동자, 빈곤의 문턱 앞에 서 있는 많은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운동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존재다. 물론 조합원 내 격차가 상당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민주노총 조합원의 소득과 고용안정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또한 가난한 대다수 저임금 노동자를 대변하는 상징성도 부족하다. 가령 올해 이슈가 된 공공기관 가짜 정상화 대응, 통상임금 정상화,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등 노동운동의 주요 활동은 그 자체로는 정당하지만, 대다수 미조직 저임금 노동자들이 동참하기는 어려운 활동이었다.
 

왜 만나야 하는가

이상의 진단을 [그림1]과 같이 도식화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민중운동의 상황을 거칠게 표현해보면, 의제나 주체 면에서 노동조합운동은 A영역, 반빈곤운동은 C영역에 역량의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물론 A영역과 C영역은 다른 운동들에 의해 대체될 수 없는 각 운동의 고유한 자기과제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 역할분담은 결국 계급 대표성의 위기로 이어진다. 
 
[그림1] 노동조합운동과 반빈곤운동
그렇다면 B영역에는 어떤 주체가 있는가. 광범위한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 반실업자, 자영업자 등이 존재한다. 정부가 정한 최저생계비 기준으로 살펴보자. 2014년 4인가구 기준 월 최저생계비는 163만 원이다. 그리고 최저생계비의 120퍼센트는 195만 원, 150퍼센트는 244만 원, 180퍼센트는 293만 원이다. 그러나 최저생계비의 180퍼센트 소득을 얻는 4인 가구의 생활도 안정적 삶이라 부르긴 어렵다. 

맞벌이 부부가 각각 125만 원 씩 월급을 받는 4인 가구를 가정해보자. 가구의 월 시장소득은 250만 원으로, 시장소득 외 경상소득이 없다고 가정하면 최저생계비의 150~180퍼센트 구간에 속한다. 하지만 연소득 중 2달 치 소득은 등록금으로 빠져나가고, 대출이자는 물론 월세도 꼬박꼬박 지출해야 한다. 만약 예기치 않은 불행(사고, 질병, 실업 등)이 닥친다면 대처할 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2010년 기준으로 경상소득이 최저생계비 180퍼센트 미만인 인구 비중은 약 25퍼센트, 가구 비중은 약 31퍼센트에 이른다(이태진 외, 「빈곤정책 선진화를 위한 실태조사 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1).

정부는 IMF 이후 유연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각종 사회정책을 통해 이들 저소득, 저임금 층을 관리해왔다. 세계 경제위기 이후 1:99 담론이 확산되고, 또 최근에는 피케티 열풍과 같이 소득불평등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면서, 사회정책은 한층 더 강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희망의 사다리 복원, 골목상권 보호, 기초연금 도입, 최저임금 인상, 내수활성화, 소득주도성장 등 빈곤과 불평등으로 인한 불만을 관리하고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행보도 늘어나고 있다.

반면, 진보운동은 이 영역을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기간 본격적인 역량을 쏟지 못하고 이 영역을 공백에 가깝게 비워뒀다. 그리고 노동조합운동과 반빈곤운동을 포함한 전체 진보운동이 조직적 기반의 협소함, 계급 대표성의 취약함, 사회적 영향력의 감소 등을 경험하고 있는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거대한 공백에 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노동운동과 반빈곤운동이 광범위한 저임금, 반실업, 불안정노동 층을 향해 공격적인 의제를 던지고, 주체를 조직하는 활동을 벌여야 한다.

이는 노동운동과 반빈곤운동의 이념과도 관련된 문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 사이의 ‘바닥을 향한 경쟁’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취업자 내부의 단결뿐만 아니라 취업자와 실업자의 단결을 함께 사고해야 한다. 반빈곤, 즉 빈곤없는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것도 비슷한 의미다. 빈민이 열악한 생활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은 생산관계 상의 위치 때문이고, 그것을 바꿔나가는 길은 실업 없는 세상, 떳떳한 일자리를 공유하는 세상 등 모든 노동자의 지향이기도 하다.
 

어떻게 만날 것인가

그동안 노동운동과 반빈곤운동의 결합을 시도한 다양한 사례가 있었다. 저임금 밀집 업종에 대한 조직화, 생산자협동조합 결성, 법제도 개선을 위한 공동투쟁 등이 그것이다. 빈곤사회연대도 출범 이후 줄곧 최저임금 인상, 최저생계비 현실화, 생활임금 쟁취, 사회서비스 시장화 저지 등 의제를 제기하면서 노동운동과의 결합을 모색해왔다.

2000년대 초중반 빈곤사회연대를 중심으로 노동운동과 반빈곤운동을 결합하고자 한 문제의식은 노동권-생활권을 결합한 포괄적 운동을 벌이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2001~02년 ‘민중복지한마당’, 2004년 ‘불안정노동과 빈곤에 저항하는 공동행동’ 등으로 이어졌다.

구체적인 운동방향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표면적 연대활동을 넘어서기 위해 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연대운동과 노동조합운동의 변화를 모색하고자 했다. 둘째, 저임금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하고자 최저임금 투쟁에 주목했다. 최저임금 투쟁은 기존 임금투쟁을 사회적 연대투쟁으로 확대시킴과 동시에 지역연대 운동을 활성화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셋째, 주거, 교육, 의료 등 재생산 영역에 대한 개입과 연대확장을 모색했다. 넷째, 적정한 수준의 임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새롭게 만들고자 했다. 지자체 내 생활임금 조례제정 운동 등이 그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이상의 내용은 2007년 ‘빈곤과 저임금 철폐를 위한 토론회’에서 발표된 최예륜, 「신자유주의가 양산하는 빈곤과 저임금의 실태와 우리의 대응」을 요약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적정생계비·임금 실현을 위한 실태조사’ 사업을 비롯 여러 사업이 진행되었다. 2008년 당시 사업에는 노동조합을 포함한 10여 개 단체들이 활발히 참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노동운동과 반빈곤운동의 결합 시도는 점점 약화되었다. 지역에서 노동권-생활권을 결합한 사회운동을 일상적으로 벌이고자 했으나 이를 수행할 수 있는 단위 또는 활동가가 거의 없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정한 성과를 얻고 확산가능한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몇몇 지역에 대한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으나 노동조합, 진보정당, 사회단체 등이 지역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동시에 반빈곤운동에서는 장애인운동이 기초법 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빈곤사회연대 역시 반빈곤운동의 당면 과제로서 기초법 개악을 저지하기 위해 힘을 집중하게 되었다. 

2008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운동에 대한 풍부한 평가를 위해서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함께 운동을 기획했던 단위들이 모여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앞으로의 논의를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먼저, 지역에서 공동활동을 강화한다는 목표는 여전히 중요하다.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저임금노동자들이 기업별 노조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마찬가지로 이들이 연대체의 문을 두드리거나 사회단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리라 상상하기도 어렵다. 이들이 임금, 고용, 주거, 건강 등에 대해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려면, 지역에 기반을 둔 노동운동과 주민운동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지역에 기반을 둔 공동활동을 강화하려면 함께 하는 각 단위들에게 명확한 동기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뜻이 있다 하더라도 동기가 약하다면 역량과 자원을 내기 어려울 것이다. 노동운동 입장에서는 지역을 기반으로 반빈곤운동과 결합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가. 가령 지역의 노동자 또는 주민들과 함께 주거권, 건강권 등을 확보하는 과정이 조직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가. 반빈곤운동의 입장에서는 지역을 기반으로 노동운동과 결합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가. 가령, 민중적이고 급진적인 지역주민운동을 강화함으로써 반빈곤운동의 대중적 토대를 형성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긍정적 판단을 공유할 수 있다면, 다소 지체되어 온 노동운동과 반빈곤운동의 결합도 본격화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은 11월 20일 빈곤사회연대가 주최한 ‘반빈곤운동포럼’의 ‘노동자운동과 반빈곤운동의 만남과 실천, 모색과 진단’에서 발표한 발제문을 수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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