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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 제7호

임금피크제, 무엇을 겨누고 있나

  • 공성식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팀 국장

 

 

대국민 사기극

정부와 여당, 그리고 경영계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여러 항목 중에서도 일차적으로 임금피크제 도입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공공기관에서부터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제하고 나섰다. 

경영계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을 경우 기업의 비용 부담이 5년간 100조 원이 넘고, 청년실업자가 45만 명에서 73만 명으로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100조 원이면 GDP의 7퍼센트나 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이는 55세 정규직 임금노동자 전체가 정년연장의 수혜자가 되고 이들이 현재 55세 평균임금에서 매년 3.4퍼센트씩 인상되는 임금을 받는 것으로 가정하여 계산한 결과다. 

한 마디로 사기다. 이미 절반 이상의 기업 정년이 57세 이상이고 정년이 연장된다하더라도 누구나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무시하여 수혜자를 과대 추정하였다. 더 큰 문제는 정년연장자들의 노동에 따른 기업 수익을 계산에서 제외하여 마치 이들이 놀면서 임금을 받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하게도 이들이 받는 만큼만 기업 수익에 기여한다면 기업의 순비용 부담은 0이다. 경영계의 입장을 대변하여 임금피크제 도입을 정당화하려는 기존 연구 결과에서도 정년연장으로 인한 기업의 순비용 부담은 년 1.9조 원 수준으로 제시된 바 있다. (어수봉, <정년 연장과 노동시장 효과: 전망과 과제>, 2013) 물론 이 역시도 과장된 수치이나 분배상황을 고려할 때 기업이 충분히 감당할 만한 수준이다.

소위 고용대란설도 근거가 부족하다. 정년연장이 청년고용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세대 간 고용대체 가설’은 여러 연구에서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났다. 우선 청년세대가 진입하는 일자리와 장년세대가 차지하고 있는 일자리가 다르기 때문에 청년과 장년은 같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다. 또한 정년연장으로 인해 더 많은 사람이 숙련된 상태로 더 오랫동안 일하게 되므로 노동투입이 늘어나고 평균생산성이 증가하여 국민경제의 추가적인 성장으로 이어져 고용 총량은 늘어나게 된다. 1990년대 청년실업을 해결하기 위해 고령자 조기퇴직을 권고했던 OECD는 2005년 고용전략을 새롭게 수립하며 고령자 고용촉진으로 정책방향을 선회하는데, 사실 한국에서 정년이 60세 이상으로 법적으로 의무화하게 된 것도 이러한 국제적 흐름을 반영한 것이었다.
 

임금피크제라는 방아쇠

정부와 경영계가 대국민 사기극까지 펼치며 임금피크제 도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임금피크제가 대기업과 공공기관 정규직의 임금-고용 유연화를 확대하는 방아쇠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배 경총 상임부회장은 여러 차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임금피크제는 “임시방편”이라며 “임금체계를 하루 빨리 직무·성과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임금피크제는 결국 나이가 들면 생산성이 떨어지고 생산성이 떨어지면 임금을 적게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사회적으로 확산한다. 이는 임금이 개별 생산성에 따라 차등하여 지급되어야 한다는 성과주의 임금체계에 대한 정당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임금피크제는 정년을 무력화하고 정년 이전 퇴출을 유도한다. 임금피크제가 일반화되어 있는 은행권의 경우 58세 정년을 3년 앞두고 위로금을 받고 조기퇴직을 할 것인가 아니면 삭감된 임금을 받고 정년보다 2년 연장된 기간까지 근무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제도를 실시 중이다. 그런데 국민·우리·하나·외환·기업은행 등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는 5개 은행을 조사한 결과, 임금피크제 선택률은 31.3퍼센트에 불과했다. 임금피크제보다 퇴직을 선호하는 이유는 실제 받게 될 급여의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성취감을 갖기 어려운 주변적인 직무를 부여받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함께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인 일본은 노동력 부족을 보완하고 중고령자들의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의 임금피크제는 조기퇴직을 유도하는 성격이 강하다. 정부의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지침 역시 임금삭감폭을 크게 하고 별도 직무에 배치하도록 하는 등 조기퇴직 유도형 임금피크제에 가깝다. (김유선, <정년 60세 시대, 임금피크제가 청년고용 해법인가?>, 2015)

더구나 임금피크제는 정규직 노동자를 고립시키기 딱 좋은 의제다. 정부는 대기업과 공공기관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가 기업들의 정규직 채용을 가로막고 비정규직 채용을 늘리는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임금피크제 없는 정년연장이야 말로 이러한 공식에 딱 들어맞는다. 특히 공공기관의 경우 정부가 정원을 늘리지 않으면 정년연장으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향후 5년간 9000명 정도의 신규채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관철하기 위한 첫 전장으로 임금피크제를 선택한 이유다.
 

상위 10퍼센트 양보론 정당한가?

그런데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반대하면서도 임금피크제에 대해서는 조건부로 찬성하거나 불가피한 것이 아니냐는 태도도 상당하다.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 출마하여 바람을 일으킨 조성주 후보는 “현재 공공기관까지 실시되고 있는 청년고용할당을 민간부문으로 확대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좋은 일자리를 늘릴 때 [임금피크제 도입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밝힌바 있다. 경향신문 등의 개혁적 성향의 언론도 임금피크제에 반대하지는 않으나 노사합의하에 추진되어야 한다는 정도의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이러한 양보론의 밑바탕에는 노동시장의 문제를 10퍼센트와 90퍼센트의 소득·고용양극화로 진단하고 10퍼센트의 양보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깔려 있고 이는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 논리와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1997년 이후 한국 노동시장의 청년실업, 소득격차의 확대의 근본적 원인은 자본의 투자 효율성이 크게 약화된 가운데 국내 투자보다는 해외 투자가 확대되며, 금융적 축적이 증가하면서 자본 축적률이 구조적으로 낮아진 것에서 기인한다. 이는 장시간 노동시간, 자동화·기계화 확대 등 기술적 요인과 결합하여 한국경제의 고용창출 능력을 약화시켰다. (안정화, <자본축적과 노동시장 구조 변화>, 2009)

한편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강화는 자본과 상위 1퍼센트에게 유리한 소득분배를 강화했다. 한국사회의 20세 이상 인구 소득 중 1퍼센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7.2퍼센트에서 11.5퍼센트로 59.3퍼센트나 증가했다. 상위 1~10퍼센트의 소득 비중은 25.1퍼센트에서 30.9퍼센트 23퍼센트 증가했다.(김낙년, <한국의 소득 집중도 추이와 국제비교, 1976~2010>, 2012) 그런데 1995년에서 2010년까지 실질국민소득은 74.5퍼센트 증가했는데 상위 1퍼센트의 평균소득은 87.6퍼센트, 상위 1~10퍼센트의 평균소득은 44.6퍼센트 증가하여 1퍼센트를 제외하면 1~10퍼센트조차도 국민소득 증가보다 개인소득 증가가 낮았음을 알 수 있다. 그 이하는 말할 것도 없다. 이는 국민소득의 분배가 기업과 상위 1퍼센트로 집중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소득불평등 확대는 다시 높은 구조적 실업, 저고용을 강화하여 왔다.

임금피크제와 같은 임금 삭감이 우리 사회의 임금격차의 해소 또는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리 만무하다. 지금 내기에 걸려 있는 것은 ‘극심한 저임금-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다수 중소영세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누가 얼마나 부담을 질 것인가?’라는 지극히 정치적 의제다. 

재벌과 1퍼센트 상위 소득자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고 노동자들이 소득과 일자리를 나누자는 주장은 한국사회의 구조적 실업,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의 진정한 원인을 은폐하고 그 책임을 정규직 노동자에게로 전가하고 노동시장 전체의 유연성을 극대화하려는 정부와 경영계의 전략에 말려들 수밖에 없다. 정부의 주장을 받아 치는 공세적 주장처럼 보이나 정부가 설정하고 있는 정규직 과보호론, 임금과 일자리 쪼개기 프레임을 넘어 설 수 없다.


재벌과 1퍼센트의 책임을 묻자

10퍼센트의 대기업·공공기관의 정규직 노동자,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에게 현 사태의 책임이 있다면, 1990년대 이후 전체 노동자가 함께 사는 길을 만드는 데 실패하고 전투적 또는 실리적으로 개별 기업 내에서의 노동조건을 보호하는데 그쳤다는 점이다. 이번에도 조직된 노동자의 투쟁이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단순하게 ‘저지’하는 데 그쳐서는 고립과 패배를 면치 못할 것이다. 노동시장의 제대로 된 개혁에 대한 노동자의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세력화하여 정부와 경영계의 거짓 대안과 정면으로 대결해야 한다.

고용문제의 해결, 노동시장의 상향평준화, 소득 및 임금불평등의 해소를 위한 적극적 대안이 필요하다. 우선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고 ‘최고임금제’를 실시하여 평등한 분배를 강제하는 한편, 노동자의 임금협상력을 강화하여 실질임금을 대폭 올려 나가야 한다. 조직률 확대와 교섭구조의 집중화, 단체협약 효력 확장이 필요하다. 단체교섭을 집중화하고 적용범위가 넓은 나라일수록 임금격차가 적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세제를 개혁하여 재벌과 1퍼센트의 부를 사회적으로 재분배하고 이를 예산으로 정부가 공공서비스 강화와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를 위해 적극 투자하여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야 한다. 또한 공공부문에서부터 직·간접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하여 좋은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야 한다. 말만 번지르르한 비정규직 대책의 문제점을 개선하여 무기계약직의 실질적 처우개선과 차별철폐, 직접고용 비정규직만을 규제하여 확대된 외주·용역 간접고용 노동자의 직영화, 선별적 전환이 아닌 상시·지속업무 자체의 정규직 정원으로 전환을 하여 실효성을 확보해야한다. 한국의 공공부문 고용 비중은 7.6퍼센트로 OECD 평균 21.3퍼센트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의 통계에는 공공기관의 대다수가 빠져 있기는 하나 이를 포함시킨다 하더라도 절반도 되지 않는다. 예산 절감 인력 감축을 금과옥조로 삼는 신자유주의 공공부문 정책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공적 투자 확대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관철하기 위해서는 노동운동을 포함한 사회운동 전반의 말 그대로 총력투쟁이 필요하다. 총파업을 내걸고 하루 집회를 성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여론을 장악하고 국민을 움직이고 정치권을 압박하고 정부와 여당, 재벌을 타격하는 투쟁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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