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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 제19호

잊혀진 역사, 100년을 앞지른 잔 드로앵

여성운동 열두 장면 ①유토피아 사회주의 페미니즘

  • 이유미 《지금 여기 페미니즘》저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원
삽화 : 최설
 

100년을 앞지른 잔 드로앵

1849년 프랑스. 잔 드로앵은 여성 최초로 선거에 출마했다. 당시 여성의 선거 출마는 불법이었다. 그녀가 선거 집회의 연단에 서자 격렬한 야유가 터져 나왔다. 그렇지만 그녀는 물러나지 않고 버텼다. 마침내 청중이 조용해지자, 침착하고 분명한 연설을 통해 여성이 혁명 이후 사회에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가져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했다. 

프랑스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그로부터 약 100년 뒤인 1945년이다. 그녀는 100년을 앞질러 여성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했지만, 여성 참정권을 요구한 ‘1세대 페미니스트’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잔 드로앵은 누구일까. 왜 선거에 출마했을까. 답을 찾기 위해 1848년 혁명기 프랑스로 가 보자. 
 

1848년 혁명과 노동권

1848년 2월, 혁명이 일어나 프랑스의 마지막 왕 루이 필립이 왕좌에서 쫓겨났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다고 선언되었으나 혁명의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과 배우지 못한 사람, 그리고 여성은 시민에서 제외되었다. 노동자들은 실업과 취업을 반복하며 굶주림 속에서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했다. 분노한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와 바리케이트를 쌓고 투쟁하며 노동권을 요구한 것이 1848년의 혁명이었다.

시민이라는 의미는 단지 투표권을 가지는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형식적 평등을 넘어 시민이라면 생존과 존엄성이 보장되어야 했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우리가 시민이라면 노동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노동권은 단지 괜찮은 직장을 만들어달라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가 자신을 상품으로 내다 팔아야 하는 조건이 생존과 존엄을 위협하므로 자본주의를 변혁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노동권과 투표권

그러나 1848년 혁명에 함께한 부르주아들은 투표권을 넘어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바꾸자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었다. 그들은 노동자들의 급진적인 요구를 잠재우고자 노동권의 변혁적 의미를 탈각시켰다. 혁명 후 수립된 임시정부를 차지한 부르주아들은 새롭게 헌법을 작성하면서 노동권을 ‘노동을 통해 재산을 모을 권리’로 규정했다. 자본가들이 가진 재산은 근검절약해 모은 것이고 노동자들도 근면히 노동하면 자본가들처럼 재산을 소유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직업을 선택하고 임금을 받을 권리로 노동권을 후퇴시킨 것이다.

‘재산을 소유한’ 자본가들과 ‘재산을 모을 권리’를 지닌 노동자들 사이에 공동의 지반이 만들어지면서, 프랑스는 세계 최초로 모든 성인 남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그것은 노동자들의 존엄과 생존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형식적 수준의 정치 참여만을 허용하는 것이었다. 이는 노동자의 실질적 권리가 실현되려면 계급적 이해관계가 다른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은폐했다. 

이러한 퇴보에는 ‘여성의 배제’가 결정적이었다. 당시 남성 노동자들은 재산에 대한 소유권과 동시에 가족에 대한 소유권도 인정받았다. 가족은 재산을 상속하는 기본 단위기 때문에 매우 중요했다. 그러나 남성이 가족을 소유한다는 것은 곧 남성이 여성을 소유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혁명에 참여했던 여성들은 가족이라는 사적 공간으로 돌아가기를 강요받았다. 여성의 정치적 권리는 부정당했다. 여성은 아버지나 남편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 여성들의 행진. 프랑스 여성들은 1789년, 1848년 혁명에 참여했지만
혁명 이후 사회에서 정치적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고 가정으로 돌아가기를 요구받았다.
 

여성은 왜 시민이 아닌가?

여성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혁명 이후 세워진 임시정부는 1848년 3월 16일 ‘성년을 넘긴 모든 프랑스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한다고 공포했다. 잔 드로앵은 여성권리위원회 대표단을 이끌고 임시정부를 만나러 갔다. 여성을 제외한다는 얘기가 없으므로 당연히 여성도 프랑스 성인에 포함되는 것인지 묻기 위해서다. 임시정부로부터 돌아온 답변은 그것은 새로 헌법을 만들 때 결정된다는 얼버무림이었다. 하지만 결국 여성들은 투표권을 가진 시민에서 제외되었고, 정치참여가 불법임에도 불구하고 잔 드로앵은 출마를 감행했다. 

노동하는 자가 시민이라면, 이미 여성들은 공장에서 노동하고 있는데 왜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는가?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노동권을 위해 여성들도 바리케이트에 섰는데 왜 권리를 부정하는가? 잔 드로앵은 1849년 5월 의회 선거 출마를 통해 여성을 배제하며 노동권을 형식적 권리로 전락시킨 투표권의 모순을 폭로했다.
 

모성의 사회적 의미

대담하게 선거 출마까지 감행한 잔 드로앵은 ‘여성이 남성과 다를 바 없다’는 이유로 여성시민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성이 남성처럼 할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몸부림치더라도 결국 모조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봤다. 시민의 기준이 하나의 성이라면, 결국 다른 성이 그 기준에 맞춰야 하는 것이기에 부당하다. 게다가 여성을 소유하는 것이 시민의 기준이라면 여성은 영원히 배제된다. 그녀는 남성과 여성이 시민인 이유는 성별에 따라 달라야 하며, 여성이 갖는 남성과의 ‘차이’가 권리의 근거가 된다고 생각했다. 

잔 드로앵은 특히 여성이 출산과 양육이라는 사회적 노동을 하기 때문에 정치적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가 모성을 여성의 의무가 아니라 사회적 노동으로 여겼다는 점이 중요하다. 여성은 아이를 뱃속에서 열 달간 키우다가 낳아 기르는데 그것은 자연적인 현상에 머무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인 인간을 재생산하는 사회적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과 생산물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야 하는 것처럼, 여성들 역시 출산과 자녀에 대한 통제권을 가져야 하며 사회적인 의미를 획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아이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붙이는 것은 단순한 관습이 아니다. 그것은 출산을 여성의 권리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을 위한 의무로 전락시키고, 출산의 가치를 사회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행위인 것이다.  
 

여성의 노동권과 가족

잔 드로앵은 여성노동자가 시민이 되기 위해서 노동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유토피아 사회주의자였다. 자본주의가 불평등과 노동자들의 빈곤을 야기하므로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해 자본주의를 대체해야 한다고 봤다. 그리고 새롭게 건설할 사회에서 여성이 차별받지 않는 것을 중요한 문제로 생각했다. 

그녀가 여성노동자 문제에 주목했던 이유는 당시 프랑스 여성노동자들의 삶이 지독하게 비참했기 때문이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공장에 취업하는 여성들이 늘었다. 그러나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여성들의 정치 참여 금지가 경제활동 제약으로 이어졌고, 여성들의 취업도 쉽지 않았다. 생계가 어려워진 여성들의 성매매가 급증하는 등 여성 빈곤이 심각했다. 그래서 여성들이 성매매와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할 수 있는 권리, 즉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권리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잔 드로앵을 비롯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노동자를 조직하고 투쟁했다.  

그리고 그녀는 가족의 변화에 주목했다. 가족은 자본가들이 재산을 상속하는 통로로 작용하고, 사회적인 관점보다는 가족의 이익을 중시하는 이기심을 키우는 공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들은 이러한 가족 안에서 가사와 양육에 힘쓰느라 자신의 잠재력을 키우는 활동을 할 수 없다고 여겼다.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은 가사와 양육을 공동체에서 공동으로 수행함으로써 여성들의 집안일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봤다. 
 

잊혀진 역사

시대를 앞서 실천한 잔 드로앵은 잊혀지고 말았다. 1850년 그녀는 불법회합에 참여했다는 혐의로 6개월간 수감되었다가, 1852년 루이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황제에 즉위하며 정치활동이 금지되자 영국으로 망명을 떠났다. 1848년 혁명이 실패로 끝나며 유토피아 사회주의 페미니스트의 실천도 끊어졌다. 일반적으로 페미니즘 운동의 출발점을 19세기 후반 여성참정권운동으로 여기고, 잔 드로앵과 같은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은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나 잔 드로앵은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에게 다양한 시사점을 남긴다. 1848년 혁명이 이야기했던 ‘노동권’이 후퇴되는 과정에서처럼 사회를 바꾸는 급진적인 요구에서 변혁성이 탈각될 때, 그것은 여성의 배제를 동반했다. 오늘날 자본주의를 넘어서려 하는 운동은 여성의 권리 요구와 반드시 결합될 필요가 있다. 또한 여성해방을 위해서는 그것이 실현될 사회적 조건을 고려해야 하며, 가족 내 여성에게 돌봄과 양육의 짐을 지우는 자본주의적 재생산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잔 드로앵의 실천은 페미니즘 운동이 남성과 같아지려 하다가 이등 시민이 되거나 차이를 강조하면서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통해 권리를 이야기할 단초를 제시한다. ●
 
 

여성운동 열두 장면

 

새 기획연재! 오늘 우리에게 페미니즘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12회의 기획연재를 통해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를 돌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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