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오늘교육
  • 2018/02 제37호

“멈추지 않는 줄서기 교육, 아이들은 죽어가고 있습니다”

교육 현장 변화에 대한 배희철 선생님과의 토론

  • 정리 이승연
  • 만난 사람 배희철 홍천 남산초등학교
교육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희철 선생님을 만났다. 그는 대학 졸업 후 강원도교육연구원에서 일하다 교육 일선으로 나섰다. 현재 홍천 남산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현직 교사다. 이론 작업도 활발하게 하고 있는데, 역서로 <생각과 말>(2011), <비고츠키와 인지발달의 비밀>(2013), <레프 비고츠키>(2013)가 있으며, 저서로 <행복한 혁신학교 만들기>(2011 공저), <대한민국 교육혁명>(2011, 공저), <비고츠키와 교육이론>(2011), <비고츠키와 우리 교육>(2011), <초등교육을 재구성하라>(2013 공저),<비고츠키와 발달교육>(2016)이 있다.

레프 비고츠키(Lev Semenovich Vygotsky)는 구 소련의 심리학자로, 벨라루스 출신이다. 모스크바 대학에 입학해 법학을 전공하다가, 러시아 혁명을 경험한다. 교직에 종사하며 학문 연구를 계속하고, 다시 모스크바로 가 본격적인 연구 활동을 개시한다. 그의 견해는 스탈린 정부에 의해 부인됐지만 제자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했고, 후에 되살아났다.

전교조는 2007년부터 비고츠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은 ‘구성주의 교육이론’의 열풍이 강했고, 이를 바탕으로 교육개혁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구성주의 교육이론’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으로 ‘비고츠키 교육이론’이 주목받게 된다. 구성주의 교육이론이란 인간이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지식과 의미를 구성해낸다는 학습이론이다. 구성주의는 현재 세계 교육계를 주도하며 주입식 교육의 반대로 급부상하고 있지만, 학생이 스스로 지식을 구성하는 것이 ‘좋은 교육’이라고 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교사의 역할이 부차화되고, 수업의 선택권을 학생에게 이양하면서 ‘학력 저하’, ‘반지성주의 교육문화’를 양산하기도 한다.

《오늘보다》에서는 구성주의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진행하는 정부의 교육개혁을 과연 비고츠키 교육이론으로 극복할 수 있는지 토론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전교조에서 처음으로 비고츠키 교육이론을 도입한 배희철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오늘보다] 첫 질문부터 본론으로 들어가 질문 드릴께요. 비고츠키를 주목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배희철] 2006년 12월, 전교조 위원장 선거에서 지지하던 후보가 낙선하면서 우리 운동에 대해 평가를 하게 됐습니다. 교육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인간을 해방시키는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제시하고, 그것이 사회 변화에 끼칠 영향에 대한 대중의 승인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에게 그런 게 부족하지 않으냐 얘기했었죠. 그때부터 함께 세미나를 하자고 제안받아 서울로 올라오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막연하게 잘못됐다고 느꼈던 부분들을 이론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교육 과정을 검토했습니다. 교과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교육부의 정책을 월간지 형태로 배포하는데, 그때 ‘구성주의 특별호’를 쭉 읽으면서 눈에 띄는 점을 발견했죠. 처음으로 ‘과학적’ 이론에 근거해 구성주의 교육과정을 만들었다며, 비고츠키가 그 이론을 제공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전에는 들어본 적 없던 비고츠키에 대해 이런 수식어가 붙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비고츠키에 대한 자료는 부족했습니다. 한국어 자료가 없어 마르크스주의 도서관(http;//marxist.org)에서 링크 하나하나를 들어가면서 확인했죠. 그러던 중 ‘마르크스주의 교육’에서 비고츠키가 점하고 있는 위상을 확인했습니다. 앎에 대한 기쁨보다는 이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 생각하며 복잡한 감정이 들었죠. 2007년 3월 중순부터 천보선, 손지희, 이현빈 중등 선생님 등 6명의 선생님과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오늘보다] 구성주의를 비판하는 철학적인 지위를 비고츠키가 가질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비고츠키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불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비고츠키 이론이 왜 한국 교육을 바꾸는데 중요한 내용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배희철] 비고츠키를 공부하면서 인간이 무엇인가 알아가는 과정, 즉 인식 과정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게 됐습니다. 비고츠키는 (마르크스주의자이지만, 마르크스가 미처 알아채지 못한) 인간 발달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했잖아요. 우리는 미래를 대비한 장기적인 교육 방향의 변화를 설정하는데 비고츠키를 활용했습니다. 그게 바로 ‘경쟁에서 협력으로’라는 슬로건이었죠. 교수 학습뿐만 아니라 미래 인간관계까지도 포괄하는 말로 살찌웠고요. ‘경쟁에서 협력으로’는 교육감 선거에서도 활용하는 슬로건이 됐고, 공문서에도 나오는 말이 됐습니다.

한국 교육은 연구 대상을 정확하게 과학적으로 설정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교육’이 교육의 목적이라면 이에 적절하고 합당한 교수법과 평가 방식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학자들은 답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비고츠키의 관점을 통해 교육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여러 나라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남겼죠.
 
[오늘보다] ‘경쟁에서 협력으로’라는 슬로건이 실제 현장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고, 현장을 얼마나 바꾸고 있는가에 대한 선생님의 평가를 듣고 싶습니다.
 
[배희철] 그건 이론의 적절성이 아니라 실천 지형을 봐야하는 문제입니다. 오랫동안 운동이 수세에 몰리면서 우리 얘기가 먹힐 사회적 기반이 사라졌습니다. 진보적인 교육자들도 디테일한 부분으로 오면 구성주의적으로 접근하고 있죠. 지금은 옳은 게 무엇인지 이해하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비고츠키 관점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혁신학교 활동가 중에 태반이 구성주의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서 있는 지형을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자고 진보진영을 설득해야 한다고 봅니다.
 
[오늘보다] 비고츠키 이론에 기반을 둔 교육 슬로건이 ‘경쟁에서 협동으로’가 아니라, ‘경쟁에서 협력으로’인데요. 그 슬로건이 지니는 의미를 더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배희철] 교육이란,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인간이 갖출 수 있는 능력까지 도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능력을 키우는 것으로 비고츠키는 ‘협력’을 제시했었죠. 구성주의에서 인간의 능력은 경쟁을 통해서 키워질 수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다 갖고 태어난 개별의 자질이 있기 때문에 갖고 태어난 자질이 적절한지, 사회 전체에 기여할 수 있는지 비교해서 등급을 매기면 되니까요.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한 애들은 그런 애들에게 몰아주고, 그렇지 않은 애들 즐겁게 살도록 행복하게 키워주면 됩니다. 선별한다는 것은 경쟁의 핵심적인 지점입니다.

하지만 비고츠키 교육학에서는 발달의 시작도 ‘협력’이라는 측면을 강조합니다. ‘협력(collaboration)’은 ‘협동(cooperation)’과 다른 개념이죠. 협동은 하나의 일을 여러 부분으로 나눈 뒤 담당자가 각 부분을 마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나중에 부분들을 합치면 일이 완성되는 것이지요, 반면 협력은 하나의 일을 여러 사람이 토론을 통해 동시에 추진하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협력은 인간됨에 있어서 첫 단추입니다. 아이들이 그 의미를 읽으면서 스스로 구성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가르치지 않을 경우 시작부터 자기 멋대로 해도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일들이 발생합니다.

종합적 사고 능력은 협력적인 일을 해보지 않으면 생기지 않습니다. 새로운 무엇인가를 얻는다면 협력을 통해 얻습니다. 새로운 세상이나 무엇인가를 만드는 것은 함께 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창조도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것입니다. 비고츠키의 연구에 감탄하면서 ‘어떻게 비고츠키는 이게 가능했을까’ 생각해봤죠. 그들이 한 작업, 연구 방식 자체가 협력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과제 설정이나 가설 등의 과정에서 협력이 이루어졌기에 인간 발달에 대한 총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 가능했고, 그러면서 전 세계 교육의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었던 거죠.
 
[오늘보다] 협력에 관해 이야기할 때, 협동 수업과 헷갈리면 모든 교육이 동료 학습으로 이루어져야 가치 있는 방법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습이 그런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꼭 동료끼리 같이 해야 훌륭한 것이 아닌데 학교 현장에서 협력이 강조되면서 협동 학습을 강조하는 풍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배희철] 아직까지는 비고츠키는 “구성주의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게 주요한 실천적 과제입니다. 분석 단위로 볼 때 교육은 인간다운 능력들을 개인들이 다 갖게 만드는 과정, 즉 ‘인간화 교육’입니다. 비판적 사고·정세분석 능력 등을 공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의 발달을 보면서 교사가 진단하고, 다양한 교수·학습 방식을 교사가 역동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즉, 협력은 공산주의 사회에 적합한 사람을 키우는 교육으로 나가는 과정에 찾은 개념이고, 협동은 대규모 공장제 단계의 자본주의 사회에 적합한 노동자를 키우는 교육을 위해 만든 개념입니다.
 
 
[오늘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려면 여러 가지가 필요합니다. 여러 요소 속에서 성숙해져야 하고, 기본적인 지식을 갖춰야 하고, 관계도 잘 풀어나가야 하는 등 말이죠. 혁신학교도 교육의 목표를 그렇게 설정하고 있는 것 같은데 혁신학교 운동을 하는 교사 태반이 구성주의자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평가하신 핵심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배희철] 교수·학습에 대해 우리 아이들이 이런 시기니까 이렇게 운영한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아직 나온 적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교육과정을 설명하고 아이들이 모둠별로 해보게 하는 것 중심입니다. 즉, 교사가 주는 과정이 없습니다. 그 부분이 빠진 이유는 스스로 할 수 있으니 교사가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컨대 국어를 배우는 초기에 아이들이 낱말의 의미를 확장해야하는데, 아이들이 스스로 파악할 거니까 의미를 알려주지 말라는 거죠. 이게 가장 전형적인 구성주의 교육입니다. 아이들끼리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교사가 알려주지 않죠.

하지만 문맥상 낱말의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은 아이들이 긴 과정을 통해 습득해야 하는 것이고, 고등학생 때나 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교사가 개입해 낱말의 의미를 확장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1년 동안 6단위가 되는 국어 시간에 ‘아베체대(ABCD)’만 가르칩니다. 러시아나 핀란드 발달 교육에서는 교과서 두 쪽에 펼쳐진 그림들을 통해 낱말 하나가 무엇인지 가르칩니다. 언어 교육의 핵심이 낱말에 있기 때문이죠. 핀란드에서는 ‘낱말 하면 떠오르는 느낌’에 대해 발표하고 1시간 수업이 끝납니다. 낱말 경계선에서 너무 벗어날 경우만 얘기해주고, 끝나고 나면 사람들이 쓰는 말이 다 다른 느낌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가르칩니다.
 
[오늘보다] 선생님 말씀을 초등학교 기초교육이 잘 안 되는 게 문제라고 이해해도 될까요?
 
[배희철] 초등 이전에 유치원 교육부터 잘 안 됩니다. 적어도 생물학적으로 능력이 펼쳐지는 교육에서 생물 신체 활동과 지각 감각들을 일반화하고 그걸 문제로 인식하고 조작하는 활동들이 충분히 ‘놀이’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게 안 이뤄지니까 초등학교에 와서도 힘들어지는 거죠. ‘블록 놀이’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 모양을 주고 정해져 있는 모양의 블록으로 구체적인 모양을 만들라고 제시하는 사례가 있는데요. 이는 행동주의 관점의 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때 학생들이 흥미를 잃고 과제에 따분해한다는 거죠.

구성주의 관점에서 자유롭게 만들라고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학생들이 뭘 했는지 모르고 교육적으로 뭐가 남았는지 불분명한 경우가 많아요.

비고츠키의 문화·역사적 접근은 이 두 관점과 다릅니다. 문화·역사적 접근에 의한 과제는 형태를 제시하되, 요소는 자유롭게 채우라고 제시하는 겁니다. 문화·역사적 접근에 의한 과제는 원숭이도 할 수 있는 블록을 만들라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작정 자유롭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형태가 있는데 그 과정은 열려 있는 식이죠. 어떤 블록을 형태의 한 요소로 할지 비교하고 대조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수준에 맞게 블록 형태들 속에서 관계를 고민하게 하는 겁니다. 문화·역사주의 교육이론은 발생적 관점을 강조하는 교육이론입니다. 이때 발생이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이 변화·발전하는 걸 말하는데, ‘발생적 관점’은 발생과정, 즉 그것이 생겨난 기원과 이후의 변화과정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점을 강조하는 것이 문화·역사주의 교육이론입니다.
 
[오늘보다] 사실 한국 사회는 반지성주의가 팽배합니다. 이를 극복하는데 비고츠키 교육학에서 강조하는 발생적 관점, 개념학습, 고등정신기능의 발달 등은 유의미하죠. 이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는 어떠신지요?
 
[배희철] 저도 반지성주의 문화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이 활발한 시대에 필요한 지식을 찾으려면 키워드가 중요한데, 중요한 키워드 하나를 못 찾아서 자료를 못 찾는 일들이 많아요. 비고츠키가 발달의 관점에서 제시한 개념형성능력이 이와 연관되어 있다고 봅니다. 긴 세월에 걸쳐 교과의 지식을 가르치는 이유가 개념형성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비고츠키에 따르면, 정말 훌륭한 문학 작품이라면 그 엄청난 양의 사건들을 가지고 한 낱말, 제목이 떠올라야 합니다. 그 낱말을 중심으로 개념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 능력이 있어야 주체적, 합리적 과학적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능력 없이 해방된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보다] 다시 쟁점을 언급하면, 전교조는 비고츠키 교육학을 받아들이면서 교육개혁의 핵심을 입시철폐, 대학 평준화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장에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보일 수 있지만 반지성주의 문화를 극복하는 것과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입시와 대학 평준화를 전제하지 않으면 비고츠키 교육학의 실천이 어려운 걸까요?
 
[배희철] 전교조는 비고츠키를 알기 이전에 ‘입시 폐지, 대학 평준화’를 실천 과제로 설정했습니다. 전교조 창립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보시면 됩니다. 입시 때문에 자살하는 학생들을 살리는 것은 교사에게 너무도 당연한 과업입니다. 또 입시는 교사들이 주체적으로 자기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실현을 못하게 만듭니다. ‘입시 폐지, 대학 평준화’가 교사들의 만남의 장을 만드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올 한 해 참교육 실천에서 가장 주요한 돌파구는 교사 개개인의 문제로 봤을 땐 ‘입시 폐지, 대학 평준화’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중등교사의 실천을 담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쟁점이죠.

작년에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맞아서 변혁 운동을 어떻게 반성할 것인가 고민하면서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읽어봤는데, 운동가들의 투쟁에는 경제와 정치 투쟁과 더불어 이론 투쟁이 있었습니다. 이는 전체를 어떻게 전망하느냐의 문제와 연결돼 있죠. 그런데 현재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이론 투쟁을 전개하지 않고 있잖아요. 어떤 교육 활동이 잘 이뤄졌으면 그게 왜 잘 됐는지, 이 성과로 ‘실천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없고, 개별화되어버린 거죠. 반지성주의는 우리 운동 지형 자체가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의 경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세상의 흐름을 읽어내고 변화를 읽어내는 흐름이 전쟁으로 좌절되었죠.

비고츠키 교육학을 실천하는 것은 어떤 조건에서도 가능합니다. 교육적 삶을 살아가는 방법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죠. 비고츠키 교육학을 구성주의 교육학이 아닌, 행동주의 교육학이 아닌, 과학적인 교육학이며 동시에 예술적인 교육학이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보다] 하지만 ‘입시 철폐, 대학 평준화’가 이루어진 사회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지 않나’란 생각이 들어요. 물론 경쟁을 완화하고 발달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하는 과정에서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형태는 어떤 양식으로든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학이 서열화된 조건에서 아무리 좋은 입시제도가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입시 경쟁은 존재할 겁니다. 그 때문에 대학의 서열화가 완화되는 것은 필요하겠죠. 한국의 경우 너무 과도하게 대학이 서열화된 게 문제긴 하지만 대학을 평준화하는 것이 현실 가능한 일인지, 또한 평준화하면 구성주의 교육이 사라질 수 있는 건지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입니다.
 
[배희철] 올바른 인간이 되는 것이 교육이 책임져야할 몫입니다. 발달과 관련된 학문 분야에서 판단했을 때 24세까지 뇌는 생물학적 조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대학교육까지도 보편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과학의 눈으로 인간의 발달을 생각하면, 대학은 선택이 아니라 보편 교육의 대상입니다. 보이지 않는 허상과 같으면서도, 보이지 않게 힘을 발휘하죠. 기득권의 카르텔이 작동하는 방식이 대학 학벌 구조와 관련해서 작동했습니다. 대학 평준화라는 목표는 그런 한계에서 나온 결론이기도 합니다. 학벌주의 문화는 합리적인 사회 시스템이 돌아가지 않게 합니다. 피부로 느끼는 것이 강하게 작용한 요구죠. ‘대학 평준화’는 그런 측면에서 의의가 있고, 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단기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여전히 아이들은 줄서기 교육을 받으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공부를 포기하는 이유가 ‘대학에 갈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게 당장의 현실입니다. 대학을 뺑뺑이 돌리면 사회 전체로 봤을 때 생길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대학은 스스로 할 수 있는 공부를 마지막으로 학습하고 확인하는 마지막 단계, 선생님이 가장 필요 없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그걸 어디서 나온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대학의 신화는 무너져야 합니다. 알아서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전국적 단위의 학회 활동을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보다] 이 문제에 관한 쟁점은 앞으로 계속 토론해나갔으면 합니다. 끝으로 이후 활동 계획은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배희철] 주체적인 교사를 양성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교사 개인의 발달도 참교육 실천의 주요한 지점입니다. 교실에서 했던 것과 한국 사회 전체를 연결하는 자기 공부가 필요합니다. 참교육 실천을 하면서 전체적인 것들을 가늠하는 기준점을 찾고, 사회 발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담론들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면서 미래 전교조 출신 교육감 시대를 준비해나가야 합니다. 비고츠키 교육학 확산 10년의 시점에서 어떤 점이 틀렸고 문제가 있는지에 대한 평가와 함께 왜 우리가 교육을 하는가에 대한 운동가들 사이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인간이 다른 짐승들과 다른 것은 언어 사용에 있습니다. 자신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고 여러 가지 능력을 한꺼번에 발현시킬 수 있죠. 그러면서 문화적 능력을 갖추게 됐습니다. 교육을 의무로 하면, 문화적 능력을 키우는 것까지는 국가의 최소한의 약속이자 최소화된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직업이 살아남을지 모르는 시대에 직업 교육 담론은 문제가 많습니다. 미래의 직업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학교는 그런 사람들을 길러내야 할 겁니다. 자아실현과 사회 전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자리라는 것을 설정할 수 있는 시도가 필요합니다.
 
[오늘보다] 앞으로 교육계나 사회운동에서 ‘반지성주의 문화’를 극복하는 데에 비고츠키 교육학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비고츠키 교육이론은 교육에서 ‘반지성주의 문화’를 극복할 수 있는 유용한 이론일 수 있다. 또한 비고츠키 교육이론은 구성주의 교육이론이 부차화한 교사와 학생의 협력, 성인과 아동의 협력, 즉 ‘교육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 점이 상당히 긍정적이다. 그러나 그동안 비고츠키 연구를 통해 구성주의 교육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비판’이 학교 현장을 개혁할 정도로 충분히 진행되었는 지는 여전한 고민거리다. 이에 대한 연구 작업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이후 ‘오늘 교육’ 코너를 통해 다루고자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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