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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0 제33호

우리 아이도 창의적인 학생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대통령도 주목한 ‘4차 산업혁명 시대 교육’

  • 배일훈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렇게 말했다. “암기 위주의 교육은 4차 산업혁명에 맞지 않습니다. ‘암기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 많이 하는 사람’, ‘상상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 수 있도록 교육체계를 개편하겠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새로운’ 교육에 대한 기대와 요구는 언제나 많았다. 90년대 이후 줄을 이었던 각종 교육개혁 정책은 급변하는 사회에서 명분을 찾곤 했다. 교육이 바뀌어야 노동자로서 시민으로서 제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개혁의 단골메뉴로 자리 잡은 ‘창의성’, ‘융합’, ‘문제해결력’, ‘ICT(정보통신기술)’ 같은 용어는 이제 동네 학원가 입간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코딩 교육’, 얼마나 필요할까?

‘4차 산업혁명’ 하면 맨 처음 떠오르는 게 컴퓨터다. 그러니 소프트웨어 교육부터 살펴보자. 디지털 시대, 스마트폰과 컴퓨터 등 ICT 기기의 원리를 가르치는 게 소프트웨어 또는 코딩 교육이다. 관련 기술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알고리즘 같은 프로그래밍 문법을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데, 이를 어린 시절부터 놀이와 게임 등으로 자연스럽게 학습한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는 내년부터 초중고 학교에서 코딩 교육을 의무화할 예정이다.

따지고 보면, 컴퓨터가 대중적으로 보급된 이후 모두가 학교에서든 학원에서든 컴퓨터 교육을 받아봤다. 1990년대에는 아래아한글과 MS-DOS, GW-BASIC을, 2000년대 이후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엑셀과 파워포인트, C언어를 어떤 식으로든 배웠다. 새롭게 등장한 디지털 문화를 활용하고 즐기기 위해서, 또는 많은 직업군에서 취업할 때 관련 자격증을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배워서 나쁠 건 없다. 그러나 초등학교에서부터 소프트웨어 교육을 활성화시키는 문제는 좀 더 따져봐야 한다.

먼저,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보자. 미래 사회에서 소프트웨어를 많이 쓰기 때문에 코딩을 배워야 한다면, 초등학교의 실과, 중·고등학교의 기술·가정 시간도 대폭 늘려야 한다. 자동차 보유비율 65퍼센트 시대, 쿡방과 자영업 시대에 자동차 운전과 요리도 컴퓨터에 못지않게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필요하다고 해서 관련 기능 교육을 무작정 확대시킬 순 없다.

소프트웨어 교육의 핵심은 일상 언어와 다른 프로그래밍 언어의 문법, 사고방식을 이해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GW-BASIC, C언어 등 겉모습은 바뀌어도 달라지지 않는 프로그래밍 언어의 핵심은 무엇일까? 바로 수학이다. 실제 2013년까지 고등학교 수학에서는 알고리즘과 순서도를 배웠는데, 수학적 사고력을 익히는 동시에 컴퓨터의 원리와 논리를 익히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프트웨어를 배우는 새로운 교과를 신설하기보다 수학 등 기초 교과를 더 충실히 배울 수 있도록 개선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창의성 교육’ 하면 창의성을 기를 수 있나?

‘상상하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어떻게 길러질까? 이건 모든 부모의 고민이다. 그래서 유아 창의성 교육, 미술 창의성 교육, 융합학습 토론, 창의성 체험과 창작 등 다양한 프로그램과 학원에 아이들을 밀어 넣는다. 그런데 ‘창의성’을 높이기 위한 ‘창의성 교육’은 정말 효과가 있을까?

교육학적으로 볼 때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 ‘창의성 교육’을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개미를 관찰하려면 돋보기 사용법과 물체를 관찰하는 방법에 대해 가르치면 된다. 그러나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질문하는 방법을 가르친다고 창의성이 발달하는 건 아니다. 창의성은 일련의 학습 결과 도달할 수 있는 고차원적 기능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차원적 기능은 어린이기·청소년기에 오랜 기간 다양한 교과지식을 학습하고 상호 교류하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형성되며, 이를 바탕으로 성인기 협업과정에서 비로소 창의성과 문제해결력 같은 꽃으로 피어난다.

비슷한 사례를 초등 교사의 경험에서도 찾을 수 있다. 김현희는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에서 ‘융합인재를 기른다’는 창의성 교육이 어떻게 학생들의 창의력과 비판적 사고 능력 발달을 저해하는지에 대해 생생하게 이야기한다. 초등학교 5~6학년에서 ‘식물이 에너지를 얻는 과정(광합성)’과 ‘동물이 양분을 얻는 과정(소화)’ 두 가지 주제를 ‘융합’해 실험하고 학습하는 것은 얼핏 볼 때 적절해 보인다. 그러나 식물의 광합성과 동물의 소화에 대한 지식을 이미 알고 있는 성인 입장에서만 그럴 뿐이다.

관련 지식을 갖지 못한 학생들에게 이런 ‘융합’ 수업을 실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결과적으로 실패한 수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먼저 학습한 내용이 장기기억으로 전환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내용이 추가되면, 두 가지 내용이 융합되는 게 아니라 ‘과부하’가 걸리기 때문이다. 즉, 수업 중에는 학생들이 바삐 움직이며 재미있어하는 듯 보이지만 정작 나중에는 어떤 내용을 공부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학생이 거의 없는 수업이 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잘못된 창의성 교육의 민낯이다.
 

역량중심 교육은 지식교육의 대안인가?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을 중심으로 ‘역량중심 교육’이 보편화되고 있다. 지식을 많이 ‘아는 것’보다 ‘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하는 게 특징이다. 우리나라도 2015년 개정된 교육과정에서 학교 교육에 적용할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한 ‘핵심역량’(자기관리 역량, 지식정보처리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심미적 감성 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을 제시하고 있다.

‘역량’ 개념의 이론적 출발점은 20세기 초반 효율적 기업경영과 생산관리를 위한 과학적 관리이론이다. 그것은 노동자들을 선발·훈련하고, 과업수행을 위해 작업을 표준화하고, 불필요한 공정은 제거하기 위한 이론이었다. 따라서 ‘역량’ 개념은 본질적으로 지식이나 이해보다는 수행과 그에 대한 평가(결과)를 강조하고, 경영이나 기술적 측면에 핵심을 두고 있다. 그만큼 사회적·경제적 요구가 교육에 성급히 도입된 개념이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초중등 교육과정이 취업·직업교육으로 편향될 것이라 단정 짓는 건 비약이지만, 우려는 분명 존재한다. 전통적 지식을 폄하하는 역량중심 교육이 학생들의 발달과 교육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먼저 역량중심 교육과정 개혁을 추진해온 영국에서도 최근 이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다. 영국은 기존의 교육과정이 각 교과의 내용 지식을 상세히 규명해주기보다, 미래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기능이나 능력을 함양하는 쪽으로 개정해 왔다. 이에 대해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규정하지 않으면서, 학교가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에 너무나 많은 처방을 내리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그래서 최근 개정된 영국의 국가교육과정에서는 모든 학생들이 획득해야 할 핵심적 지식을 가르치는 교과로 영어(국어), 수학, 과학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이름에서도 엿볼 수 있듯 교과라 할 수 없는 진로교육, 종교교육, 성교육 등은 교육과정에서 배제했다.

앞서 살펴본 ‘창의성 교육’의 예와 같이 어떤 역량을 선별해 강조한다고 해서 그 역량이 선별적으로 길러질 수는 없다. 오히려 이런 시도는 인간의 발달을 왜곡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우리의 핵심역량중심 교육과정도 이대로 진행된다면 앞서 영국에서 일어난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현 시대 교육의 역할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어떤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특히 보편교육으로서 학교교육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고 주장해야 할까?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교육개혁 담론은 화려함과 신선함 때문에 그럴 듯해 보이지만, 정답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대다수의 교육개혁 담론은 변하는 시대의 옳고 그름, 또 다른 변화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생략한 채 ‘변화된 사회에 적응하라’고 말없이 강요하는 담론으로 기능할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중고 정규교육과정에서 학생의 발달과정에 맞는 기초 지식과 기능에 대해 교육해야 한다. 예를 들어, 논리적 사고를 기르고자 한다면 학교 정규 수업시간에 산수부터 수학까지 차근차근 가르치고 배울 수 있어야 한다. 창의성과 같은 ‘역량’은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초보자가 단번에 전문가가 될 수 없듯이, 학생이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반복·훈련·연습할 수 있는 학교를 만드는 것, 급변하는 시대에 학교 교육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다. ●
 

참고 자료

 

김현희,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2017
소경희, <영국의 ‘2013 개정 교육과정’에서 의도한 것과 구현한 것: 의의와 한계>, 《교육과정연구》 제33권 3호(2015)
손지희, <인지자동화 시대, 비고츠키교육학으로 본 ‘역량’의 문제>, 《진보교육》 2017년 4월호

 

 
필자 소개

배일훈 | 오늘보다 편집실 기획조사국장. 노동이라는 튼튼한 주춧돌 위에 교육이라는 기와집을 짓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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