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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강과 사회
  • 2017/08 제31호

돌연사 하지 않는 일터, 어떻게 만들 수 있나

심뇌혈관계 질환 극복할 최고의 예방책은?

  • 이은주
 ⓒ전국집배노동조합
 
지난달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집배원 근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체국’은 2016년에 6명, 2017년에만 이미 12명이 사망한 ‘중대재해 사업장’이다. 18명의 사인을 살펴보면, 배달 중 사고가 3명, 자살이 5명, 과로사로 추정되는 돌연사가 10명이다. 괜히 ‘죽음의 일터’라 불리는 게 아니었던 게다.

노동조합은 정부에 특별근로감독을 요구했다. 그러자 고용노동부는 “공무원은 노동자가 아니”라며, 허울뿐인 실태조사만 실시했다. 2016년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집배원들은 월 77시간 초과노동을 하지만 그 중 20시간은 임금을 받지 못한 무료노동이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가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는 초과노동시간이 ‘57시간’인 것으로 나타나 조사에서 무료노동은 제외한 것으로 추측된다.
 

증거는 충분하다

그렇다면 최근 집배원 사망원인의 1위를 차지하는 돌연사는 왜, 어떻게 발생하는 걸까? 과로사로 추정되는 돌연사 중 상당수가 뇌졸중, 급성 심근경색 등 심뇌혈관계 질환이다. 심뇌혈관계 질환이란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뇌혈관과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심혈관이 막히거나 파열되어 생기는 질환을 뜻한다. 치사율과 후유증 발생 비율이 매우 높다.

2015년 저명한 의학 학술지 <란셋>(The Lancet)은 노동시간과 심뇌혈관계 질환의 연관성에 대해 분석한 논문을 실었다. 해당 연구는 2014년까지 출판된 모든 코호트 연구에 대해 체계적 분석 후 연구 20개를 종합해 약 60만 명의 질환 발생률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주 35~40시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주 55시간 이상 일한 경우, 관상동맥질환은 13퍼센트 증가했고, 뇌졸중은 33퍼센트 증가했다. 노동시간이 늘어날수록 뇌졸중 위험은 증가했는데, 주당 41~48시간 일한 경우 10퍼센트, 49~54시간 일한 경우 27퍼센트, 55시간 이상 일한 경우 33퍼센트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주제로 발표된 다른 연구들도 살펴보자. 1991년 일본에서 진행한 연구에서는 203명의 과로사 사례를 분석했다. 그 결과 3분의2 이상이 주 60시간 이상 근무했다. 1999년 스웨덴의 쌍둥이 연구에서는 주 5시간 이상 초과 근무하는 사람은 5년 이내 사망할 가능성이 2배였다. 역시 일본에서 급성심근경색 발생 한 달 전 근무시간을 분석했더니, 주당 60시간 일한 경우 심근경색 발생이 1.9배 많았고, 휴일근무를 한 경우 2.9배 높았다. 또 하루 11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 7~9시간 근무하는 사람에 비해 심근경색 발생 위험은 2.94배에 달했다.
 

예견 가능했던 참사, 집배원 과로사

앞서 <란셋>에 발표된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한국 집배원들의 초과노동시간에 따른 심뇌혈관계질환 위험도를 따져보자. 초과노동시간을 월 57시간(주 13.2시간)으로 치더라도 주 53.2시간 노동으로 뇌졸중 위험이 27퍼센트 증가하며, 월 77시간(주 17.9시간)으로 계산하면 주 57.9시간 노동으로 뇌졸중 위험이 33퍼센트 증가한다. 또 노동자운동연구소가 발표한 〈우정사업본부 노동자의 최근 3년간(2011~2013) 재해발생경위내역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집배원 노동자의 일주일 평균 노동시간은 비수기에 57.6시간, 폭주기 70.2시간, 특별기에는 85.9시간에 달한다. 장시간 노동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결국 집배원들의 심뇌혈관질환 유병률은 전체 노동자에 비해 19.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각 국 노동 시간 그래프 : 우리나라 노동시간은 OECD 평균보다 347시간이나 많다.
ⓒOECD
 
2015년 기준 우리나라 노동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2위다. OECD 평균보다 연 347시간이 많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는 과로사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다. 고용노동부의 산재사망 통계에서 과로사의 대표적 원인 중 하나인 심뇌혈관계 질환 사망 300명(2016년 기준)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2015년 사망을 포함한 심뇌혈관계 질환 산재신청은 1970건, 산재인정 462건이며, 2016년에는 산재신청 1911건, 산재인정 421건으로 22~23퍼센트의 낮은 인정률을 보이고 있다. 산재 인정률이 낮아 신청을 포기한 것과 집배원이 받는 공무원연금 등의 보상 통계의 불포함까지 고려하면, 실제 심뇌혈관계 질환 산재와 사망 건수는 훨씬 높을 것으로 보인다.
 

“생활습관을 바꿔야죠. 그런데…”

심뇌혈관계 질환은 우리나라에서 사망 원인 2위로 매년 증가 추세에 있다. 심뇌혈관계 질환의 교정 가능한 위험인자로 고혈압, 당뇨, 이상지질혈증, 흡연, 운동부족, 비만 등을 꼽는다. 간혹 정신사회적 원인을 꼽기도 하지만, ‘개인적인 스트레스’ 정도만을 문제 삼는다. 

보건복지부 공식 블로그의 뇌졸중 예방관리를 위한 생활수칙에도 금연, 절주, 건강한 식단, 적절한 운동, 적정체중 유지, 고혈압·당뇨·이상지질혈증 치료, 스트레스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뿐이다. 장시간 노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어느 곳에도 없다.
 
심뇌혈관질환 예방관리 9대 생활수칙 (출처 : 보건복지부)
 
국가건강검진에서 심혈관질환 위험 평가를 할 때도, 개인적으로 의사를 찾아가 진료를 받을 때도 술·담배·운동·고혈압·당뇨·이상지질혈증 여부에 대해서만 묻는다. 평소 일이 얼마나 힘든지, 노동시간이 얼마나 긴지, 야간노동을 하는지 등은 묻지 않는다.

금연·절주·적절한 운동·적정체중 유지와 같은 개인적 접근이 심뇌혈관계 질환 예방에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생활습관 요인들은 노동조건의 영향 아래 있고, 장시간·저임금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건강관리를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진료실에서 의사가 환자들의 장시간 노동을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에 생활습관에 대한 조언밖에 할 수 없지만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생활습관 관리’의 성공률은 낮다.

현대 의학의 개인 중심의 생활습관에 대한 처방은 결코 노동자들의 심뇌혈관계 질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잔업과 야근이 일상화된 한국 노동자들은 출퇴근시간을 포함하면 평일 하루 절반을 생산 현장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지친 노동자에겐 운동할 시간도, 건강한 요리를 먹을 시간도 부족하다. 장시간 노동은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시간도 앗아간다. 의료전문가들은 퇴근 이후의 삶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말고, 노동하는 시간에 대해서도 반드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건강 불평등 개선하는 보건 정책을

정부(보건복지부) 정책으로 심뇌혈관계 질환 예방 대책에 노동조건 개선을 포함시켜야 한다. 스웨덴의 경우 ‘국가 공중보건 정책 목표’에 ‘건강한 노동생활’을 포함시킨 바 있다. 영국 정부 건강형평정책의 향후 방향을 제시한 〈마못 리뷰〉는 “건강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모든 사람이 좋은 직장을 가져야 한다”고 규정했다. <란셋> 논평은 심뇌혈관계 질환 예방 활동이 생활습관 관리와 약물치료에 집중되지만, 이런 개인적인 접근은 건강 불평등을 악화시킨다고 지적한다. 사회경제적 조건이 좋은 사람들의 성공률은 높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성공률은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시간 노동에 대한 개입이 보건정책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공공운수노조 전국집배노동조합은 지난 7월 10일부터 무기한 연좌농성과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우정 노동자(집배원 등 우정사업본부에 소속되어 일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과로사 재발 방지를 위한 국민진상조사위원회 구성과 인력충원 및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1인 시위다. 위험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장시간 노동을 해소할 제도를 만들고, 보건정책의 패러다임을 전환의 첫 걸음은 바로 이러한 실천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노조 할 권리, 다시 말해 노동자들의 단결을 강화하고,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 곧 집배원들이 건강해지는 길이다. ●
 
 
필자 소개

이은주 | 의사. 사회진보연대 보건의료팀에서 공공의료 강화와 민중건강권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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