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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2 제25호

중국을 인터뷰하다

  • 이민수 정의당 구로구위원회 사무국장
 
산보(散步)운동. 2007년 중국 샤먼 시 정부가 대만기업 PX의 화학공장 건설을 승인했을 때 환경오염을 우려한 샤먼의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거리로 나섰다. 노란 리본을 달고 거리를 산보하는 시민들의 항의는 결국 샤먼 시 정부가 건설 계획을 재검토하도록 만들었다. 산보운동은 이후 하나의 사회운동 양식이 되어 상하이, 청두, 충칭 등으로 번져 나갔다. 책 《중국을 인터뷰하다》의 한 꼭지를 차지한 쑨거는 말한다. 이것은 ‘부족하나마 중국의 민주주의가 성장하고 있는 증거’라고.

오며가며 들은 이야기로 인민의 정치적 자유가 적정 수준에서 통제되고 있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중국도 최근 변화의 모습들을 보이고 있다.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중국 경제의 이면에서, 국가가 표방하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이상과 달리 다수 인민들의 처지는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다. 빈부격차 해소가 요원한 상황에서 철강, 석탄 등 국유기업 구조조정마저 진행 중이다. 불황기 인민들에게 고통이 전가되는 현실에 저항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홍콩 기반 노동단체 ‘중국노동회보(China Labour Bulletin)’가 집계한 중국 전역의 노동자 시위 및 파업 건수는 2011년 185건에서 2015년 2726건으로 5년간 15배나 급증했다. 이것이 체제를 흔드는 불안 요소로 발전할 것을 우려한 당국은 강제 진압과 노동단체 와해, 활동가 구속 등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중국의 노동운동, 시민운동도 정교하게 진화하고 있다. 당국이 껄끄러워하는 정치성을 배제하고, 임금, 복지 등 기본권 보장에 집중하고, 위챗 등 SNS를 통해 활동비 모금과 정보교환을 하고 있다.
 
PX사의 화학공장 건설을 반대하는 중국 샤먼 시 시민들
 
사회진보연대 서울지부 책읽기모임 ‘그린라인’에서 함께 읽은 《중국을 인터뷰하다》는 여러 방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중국 각계 인사 11명과의 대담을 담고 있다. 대담자들은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 수출 중심의 중국 성장모델이 점차 한계를 드러내고, 정치적 권리 확대를 요구하는 주장이 힘을 받는 최근의 변화상에 대해 각자의 진단을 내리고 청사진을 그린다. 대약진 운동, 반우파 투쟁, 문화대혁명, 천안문 시위 등 대담자들이 겪은 역사를 통한 설명은 글의 흥미를 더하고 있다.

국가권력에 비판적인 지식인이자 루쉰 연구의 대가 첸리췬,농민·농촌·농업 등 삼농문제 전문가 원톄진,중국 현대사의 거친 흐름 속 힘 없는 사람들과 작은 풍경에 주목한 영화감독 장률,국가권력의 속박으로부터 해방과 자유주의 실현을 요구하는 이론가 친후이, 신좌파 지식인 그룹의 대표적 이론가로 중국적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제도적 혁신을 이야기하는 추이즈위안, 자유주의자이면서 평등을 강조하며 중성정부 이론을 주장하는 야오양, 서구 중심의 근대주의를 비판하면서 근대를 아시아의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쑨거, 천안문시위의 중심에 섰던 젊은 철도 노동자에서 이제는 홍콩에서 중국 노동자들의 권익보호에 애쓰고 있는 한둥팡, 베이징 변두리 피춘마을에서 노동자의 집을 짓고, 노동자의 자긍심과 연대를 노래하는 쑨헝, 홍콩 독립노조운동의 초석을 놓고 국제노동단체 AMRC 대표로 일한 아포 레웅과 유명한 중국정치 전문가이자 시민운동가인 조셉 청 교수까지 다양한 시각으로 중국 사회를 진단하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중국혁명 이후 30년의 사회주의 시대(1949~78), 30여 년의 시장화 시대(1978년 이후)를 거치며 두 차례의 혁명적 전환을 경험한 중국은 문화대혁명, 천안문 시위 등 역사에 대한 기억, 시장경제 및 국가와 사회 사이에서 고조되고 있는 긴장에 다시 들끓고 있다. 사회주의와 시장, 평등과 자유, 중국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에 대해 논쟁과 실험이 진행 중이다.
 
‘중국몽’ 프로파간다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내가 갖고 있던 중국에 대한 이미지인 ‘일당통치’와 ‘막강한 국가권력’, ‘국가에 의해 관리되는 수동적 인민’의 고정된 모습과 달리 중국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변화는 공장에서 일하다 열악한 노동 현실에 모순을 느끼고 노동운동가로 돌변한 젊은이, 《전태일 평전》을 읽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하는 노동자들처럼 이미 우리 민중과도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는지 모른다.

지금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부국강병’을 강조하며 ‘중국의 꿈(中國夢)’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15억 중국 민중의 삶이 이 안에 담겨 있는지는 여전히 넌센스다. 이 민중들의 열망과 의지가 다시 꿈틀댈 때,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과연 어떻게 변화할까? 한국은 어떻게 중국과 동아시아의 이웃으로 공존할 수 있을까?

《중국을 인터뷰하다》는 막연한 고정관념에 갇혀 있던 우리의 시각을 넓히기에 충분한 책이다.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의 민주와 삶의 발전,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인식이 기존의 민족국가적 한계에 갇히지 않고, 국제주의적 시각을 갖추며, 오늘날 자본의 모순을 뛰어넘는 전망을 갖추려면, 귀는 크게 열고 눈은 멀리 내다보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중국에 대한 공부가 그런 노력의 첫 발걸음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중국 현대사와 인민들의 삶과 문화에 대해 함께 공부할 모임에 초대합니다.

 

문화대혁명에 대한 소설 《민주수업》을 읽고 이야기 나누려 합니다.
이후 커리큘럼에 대해서는 첫 모임 때 토론해요!
첫 모임 : 2월 19일(일) 오후 2시
문의 : 이민수(010-9302-8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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