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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2 제37호

빈민, ‘노동은 하지만 노동자는 아니다’?

자립·자활 할 수 없는 ‘자활 사업 일자리’

  • 정성철
1997년 외환위기는 많은 사람의 삶을 바꿔놓았다. ‘열심히 일하면 가난해지지 않는다’는 믿음은 깨지고 ‘열심히 일해도 사회적 위험이 있고 누구나 빈곤에 처할 수 있다’는 인식이 공감을 얻었다. 외환위기의 주범이었던 금융자본과 거대기업들은 구제금융을 통해 회생했지만 해고된 노동자, 도산한 상인 등 일자리를 잃은 개인들의 삶은 구제되지 못했다. 전례 없이 많은 사람이 빈곤에 처했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2000년, 외환위기로부터 생겨난 새로운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되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라고 하면 흔히 노동할 수 없는 빈곤층이 신청하는 복지제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시행 당시부터 노동할 수 있는 빈곤층을 제도의 대상으로 포괄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빈곤에 처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함과 동시에 ‘노동능력이 있는 빈곤층의 자활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근로능력평가에서 ‘근로능력있음’ 판정을 받게 된 수급자는 국가에서 제공하는 일자리 교육 및 자활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 조건 달린 수급권인 것이다. 자활 사업은 노동이 가능한 빈곤층에게 일자리 능력배양 및 기능습득 그리고 자립·자활 지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제도 시행으로부터 17년이 지난 현재, 자활 사업은 그 목적에 맞게 노동 가능한 빈곤층에게 자립·자활을 지원하고 있을까.
 
 

실제로 일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요

“몸이 좀 안 좋은 사람들이 있어요. 나타나지 않는 병명, 정신적으로 좀 그런 사람들도 많아요. 조건부 수급인데 그 사람들은 사실 근로능력이 없거든요? 근로능력이 없고 이런 사람들이 많은데, 그쪽 사람들은 근로능력이 있다고 보는 거예요. (…) 법적으로 어떻게 안 될지는 몰라도 근로능력 그거는 실제로 면담을 좀 많이 해 가지고 그 사람의 어떤 거에 대해서 좀 잘 알아야 해요. 그냥 수박 겉핥기식으로 잠깐 면담해 가지고 ‘이 사람 근로능력 있다’ 이래 생각하는 거는 진짜 그렇잖아요.”

기초생활보장제도 신청자 모두가 근로능력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18세 미만, 65세 이상, 등록장애 4급 이상 등의 경우를 제외한 신청자들이 근로능력평가의 대상이다. 수급신청자가 병원에서 받은 근로능력평가용 진단서를 국민연금공단에 제출하면 연금공단과 계약되어 있는 의사들이 진단서를 토대로 의학적 평가를 내린다. 이후 연금공단 직원이 수급신청자와 면담을 통해 활동능력평가를 내리고, 두 평가를 종합해 근로능력을 판정한다. 지자체 담당공무원들이 판정했던 근로능력평가는 온정주의적이고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2012년 국민연금공단에 이관되었는데, 이관 이후 근로능력있음 판정비율이 3배나 늘었다. 근로능력있음 판정을 받은 수급자가 일자리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조건 불이행으로 수급권이 중단된다. 실제로는 일을 할 수 없어 복지제도를 신청한 빈곤층이 근로능력평가를 이유로 노동을 강제당하며 더 깊은 낭떠러지로 내몰리고 있다.
 

노동 하지만 노동자 아닌 참여자

“90만 원 남짓 받지만 20만 원(월세) 나가고 또 70만 원이잖아요. 그럼 거기서 줄이고 줄이고 절약을 하려고 신경을 많이 써요. 그 금액에서도 만 원, 천 원이라도 애껴써야 되겠다, 그런거 있죠. 지금은 역시 음식에 많이 들어가요. 음식을 제가 집에서 해먹으니까. 반찬이고 다 사서 먹어야 되니까. 지출을 안 할 수가 없죠. 거의 뭐 남기기가 쉽지 않아요. 솔직히 다른 분들도 뭐 어떨지 모르지만 저 같은 경우도 저축하기가 어려워요. (중략) 솔직히 적당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죠.”

자활 사업은 노동강도나 수익성에 따라 근로유지형, 사회서비스형, 인턴·도우미형, 시장진입형 순으로 나뉘며 유형별로 단가(일급)가 정해진다. 2017년 단가가 가장 높은 시장진입형은 39,010원, 가장 낮은 근로유지형은 26,320원이었다. 시장진입형 일자리 참여자가 최대 받을 수 있는 월 급여는 90만원 남짓이다. 일반 노동시장 노동자들처럼 주 5일, 1일 8시간 노동을 하는데도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는다. 자활 사업 일자리 참여자는 노동자가 아니라 참여자이기 때문이다. 월 급여가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에 생활필수 지출항목인 월세, 수도·전기세, 교통·통신비를 내고 남은 대부분의 금액은 식비에 지출될 수밖에 없다. 기호에 따라 술, 담배를 하는 경우에는 주식을 라면으로 대체하는 등 제대로 된 영양공급조차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나름대로 세이브나 저축 하는건 적을 것 같아요. 자립하기에는 액수가 너무 적은 것 같아서 … 그 기간이라도 조금 더 늦춰줬으면 하는거는 있죠.”

낮은 급여로 인해 저축은커녕 제대로 된 영양공급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자활 사업 참여기간조차 기본 3년, 특정조건 이행 시 최대 60개월(2018년 특정조건이행 삭제, 최대 60개월로 변경)로 제한되어 있다. 자활 사업은 참여 기간이 끝나고 1년이 지나야 재참여 할 수 있다. 때문에 자활 사업이 종료되면 고용노동부에서 실시하는 취업성공패키지에 참여했다가 다시 자활 사업으로 돌아오는, 빈곤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자활 일자리가 거의 없더라고요. OO구도 그렇고 여기도 마찬가지예요. (중략) 거기 TO가 빠져야만 할 수 있기 때문에, 거의 없어요. (중략) 자활하는 사람 15명이 게이트웨이에 와서 교육을 받는다고요. 그 중에 많이 가야 1~2명 갔대요. 거의 못 간다고 봐야 돼요.”

자활 사업 일자리를 희망한다고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이트웨이 과정(신규 자활 사업 참여자들에 대한 기초교육 및 상담 프로그램)을 거친 이후 참여할 수 있는 자활 사업 일자리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고용노동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취업성공패키지로 넘어갔다가 다시 자활 사업으로 돌아오거나 타의에 의한 ‘조건 불이행’으로 수급권을 박탈당하게 된다.
 

실패할 수밖에 없는 근로빈곤층 취업우선지원 사업

“제가 본 사람들은 (취업성공)패키지 하다가 다 자활로 오더라고. 특히 몸 안 좋으신 분들. 패키지 하면, 다시 옵니다. 자활로. 그것도 제가 볼 때는, 일반인들은 패키지가 있잖아요? 괜찮은데, 저소득층은 그게 실패라고 봐야 합니다. (중략) 그리고 직업상담사는 만약 10명가면 7명 취업 보내잖아요? 그럼 자기한테 플러스알파(성과금) 있거든요. 그러니까 계속 추천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자활 사업이 노동 가능한 빈곤층에게 직접일자리를 제공하고 역량강화를 통해 자립·자활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근로빈곤층 취업우선지원 사업>은 노동 가능한 빈곤층을 일반 노동시장에 취업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취업우선지원 사업은 2013년 시범사업을 통해 2014년 전국적으로 확대 되었고 2016년부터 ‘근로능력있음’ 판정을 받은 조건부수급자는 고용노동부에서 주관하는 취업성공패키지 사전단계에 우선 참여하게 됐다. 사전단계에서 역량평가를 통해 지역자활센터로 다시 배치될지 취업성공패키지에 남을지가 결정되는데, 참여자의 70퍼센트 이상을 취업성공패키지로 배치할시 해당 고용센터에 인센티브가 지급된다.
 
"약을 한 여덟 개 정도 먹죠. 고혈압, 고지혈. 그 다음에 당뇨, 그 다음에 인자 약을 안 먹고 있는 게 지금 갑상선 있었는데 갑상선 약을 한 6개월 정도 지금 안 먹고 있고..”
 
자활 사업에 참여하는 대다수는 고령이거나 이미 노동시장에서 한 번 이상 밀려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더불어 가난해지는 경로에서 영양섭취를 제대로 못하고 질병에 대한 치료를 하지 못해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일반 노동시장에 (재)취업할 수 없기 때문에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신청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부는 다시 일반 노동시장에 취업하라고 강요하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 할 수 없는 시장 취업을 강요하는 취업우선 지원사업은 수급자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고 수급권 포기를 종용하는 행위이다.
 

자활 사업 참여자들의
진정한 자립·자활을 위해서

“어딘가에 나에게 일을 시켜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게 나는 또 맨 처음에 내가 이 자활에 와서 남들과 똑같이 일을 하는데, 전철을 타고 오는데, 우리가 일하는 시간이 아침 9시에요. 출근시간이 9시까진데, 똑같이 걸어와도 되는 거린데 저거해서 조금 전철을 몇 번 타고 댕겼었어요. 처음에는 그게 한 가지 참 뭐라 뿌듯하다 그러나? 남들 출근할 때 같이 출근하니까. 그거 좋은 점이 있고, 또 어쨌든 그냥 맹목적으로 수급 받고 있다가 월급을 타니까, 고게 또 왜 첫 월급 탔을 때 기분 같은거 있죠? 그런 느낌이 있더라고요. 보니까, 아 어딘가에, 나도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데가 있구나. 그거에 내가 참 저거 했었고, 그래서 나도 일을 할 수 있으니까. 그게 굉장히 뿌듯하더라고요.”
 
자활 사업은 일반적인 노동시장에서 취업할 수 없는 노동 가능한 빈곤층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참여자 자신이 사회에 유용한 존재임을 느끼게 한다. 긍정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근로능력평가와 낮은 임금, 적은 일자리 수와 제한된 참여기간, 취업우선지원전략 등 시작부터 끝까지 퍼져있는 문제점들은 자립·자활을 지원한다는 자활 사업의 목적을 가로막고 있다. 자활 사업 참여자들은 말한다. “자립할 수 없다”고. “현재의 자활 사업은 빈곤의 쳇바퀴를 돌게 할 뿐”이라고. 자활 사업이 노동빈곤층의 자립·자활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효과 없는 취업우선지원사업을 폐지해야한다. 일자리 수를 늘리고 기간제한을 폐지해야 하며, 낮은 임금수준을 현실에 맞게 인상해야 한다. 2004년부터 2017년까지 최저임금이 연평균 7퍼센트 오른 반면, 자활 사업 시장진입형의 단가는 2.8퍼센트만 올랐다. 2004년 최저임금보다 높았던 시장진입형의 단가(일급)는 현재 최저임금보다 1만 5000원 낮다. 

마지막으로, 노동이 강제가 아닌 선택에 맡겨져야 한다. 강제하지 않으면 노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은 사실 아닌 우려이며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낙인찍기다. 실제 노동에 대한 기회제공은 노동 가능한 빈곤층들에게 소득 이외에도 자존감의 회복 등 긍정적인 작용을 하고 있다. 노동 가능한 빈곤층이 실제 자립·자활할 수 있는 자활 사업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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