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오늘평등
  • 2016/12 제23호

주거권을 위해 싸우는 민중들, 한곳에 모이다

해비타트 III와 민중사회포럼을 다녀와서

  • 윤애숙 빈곤사회연대 조직국장
지난 10월 17일부터 20일까지 나흘간 에콰도르 키토에서는 20년에 한 번 개최되는 해비타트Ⅲ(UNHABITAT; 유엔주거계획)의 3차 회의가 열렸다. 이번 해비타트Ⅲ에는 전 세계 정부와 지방정부, 전문가, 사회운동가 등 167개국 3만 6천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에선 국토교통부가 정부를 대표해 참석했고, 서울시·수원시 등 지방정부에서도 참석했다. 또 주거, 환경, 의제21 등 다양한 시민단체로 이루어진 한국민간위원회에서도 50여 명이 참석했다.
 
 
같은 기간 세계 사회운동진영이 해비타트III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한 민중사회포럼도 키토에서 열렸다. 민중사회포럼은 자본주의적 도시화에 맞서 정의롭고 포용적인 도시를 만들어갈 것을 제안하는 포럼이다. 민중사회포럼에는 운동진영에서 준비한 세션 외에도 국제강제퇴거법정, 행진, 퇴거 위협에 처한 지역 공동체 방문 등 다양한 활동들이 준비돼 있었다. 본 글을 통해 나흘간 민중포럼에 참여한 경험을 《오늘보다》 독자들에게 공유하고, 주거권 운동의 방향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자 한다. (해비타트III와 민중사회포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오늘보다》 20호, ‘주거권과 도시에 대한 권리’ 참고)
 

세계 곳곳 강제퇴거에 맞서는 이들

민중사회포럼은 제5회 국제강제퇴거법정으로 시작했다. 법정이 열리는 에콰도르 중앙대학 체게바라관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보인 문구는 “NO! NAVAL BASE”(해군기지 반대!)였다. 옆에선 제주 강정마을 활동가들이 해군기지 건설에 맞선 투쟁을 알리는 영어 유인물을 건네주었다. 전 세계에서 접수된 87개 사례 중 선정된 7개의 사례가 민간법정에 회부되었는데, 그 중 강정마을이 아시아 대표 사례로 소개됐다.
 
강정마을 외에도 콩고민주공화국 농민 토지에 대한 강제 침탈, 프랑스 칼레에서 벌어진 이민자 강제퇴거, 브라질 홈리스들에 대한 잔인한 공격, 미국 디트로이트 공공요금 인상과 홈리스에 대한 위협, 이스라엘 정부의 베두인족 주거지 파괴와 주거 제한, 에콰도르 대지진 피해 이후 상황 등 다양한 사례들이 소개됐다. 퇴거 대상과 이유는 조금씩 달랐지만, 도시개발의 피해자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참가자들은 각 사례를 경청하고, 질문하고, 지지와 연대의 메시지를 보냈다.
 
강제퇴거법정이 끝난 후, 에콰도르 중앙대학에서 해비타트III 본회의장으로 향하는 행진이 이어졌다.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작금의 퇴거 위협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20년 전에는 풍물소리가 울렸었다고 했는데, 이번엔 남미권 국가들이 많이 참석하면서 라틴리듬이 길놀이를 선도했다. 다양한 구호 속에서 우리도 강정마을 활동가들과 함께 “No! Naval base!"를 외쳤다.
 
대로에 나가자 한국과 마찬가지로 에콰도르 경찰들이 행진 행렬을 막아섰다.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총으로 무장한 경찰들과 대치하는 것은 조금 무서웠다. 하지만 행진 참가자들은 길이 막히면 또 다른 곳으로 춤을 추고 구호를 외치며 계속해서 흥겹게 행진했다.
 
 

‘스마트시티’의 기만을 폭로하다

이번 해비타트Ⅲ 참가의 가장 큰 성과는 UN 주거권 특별보고관과 한국민간위원회 주거그룹의 면담이었다. 2014년 5월 UN 주거권 특별보고관으로 임명된 레일라니 파르하는 캐나다 NGO ’빈곤 없는 캐나다(Canada Without Poverty)‘ 대표다. 그는 지난 20년 간 빈곤과 홈리스에 대한 활동들을 해 왔다고 한다.
 
면담을 통해 우리는 그간 한국 정부가 주거권 향상을 위해 이행한 것이 거의 없으며, 이로 인해 홈리스 등 복지 사각지대와 송파 세 모녀, 용산참사, 강제퇴거, 청년 주거, 세입자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또, 정부가 해비타트Ⅲ 참가를 통해 ‘스마트시티 사업’ 홍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파르하 씨는 2017년 꼭 한국에 방문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주거권 특별보고관이 한국에 방문한다면 한국의 주거권 현실에 대해 더욱 더 낱낱이 밝힐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의 용산 볼라뇨스

10월 19일 오후, 민중포럼 참가자들은 키토시 개발 정책으로 인해 쫓겨날 위험에 처해있는 볼라뇨스 마을을 방문했다. 이 마을은 오래 전부터 원주민들이 정착해 살아온 곳으로, 키토 시장이 도로와 교량을 놓는 개발사업을 예고하고 있다. 한 지역 활동가는 이런 개발은 시장이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미 마을 위쪽은 도로가 들어섰고, 마을에서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던 땅이 사라져버렸다. 지금은 주민들의 주거 공간에도 퇴거 명령을 내리고 있다.
 
현재 볼라뇨스 마을에서는 거주자 117가구가 뭉쳐 싸우고 있다. 퇴거에 대한 저항이 강해지자 키토시 정부는 퇴거 사유를 바꿔버렸다. 지반이 약해 지진 시 위험하니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퇴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이곳은 지진이 났을 때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정말 위험하다면 왜 이곳에 도로와 교량을 놓으려는지 모르겠다”며 반대 의견을 표했다. 또한 시정부는 대중교통 확충을 위한 개발이라 말하고 있으나, 주민들은 오히려 ‘터널이 들어서면서 모든 대중교통이 끊겼다’며 분개했다.
 
 
마을 어린이들은 “우리는 이곳에서 태어났고, 우리의 방식으로 살고 싶습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주민들이 바라는 건 보상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존중인 것이다. 이들은 매주 집회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생명평화 기원 100배

해비타트Ⅲ 폐막 행사에서 민중사회포럼 참가자들은 행사장 앞 집회와 행진을 기획했었다. 하지만 경찰의 제지로 시도할 수 없었다. 이에 강정마을 활동가들과 한국민간위원회는 공식 행사장 내에서 ‘생명평화 100배’ 직접행동을 진행했다. 민간위원회에서는 세월호 참사와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추모하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의미를 담아 노란 옷을 입고 검은 풍선을 참가자들에게 나눠주었다.
 
에콰도르 경찰들은 지속적으로 100배 행동 중단을 요청하고, 노란 옷을 입은 이들이 행사장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하지만 우리는 해외 참가자들의 관심과 지지, 언론 취재 열기 속에 100배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생명평화와 모두를 위한 도시를 염원하는 ‘생명평화 100배’야말로 해비타트의 본래 목적에 맞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지속적인 연대를

한국 정부는 1996년 해비타트Ⅱ 이후 20년 간 해비타트Ⅱ에서 채택한 ‘모두를 위한 적절한 주거’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이번 해비타트Ⅲ에서도 정부는 온통 ‘스마트시티’시장에 대한 관심 뿐 포용도시에 대한 계획은 텅 비어 있었다. 이대로라면 20년 후 열릴 해비타트Ⅳ에서도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가장 시급한 것은 해비타트Ⅲ를 계기로 모인 주거권 운동 조직들이 지속적인 연대를 이어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공동의 요구안을 만들고, 해비타트Ⅱ의 ‘모두를 위한 적절한 주거’, 해비타트Ⅲ의 ‘도시에 대한 권리’에 대한 정부의 이행을 감시하고 투쟁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 주거권을 말하는 단체들은 지속적으로 연대체를 구성해왔다. 그러나 최근엔 연대가 느슨해진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비타트Ⅲ에서의 실천은 한국 주거권 운동이 다시 뭉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연대의 끈을 놓지 말고, 함께 만들어 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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