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세계
- 2015/08 제7호
건설노동자 피로 물든 국제스포츠대회, 남의 일이 아니다
평창올림픽 건설현장에 페어플레이를!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벌어지는 비극
지난 5월 29일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FIFA 총회가 열렸다. 총회의 관심사는 이미 네 번 사무총장에 연임한 제프 블라터가 FIFA 사무국의 각종 비리 추문에도 불구하고 5선이 가능할 것인가 여부에 쏠려 있었다. 그 며칠 전에는 미국 FBI가 FIFA 고위급 임원 6명을 긴급 체포한 일도 있었다. 결국 제프 블라터는 다섯 번째 선거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비리 추문에 휩싸이게 됐다.
그날 총회가 열린 취리히 할레스타디온 밖에서는 비록 블라터 재선만큼 언론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의미 있는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총회장 앞 공터에서 세계 각국의 노동조합 활동가 100여 명은 준비해온 나무 십자가를 머리맡에 두고 흰 천을 뒤집어쓰고 가만히 누웠다. 이 퍼포먼스는 카타르에서 월드컵 경기장이나 부대시설, 고속도로, 사회 기반시설 등을 건설하다 목숨을 잃은 1400여 명의 이주노동자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변변한 스포츠 시설 하나 없는 카타르에서 월드컵을 치르기 위해서는 3개 경기장 보수, 9개의 경기장 신축 등 각종 건물과 시설을 건설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일하는 이주노동자가 14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주로 네팔, 스리랑카, 인도 등 서남아시아 출신으로 한낮이면 기온이 40도를 넘는 카타르에서 가운데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
카타르의 고유한 이주 제도는 이주노동자들을 극악한 착취로 내몬다. 카타르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은 ‘카팔라’라고 불리는 보증인 제도에 따라 채용된다. 즉 이주노동자로 카타르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카타르인 사용자의 보증이 필요하다. 자신을 고용하는 사용자가 보증인이 되어 체류기간동안 해당 노동자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는 셈이다. 보증인의 허가가 없으면 사업장을 변경할 수도 없으므로, 이주노동자들은 임금체불, 산업재해, 비인격적 대우를 감내할 수밖에 없다.
앞서 1400여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고는 했지만 카타르 정부의 공식 통계에는 월드컵 경기장 건설과 관련되어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는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되어 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작업 현장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라 고온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심장마비 등으로 명을 달리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망자 수 역시 네팔이나 인도 같은 출신국에 송환되는 시신의 작업장과 사인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을 뿐이다. 카타르에 몇 차례 조사단을 파견한 국제노총(ITUC)에서는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2022년 월드컵이 개최될 때까지 약 4000명의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피로 물든 소치 동계올림픽
국제 스포츠 대회장의 건설 현장에서 벌어지는 야만은 카타르만의 일이 아니다. 러시아 소치에서 열렸던 2014 동계올림픽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석연찮은 판정으로 러시아 선수 소트니코바에게 금메달을 빼앗긴 김연아보다 먼저 떠올려야 할 것은 경기장을 건설하다 목숨을 잃은 120명(최소 추정치)의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들이다.
소치 동계올림픽 스키장의 하얀 눈은 노동자의 피로 물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러시아는 여러모로 카타르와 판박이다. 역시 동계올림픽 시설물 건설에는 대부분 이주노동자들이 대규모로 동원되었다. 노동자들은 ‘주의하라’는 말이 안전교육의 전부인 현장에서 기본적인 보호 장비도 갖추지 않고 작업하다 목숨을 잃었다. 정부 당국은 사망자 숫자를 집계하지 않고 정보 공개를 거부했다. 대부분 불법적인 인력사무소를 통해서 러시아로 유입된 노동자들이기 때문에 집계가 불확실했을 뿐 아니라 보상도 원활하지 않았다.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경기는 여러 추문에도 불구하고 페어플레이 정신을 바탕으로 한다. 하지만 러시아와 카타르를 보면 선수들이 경기를 하는 바로 그 경기장을 지은 노동자들의 처우는 여러모로 ‘페어(공정한)’와는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소치에서 평창으로
우리 모두 알고 있다시피, 동계올림픽의 다음 개최지는 바로 강원도 평창이다. 한국의 건설현장도 카타르나 러시아와 마찬가지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안전규정은 무시되기 일쑤고, 법적 보호 장치는 인력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겐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중요한 사실은 앞서 소개한 두 나라의 건설현장에는 노동조합이 없었다는 것이다. 카타르에서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조합 결성 자체가 금지되어 있고, 러시아에서도 조직된 건설노조는 현장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 그중에서도 강원도 지역에는 덤프나 굴삭기, 타워크레인 등을 조종하는 건설기계노동자와 전기공사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존재한다. 목수나 철근공 같은 건설 일용 노동자들의 조직은 아직 없지만 말이다. 본격적으로 경기장 공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금 건설노동조합에서는 강원도 평창 지역에서 경기장을 건설할 일용직 노동자를 조직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동계올림픽은 한번에 그칠 이벤트지만 노동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사가 끝나고 모래알 같이 흩어지는 게 아니라 노동조합으로 남아 집단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전 국민적인 관심이 집중되는 이번 이벤트를 계기로 단단한 조직을 확보해 나갈 기회를 찾아보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