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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평등
  • 2017/11 제34호

빈곤과 불평등에 맞선 도시빈민의 행진

  • 정성철
 
 
10월 17일은 국제연합(UN)에서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날’이다. 한국에서는 유니세프(UNICEF) 같은 국제 구호기구, 사회복지재단들이 빈곤퇴치의 날의 이름을 빌려 일상적으로 해오던 모금을 더 크게 홍보한다. 모금을 요청하는 홍보물에는 가난한 아이들과 노인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경로로 현재의 빈곤에 처하게 됐는지는 어디서도 알려주지 않는다.

세계 빈곤퇴치의 날이 제정된지 25년이 지났다. 하지만 빈곤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극심한 모순이며, 불평등한 현실은 그 자체로 빈곤의 원인이다. 빈곤사회연대는 2005년부터 ‘1017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원회’를 꾸려 10월 17일을 ‘빈곤퇴치의 날’이 아닌 ‘빈곤철폐의 날’로 선포하고 투쟁해 왔다. 빈곤은 한시적인 구호나 원조에 의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과 빈곤을 심화시키는 사회 구조에 맞서 가난한 이들이 함께 연대하고 싸울 때 없앨 수 있다는 것이 1017 빈곤철폐의 날 투쟁의 취지다.
 

도시 빈곤과 불평등

올해 1017 빈곤철폐의 날 슬로건은 ‘도시의 빈곤과 불평등을 고발한다!’였다. 고층의 유리빌딩과 주상복합 아파트가 즐비하고, 그럴듯하게 정비된 공원과 강과 천이 흐르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도시는 세련되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버리고 탄압하며 만들어졌다. 세련되지 못하다 여겨진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가게를, 마차를, 삶을 빼앗기며 주변부로 밀려나고 가난해졌다.

서울시의 도시재생사업으로 재탄생한 서울로 7017 고가 공원을 만드는 과정에서 서울역 홈리스들은 복지 상담이라는 이름으로 시설 입소를 권유받았다. 사실상 강요나 다름없었다. 사람길로 탈바꿈한 ‘서울로 7017 고가공원 이용조례’에는 홈리스를 철저히 배제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7017 고가공원의 여파는 근처 노점상인들에게도 미쳤다. 공원 방문객들의 통행 불편을 줄이겠다며 남대문 일대와 명동 등 노점 매대 크기를 축소하고, 노점 위치를 옮기게 했다. 명동 롯데백화점 앞 13여 명의 노점상에게는 200여 명의 용역깡패를 동원한 폭력도 서슴지 않았다. 거리 홈리스와 노점상을 밀어내기 위한 폭력은 아코르앰베서더호텔이 들어 선 용산역에서도 일어났다. 마포구는 글로벌 관광도시 조성을 목표로 외국인 관광객 1000만 시대를 준비하겠다며 개발사업 승인을 남발했다. 신수동·공덕동·대흥동·염리동·아현동에서 살던 원주민들은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대책 없이 집에서 가게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됐다.
 

평등한 ‘1평’의 땅

올해 1017 빈곤철폐의 날의 시작은 10월 첫째주 월요일 ‘주거의 날’을 맞아 주거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알리는 ‘한 평 괴담’ 플래시몹으로 시작했다. 한국에서 14년째 개별 공시지가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네이처 리퍼블릭 명동점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최저임금 6470원’, ‘하루 8시간’, ‘5467일’, ‘쉬지 않고 15년’, ‘2억8천3백’, ‘여기 한 평’ 이라는 문구가 쓰인 망토를 각각 두르고 명동 거리를 배회했고, 망토를 바닥에 깔고 누웠다. 망토 안쪽엔 한 평 넓이의 고시원 도면이 그려져 있었다. 도면 속 침대에 눕고 책을 읽는 등 행동을 취하다 다시 망토를 두르고 일렬로 모였다. 명동을 지나는 시민들이 발걸음을 멈춰 서 사진을 찍었다. ‘공시지가 아닌 실거래가로 하면 2억이 아니라 몇 십억은 될 거다’고 훈수 두는 사람도 있었다. ‘20 대 80’을 이야기 하던 사회가 어느새 ‘1 대 99’를 외치고 있다. 99퍼센트 모두가 빈곤을 경험하고 있진 않지만 무한경쟁과 성공만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언제든 탈락의 두려움을 안고 달리는 우리는 ‘99’가 맞을지 모른다. 그 중심에서 탈락 없는 ‘평등한 한 평’을 외쳤다. 그리고 함께 요구함으로서 그 평등한 한 평을 한 평 한 평 넓혀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빈곤철폐의 날 퍼레이드

10월 14일 토요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광장에서 빈곤철폐의 날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2014년 시작해 4년째 진행되는 퍼레이드는 이제 자리를 잡았다. 참여하는 이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요구를 알리는 다양한 선전물을 제작해왔다. 올해는 11가지 투쟁요구를 내걸고 함께 외치며 걸었다. 매년 투쟁 요구의 양과 내용은 다양해지고 있다. 그만큼 빈곤과 불평등은 우리 삶의 도처에 숨어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2017년 오늘, 절대 빈곤만이 철폐되어야할 문제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기초적인 생계 문제는 사회구조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일터에서 착취당하거나 건물주에 의해 장사할 가게에서 쫓겨나면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장애의 유무나 생김새, 성별이나 성적지향 등으로 차별 당하는 순간 가난에 가까워질 수 있다. 더욱이 사회복지나 의료를 비롯한 공공부문의 공공성이 약화된 한국사회에서 한 번의 추락은 영원한 탈락을 의미한다.

빈곤철폐의 날 11가지 요구는 누구도 안전한 삶을 장담할 수 없는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존엄을 존중해달라는, 안전한 삶을 함께 만들어가자는 외침이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광장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 퍼레이드를 진행하고, 짧은 투쟁대회를 끝으로 빈곤철폐의 날 퍼레이드를 마쳤다.
 

2017년 빈곤철폐의 날 투쟁요구

 

집에서, 거리에서, 가게에서 쫓겨나지 않는 세상!
부양의무자기준, 장애등급제, 장애인수용시설 완전폐지!
노점상 강제철거·노점관리대책 중단, 용역깡패예산 전면삭감!
선대책 후철거, 순환식개발 시행!
홈리스에 대한 분리와 배제 중단!
누구나 건강할 권리! 가난한 이들의 건강보험 체납 해결!
사회복지 공공인프라 확대! 사회서비스 공공성 강화!
과로사, 초과노동, 임금격차 OUT!
공공주택확충! 전월세 상한제 도입!
누구도 배제하지 말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허울뿐인 복지, 빈곤사각지대 방치하는 복지제도 개선!

 

 
가난한 노동자, 쫓겨나는 임차상인, 과거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빈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조금이라도 덜 세련된 사람들이 꾸려가는 삶의 안전망은 후 순위로 계속해서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빈곤철폐의 날 투쟁은 빈곤이라는 위기에 처한 더 많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연대를 넓혀 나가고 있다. 이는 또한 자신의 빈곤을 밖으로 꺼내 이야기하며 함께 싸움을 시작할 것을 알리는 신호다.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원회 이름의 투쟁은 끝났지만, 우리는 11가지의 요구를 새기고 각자의 일상과 투쟁 현장에서 함께 싸우고 있다. 조금은 더딜지도 모르지만 곪아버린 고름을 하나하나 짜내며 투쟁할 것이다. 모두를 위한 빈곤철폐 투쟁에 함께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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