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평등
- 2014/12 창간준비2호
빈곤사회연대 10년, 가난한 이들의 네버엔딩스토리
반빈곤운동 돌아보기, 내다보기 1
2001년 12월 여성이자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 노점상이며 싱글맘이기도 했던 최옥란이 명동성당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그녀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그녀가 받는 최저생계비는 너무 낮아 수급비가 나오기 전까지 “천장만 바라보고 누워있는” 하루하루가 고달프다고 했다. 얼마의 생계비라도 보충해볼까 노점상으로 거리에 나서면 “수급을 받던지 노점상을 하던지 둘 중 하나만 하라”는 동사무소 직원의 전화를 받아야 했다. 2000년 10월 시행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불과 일 년 만에 그녀를 아스팔트로 내몰았다.
빈곤사회연대는 최옥란 열사의 명동성당 농성을 계기로 결성된 ‘기초법연석회의’에서 시작됐다. 이후 노동의 불안정화, 민중의 빈곤화에 맞서 광범위한 도시빈민의 연대를 모색하기 위해 2004년 빈곤사회연대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된 지 14년, 빈곤사회연대가 결성된 지 10년 만인 올해 기초생활보장법은 가장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이른바 ‘세모녀법’ 이라고 불리는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이 2014년 11월 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것이다.
“죄송합니다,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입니다”
2014년 2월 마지막 월세와 공과금 70만 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송파 세모녀의 죽음은 우리 사회에 강렬한 슬픔을 안겼다. 그들이 죽음을 선택하기 전 식당에서 일하던 어머니와 고혈압과 당뇨에 시달리는 첫째 딸, 만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그보다 일찍 신용불량자가 된 둘째 딸에게 도움이 되는 복지는 없었다. 건강보험도, 산재보험도, 실업급여도 그들에게는 무용했다. 그들은 마지막 사회안전망이라는 기초생활보장제도조차 신청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청했다 할지라도 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연약한 우리 사회의 복지제도가 그보다 더 연약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공약으로 걸었다. 그 내용은 개별급여 시행, 상대적 빈곤선 도입, 부양의무자기준 완화 등 사회단체의 요구를 상당히 수용한 것들이었다. 2013년 5월 새누리당 의원 10명은 정부를 대신해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슬로건은 수용, 내용은 불용
사실 이번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2010년에 나온 것이다. 당시 정부는 기초법 등 제반 빈곤정책 개선을 위해 ‘빈곤정책제도개선기획단’을 운영했고, 빈곤사회연대는 이 내용에 대한 비판을 시작으로 기초법 개정에 맞선 싸움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법안 발의 후 개정안의 실체는 점차 명확해졌다. 슬로건은 수용했지만 내용은 수용하지 않은 ‘개악’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 선정 기준은 소득인정액과 부양의무자기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 미만이고, 부양의무자기준에 결격이 없을 시 기초생활수급자로 급여를 보장받을 수 있다. 현행 최저생계비는 1인 가구 60만3천 원, 보장받을 수 있는 최대 현금 급여는 48만8천 원이다. 60만3천 원 이상의 소득이 발생할 시에는 수급자격을 박탈당하고, 그 이하의 소득이 있을 경우에도 최대 현금급여에서 소득만큼을 제외하고 급여를 받도록 설계되어 있다. 정부는 이를 두고 '전부 혹은 전무(all or nothing)'라며 최저생계비를 조금만 넘어도 급여 박탈이 일어나는 상황과 이 때문에 탈수급을 기피하는 현상을 지적했다. ‘개별급여’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진단이었지만 결론은 매우 이상했다. 수급자와 비수급빈곤층에게 가장 절실한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의 선정기준과 보장수준은 기존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악화됐기 때문이다. 교육급여를 제외한 개별급여는 차상위계층도 포괄하지 못하는 수준으로 설정되었다. 비수급 빈곤층의 가장 긴급한 욕구인 의료급여의 선정기준은 제자리에 있으며, 오히려 나빠질 전망이다. 송파 세모녀는 한 달 150만 원의 소득에 50만 원의 월세를 지출하던 ‘주거빈곤층’이었지만 3인 가구 기준 141만 원이 될 개정 주거급여는 송파 세모녀를 지원하지 않는다.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핵심 개념인 ‘최저생계비’가 무력해지고 주거급여는 국토교통부, 교육급여는 교육부로 주무부처가 이관되고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던 자활사업 대부분은 고용노동부로 넘어가는 등 제도 운영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점이다. 이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최저생계비를 ‘권리’로서 보장하는, 사회권을 명시한 공공부조였다는 것을 고려할 때 명백한 후퇴다.
공공부조의 영역 축소, 예산 절감
이번 개악의 근본 목표로 볼 수 있는 것은 공공부조 영역의 축소와 예산절감이다. 정부는 빈곤정책 확대를 위해 많은 재정을 투여하는 것처럼 선전하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지난 9월 확정된 2015년 예산안 중 기초생활보장제도에 관한 항목을 보면 정부는 2014년에 비해 7.9퍼센트나 삭감된 예산을 편성했다. 보건복지부가 아닌 타 부처로 이관될 사업(6987억 원)을 고려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를 제외하더라도 2014년보다 전체 규모가 줄었다. 최저생계비 2.3퍼센트 인상을 고려할 때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면서 예산은 축소하는 정부의 결정은 의아할 따름이다.
이번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은 향후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에 대한 급여를 최대한 축소하는 데에 초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에서 진행하던 자활사업 대부분은 고용노동부로 이관된다. 이미 자활사업 참여 대상자는 고용노동부 산하 고용센터에 우선 의뢰되는 상황이다. 사실상 시장취업능력이 떨어지는 빈곤층이 근로능력이 있다는 평가만으로 수급조차 받지 못하거나, 추정소득만큼 삭감된 수급비만으로 살아가거나, 몸과 정신을 혹사하며 무리한 노동에 내몰리고 있다. 일을 강제하지 않으면 복지에 안주한다는, 빈곤층에 대한 낙인적 인식의 결과다.
복지수급자에 대한 공격
어떤 점에서 이런 변화는 매우 일관성이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첫 국무회의는 ‘경범죄 처벌법’을 통과시켜 구걸자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법안을 의결했다. 지난해 말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주문하며 그 1호 과제로 ‘부정수급 근절’을 들었고, 17개 부처는 합동으로 ‘부정수급 통합 콜센터’를 설치했다. 임대아파트와 쪽방에서는 주민들이 서로 신고하는 일이 횡횡했고, 전국 곳곳에서 수급자와 장애인 복지제도 이용자에 대한 경찰의 개인정보 요구가 판을 쳤다.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탈락 후 자살한 거제 이 씨 할머니도, 송파세모녀의 상황도 정부의 부정수급 프레임 안에서는 제도 개선 과제가 되지 못한다. ‘받아야 할 사람들이 못 받는 것은 부정수급자들 때문’ 이기 때문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조건부수급(근로능력이 있다고 판정된 수급자에 대해 자활사업에 참여할 것을 조건으로 급여를 보장하는 것) 조항은 사실상 강제노동 규정으로 기능하며 수급권을 제한해왔으나 정부가 향후 강화해 나갈 ‘노동 강제’에 비교하자면 예고편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거대한 빈곤 사각지대에 대한 우선 지원 대신 기존 수급자에 대한 채찍을 들었다.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로 ‘빈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자
2010년 가을, ‘나 때문에 아들이 못 받는 것이 있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애 아동의 가난한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떠나고 나면 동사무소 분들이 아들에게 잘 해주시길 바란다고 청했다. 일용직 건설노동자였던 그에게 아들의 장애는 너무 비싼 아픔이었다. 자기 월급 때문에 어머니의 수급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빈곤사회연대로 전화한 여성은 얘기했다. “방법은 세 가지 인 것 같아요. 제가 이민을 가든, 치매 어머니와 어떻게든 살다 굶어죽든, 아니면 제가 먼저 죽든.”
살기 위해 죽음을 떠올리는 사람이 없기를 기도하던 최옥란 열사가 세상을 떠난 지 12년이 지났다. 여전히 빈곤층이 세상을 떠나는 지금 우리는 광화문에서 2년 넘게 농성을 하고 있다. 광화문 역사 안,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농성이 그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누구나 가난에 빠질 수 있다’는 IMF의 경험과 각성을 통해 만들어진 제도다. 우리나라의 상대빈곤율(중위소득 50퍼센트 이하)은 14퍼센트, 절대빈곤율(최저생계비 이하)은 7.6퍼센트다. 수급을 받는 2.6퍼센트를 제외한 빈곤층이 사실상 무복지 상태에 놓여있다. 시간 축을 조금 더 넓혀보자. 2005년부터 2009년 사이 최저생계비 이하 소득을 경험해 본 가구는 전체 가구의 24퍼센트다. 네 가구 중 한 가구는 최소 5년 중 한 번 절대빈곤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짙게 침체된 7.6퍼센트 가량의 절대빈곤층을 방치한다면 우리사회의 불안정한 계층, 4분의 1에 육박하는 이들에게 더 큰 절망은 예정되어 있다.
부양의무자기준 때문에 수급권조차 받지 못하는 빈곤층은 117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117만 명은 사실 사각지대가 아니다. 제도가 만들어질 때부터 예정되어 있던, 지금도 예산만 편성하면 바로 빈곤정책 내부로 끌어당길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사각지대에 남겨놓고 있는 것 자체가 우리 사회의 빈곤층에 대한 무관심, 방치를 의미한다.
기초생활보장제도 15년만의 가장 큰 개정에도 부양의무자기준은 폐지되지 않았다. 교육급여에서 부양의무자기준이 폐지되는 성과가 있었으나 비수급빈곤층과 수급빈곤층에게 가장 중요한 생계, 주거, 의료급여에서 이 기준은 건재하다. 정부는 여전히 사적 부양의 책임을 강조하는 사회가 훌륭한 사회라고 강변하고 있다. 더 이상 가난한 이들의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면,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요구하자. 빈곤사회연대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와 가난한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연대의 큰 길을 만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