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7/05 제28호

빈곤의 늪에 빠진 노년

  • 김윤영

노인이 되기를 기다리는 노인

아직 바람이 쌀쌀하던 3월, 한 남성을 만났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허리가 약간 굽은 그는 이가 듬성듬성해 한 눈에도 건강이 좋지 않아 보였다. 몸이 아파 입원과 수술을 반복하다 가산을 잃고 노숙을 전전했다고 한다. 그때 당시 그의 나이 50세. 방을 구한 뒤에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고, 몸이 약한 그는 ‘근로능력 미약자’로 분류되어 공공근로에 참여했다. 공원을 청소하며 수급을 받았다.

그렇게 십여 년을 살다 최근 이사를 했다. 옆 동네로 이사했을 뿐이지만 행정구역상 거주 구가 달라졌다. 문제는 전에 살던 A구에는 공공근로가 있었지만, 이사한 B구에는 일자리가 없었던 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지자체들이 공공근로 일자리를 부지런히 없앴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고용센터의 ‘취업성공패키지’와 지역자활센터의 취업교육, 근로의욕 고취를 위한 강의를 듣다가 수급권을 빼앗겼다. 교육기간이 지나갔는데도 취업하지 않았으니 ‘조건 불이행’이라는 게 이유였다. 아무리 남들이 윽박질러도 수십 년간 병원에 있거나, 노숙을 하거나, 청소만 했던 그가 3개월의 교육으로 갑자기 집수리를 할 수는 없었다. 성치 않은 몸으로 세차니 쌀 배달을 하는 것도 두려웠던 그는 차라리 복지를 포기했다.

지금 그의 나이는 63세다. 그는 직업이 계속 구해지지 않으면 2년 정도는 서울역에서 적당히 뭉개야하지 않겠냐고 말하며 그래도 가족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씁쓸히 웃었다. 서울역에 가족들을 데려올 수도 없고, 65세가 되어도 부양의무자가 돈을 벌면 말짱 황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노인’이 되기를 기다리는 ‘노인’이다.
 
장편 애니메이션 <서울역>
 

노인 빈곤의 현실

노인 빈곤은 명실상부하게 심각한 사회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2015년 기준 44.7퍼센트로 절반에 육박한다. 이 수치는 한국과 비슷한 경제 규모나 복지제도를 갖고 있는 일본과 비교해 봐도 두 배에 이른다. 복지 선진국인 유럽의 경우, 프랑스 3퍼센트, 네덜란드 2퍼센트 등 한 자릿수 노인 빈곤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배신감마저 든다. 한국에서는 나이가 드는 것만으로 절반의 확률로 가난에 빠지게 되는 셈이다.

노인은 왜 가난해지는가? 16퍼센트에 불과한 낮은 공적 연금 수급률과 낮은 소득대체율이 주요 원인이다. 20만원의 기초연금을 대부분의 노인들에게 지급하며 노인 빈곤율이 다소 낮아졌다고 하지만 소득이 한 푼도 없는 노인에게 20만원은 긴급한 생계를 며칠 해결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효도법(불효자방지법)’을 제정해서라도 악화된 가족부양을 복구하자는 입장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의 가족은 변화하고 있다. 1인가구가 520만 가구로 27.2퍼센트, 2인가구가 499만 가구로 26.1퍼센트로 이미 1~2인 가구가 절반을 차지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 가족부양 강화를 강조하는 것은 이미 시효가 만료된 공염불일 뿐이다.

가족부양을 전제로 한 노후부양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재정의가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노인 빈곤 해결을 위해 가족 안으로 노인을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노후의 독립된 생활을 위한 세대와 성별 간 더 평등한 가족관계다. 이런 관점에서 노인 빈곤 해결의 방향은 ‘노후의 독립된 경제생활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노인 빈곤 담론이 감추는 것

현재 노인 빈곤의 담론은 ‘구시대의 가치에 따라 부모세대를 봉양하고,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준 노인 세대’를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노인 세대의 절반이 가난하다. 장애인이 있는 가구의 3분의 1이 가난하다. 즉 노동소득이 중단되는 순간, 누군가의 조력이 필요한 순간 사람들은 가난을 피하기 어렵다. 이것은 노동소득이 중단된 이후 소득을 보충할 수 있는 복지의 부족이자, 환자와 장애인 등 의료와 복지가 필요한 사람을 개인과 가족 소득에 기대도록 방치하는 것의 문제다.

이것은 정말 노인만의 문제인가? 고독사는 노인 빈곤 시대에 중요한 사회문제로 조명되지만 실제 고독사의 가장 높은 비율은 50대 남성 1인 가구에서 나타난다. 얼마 전 영등포구에서 홀로 죽어간 50대 남성은 월세와 가스비 등이 체납된 ‘위기 가구’였지만 노인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특별 관리대상으로 지정되지도 않았다. 국가는 위기 요인들을 합산해 대상자를 순차적으로 관리하는데, 그는 노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점수가 부족했다.

노인 빈곤이 심각한 현실에서, 노인들이 겪는 빈곤과 다르지 않은 상황을 겪는 이들이 사각지대에 빠지는 난제에 우리는 봉착해 있다.
 
 

노인연령 상향은 허구

박근혜 정부는 모든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두 배 올린다는 공약을 앞세워 당선됐다. 하지만 뒤에서는 대한노인협회와 손잡고 노인연령을 상향하자는 주장을 지속했다. 65세가 아니라 70세를 노인으로 규정해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을 5년 줄이려고 했다. 그러면 앞서 본 63세 노인은 근로능력이 없는 연령에 접어들기 위해 2년이 아니라 7년을 각오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박근혜 정부가 몇 년 더 갔다면 이 일은 실제로 일어났을 것이다.

정부는 ‘65세도 충분히 건강하다’, ‘요즘 환갑잔치는 쑥쓰러워서 못한다’는 둥 누가 봐도 중산층 이상 노인들에게 해당하는 주장을 펼쳤다. 이미 50대부터 직장을 잃고, 젊은이들에 밀려 일반 시장 취업은 엄두도 내지 못하며, 경력은 단절되고, 노인 일자리나 복지에 접근도 못하고 있는 저소득층 장년들의 이야기는 정책의 대상조차 되지 않았다. 이미 조로한 50대와 60대 초반 빈곤층 ‘노인’들에게 ‘노인 연령 상향’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정년 연장이나 ‘인생은 60부터’같은 노인 예찬일리 없다.

정부가 노인을 일하게 해서 빈곤을 해결(?)하는 것과 노인에게 복지를 제공해 빈곤을 해결하는 것 사이에서 준동하는 사이, 65세 이상 노인의 절반이 겪는 빈곤의 늪은 깊을 대로 깊어졌다. ‘세대’로 호명조차 되지 않고 있는 준노인세대의 가난은 가장 어두운 사각지대에 갇혀버렸다. 여전히 정부는 이 문제를 개인화하기 급급하다.
 

독립적이고 지속가능한 늙음을 위하여

노인을 한 가정의 부모로만 여기는 것은 부적절하다. 노인들은 부모일 수도, 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평생을 노동하며 살아온 사회의 구성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나이가 들어 노동하며 스스로를 부양하기 어려운 시기가 왔을 때, 그들에 대한 책임은 사회 전체에 있다. 노인 부양의 책임을 자식들의 효도로 환원하는 순간, 노인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 축소될 뿐이다. 평생을 사회에 공헌한 세대가 그 공로를 인정받고 존엄을 유지하며 생활할 수 있도록, 사회와 공동체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 이는 곧 우리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빈곤을 개인의 곤란으로 치부하는 태도야말로 빈곤문제 해결을 가장 어렵게 만든다. 보다 면밀히 현실을 살펴야 한다. 폐지를 줍는 노인이 도시의 배경이 된 현실이 얼마나 야만적인 일인지 깊이 자각해야 한다.
또, 노인의 범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정책 대상조차 되지 않는 준노인세대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침묵하게 하는지 역시 돌아봐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노인이 되는 누구나 절반의 확률로 가난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바꾸지 않은 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덧붙이는 말

김윤영 |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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