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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5 제28호

촛불 이후 정치위기 담론, 실체는 무엇인가

촛불 이후 신간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와 《양손잡이 민주주의》

  • 김태훈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는 사회과학 분야 서적 판매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촛불 초기인 2016년 연말엔 김제동, 2017년 초에는 문재인과 유시민의 책이 눈에 많이 띄었다. 

교보문고 정치사회분야 월간 베스트셀러에 따르면 지난 12월에는 『지금 다시, 헌법』(차병직)이 1위, 『오만과 무능 - 굿바이 박의 나라』(전여옥)가 2위에 올랐다. 올해 1월에는 『대한민국이 묻는다 –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문재인)가 1위, 『이재명, 대한민국 혁명하라』(이재명)가 8위로 순위권에 들어왔다. 2월에는 문재인의 책이 1위를 유지한 가운데, 『탄핵을 탄핵한다』(김평우)가 2위에 올랐다. 판매량만 봐도 지난 몇 개월의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광장에 나온 박근혜 퇴진 촛불은 우리 스스로에게 “이게 나라냐”는 물음을 던졌다. 촛불 이후에 나오는 책들은 여기에 일정한 답을 하려는 시도가 많다. 비록 베스트셀러는 아니었지만, 비교적 일관적으로 지향을 분명히 드러내는 책 2권을 살펴봤다.

 

합리적 보수의 새로운 기준?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는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와 이원재 여시재 기획이사의 대담집이다. 이헌재는 1970~1980년대 재무부와 기업, 대학을 거쳐 김대중 정부에서 금융감독위원장, 재경부 장관을, 노무현 정부에서 다시 경제부총리를 역임했다. 최근에는 민간 싱크탱크 여시재의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여시재는 이광재, 안대희, 홍석현 등의 인사들이 참가하고 있는 민간 싱크탱크다. 안희정-이명박 커넥션의 배후라는 소문이 돌아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헌재는 “좌냐 우냐, 어느 쪽에서 주장하는 내용이냐”를 따지지 않겠다고 표방한다. 그는 한국사회 적폐의 뿌리가 박정희 시대의 ‘렌트 배분’, 즉 정부의 인허가권에 있다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 정부가 재벌에 특혜를 주고 키웠다는 것이다. 이원재는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1단계)를 계기로 재벌이 본격적으로 성장했고,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장개방을 통한 국제 경쟁 노출(2단계)을 거치면서 소수 재벌 대기업과 나머지 취약한 경제주체들로 양극화가 이뤄졌다고 설명한다. 그는 2단계에서 재벌의 경쟁력이 강화되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부각한다. 삼성전자 대리가 전무에게 “전무님 말씀대로 하면 돈이 안 됩니다”라고 따졌던 사례를 들며, 이러한 재벌 중심 경제의 진화가 이명박 초기까지 이뤄지다가 박근혜에 와서 다시 독재와 관치로 퇴행했다고 평가한다. 재벌이 경영권 승계에 집착하고, 그것이 가능한 이유도 경영능력보다 정부를 통한 지대 추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관치경제와 인허가권이라는 나쁜 규제를 없애고, “특정 산업이나 기업을 육성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산업에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주장한다. 새로운 경제주체가 원활하게 진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 걸 핵심이라 본다.

나아가 그는 영세소상공업자, 정규직의 “작은 기득권”이 변화를 막는 원인이라고 강조한다. 정규직과 ‘노동자성’이라는 ‘기득권’(?)에서 벗어나는 대신에 공공임대주택을 도입해 주거비를 줄이고, 입시경쟁을 없애 교육비를 줄이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자고 제안한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의 허망함

이들이 제시하는 정책들이야말로 본래적 의미의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가깝다. ‘좌우’의 합의(워싱턴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1990년대에 세계적 표준(글로벌 스탠더드)으로 확립된 클린턴 민주당이나 블레어 노동당의 신자유주의 말이다. 그것은 대처와 레이건으로 상징되는 시장근본주의적 신보수주의와 구분된다.

한국과 같은 반주변부 국가들에서는 경제위기에 대응한 구조조정이라는 형태로 신자유주의 개혁이 진행되었다. 정부는 국제 경쟁력, 시장과 정부의 민주화와 기득권 타파, 합리성과 효율성과 같은 구호를 앞세워 초민족적 법인자본의 금융적 축적에 조응하는 경제정책과 사회정책들을 도입했다. 그 결과가 오늘날의 적폐라 할 수 있는 불평등·불공정이다. 그러나 그것이 신자유주의 개혁의 결과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개혁을 충분히 추진하지 못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실제 역사와 현실을 보면 이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이헌재 부총리가 주도한 IMF 구조조정 당시에도 재벌개혁을 외치며 부실계열사 정리 및 매각, 사외이사제 및 소액주주권한 확대 등을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재벌개혁을 말하며 동반성장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재벌과 초민족자본은 성장했다. 이를 뒷받침한 것이 FTA 무역금융자유화, 재벌-수출주도 성장, 서비스시장 개방이었다. 이는 우리의 노동과 기본권을 파괴하는 노동신축화, 공공부문 민영화를 의미했다.

이처럼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은 신자유주의 교리에 대해 반복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개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전혀 담겨있지 않다.
 

민주주의 회복의 계기

신자유주의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비판적 평가의 부재는 보다 진보적인 담론에서도 나타난다. 《양손잡이 민주주의 – 한 손에는 촛불, 다른 손에는 정치를 들다》는 최장집·박상훈 등 ‘정치발전소’ 소속 연구자들의 촛불 이후 정치 개혁에 대한 고민을 담은 무크지다.

박근혜 게이트는 총체적인 사회경제적 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직접적 계기는 대통령의 뇌물수수 혐의 등 좁은 의미의 정치적 사안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87년 헌정체제, 정치제도에 대한 논의가 촉발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 책은 정치개혁 논의에 개입하고 있다.

무크지 성격상 필자들마다 미세하게 다른 결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입법부를 통해 대의제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향후 과제로 설정한다는 공통분모를 가진다. 이번 촛불은 “형식적 제도적으로 민주적이나 비민주적 실천에 압도”된 국가에 대한 분노였기 때문에, 다시 선출된 대표들이 민의를 반영하고 책임성을 가지게 만들면 된다는 주장이다. 최장집 교수는 시위를 통해 박근혜를 퇴진시킨 것이 아니라 탄핵이라는 헌법적 절차를 통해 파면시킨 것은 바람직했다는 평가를 덧붙인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다른 논의와의 쟁점을 보다 명확히 드러낸다. 그가 생각하기에 “국민이 직접 나서야 한다”, “직접민주주의가 대안”, “시민사회가 민주주의의 중심이 되는 새로운 정치”, “개헌을 통해 새로운 공화국”을 건설하자는 주장 등에는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전제되어 있다. 이것은 “‘정부의 역할을 줄이는 대신 민간의 역할을 늘리고, 정치 대신 법치 기능을 확대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정치관을 정당화”하는 효과를 가진다는 점에서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운동으로서 민주주의’만이 아니라, ‘정부(통치 체제)로서 민주주의’라는 인식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 책이 “양손잡이 민주주의”라는 제목을 가진 이유다.
 
 

해석의 한정을 경계해야

박상훈의 주장처럼 직접 민주주의와 부당 대립시켜 대의제를 부정하는 방식의 주장은 적절하지 못하다. 프랑스 혁명에서 ‘노동자계급 최초의 정치형태’가 출현했던 파리코뮌(1871년 3월 18일 ~ 5월 28일 사이 파리에서 민중들이 처음으로 세운 사회주의 자치정부)에서도 선출제는 존재했었다. 따라서 굳이 부당대립시키지 않더라도 정치 개혁에 대한 고민은 당연히 필요하다. 대통령의 과도한 권한을 축소하고, 사법부를 개혁하며, 소수정당에게 불리한 현 선거제도도 개혁해야 한다.

그러나 촛불의 의미와 과제를 제도적 민주주의의 복원 혹은 발전이라는 입헌주의적 해석으로 한정하는 것은 한계가 명백하다. 실제 퇴진 촛불의 목소리는 단지 대통령의 파면에 머물지 않았다. 공범자인 재벌 총수들을 처벌하고,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청산하자는 광범위한 요구도 있었다. 이러한 요구는 새로운 정치공동체, 새로운 사회경제구조를 만들기 위한 사회운동의 필요성을 과제로 제출하는 것이었다.

《양손잡이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제도 개혁 및 실천 과제를 테마로 삼는다. 그 때문에 경제사회구조와 정치가 맺는 관계에 대한 해석은 찾기 어렵다. 다만 최장집 교수는 그레그 샤르저(Greg Sharzer)가 좌파 저널 《자코뱅》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 보수를 신자유주의로 해석한 것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신자유주의가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시장의 자율성이라는 측면에서 시장경쟁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긍정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살펴보았듯 신자유주의의 본질은 금융세계화, 재벌-수출주도 성장, 노동신축화였다. 그 결과 노동자 민중의 삶과 노동의 안전성은 파괴되고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신자유주의가 새로운 성장을 만들었다는 근거로 제시되었던 미국의 신경제도 일시적인 금융적 팽창 국면이었을 뿐이었다.

《양손잡이 민주주의》가 주장하는 정치의 복원에 대한 전망도 사회경제구조가 정치를 규정하는 과정에 대한 분석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1990년대 서구 사회에서 나타난 투표율 하락, 투표 유동성의 증대, 정당에 대한 애착심의 감소 등 정당의 위기는 신자유주의를 구조적 배경으로 한다.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장기적 전망이나 정치 이념을 상실한 주류 정당은 위기에 대한 미봉적 대응을 통해 상호 경쟁했고, 이것은 기성 정치에 대한 환멸로 이어졌다는 사실에 대한 평가도 필요해 보인다.
 

대안을 둘러싼 논쟁

세계적으로 주류 정치세력들의 위기는 뚜렷하다. 금융위기 이후 헤어날 수 없는 장기 침체 속에서 대중들의 불만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의 경제적 위기는 미국 헤게모니의 구조적 위기, 자본주의 전반의 위기이다. 신자유주의는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여 한편으로는 초민족적 법인자본의 금융적 확장에 조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위기의 폭발을 지연시키는 정책적 전망을 표명했다. 허나 작금의 현실은 이러한 위기관리도 위기에 봉착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박근혜 퇴진 촛불도 이러한 정세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향후 새로운 정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대안세계화 운동의 한 국면이 종결한 뒤, 신자유주의에 맞선 사회운동도 위기라는 진단 역시 여전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정세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갖고, 논쟁에 적극 개입하면서, 이념과 운동을 재건하는 노력을 멈추지 말자. ●
 
 
덧붙이는 말

김태훈 | 여전히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는 꿈을 꾼다. 그 꿈을 증명하기 위해 사회진보연대 정책교육실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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