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필름X정치
  • 2017/01 제24호

나, 다니엘 블레이크, 그리고 최인기

《나, 다니엘 블레이크》, 켄 로치 연출

  •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한 남자가 심장질환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된다. 몸이 아파 소득이 끊겨 복지 수급을 받길 원했지만 정부는  “근로능력이 있으니 일을 해야 수당을 주겠다”고 했다. 아직은 일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호소해도 소용없었다. 정부의 대답은 “당신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주치의 소견도 소용없었다. 담당자를 붙들고 사정해 보아도 원칙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이것은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내용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아니다. 영화는 2014년 내가 만났던 최인기님의 삶이기도 하다.
 

나, 최인기

버스 운전기사로 일하던 그는 2005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심장 대동맥을 인공혈관으로 바꾸는 수술을 받았다. 한때 카레이서였던 그는 두 번의 수술 후 몸이 크게 안 좋아졌다. 일을 하지 못해 가세가 기울었고, 같은 병실을 쓰던 사람의 소개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다.

그러나 2012년부터 ‘근로능력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니 평가를 받으라’는 독촉에 시달렸다. 1년에 한 번 받던 근로능력평가는 6개월에 한 번으로 잦아졌고, 주치의는 “낫지도 않는 병의 진단서를 뭐 그렇게 자주 떼냐”며 핀잔을 주었다.

결국 최인기 씨는 2014년 1월, ‘근로능력 있음’ 통보를 받았다. 주민센터 담당자에게 아프다고 사정했지만 “제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냉담한 답변만 들었다. 고용센터에서 ‘취업 의욕 고취를 위한 교육’을 받고, 같은 해 2월 아파트 지하주차장 청소부로 취직했다. 그리고 5월, 일하던 도중 정신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 갔지만 이미 복부 전체에 감염이 진행되어 7월에 사망했다.

최근 몇 년간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까다롭게 변하고 있다. ‘부정수급 근절’과 ‘엄정관리’란 기조하에 통합전산망과 근로능력평가제가 도입됐고, ‘근로능력이 있는’ 빈곤층에 대한 취업 연계 등이 이뤄졌다. 제도의 방향은 조사와 결정업무의 분리와 객관화에 있다. 최일선에서 빈곤층을 만나는 동주민센터 전담공무원의 책임과 권한은 사라졌다. 

부정수급의 우려 때문이라지만 실은 ‘수치화되지 않은 자료로 수급자의 사정을 봐주지 말라’는 뜻이다. 근로능력평가 업무를 맡고 있는 연금공단 직원은 ‘사칙연산을 할 수 있는가’,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가’, ‘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펼 수 있는가’ 등의 질문에 점수를 매겨 최인기 씨의 근로능력을 평가했다. 심장이 약해 언덕만 올라도 숨이 찬다든지, 환절기마다 고열과 염증을 달고 살아서 일하기 두렵다는 최인기 씨의 호소는 고려되지 않았다.
 
 

복지수당 줄게 수치심 내놔

기초생활수급신청 한번을 위해서는 주민센터, 구청, 국토교통부의 면담을 각각 받아야 한다. 모든 문항은 ‘소득은 없는지’, ‘월세는 얼마인지’, ‘가족은 어떻게 되는지’ 등의 질문을 반복하다가 결국 ‘당신은 왜 돈이 없는지 해명하라’는 것에 이른다. 사람들은 자신이 필요한 지원과 이 질문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냐고 묻는다. 혹시 그저 망신주려는 것은 아니냐고 묻기도 한다. 누구라도 그 질문 앞에선 의심 받고 있다는 중압감을 지울 수 없다.

노숙인과 함께 긴급 주거지원 신청을 위해 구청을 찾았을 때, 구청 직원은 “여름이라 밖에서 지내는 게 불가능하진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 달째 라면 몇 개밖에 먹지 못한 쪽방 주민과 긴급 생계지원 신청을 하러 갔을 때에도 담당자는 언제 마지막으로 일을 했는지 물었고, 4년쯤 되었다고 답하자 “긴급 생계비 지원제도는 최근 실직에 대해서만 지원한다”며 지원을 거절했다. 제도와 신청 과정은 복잡하다. 추가적인 서류를 계속 요구하며, 서류를 뗄 수 없어 신청을 포기하는 사람이 셀 수 없이 많다.

복지제도를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우리나라는 빈곤층에 대한 복지가 꽤 잘 되어 있지 않냐고 말한다. 그러나 한번이라도 이 제도를 신청해보려 했던 사람들은 “나는 대상이 안 되더라”라고 입을 모은다. 복잡한 신청 과정, 개인 사정에 대한 강력한 통제가 ‘나태한 복지 수급자를 근절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실은 ‘공짜로 받을 생각말라’는 엄포나 다름없다. 예산 통제가 진짜 목적인 셈이다.
 
 

‘게으른 복지수급자’는 누구에 의해 창조되었나

약자는 관리가 가능한 존재일 때 동정과 영감의 대상이 되지만,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는 순간 악마가 된다. 그들을 악마화하는 가장 편리한 도구는 복지 수급자가 우리 사회의 짐이라는 인식, 그렇기 때문에 이들을 판단할 권리가 있다는 ‘보통’ 사람들의 확신이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질문한다. 우리는 인간이 아닌가? 복지 수급자에게는 사정이라는 것이 없는가? 당신들의 천편일률적인 질문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왜 당신은 인정하지 않는가? 복지 지원을 위해 나는 왜 자존감을 포기해야 하는가?
 

나는 질문하고 싶다. 빈곤의 문제가 중요한 사회문제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왜 지금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참하지 않는가? 지금 가난한 사람들의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당신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누가 당신을 돕는단 말인가?

영화 초반, 다니엘 블레이크는 씩씩거리며 화를 낸다. 기관에도, 옆집에 사는 청년에게도, 개똥을 치우지 않고 도망치는 사람에게도 화를 낸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는 주장이 적어진다. 가구를 팔고, 친구를 잃고, 몸이 아플수록 그는 무력해진다.

가난은 사람들을 약하게 만든다. 약한 사람들의 마지막 자존감까지 무너뜨리는 복지는 가난의 칼끝에 사람들을 세울 뿐이다. 가난한 이들의 죽음은 안타까운 ‘미담’이 아니다. 잔인한 사회를 고발하는 그들의 마지막 ‘주장’이다. 영화 개봉 이후 세계 곳곳에서는 ‘우리 모두 다니엘 블레이크다’라는 해시태그 운동이 생기고 있다. 우리는 모두 다니엘 블레이크다. 이 땅의 모든 싸우는 다니엘 블레이크들과 함께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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