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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 제12호

정부와 복지수급자, 누가 더 부정한가?

'부정수급' 찾기에 혈안이 된 박근혜 정부

  •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조직국장
 
국민행복시대라는 슬로건과 함께 파격적인 복지공약들을 내세워 당선된 만큼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2013년 5월 국정과제로 ‘비정상의 정상화’를 외치며 그 핵심과제로 복지수급자에 대한 ‘부정수급 근절’을 내걸었다. 같은 해 8월 총리실 주관 하에 관계 기관이 모여 복지사업 부정수급 척결을 위한 팀이 구성됐고, 9월 국민권익위원회의 주관하에 복지 부정수급 통합 핫라인을 구축, 10월 정부합동 복지부정신고센터 업무를 개시했다. 이러한 복지수급자들에 대한 감시 강화와 예비 범죄자화는 복지수급자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다음은 당시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국민의견’이라며 밝힌 글들의 일부다.

“자식이 잘 나가는 사업가인데 사는 집은 자식명의로 해두고 국가에서 지원 받는 기초생활 수급자 및 노인복지연금 받는 사례가 엄청 많습니다.” “우연하게 기초생활수급자들의 임대아파트를 몇 곳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의 호화생활에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기만적인 선전·홍보는 오래가지 못했다. 2014년 2월 송파에 살던 세 모녀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죽음을 택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4월에는 활동보조인이 없는 한 장애인이 화재가 발생한 집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어, 구멍 난 복지제도의 문제점들이 하나둘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정부는 부정수급에 대한 선전·홍보를 멈추고 복지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일제조사에 나섰다. 또한 개정 논의 중에 있던 기초생활보장제도에 ‘세모녀법’, ‘개별맞춤형 급여’라는 이름 지어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고 자임했다.
 

계속되는 복지파괴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을 시작으로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빈곤층의 실상이 알려지며 정부가 추진하는 복지정책의 방향이 바뀌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엄청난 거짓과 함정이 난무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낮은 급여수준과 까다로운 선정기준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개정안은 수급 조건을 더 어렵게 하고 각 급여의 주무부처가 쪼개지며 보장기관들의 책임 회피 수단이 늘어나는 등 수급자들의 권리를 해체하는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 
세 모녀 사건에 대한 분노가 사그라질 즈음, 정부는 잠시 멈추었던 복지수급자들에 대한 공격을 재개했다. 작년 2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복지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는 망언을 내뱉었다. 이후 정부는 복지재정 3조 원 절감을 목표로 정보시스템 연계를 통한 중복지원 및 부정수급자 색출, 부정수급자에 대한 신고제 강화 및 포상금 확대, 재정절감 지자체에 인센티브 제공 등을 내용으로 하는 <복지재정 효율화 방안 추진을 위한 실천과제>를 발표했다. 6월이 되자 정부는 감사원에 복지사업 재정실태 조사에 대한 감사를 요청, 이를 토대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중복·유사 복지를 조정한다는 ‘사회보장정비방안’을 들고 나왔다.
 

대체 뭐가 부정인데?

취지에 맞는 대상을 포괄하는 것과 적절한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는 것. 복지제도가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 가져야 하는 당연한 조건들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 이후에야 부적정 수급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두 가지 전제조건 중 어느 것 하나 갖추지 않은 상황에서 부정수급색출만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복지제도를 눈엣가시로 생각한다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빈곤층은 가족에게 소득과 재산이 있다는 이유로, 근로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마지막 안전망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조차 밀려난다. 소득이 한 푼도 없는데, 팔리지 않는 자동차와 집이 있다는 이유로 대상자가 되지 못한다. 이렇게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잘못된 설계로 사각지대에 처한 빈곤층이 400만 명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보장받고 있는 수급자 수는 2014년 기준 약 130만 명뿐이며, 가까스로 수급자가 된다 해도 보장 받을 수 있는 현금급여 수준은 너무 낮다. 서울에 사는 1인 가구 기준 49~63만 원이 고작이다. 이 금액은 주거비와 식료품비 의복비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터무니없는 수준이다. 또한 수급자들에게는 수급비 이상의 삶이 허락되지 않는다. 약간의 소득이라도 발생한다면 소득만큼 급여가 삭감된다. 운이 나쁜 경우 수급자격을 상실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운운하는 부정수급은 한 달을 살아가기에 턱없이 적은 수급비의 생계비를 보충하기 위한 ‘생계형 부정수급’일 수밖에 없다. 더러 보장기관의 실수로 초과 지급된 금액에 대한 책임을 수급자에 물으며 환수조치 하는 것 역시 부정수급 발각 건수에 포함된다.

노인 2명 중 1명이, 장애인 3명 중 1명이 빈곤한 사회, 매년 거리에서 300여 명의 홈리스가 죽어가는 사회에서, 최저생계비의 삶에 갇혀 아등바등 살아보겠다는 수급자들이 부정한가?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에서 탈락된 사람들이 부정한가? 부정한 것은 복지수급자들을 예비범죄자로 낙인찍고, 쥐꼬리만큼 존재하는 복지마저 없애려는 정부가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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