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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 제36호

전쟁경제에서 평화경제로의 전환, 어떻게 가능할까?

‘군수 경제로부터의 철수’ 토론회 참가기

  • 김진영
가만히 생각해보면 무척 서글픈 일이다. 우리의 반전평화운동은 주로 미국이 한반도에 뭔가를 하거나, 한국 정부에 뭔가를 하라고 요구하는 것을 반대하고 폭로하는 일이니 말이다. 해방 이래로 피하지 못한 숙명이다.
 
그렇게 수없이 미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하고 피케팅을 해 왔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거리에서 뭘 하든 빈틈없이 방어된 건물 안에서 밖으로 고개도 내밀지 않는 미 대사관 직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때는 미국에도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고 미국의 민중들도 미국의 정책에 고통받고 있으리란 생각을 떠올리지는 않았다. 
 

미국 민중들도 한반도의 전쟁을 원치 않는다

지난 7월 23~28일 성주 소성리 사드 배치 철회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미국 평화운동가들과의 만남은 그런 점에서, 서로의 고민과 투쟁방향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그 만남을 계기로 미국 평화운동 단체 ‘코드 핑크’(CODE PINK: Women for Peace)로부터 미국의 평화운동을 보여주고 싶다며 초대를 받았다. 코드 핑크는 2002년 이라크 전쟁 반대를 계기로 출범한, 올해 15주년을 맞은 미국의 ‘여성 주도적’(women-led) 평화운동단체다. 미국의 부시 정권이 강조하는 테러 적색경보(코드 레드)에 여성들이 평화의 힘으로 맞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어마어마한 핑크색 컨셉과 재기발랄한 선전 기획, 주요 정치행사에서의 기습 시위로 어디를 가든 눈길을 끄는 열정적인 단체다. 

그렇다면 미국의 활동가들은 미국의 대외정책과 미국이 벌이는 전쟁들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을까? 안타깝지만 1960년대를 휩쓸고 간 베트남 전쟁 반대, 2000년대 초반 거세게 터져 나왔던 이라크 전쟁 반대의 물결 이후로 미국의 반전운동은 침체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 미국 활동가들의 평가다. 이전 정권들과 다르지 않은 군사주의 정책을 지속하고 있으면서도 대중적으로는 ‘나이스’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진보적 시민과 운동을 포섭하려 한 오바마 정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이 침체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는 것도 문재인 시대에 우리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군수기업을 타격하여 
전쟁경제의 고리를 끊자!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2000년대 초반의 경험은 미국 평화운동에 교훈을 주었다. 베트남 전쟁 이래로 다시 미국의 반전운동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온 계기는 바로 이라크 전쟁이었다. 그러나 최초의 충격이 가시자, 미국이 개입하는 전쟁이 여전히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음에도 운동의 동력은 유지되지 않았다. 미국 활동가들은 평화를 향한 운동이 지속되고 미국의 전쟁들을 멈추려면 단지 하나의 구체적인 전쟁의 반대가 아니라 군사주의를 기반에 둔 미국의 정책과 경제를 다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것이 민중이 보다 살기 좋은 미국과 세계를 만드는 궁극적인 길이기도 하다. 

10월 21~22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군수 경제로부터의 철수'(Divest from the War Machines) 토론회는 ‘전쟁경제에서 평화경제로의 전환’이라는 미국 평화운동의 구상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코드 핑크가 주도적으로 준비한 이 행사는, 코드 핑크를 포함한 74개 단체가 앞으로 펼쳐갈 동명의 캠페인을 시작하는 자리였다. 
 

미국 반전운동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국의 군사주의에 맞서는 것’이다. ‘해외에서의 전쟁, 국내에서의 전쟁’ (War Abroad and at Home)이라는 말처럼, 미국의 군사주의는 대외적으로는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 대한 폭력적 개입으로, 미국 내에서는 군수 기업과 정치권의 정경유착, 세계 1위의 군사비, 군사화되고 일상화된 경찰 폭력 등의 문제로 나타난다. 최근 트럼프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 하겠다 등의 말로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지만, 군사주의 문제는 그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다. 이번 토론회는 미국의 군사주의가 가져온 수많은 문제점을 다시 조명하면서, 여기에서 벗어날 방법으로 ‘군수 기업과 군수 경제’라는 고리를 끊는 것에 주목하였다.
 

죽음의 상인들의 나라

토론회 내용 중 가장 중심이 되었던 것은 군수 기업이 경제와 정책에서 매우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현실에 대한 분석과 문제의식 공유였다. 미국은 세계 최대 군수 기업들의 나라다. 세계 1위 군수 기업이자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의 제조사로 유명한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 우리에게는 전투기보다 여객기로 더 친숙한 보잉(Boeing), 그리고 레이시온(Raytheon), 제너럴 다이내믹스(General Dynamics), 노스롭 그루먼(Northrop Grumman) 다섯 기업이 세계 군수 기업 순위 1~6위에 분포하고 있다. 이러한 군수 기업들과 미국의 대외정책은 아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록히드 마틴이 만든 사드의 한반도 배치나,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 대사가 퇴임 뒤 보잉 부사장이 되어 한국을 대상으로 무기 판매의 선봉에 서고 있는 것이 한 예다. 전 세계 무기거래의 3분의1 이상이 미국 기업에 의해 이뤄진다는 사실은 미국이 전 세계에서 벌이는 전쟁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 

미국 내에서도 미국 시민의 천문학적인 세금이 군비에 들어간다는 문제가 있다. 미국의 공공의료·공공교육, 홈리스 문제 등이 처참한 상황임은 세계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토론회가 열리기 전 달인 9월, 허리케인 ‘어마’와 ‘마리아’가 미국 자치령 섬인 푸에르토리코를 강타했다. 전력이 끊겼고 전체인구 340만 명의 절반이 마실 식수조차 없는 상황이 10월까지 이어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본토도 아니고 인구 대다수가 히스패닉계인 푸에르토리코를 지원하는 것을 거부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났던 푸에르토리코 출신 활동가들도, 토론회에 참가한 활동가들도 해외에서의 군사행동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푸에르토리코 주민들에게 보낼 구호물자는 없다고 말하는 트럼프 정권에 분노하고 있었다.
 

주한미군이 록히드 마틴에게 10억 달러(약 1조 1300억 원)를 주고 산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해서 속이 터지는 것은 한국 민중만이 아니다. 록히드 마틴이 미 국방부로부터 미국의 웬만한 주 1년 예산보다 큰돈인 360억 달러를 투자받고 있는 상황은 미국 민중들에게도 기막힌 일이다. 토론회의 참가자들은 시민들이 '죽음의 상인'인 군수 기업들의 실체를 알고, 자신이 속한 지역공동체·기업·은행·학교 등이 그들과의 거래를 끊기롤 촉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시 정권 당시 콜린 파월 국무부 장관의 비서실장이었던, 퇴역군인이자 공화당원인 래리 윌커슨도 이번 토론회의 패널로 참가했다. 무려 천억 달러를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탄도미사일 방어체계’는 제대로 작동하리란 보장이 없으며 군비증강에 대한 집착과 국제적 긴장만 불러올 뿐이라고 한 그의 발언도 흥미로웠다. 한반도에 배치된 사드 역시 그러한 사례로 볼 수 있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런데도 이러한 군수 기업에 고용된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계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면서 일하기도 하고 전쟁을 지지하기도 한다. 실제로 군수 산업 노동자들이 국방부 예산 삭감을 막으려 조직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수 기업의 업종 전환 촉구 역시 중요한 방안으로 제시되었다. 군사용 제트엔진에 사용하기 위해 개발되었던 ‘HybriDrive’ 기술을 전기 하이브리드 버스 사업에 사용하게 한 예시를 들었지만, 아직은 실현된 예가 많지 않다. 이러한 시도는 쉽지 않을뿐더러 해당 산업의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평화운동과 노동운동의 연계가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우리 동네에서의 전쟁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의식은 미국 밖의 전쟁과 미국 내의 전쟁이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이라크 전쟁·아프간 전쟁을 수행하며 사들인 무기들과 터득한 대테러 기법들은 그대로 미국 경찰에게 전수되어 미국 내의 집회·시위 및 경범죄 진압에 사용되고 있다. 그로 인해 무혐의로 밝혀지거나 가벼운 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경찰에 의해 사살되거나 큰 피해를 입는 경우가 엄청나게 많다. 1990년대부터 50억 달러어치에 이르는 무기와 장비들이 지역 경찰들에게 지급된 결과, 지금은 시골 동네들조차 SWAT(경찰특공대)팀을 갖추고 있다.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이 보여주듯, 이러한 경찰폭력은 인종·계급 문제와 맞물려 민중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미국 평화운동은 이러한 경찰폭력 반대 운동과 결합하여, 미국이 수행하는 국외의 전쟁과 국내의 전쟁의 연결고리를 폭로하는 한편, 평화운동의 지지자들을 확장하려고 하고 있다. 
 
 
토론회에서는 ‘경찰폭력 피해자 어머니들의 모임’의 지나 베스트가 패널로 등장해 2년 전 버지니아주 SWAT 팀에 의해 사살된 딸 인디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디아는 젊었고, 두 아이의 어머니였고, 역시나 흑인이었고, 아이러니하게도 미 해군 출신이었고 경찰의 딸이었다. 인디아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지만, 전과가 있는 그녀의 남자친구를 미행 감시하던 SWAT 팀이 남자친구에게 퍼부은 사격에 휘말려 죽었다. 이후에도 계속 경찰폭력 문제 관련 활동가들을 만나면서, 이러한 억울한 사례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 군수 기업의 손길은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숨 쉬는 공기처럼 익숙한 것이다.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키워준다는 스미스소니언 국립 항공우주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로비에는 ‘보잉 비행의 이정표 홀’, 왼쪽으로는 ‘록히드 마틴 아이맥스 영화관’이 있는 것을 보면서, 이 싸움은 결국 전쟁을 숭배하는 미국 사회 전체를 바꿔나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발언한 패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여전히 한국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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