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오늘평화
  • 2017/08 제31호

일촉즉발의 한반도 치킨게임을 멈춰라

동아시아 전쟁위기 공모하는 남·북한과 미국 정부

  • 김진영
설상가상이다. 7월 1일 한미정상회담 공동성명이 발표되자, 사흘 후인 4일에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4형 발사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다음 날에는 동해안에서 한·미 연합 탄도미사일 사격이 실시됐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대립과 물리적 위협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한반도 상황을 보면, 마치 남·북한과 미국 정부가 다 같이 동아시아의 위기를 공모하고 있는 듯하다.
 

반(反)평화적 한미정상회담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은 말로는 ‘평화’를 언급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반(反)평화적 결론으로 끝났다. 우선, 한미일군사동맹을 공고히 할 것을 강조해 동아시아의 세력관계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미국은 재래식과 핵 능력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군사적 능력을 활용하여 대한민국에게 확장억제를 제공” “한미일 3국 안보 및 방위협력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여 억지력과 방위력을 증진시키는데 기여. 3국 협력을 보다 진전”)

남한 차원에서도 “상호운용 가능한 킬-체인·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 및 여타 동맹 시스템을 포함하여, 연합방위를 주도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방어·탐지·교란·파괴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군사 능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것을 천명했다.
 

하지만 군비 증강이 한반도 문제의 답이 될 수 없다. 게다가 위와 같은 ‘수사’는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MD) 편입의 일환으로 정당화할 가능성을 낳는다. 특히 킬 체인(Kill Chain)이나 4D 전략―방어(Defence)·탐지(Detect)·와해(Destruct)·파괴(Destroying)―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사용이 임박했다는 판단이 있을 경우 한·미 양국이 북한의 핵 시설과 미사일을 선제공격하는 전략이다. 이런 위험하고 공격적인 전략을 문재인, 트럼프 정권이 계속 이어가겠다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미 어려운 상황에 있는 북한 주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경제 제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를 더욱 강화할 것을 주장하면서(“기존 제재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새로운 조치들을 시행”,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신속하고 충실하게 유엔 안보리 결의상의 의무를 이행해 나갈 것을 촉구”, “북한을 외교적·경제적으로 압박하고 있는 여러 국가의 건설적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를 언급한 것 역시 이율배반적이다. 북한이 ICBM 시험발사에 성공하자마자 미국이 UN 안보리 회의에서 북한과 무역거래를 하는 나라를 표적으로 삼고, 북한에 대한 원유수출을 억제해야 한다고 강경하게 주장하는 것을 보면 더욱 더 그렇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을 비롯한 한미 양국의 우파들은 ‘원유 공급 중단, 북한 노동자 해외 노동 금지, 국경 무역 폐쇄, 세컨더리 보이콧’ 등 강도가 매우 높은 제재 조치들을 언급하고 있다. “북한의 취약계층에 대한 대북제재 조치의 영향을 최소화”하겠다던 한미정상회담에서의 약속은 그저 미사여구였을 뿐이다.

정작 동아시아 평화에 중요한 문제는 한미정상회담에서 이야기되지도 않았다. 바로 한반도 사드 배치 문제다. 사드 배치는 정상회담이 시작되기도 전, 이미 ‘하는 것으로 알고 넘어가는’ 문제로 치부되고 말았다. 6월 26일, 강경화 외교부장관은 중앙일보-미국 CSIS(전략국제문제연구소) 포럼에서 “문 대통령은 사드 배치 결정을 취소, 철회할 생각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드 체계 배치와 관련해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민주적 정당성이 확보되면 사드에 대한 한국민의 지지는 더 강력해질 것이고, 결과적으로 한·미 동맹의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고 발언했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도 성주 롯데골프장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사드 배치를 취소하거나 철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폭력적으로 반입된 사드 레이더는 지금 이 순간도 아무런 제지 없이 작동하고 있다.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인 한반도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고, 한미일 군사동맹을 강화하겠다고 하며, 대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중국을 압박한 한미정상회담의 결과는 무엇인가? 보란 듯이 진행된 북한의 ICBM 시험 발사다. ICBM이 맞는지 확실하지 않다는 평가도 있으나 북한이 미사일 능력을 진전시키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대로 가면 6차 핵실험도 시간 문제다.
미국은 북한의 ICBM 보유를 미국에게 실제적인 위협이 되는 기준인 ‘레드라인(금지선)’으로 설정해왔다. 북한의 ICBM 보유 현실화는 미국 본토 직접 타격 능력을 보유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세계 권력관계의 판도를 뒤흔드는 ‘게임 체인저’이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핵무기를 가진, 사드 한반도 배치를 포함해 한미일 MD체계 구축에 여념이 없는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반응하는 것은 모순적인 일이다. 애초에 북한의 비핵화가 무산된 데에는 미국의 책임이 크다. 이번에도 그렇다. 한미정상회담과 사드 배치가 그 자체로 북 ICBM 시험 발사의 원인이라 할 수는 없더라도 빌미는 됐다. 북한은 7·4 공동성명 45주년 기념 성명을 통해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거세게 비난하며 같은 날 시험 발사를 진행했다.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본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거나 북한의 ICBM 시험을 비난하기를 기대할 수도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북한의 과잉 대응, 무력 과시를 정당화할 순 없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절멸의 무기 핵을 계속해서 고도화하여 한반도와 전 세계 인민의 평화를 담보로 위험한 도박에 나서고 있다. 남한에서 여전히 가장 대중적인 사드 배치 찬성 근거는 ‘북핵 방어’이며, 북핵·미사일 실험 때마다 우익들은 이를 독자 핵무장 논리의 근거로 삼으려 한다. 이와 같이 북한의 핵 개발은 남한 평화운동이 대중화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역풍’을 가져오기 일쑤였다.

북한의 핵개발을 사실상 지지하거나, 주요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 역시 마찬가지다. 평화운동은 북한의 핵무장에 대한 방어적·수세적 입장 대신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비핵화’를 일관되게 주장해야 한다. 나아가 미국의 핵 위협과 한미동맹의 확장억지 강화, 남한의 독자적 핵무장화 시도, 북핵 고도화 모두를 비판해야 한다.
한편 남한과 미국은 더욱 강경하고 위험천만하게 대응하고 있다. 7월 5일 진행된 한미연합 탄도미사일 훈련은 북한 수뇌부를 제거하는 ‘참수작전’에 이용될 핵심 전략무기들을 공개해 북한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공개된 영상에는 휴전선에서 200㎞ 떨어진 대전 상공에서 발사된 타우러스 미사일이 평양을 타격하여 김일성광장이 초토화되고 인공기가 불타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이보다 더 불난 집에 부채를 부칠 수는 없을 것이다.
 

평화를 위해 결단하자

전쟁 없는 평화로운 삶은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기대하는, 보편적인 권리다. 전쟁의 포화 앞에서 각자의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남·북한과 미국의 지도자들은 이것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민중의 평화에 대한 권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치킨게임을 지속한다면, 더 큰 위기가 찾아올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 평화와 관련된 각 국 정부는 평화에 역행하는 일체의 행동을 멈춰야 한다. 한반도 사드 배치와 대북 제재를 철회하고, 8월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을지프리덤가디언)을 취소하는 것에서부터 대화의 조건을 만드는 것이 절실하다. 한반도에서 핵·미사일실험과 무력시위가 더는 없어야 한다. ●
 
 
 
필자 소개

김진영 | 평화로운 세상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서 사회진보연대 반전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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