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오늘평화
  • 2017/10 제33호

미치광이 트럼프, 브레이크없는 김정은, 불안한 문재인

한반도 평화 체제를 위한 저항과 대안, 촛불이 만들자

  • 김진영

‘도둑처럼’ 터질 수 있는 전쟁

“몇 시간 안에 미국과 북한이 군사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말 그대로 ‘폭탄발언’이다. 9월 25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기조연설자로 참여한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심포지엄에서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대북특사가 한 말이다. 괌 주변에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 떨어지거나, 장거리탄도미사일(ICBM)이나 미국이 ‘ICBM이라 판단하는 미사일’을 고각이 아닌 정상각으로 발사한다면, 혹은 미사일이 미 전투기나 다른 항공기에 근접하는 일이 있다면, 미군이 행동을 개시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갈루치 전 특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이 한국 승인 없이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 내게 확언했다’고 말한 것으로 아는데, 그럴(한국의 승인을 얻을) 시간이 없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에서의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는 광복절 발언이 정면으로 부정당한 셈이다.

9월 19일(현지시각) 열린 72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국과 동맹국들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사흘 후인 9월 23일 밤(한국시간), 미국의 B-1B 랜서 전략폭격기와 F-15C 전투기가 북한 동해 국제공역까지 날아갔다. 트럼프는 한순간에 한반도를 선제군사옵션 실험장으로 만들었다.

북한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유엔총회 참가를 위해 미국 뉴욕을 방문한 리용호 외무상의 기자회견을 통해 일련의 상황을 ‘선전포고’라고 규정하고, 자위권을 발동하여 영해가 아니더라도 전략폭격기를 격추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태평양상에서 수소탄 시험이 가능하다”는 강경발언까지 있었다. 실제 북한이 태평양상에서 수소탄 시험을 계획한다면, 수소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발사하거나 태평양까지 선박수송 후 시험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조짐이 보일 때, 미국은 북 미사일 기지를 향해 외과수술식 타격(surgical strike)을 가하고, 미사일 격추를 시도하며, 선박수송 제지 등으로 대응할 수 있다. 갈루치 전 특사의 발언은 이러한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코리아 패싱과 불협화음

바깥 정세의 심각성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청와대와 외교부·국방부, 송영무 국방장관과 문정인 외교안보특보 간 계속되는 엇갈림은 누가 보기에도 이상하고 불안정하다. 문 대통령은 이러한 지적들에 대해 “정부가 외교·안보 문제, 남북관계에서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국방부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대응을 한 것이고 외교부에서는 외교부의 해석으로 행동한 것”이라고 답했다.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해명이다.

이처럼 손발 안 맞는 각료들간 불협화음은 문제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다. 진짜 문제는 문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떠한 구상을 가지고 있는지’이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전쟁 위기에 대한 드라이브는 매우 실망스럽다. 북의 ICBM 시험발사에 김일성광장이 초토화되고 인공기가 불타는 한미연합미사일훈련 영상을 공개하고, 사드 추가 배치로 대응하는 등, ‘강대강’ 구도를 깰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한반도 문제의 운전석에 앉겠다”는 자임과는 달리, 미국의 행보에 맞춰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북미 간 대결이 격화될수록 ‘코리아 패싱’(한반도와 관련된 국제 이슈에서 한국이 소외된 채 주변국끼리만 논의되는 현상) 가능성뿐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은 높아지고 있다.

지난겨울 촛불 항쟁 시기에 쏟아졌던 국민적 열망에 어긋나는 모습도 늘고 있다. ‘한일 위안부 합의’를 폐기하고 한일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대다수 촛불 시민이 바라는 바다. 헌데 문 대통령은 9월 7일 아베 일본 총리를 만나 “당분간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한일회담으로 다 해결됐다는 건 맞지 않다”고 한 말이 무색해졌다.

이 합의는 북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하는데 일본과 긴밀한 공조가 필요하다는 걸 근거로 한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재무장과 개헌, 장기집권을 향한 야욕을 더욱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북핵 위기’를 근거로 중의원을 해산하고 10월 총선을 발표했다. 집권 자민당·공명당과 새롭게 떠오르는 희망의당 중 누가 이기든 ‘우향우’로 귀결되는 판이다.

사드 배치는 작년 여름부터 촛불을 들고 투쟁해온 성주·김천 주민들의 기대를 산산조각냈고, “진실로 진실로 문재인 정권의 성공을 바라는” 고 조영삼 씨가 스스로 목숨을 던지는 원인이 됐다. 북의 ICBM을 근거로 한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는 문재인 정권이 ‘어디까지’ 나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리트머스지였다. 결국 8000명의 병력이 동원되어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끝에 사드 1개 포대 배치가 완료됐다. 적어도 이는 박근혜 정권 때와 다를 바 없었다.
 

플랜B도 없다

문재인 대통령도 어찌할 도리가 없지 않냐는 지적에도 일말의 타당성은 있다. 한국 대통령이 미국 뜻을 거스르지 않은 것이 지난 70여 년간 변치 않은, 불편한 역사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리할 때마다 들먹이는 한·미FTA만 하더라도 미국이 폐기 통보를 하면 자동으로 180일 후 폐기된다. 이런 여러 방향의 압박이 문재인 정부로 하여금 운신의 폭을 좁힌다고 볼 순 있다.

문제는 이런 방향의 모순과 불가역성을 거스를 ‘플랜B’가 전무하다는 점이다. 9월 27일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4당 대표의 회동 내용, 그리고 그 결과로 나온 공동발표문은 이들 스스로 이 위기를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증표나 다름없다.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국회의 초당적 역할,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 등의 빈껍데기 계획을 제외한다면, 대북 제재·한미동맹·확장억제 강화 같은 수동적이고 강경일변도의 대응책만 남는다.

실제 발표문은 미국 정부의 한반도 전쟁위협에 대해 아무 언급 없이 북한만을 규탄하고 있다. 그러나 ‘분노와 화염’, ‘완전한 파괴’ 같은 표현까지 쓰며, 연일 군사옵션을 언급하는 미국이야말로 한반도 위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를 철저히 이행하며,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확장억제의 실행력 제고를 포함한 대북 억지력 강화를 위해 노력”을 언급한 2항 역시 문제다. 위기상황에 실질적 진전을 가져오지 못하고, 오직 북한 민중의 생존만을 위협할 뿐인 대북 제재는 ‘철저한 이행’이 아니라 비판의 대상이다.(‘대북제재로 한반도 평화 찾을 수 없다’, 월간 《오늘보다》 2017년 9월호 참조) 확장억제 실행력 제고 부분은 사실상 미국의 대북 선제 핵공격을 용인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이는 한반도에서 대규모 충돌, 전쟁을 감수하지 않고서는 선택할 수 없는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이 발표문의 진짜 의도는 “안보가 엄중한 상황 속에서 적어도 안보 문제만큼은 여야와 정부가 함께 힘을 모으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국민께 큰 힘이 되고 경제에도 큰 힘이 될 것”이라는 문 대통령의 모두 발언에 담겨 있을 것이다. 갈수록 문재인 정권에게 험로가 되어가는 한반도 문제에 있어 대통령과 원내 정당들이 ‘초당적으로 협력’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전쟁 위기에 대해 정부가 속수무책으로만 있는 게 아니냐는 여론이 불거지는 것을 면피하려는 목적도 있다.

따라서 이런 내용에 정의당이 이름을 함께 내건 것은 심각한 오판이 아닐 수 없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현 위기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정부의 잘못된 방향을 비판하며 다른 대책을 주장해온 지금까지의 노력을 무화시키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강령을 통해 “동아시아와 한반도 평화의 주도자”를 자임하지 않았던가. 대북 제재, 한미동맹, 확장억제 강화는 평화정당이 채택할 수 있는 요구가 아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규탄하고 비핵화를 촉구하더라도, 그 전에 이런 상황을 촉발시켜온 미국의 아시아 전략의 기만성을 폭로하는 게 역사적·실체적 사실에 부합한다. 또, 서구 사회와 한국 주류 언론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공염불을 외고 있는 유엔 대북 제재는 아무 효력을 발휘할 수 없고, 실제로는 북한을 더 어두운 곳으로 몰아낼 뿐이다. 무엇보다 “안보 현안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면, 문재인 정부의 졸속적인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비판을 재차 천명하는 게 타당하다. 대선 전 사드 반대에서 찬성으로 돌아선 정치세력들과 나눈 악수는 사드 반대를 표명해왔던 정의당의 변별점을 스스로 깎아먹을 뿐이다. 문재인 정권의 위험하고 앞뒤 안 맞는 행보에 힘을 실어주는 게 아니라, 잘못된 길을 강력 비판해야 한다.
 
ⓒ뉴스민
 

평화를 위한 촛불을 들 때

곧 박근혜 퇴진 촛불 항쟁이 시작된 지 1년이 된다. 낙엽이 질 때부터 이듬해 봄까지 광장과 거리의 촛불은 꺼지지 않았고, 정권이 교체됐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1년 간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더욱 위험해졌다. 역사 속 여느 전쟁이 그랬듯 전쟁의 포화 속에서 희생될 것은 뉴스 속 권력자들이 아니라 민중 자신이 될 공산이 크다. 우리의 생명과 평화의 권리를 요구하는 촛불을 적극적으로 들어야 할 때다.

청와대와 국회에 수백 만 목숨과 한반도 전체 민중의 삶과 직결되는 ‘평화’를 무엇보다도 중요한 목표로 놓고 움직일 것을 요구해야 한다. 지금은 “한반도에서 전쟁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다” 같은 추상적인 멘트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촛불을 통해 미국과 북한에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모든 행동을 중단해야 함을 분명히 요구하고, 국제사회 전체에 한반도 민중의 평화를 향한 갈망을 보여줘야 한다. 나아가 우리 정부가 악무한을 조장할 뿐인 군사동맹에 동참하지 않도록 요구해야 한다.

물론 이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촛불을 통해 정부와 국제 사회에 평화를 위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일촉즉발의 정세는 지금이 아니면 다음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
 
필자 소개

김진영 | 평화로운 세상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서 사회진보연대 반전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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