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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 제32호

대북제재로 한반도 평화 찾을 수 없다

‘한반도 비핵화’ 원칙 견지해야 대중적인 평화운동 가능

  • 홍명교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전쟁 위기가 다시 반복되고 있다. 위태로운 말과 말의 대결 이후 미국이 ‘협상’ 쪽으로 잠시 핸들을 꺾으며 접점을 찾아가고 있지만, 고도의 긴장 국면이 종결된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은 실제 군사적 충돌로까지 이어질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군사적 충돌은 의도적이기 보단 우발적인 사건에 의해 이뤄져왔기 때문이다.

이른바 ‘8월 위기설’은 7월 29일 북한의 화성-14형 발사로 점화됐다. 국내외 보도와 분석에 따르면, 이날 발사된 화성-14호는 최대고도 3700km까지 상승해 거리 998km를 날아갔다. 사거리가 9000km~1만km에 달하는 ICBM(대륙간 탄도 미사일)으로 추정된다. 발사 위치를 기준으로 뉴욕이 1만500km, 워싱턴디씨가 1만800km 떨어져 있으니 헐리우드 한복판은 물론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셈이다.

북한의 ICBM 개발이 미국과 국제 사회에 ‘위협’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그것이 핵무기 투사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수천~수만km를 날아갈 수 있는데다, 탄도탄은 중간 요격이 어렵다. 북한이 국제 제재마저 불사하고 ICBM을 개발한 이유는 핵보유 자체만으론 미국에 위협감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갖는 것 자체만으로도 서구 강국에겐 상당한 위협이 된다.
 
충격적인 것은 미사일 성능만이 아니다. 당초 전문가들은 ICBM급 미사일 발사 장소로 평안북도를 주목하고 있었다. 실제 7월 4일, 첫 번째 화성-14형 실험 때는 평안북도에서 발사됐다. 그러나 이번 미사일 실험은 1차 실험 장소에서 125km 떨어진 자강도 무평리에서 이뤄졌다. 북한이 이동식 ICBM 발사대를 소유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동식 발사대는 발사 시기와 위치를 은폐할 수 있다. 설사 핵미사일 시설이 상대의 핵 공격으로 파괴되더라도 곧바로 다른 곳에서 상대방에게 반격할 수 있는 이른바 ‘2차 타격 능력’을 가질 수 있음을 뜻한다. 이동식 발사대와 2차 타격 능력 확보 여부는 올해 초 실험을 반복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능력과 더불어 핵무기 실전배치 능력을 입증하는 중요한 요소다. 
 

살벌한 언어 폭탄

아직까지 핵탄두가 대기권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는 재진입 능력이나 미사일에 실을 수 있을 만큼 핵탄두를 소형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입증되진 않았다. 재진입 능력은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반면 핵탄두 소형화의 경우 지난해 있었던 4차, 5차 핵실험을 통해 어느 정도 입증됐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미국의 보수적인 외교안보 연구소인 해리티지 재단에 따르면 북한이 현재 소유한 핵탄두는 60여 기에 이른다. 실전 배치된 핵탄두만 7,800여 기에 달하는 미국에는 비할 바 못되지만, 빠른 시간 내 실전 활용이 가능한 핵무기를 갖게 될 거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보수언론 주장대로 북한의 핵무기는 현실이 된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중장거리 전략탄도 로케트 ‘화성 12형’으로 괌 주변을 포위 사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매우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조선인민군 전략군 성명’에서 북한은 “미국의 대조선 침략의 전초기지, 발진기지인 괌도를 예의주시하며 제압견제를 위한 의미 있는 실제적 행동을 반드시 취할 필요성을 느낀다”(8월 8일)며, “우리가 발사하는 중장거리전략탄도로케트 화성 12형은 일본의 시마네현·히로시마현·고치현 상공을 통과하게 되며, 사거리 3356.7km를 1065초간 비행한 뒤 괌도 주변 30~40km 해상수역에 탄착하게 될 것”(8월 9일)이라고 경고했다. 주변국들과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술로 분석된다. 이 미사일은 지난 5월 14일, 고각사격 방식의 시험 발사에 성공한 바 있다. 당시 700km 비행 후 고도 2,000km에 도달했다. 정상 각도로 발사한다면 최대 4,500km 이상(직선거리 기준 호주, 남극, 알래스카 포함)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이 곧바로 보인 반응은 매우 격렬했다. 북한의 ‘도전’에 슈퍼강국으로서 응당한 수사를 뱉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게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더는 미국을 위협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세계가 보지 못했던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런 강력한 언사가 효과를 봤는가에 대해 의구심이 쏟아졌다. 뉴욕타임즈 등 미국의 언론들은 실패로 평가하고 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7월 29일 사드 발사대 4기를 ‘임시’ 배치할 것을 지시했다. 보수언론들은 환영했지만, 이처럼 호들갑스럽게 사드 발사대를 배치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실책으로 평가해 마땅하다. 일단 러시아와 중국 등이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한반도 전쟁 위기를 가라앉히기는커녕 부추길 공산이 크다. 이미 두 나라는 필요하면 사드 진지를 타격할 수 있다고 공공연히 언급해왔다. 또, 사드 배치가 완성되면 어차피 ‘북핵 문제는 해결 불가능하다’는 인식과 연결될 공산도 크다. 
 
오히려 한반도 비핵화의 의지를 견지하며, 사드 배치와는 거리를 두는 태도가 보다 합리적이었을 게다. 진정으로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원한다면, 사드 배치 철수를 검토하는 게 바람직한 판단이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북제재’

한편 유엔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두 차례 ICBM 시험발사에 대응해 새로운 대북제재 결의 2371호를 채택했다. 북한의 주력 수출품인 석탄, 철, 철광석, 납, 납광석, 수산물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광물 수출을 자금줄로 삼는 이북 정권에겐 큰 타격이다. 지난 11년 간 있었던 8번의 대북제재 중 가장 강력하고 광범위한 수준이다. 단, 원유는 제외됐다.

의외로 수산물도 금수조치됐다. 대북제재 결의안 2371호 10항에 따르면 “북한은 국내로부터 또는 북한 국적자에 의하거나 북한 국적 항공기나 선박을 통해 수산물을 직접 또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공급, 판매, 이전해서는 안 되며 모든 유엔 회원국들은 이러한 수산물을 북한으로부터 조달하는 것이 금지”된다. 북한의 수산물 수출은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간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해 수출액만 1억9천500만 달러다. 대부분 중국으로 수출된 것인데, 이는 북한과 중국 간 무역거래가 비약적으로 증가한 최근 상황을 반영한다.

유엔 회원국이 추가로 해외 노동자를 받아들이거나 고용하는 것 역시 금지했다. 현재 북한은 ‘강제노동’이라는 논란과 비판 속에서도 폴란드와 말레이시아, 카타르, 몽골, 중국 등지에 노동자를 파견하고 있는데 당분간 이를 확대하는 건 어려워졌다. 안보리 회원국이 북한 회사와 신규 합작투자를 하는 것도 금지했으며, 기존 합작투자에 대해서도 추가로 투자 규모를 늘릴 수 없도록 했다. 유엔이 지정한 안보리 결의 위반 선박은 유엔 회원국의 항구에 입항할 수도 없다. 유엔은 이번 조치로 북한의 연간 수출액 30억 달러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10억 달러(한화로 약 1조 1천350억 원)의 수출 감소가 있을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대북제재가 효과 있을까?

유엔 안보리 주도의 다자 제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국, 일본, 한국이 시행한 일대일 제재도 있다. 한국의 경우 금강산 관광 중단, 개성공단 철수 등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물론 이는 남북 관계를 경색시키고, 한반도 위기 국면에서 남한 정부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도록 만들었다. 
 
대북제재는 중국으로의 무역 대체와 우회무역을 낳기도 했다. 북한은 남한의 5.24 조치에 따른 남북교역 중단을 계기로 중국과의 무역 확대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2010년 35억 달러에 불과하던 북·중 무역 규모는 2013년에는 65억 달러로 2배 증가했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북한 무역거래의 90퍼센트 이상은 대중 무역이었는데, 무연탄 수출이 가장 두드러진다. 2010년 4억 달러 미만이던 무연탄 수출은 2013년 14억 달러까지 확대됐고, 북한의 대중국 수출에서 무연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50퍼센트에 육박했다. 노동력 송출과 관광 등 비상품 거래도 늘어났다. 우회무역의 경우, 중국을 거친 후 한국과 일본, 미국 등으로 상당히 활발하게 수출이 이뤄지고 있다. 저렴한 인건비와 기술력으로 경쟁력이 있어 북한 공장에서 생산되는 ‘메이드 인 차이나’ 의류 제품이 우회무역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실제 지난해 북한경제는 2015년의 마이너스 성장에서 반등에 성공해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3.9퍼센트 증가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계측이 어려우나 사실이라면 6.1퍼센트를 기록한 1999년 이래 가장 높으며, 지난해 남한의 경제성장률 2.8퍼센트보다 높은 수치다. 북한 경제성장률이 남한을 웃돈 것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다. 광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이 큰 몫을 했고, 중국이 대북제재를 본격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인공위성으로 북한의 밤을 보면 2000년대 이후 계속 밝아지고 있는데, 이는 제재가 강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상황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는 걸 방증한다.
 

물론 지금껏 대북제재의 효과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순 없다. 수출품목을 감소시켰고, 의류와 무연탄 등 일부 품목에 대한 의존성이 커졌다. 이번 제재 조치가 상당히 광범위한 수준이긴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정도의 효과를 낼 것일지 장담하기 어렵다. 북한은 핵억지력 확보를 체제 생존과 연결해 생각하기 때문에 효과 유무는 북한 대외무역의 90퍼센트를 차지하는 중국의 태도에 달렸다. 미국 국방문제연구센터(C4ADS) 조사에 따르면, 중국은 과거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에 대해 평균 이하의 이행률을 보인다.

실제 중국 정부는 제재로는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왔을 정도로 회의적이다. 북한의 존재가 중국에 불리하지 않고, 역사적으로 축적된 우호 관계 역시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제재로 문제를 풀지 못할 경우 시간 낭비만 하고 중국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 본다.

제재는 대중 무역의존도를 증가시켰고, 실제 무역 규모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해외노동자 파견 등 인적 교류 역시 꾸준히 증가해왔다. 대북제재의 효용성 자체를 의심하는 세간의 비판에 무게감이 실릴 수밖에 없다. 러시아 역시 비슷한 입장인데, 지난 8월 16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 압박 시도는 한계에 달했으며 한반도 위기는 추가적 대북 제재가 아닌 정치·외교적 협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소리 없는 폭탄

본래 미국의 대북 정책은 ‘제재’ 그 자체다. 2006년 북한 핵실험 이후엔 유엔 차원에서 제재를 확대하고, 점차 그 강도를 높이고 있다. 최근 제재 조치는 그 최대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점차적인 정세 악화와 전쟁 위기, 중국으로의 경제 의존도 강화 등 제재 위주 조치는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코리아 패싱’을 심화시킬 뿐이다.

역사적으로 제재는 ‘소리 없는 폭탄’이었다. 예컨대 1991년에 이뤄진 유엔의 이라크 제재는 후세인 정권을 약화시키지 못했고, 이라크 민중들의 생존만을 파괴했다. 이라크 경제가 망가지자 식량과 의약품 부족해졌고, 5년 동안 최소 10만 명에서 최대 23만 명의 이라크 어린이가 사망했다.

제재가 큰 부작용을 낳는다는 사실은 국제적인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1994년부터 2012년까지 유엔의 경제제재 65개를 분석한 연구 프로젝트인 표적제재콘소시엄(TSC)에 따르면 제재의 영향으로 부패 심화(62퍼센트), 정권 강화(53퍼센트), 인권 유린(39퍼센트) 등이 나타났다. 특히 제재 대상국이 이른바 ‘비민주주의 국가’일 경우 독재자 권력 강화로 귀결됐다. 추종 집단에게 물품을 밀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권력자들이 제한된 물품의 분배까지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에 대해서도 평범한 주민들의 생존만 위협할 것이란 우려는 꽤나 타당하다.

민간인의 피해를 줄이고, 최고위층에게 타겟을 맞추겠다는 취지로 고안된 스마트 제재도 성공 사례가 거의 없다. 때문에 유엔 내부에도 반대 의견이 존재한다. 지난해 2월 대북제재 전후 존 깅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실 국장은 “북한 주민에게 악영향이 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며 “어떠한 추가 제재도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북한 체제 붕괴를 목적으로 활동하는 단체들에 대한 지원을 부활시켰다. 박근혜 정부가 행한 ‘개성공단 폐쇄’ 역시 상황을 악화시키고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입지를 추락시켰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스마트 제재’가 이룬 것은 거의 전무하다.
 
 

‘한반도 비핵화’ 요구 없이
대중적 평화운동도 없다

그렇다면 현 상황에서 남한의 평화운동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할까? 무엇보다 평화주의와 대중운동 노선을 확고히 하고, 남북한과 중·미·일 등 주변국들이 주고받는 전쟁연습과 사드 배치, 일련의 미사일 발사로 이어지는 대치 국면을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 날카로운 말싸움이 가져오는 극도의 긴장 국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결국 한반도에 사는 모든 이들의 평화를 위협하고 전쟁 위기만 고조시킬 뿐이다.

불행히도 문재인 정부는 한편으로는 대화를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사드 배치를 강행하고 있고, 8월 26일 북한이 일본 상공을 통과하는 중거리탄도미사일(IRBM)급 미사일을 발사하자 사흘 후인 29일 군에 “북에 대한 강력한 응징 능력 과시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불과 3일 전 "미사일이 아니라 방사포"라며 축소 발표한 것과 달리 널뛰기하는 모습이다.

문제는 사회운동의 역할과 입장이다.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선 광범위한 대중운동이 절실히 요구된다. 하지만 남한 반전·평화운동 내에는 풀어야 할 심각한 쟁점이 있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를 계기로 평화운동 연대체 내에선 갈등이 불거진 바 있다.
 

광복절을 앞두고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자민통 진영의 통일운동 연대체)을 중심으로 ‘8.15 범국민평화행동 추진위’(이하 8.15추진위)가 제안됐었다. 8.15 범국민행동은 ‘주권회복과 한반도 평화실현’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졌다. 사회진보연대와 평통사(평화와 통일을 사랑하는 사람들) 등 일부 단체들은 범국민행동의 주요 요구로 “전쟁연습 중단, 핵·미사일시험 중단으로 평화협상 개시!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진보연대를 비롯한 자민통 계열의 단체들은 “주 타격 대상은 미국의 군사적 압박이고, 북한의 핵무기는 이미 현실”이라는 이유로 위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고도화되고 실전 배치된 조건에서 <북핵 불용>, <한반도 비핵화>를 대화와 협상의 전제조건이나 목표로 삼는 주장은 현실성도 없고 상식에도 맞지 않다”(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교양자료 중)는 게 그 이유다. 한반도 비핵화 요구는 북핵에 대한 선(先) 무장해제 요구이니 “공정하지 않”고, 미국과 러시아 등의 핵무기가 수천 개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 핵무기들의 철폐가 전제되어야 북핵도 철폐할 수 있다는 거다. 북핵·미사일 능력 고도화가 한반도에서 미국이 마음대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는 근거가 미약한 주장도 덧붙였다.

해당 단체들의 이와 같은 주장은 북핵·미사일을 현실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주장으로는 한반도 주변국들의 핵군비 증강 가열을 막을 수 없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전술핵무기 재배치를 당론으로 채택하거나, 이낙연 국무총리가 공공연하게 핵잠수함 도입을 주장한 것, 미사일 사거리나 탄두 중량을 높이자는 등의 남한 내 핵군비 증강 논리를 펴면 시민들이 평화로운 삶을 살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입장을 견지할 수 없게 된다. 또, 진보세력이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군사 경쟁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북 정권이 자국을 보호하기 위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하물며 일본의 재무장이나 남한의 핵무장에 대해 어떻게 저항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한반도 포함한 전 세계 비핵화’라는 어정쩡한 문구가 8.15추진위 요구안의 타협안으로 제시됐었다.

자민통 진영은 ‘한미전쟁연습 중단, 북핵·미사일시험 중단으로 평화협상을 개시하라’는 문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 시기에 미국을 규탄하고 비판하는 것에 중심을 두어야지 북의 미사일시험 중단을 요구로 할 수 없다”며, 양비론을 취할 순 없다는 게 이유였다. 지극히 안이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작금의 정세는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이 격화되는 가운데, 언제 어떻게 우발적인 사고에 의해 군사적 충돌이 이어질지 모르는 상황 아닌가. 이런 불안정한 정세는 시민들의 불안을 가중하고, 동아시아의 평화 전체를 위협할 뿐이다. 미국과 북한, 남한을 비롯한 한반도 문제와 연결된 모든 당사국들이 군사 행동을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라고 요구하는 게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 아닐까?
 
 
물론 수십 년간에 걸친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군사적 압박, 경제 제재 등은 북핵·미사일 개발의 근본 원인이다.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는 한반도 군사 갈등을 낳았고, 사회운동은 공히 이를 비판해왔다. 평화운동이 한반도 비핵화를 주장해야 한다고 여기는 단체들이 8.15추진위에 참여했던 것도 ‘대북적대정책 폐기, 한미전쟁연습 중단,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사드 가동 중단과 배치 철회, 한일 위안부합의 및 한일군사협정 철회’ 등의 요구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한반도 비핵화’ 요구는 이번 8.15 대회 기조에 반영되지 않았다. 맹목적인 북핵 옹호 논리가 강하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이는 평화운동의 대중화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다. 대다수 시민들, 노동자운동 전반의 공감을 얻기도 어려울 것이다. 전 세계 어떤 반전·평화운동도 자국의 ‘핵무장’을 옹호한 바 없다.

핵무기는 인류의 공멸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사회 파괴적이다. 전쟁무기 개발이 아니라 민중의 생존을 옹호하는 체제를 우선하고 촉구해야 하는 사회운동의 방향과도 동떨어져 있다. 세계 평화와 민중의 생존을 위해 전 세계의 비핵화를 원칙으로 삼는 게 평화운동의 당면한 원칙이란 사실에 동의한다면, 나아가 평화운동의 대중화를 위해선 국가주의·민족주의를 벗어난 보편적인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한다면, ‘한반도 비핵화’는 남한 평화운동이 수용해야 할 슬로건이 될 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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