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6/10 제21호

북한 인권 운동의 아이러니

북한 인권 담론의 모순과 우리가 나아갈 길

  • 김유미 편집실 기획국장

핵실험과 인도주의적 지원

2005년 최초 발의된 후 11년 동안이나 국회에 계류되었다 통과된 북한인권법이 지난 9월 4일부터 시행되었다. 북한인권법 제1조는 법안이 ‘북한 주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 목적을 밝히고 있다. 법안에 따르면 남한 정부는 통일부 산하에 북한인권기록센터를 두어 북한 인권 관련 자료를 수집 및 기록하고, 이 자료를 법무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 이관하여 이후에 인권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처벌할 근거로 삼는다. 또한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하여 북한 인권 증진을 위한 각종 사업을 지원한다. 

공교롭게도 8월 말에서 9월 초는 태풍으로 인해 함경북도 두만강 유역에 사상 최악의 수해가 발생한 시기였다. 유엔은 이번 홍수로 북한 주민 138명이 사망하고 400명이 실종되었으며 12만 가구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겨울이 찾아오면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다. 막 시행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수해 복구 지원이 아낌없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지만, 9월 9일 북한이 5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상황은 복잡하게 흘러갔다. 여당 원내대표는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전면 중단해야 국제사회의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고, 통일부는 민간단체의 대북 수해 지원조차 ‘부적절한 행동’이라며 통제하고 나섰다. 

정부와 여당의 태도는 국제사회의 인권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인도주의적 지원에는 어떤 조건도 없어야 하며, 제재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원칙이다. 일련의 상황이 보여주는 것은 ‘북한 인권’이라는 것이 정치적인 판단이 깊이 개입되어 있는, 매우 모순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이를 증명하듯 국내의 북한 인권 단체들은 수해 지원을 둘러싼 논란에도 침묵을 고수하며 그 이름을 무색하게 했다. 
 
 

북한 인권 말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북한인권법 통과는 큰 흐름의 일부일 뿐이다. 2011년에 국가인권위원회가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국가 정책 권고안’을 제출하고, 2015년에는 유엔 인권위원회 결의안에 따라 ‘유엔북한인권 서울사무소’가 종로구에 설치되는 등 북한 인권을 한국 사회의 공식 의제로 만들기 위한 움직임은 지속적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북한 인권 단체들의 활동이 있었다. 

이준태의 연구(<국내 북한 인권 NGO의 형성, 이념과 활동에 관한 연구>, 2015)에 따르면 이들의 뿌리는 의외로 전통적인 보수 단체들이 아니다. 1996년에 출범한 최초의 북한 인권 전문 단체인 북한인권시민연합은 군부독재 시절 엠네스티 한국지부를 중심으로 인권운동을 하던 이들이 주축이 되어 세웠다. 1999년에 출범한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반제국주의와 통일을 지향하던 소위 ‘NL계열’ 활동가들이 전향해서 만든 단체이다. 이들은 애초 북한의 혁명노선과 주체사상을 따르며 활동했지만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붕괴와 1990년대 중반 북한의 식량난을 목격한 후 전향하여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리고, 북한 민중이 해방되는’ 것을 목표로 북한민주화네트워크를 창립했다. 

2000년대 초에는 탈북 이주민들이 북한 인권 단체의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2003년에 설립된 북한민주화운동본부(현 엔케이워치)는 탈북 이주민들이 만든 북한 인권 단체다. 그해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처음 표결된 북한인권결의안에 남한 정부가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이유로 ‘불참’ 입장을 밝힌 것이 단체 설립의 계기가 되었다. 설립의 주축이 되었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북한 정부와의 협력을 추구하는 남한의 진보진영 및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북한 당국 편”으로 인식하며 현실적인 위기감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탈북 이주민들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자유북한운동연합, 북한전략센터, 자유북한방송 등 다양한 단체를 만들어 활동의 폭을 넓혔다. 
 

이준태는 1990년대 후반의 국내 정치적 배경이 북한 인권 운동을 ‘운동’으로서 등장하게 하는 요인이었다고 분석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하에 북한에 대한 포용 정책이 추진되며 국가가 적극적인 체제 대결 행동을 하지 않자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보수 세력이 언론과 시민사회 차원의 활동을 강화했는데, 북한 인권 운동도 동일한 맥락 속에 있다는 것이다. 대중적 지지를 통해 활동 자원을 마련하기 힘들었던 이들 단체는 미국민주주의기금(NED)이나 미국 보수재단들의 금전적 후원을 활동의 원천으로 삼았고,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며 차츰 국내에서도 정부의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으며 성장하게 되었다. 
 
활동 방법론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북한 인권 단체들은 기본적으로 반공·반북주의의 관점을 공유한다.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인권 침해의 원인은 북한 체제(독재 및 사회주의)에 있으며, 해결을 위해서는 현 정부를 무너뜨리고 체제를 민주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 기본 논리다. 이에 따라 북한 사회에 존재하는 가시적인 불의에 관한 정보를 수집 및 선전하여 북한 체제의 정당성 없음을 폭로하는 것을 주요 활동으로 삼는다. 또한 국제연대를 통해 북한 정권을 압박하기도 한다. 이른바 ‘낙인찍기와 망신 주기’ 방식이다. 
 

북한 인권 담론의 자기모순

북한 사회의 인권 문제를 이해하고 개선하는 데에 남한이 중요한 주체가 될 수 있으며 그래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른바 ‘북한 인권 운동’ 세력이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취하는 접근법은 상당히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우선 이들은 북한 인권 문제의 원인 중 대내적 요인만을 선택적으로 취하고 있다. 국제정치 질서와 분단 상황의 모순에 대해 말하지 않고 북한 인권 문제가 북한 당국의 문제일 뿐이라고 하는 것은 일면적 해석이다. 분단 이후의 체제경쟁과 그에 따른 군비경쟁 속에서 남북한은 반인권적·억압적인 사회를 구성하고 정당화해왔다. 또한 미국의 군사적 위협, 경제 제재,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고립 등의 국제적 조건은 북한의 정치적·경제적 현실에 큰 영향을 미치며 사회 모순을 심화시켜 왔다. 

실효성의 문제도 있다. 고립된 국가인 북한을 외부에서 정치적으로 압박하고 제재하는 활동이 과연 북한 주민들의 인권 신장에 도움이 되는가? 북한 정권은 북한 인권에 대한 외부의 비판과 개입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지만, 그것을 ‘반공화국 책동’이라 규정하며 국가 안보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인권 개선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또한 현재 북한 인권 운동은 북한 사회 내부의 활동과 결합하거나 북한 시민의 인권 개선 역량을 높이는 데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북한 인권 운동이 때로 체제 붕괴론의 양상을 띠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위험한 일이다. 

무엇보다 북한 인권 담론의 확산은 미국의 군사·안보 전략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한다. 재단을 설립하여 간접적으로 북한 인권 NGO의 활동을 지원하는 미국 인권외교의 방식을 한국 정부 역시 북한인권법을 통해 그대로 들여왔다. 이번 함경북도 수해와 북한 5차 핵실험을 둘러싼 논의에서 확인할 수 있듯, 북한 인권 담론은 북한 당국을 압박하는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때로 인권의 기본 원칙조차 거스르며 반인권적으로 작동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북한 인권 담론과 활동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더욱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해 남북한 민중의 평화와 인권을 위협한다는 것이다. 
 
 

한반도 인권 개선의 조건은?

북한 인권 운동 세력과 남한 정부는 자신의 사회가 지닌 문제에는 눈감은 채 북한 인권 담론을 활용해 북한 정부를 압박하기에 급급하다. 북한 인권이라는 문제 설정은 그 자체로 북한이라는 한 국가의 인권 문제를 도구화·대상화하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에서 진정으로 남한의 역할을 고민한다면, 남북한의 인권이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한반도의 인권을 동시에 향상시킬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 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을 비롯한 단체들과 몇몇 연구자가 제안하는 ‘한반도 인권’이라는 문제의식은 그 단초가 될 수 있다. <‘북한인권’에 대한 진보적 인권운동의 고민〉(박석진, 2009)에 의하면 한반도 인권이란, 남북한이 인권 문제의 상호의존성을 인정하고 그 해결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지금의 분단 현실 혹은 분단 이후의 한반도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고민”을 해 나가자는 실천적인 제안이다. 

보수적 북한 인권 단체들은 ‘햇볕정책’으로 대표되는 지난 대북 포용 정책이 북한의 인권 상황을 바꾸지 못하고 오히려 핵무장을 도운 ‘퍼주기’에 불과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북한 인권 운동’이라 명명되는,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을 빌미로 한 대북 제재·압박 정책 역시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하기보다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 사실 지금의 국제 질서가 유지되는 중에는, 어떤 정책적 조치로 북한 인권 개선을 이끌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한반도 인권 개선의 방법 이전에, 그 조건을 물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북한에 대한 한미일의 군사적 압력을 감축하여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일이다. 평화와 인권은 불가분의 관계이고, 군사적 긴장과 체제 경쟁이 인권을 억압해왔던 한반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반전·반핵·평화를 원칙으로 하는 대중운동의 활성화야말로 한반도 인권의 향상을 위해 가장 시급하고도 결정적인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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