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8/01 제36호

채용시험 통과가 정규직의 자격조건?

경쟁적 시험 제도와 능력주의

  • 박상은
2016년 12월. 현직 공무원과 교사, 그리고 공무원과 교사를 준비하는 ‘공시생’들의 반대에 “교육공무직원의 채용 및 처우에 관한 법률안”(교육공무직법)이 철회됐다. 지난 9월 서울교통공사에서는 정규직들이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반대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전교조 내에선 기간제 교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불거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문으로 상징성이 매우 큰 인천공항에서도 정규직의 거센 저항이 있다. 지난 11월 23일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방안 공청회’(이하 인천공항 정규직화 공청회)에서 정규직 직원들이 피켓 시위를 하고, 야유와 막말을 하는 일들도 벌어졌다. 지난한 싸움을 거쳐 비정규직 문제 해결의 첫발을 디디려는 시점에 왜 노동자 간 갈등이 같은 형태로 반복되는 걸까.
 

젊은 정규직들은 왜 반발하는가

적절한 보수를 받고 정년이 보장되며, 일정한 복지를 누릴 수 있고 노후준비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직장은 한국에 드물다. 외환위기 이후 줄곧 그랬다고 말하기엔 최근 10년 안의 변화가 작지 않다. 통계청 사회조사를 보면, 2009년엔 48.3퍼센트가 자식 세대의 계층 상승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2017년 조사에서는 29.5퍼센트로 급격히 줄었다. 공무원 시험 지원자는 2012년 36만 명에서 4년만인 2016년 70만 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높은 경쟁률의 공기업 입사와 공무원·교원 임용을 위해서 젊은 세대들은 평균 2년 이상, 길면 4~5년을 투자한다. 
 
경제지와 보수신문들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인해 기존 직원들의 처우가 악화될 수 있다는 기사를 지속해서 내보냈다. 모 공공기관에서는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인해 몇 년간 기존 직원 임금을 동결한다더라는 ‘카더라 통신’도 빠지지 않았다. 이를 접한 정규직 직원들의 불안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경제

11월, 인천공항 정규직화 공청회에서는 젊은 정규직들의 이데올로기가 더 확실히 드러났다. 이미 여러 사설과 칼럼에서 이에 대한 분석이 적지 않게 나왔다. 젊은 정규직들은 자신들이 공개채용을 통과했기 때문에 스스로 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기간제 교사나 공공기관의 계약직 직원은 ‘인맥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며 자기 확신을 강화한다. 그러나 이는 편견으로 인해 한쪽 정보만을 강하게 인식하는 것인데, 유사 경력이 있어 실제로는 업무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이 계약직으로 연고 채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실은 정규직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조차 자신들이 통과한 시험이 업무 능력에 대한 검증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실제 일을 하다 보면 채용시험을 위한 공부와 훈련이 실제 업무와 크게 연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이들은 공개채용을 통과하기 위해 청춘을 희생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깝게 청춘을 허비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 이것이 핵심이다. 

이들 중에는 1-2년간 저임금으로 일하며 시험 준비를 위한 자금을 모았던 사람도, 집안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은데도 무리해서 가족의 지원을 받았던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시험제도와 능력주의

누구나 알고 있듯이 실제로 취직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영어 실력이나 자격증 수가 아니라 경제 상황과 경제구조이다. 시험은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을 뽑기 위함이라기보다 호황기가 종료되고 취업자 수보다 일자리가 적어지면서 만들어진 제도다. 교원임용시험이 출현한 과정이 이를 잘 보여준다. 국가는 오랫동안 부족한 교원 수급을 위해 사범학교 졸업생을 의무 복무토록 하거나 우선 발령을 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필요한 교사인력보다 국공립 사범대 졸업생 수가 많아져 발령 적체가 심해지고, 1990년 10월 법원에서 국립대 졸업생의 우선 임용은 특혜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 판결을 계기로 문교부는 1991학년도부터 바로 교원임용시험을 실시했다. 일자리 문제를 경쟁채용시험 도입을 통해 해결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 경쟁채용시험에 통과한 순서가 그 업무에 필요한 능력을 갖춘 순서는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경쟁해서 일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면, 시험이 그나마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시험제도의 단점을 해결하겠다며 도입된 다른 여러 제도가 오히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상위계층에 유리하게 작동했음을 보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시험이 공정하다는 믿음이 곧 시험을 통과한 이들과 통과하지 못한 이들의 서열을 당연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시험을 통과한 이들의 특권, 통과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차별마저도 공정한 것이 된다. 이런 점에서 시험은 불평등과 차별을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제도이다. 불평등을 해결할 의지가 없는 국가가 ‘진입장벽’으로서 수많은 시험제도를 만들어 낸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도 타인의 것을 
빼앗을 권리는 없다

이경숙은 《시험국민의 탄생》에서 서열이 보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갈수록 폭력적 성격을 띠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타인의 것을 부수거나 빼앗아버리는 이 폭력성은 ‘타인의 것’의 가장 핵심, 즉 대상 타인만이 유일하게 소유하는 타인의 인간적 권리마저 서열이 높은 자가 마음대로 지배해도 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정규직 전환 논의과정에서 젊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쏟아낸 말들은 모욕적인 것들이었다. “무임승차” “낙하산들”이라는 비하, “공기업 입사를 날로 먹겠단 얘기냐”, “힘들게 들어온 회사가 더러운 짬통이 된다”는 말까지 나왔다. 모든 말들은 ‘너희는 우리와 같은 권리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자격 없는 이들을 써왔단 말인가? 왜 자격 없는 이들로 인천공항공사의 85.7퍼센트를 채우고, 자격 없는 기간제 교사에게 담임을 맡겨왔단 말인가? 이들이 비정규직인 이유는 자격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본래 정규직으로 써야 하는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청춘을 희생했다고 해서, 다른 이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인격을 모독할 권리는 없다. 다른 이들의 권리를 짓밟으며 자신의 고생에 대한 보상심리를 만족시켜서는 안 된다. 적정한 임금·고용안정성·일정 정도의 노후보장 등 노동자로서, 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위해 ‘2~3년간의 시간 낭비와 고통’을 겪는 것이 필수적 자격조건으로 여겨져서도 안 된다.  
 

무엇을 해야 하나

‘시험제도는 공정하며,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에게 특권을 보장한다’는 능력주의·서열주의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정부는 처음부터 정규직들의 ‘공정 채용’ 여론을 상당히 의식하고 있었고, 7월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서 이미 ‘경쟁 채용’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다. 또한 정책 추진 과정에서 생기는 갈등을 협의기구에 맡겨 해결해 온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 스타일을 고려했을 때, 갈등 조정을 위해 정부가 나설 일은 없어 보인다. 결정적으로 현재 정부에는 공정 경쟁 논리를 뛰어넘을 사상이 없다. 귀족주의에 맞선 능력주의, 결국 이것이 최선이라고 한국의 엘리트들 대부분은 믿고 있다.  

여기서 젊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포괄하는 정규직 노동조합, 특히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은 연대의식을 보여 왔던 민주노총 소속 노동조합의 역할이 작지 않다. 대학이 재사회화 기능,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시민교육의 장이라는 기능을 거의 잃어버린 상황에서 성인이 되어 평등과 연대의 가치를 배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조직은 현재 노동조합뿐이다. 나의 임금과 노동조건이 청춘을 잃어버린 대가라고 생각하는 젊은 정규직들에게 노동자운동을 통해 다른 가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결국은 이미 곳곳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시험을 통과한 이들에게 특권이 보장되는 것이 당연했던 이 사회의 규칙을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더 많은 일자리를 괜찮은 일자리로 만드는 게 첫 번째 과제다. 이를 통해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의 격차가 줄어든다면, 취업경쟁도 점차 완화될 것이다. 그리고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더 많은 일자리를 괜찮은 일자리로 만들고, 노동자 간 격차를 축소하는 첫 단계다. 시험으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이 사회의 질서를 변화시킬 시작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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