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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9 제32호

인천공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의 희망을 만든다

꾸준함과 새로움으로 조직화 사업 박차

  • 한재영
인천공항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 방문과 간접고용 비정규직 1만 명 정규직 전환 선언 이후 현장은 5월 12일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합원 숫자만 보더라도 5월 12일 이후 약 100일여 동안 총 1000명의 조합원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이하 지부)에 가입했다. 인천공항 비정규직은 8월 현재, 약 7500명 중 4000명(민주노총 약 3400명, 비민주노총 약 6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해 조직률 50퍼센트를 넘겼다. 제2여객터미널 개항 준비로 채용된 노동자, 노조가 없던 용역업체 노동자, 지부 산하 지회가 있지만 노조에 가입하지 않았던 용역업체 노동자 등 다양한 경로로 조합원들이 늘어났다. 지금도 노조 가입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조합원 확대와 함께 지난 17년 간 켜켜이 쌓여있던 간접고용의 ‘적폐’도 폭발하고 있다. 업무 능력보다 관리자에게 잘 보여야 보장받던 높은 연봉과 빠른 승진, 일관성도 이유도 없이 근무체계가 바뀌어 신체 리듬이 망가져도 참을 수밖에 없었던 불합리한 지시, 대체근무자를 본인이 구하지 않으면 마음대로 쓰지도 못하는 연차 등 현장에는 많은 문제가 존재했다. 새로 가입한 조합원들은 이러한 불만과 개선요구를 노동조합을 통해 분출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당신’에서 이제 ‘만나면 좋은 친구’가 됐다.
 

5월 12일

아무리 대통령 방문과 정규직 전환 선언이 있었다지만 노조의 불모지(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은 무려 2퍼센트다!)인 한국에서, 어떻게 3개월 만에 비정규직 1000명이 노조에 가입할 수 있었을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는 5월 12일 이전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인천공항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비율이 90퍼센트에 육박하는 곳이었다.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는 2001년부터 중요한 조직대상 사업장이자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해결의 출발점으로 인천공항을 주목해왔다. 그 결과 2008년 지부가 설립된 후 지금까지 총 3차례, 8년의 기간 동안 ‘전략조직사업’으로 집중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 5개 지회, 700명으로 시작한 지부는 10년 만에 17개 지회, 3400명으로 다섯 배 성장했다.

2018년 제2여객터미널이 개항하면 ‘인천공항 1만 비정규직 시대’가 열린다. 공공운수노조는 올해 초부터 인천공항전략조직사업단(이하 사업단)을 결성하고 다시 한 번 전략조직사업을 시작했다. 지부 현장간부들은 전략조직사업의 경험, 지부의 파업투쟁의 성과를 기반으로 비정규직 1만 명을 조직하겠다는 결의를 밝히고 있다. 조직화 방향과 대상도 현장간부, 조합원의 토론을 거쳐 결정했다.
 

꾸준함·새로움·소통·맞춤

정규직 전환 국면을 맞이한 지금까지 이번 전략조직사업의 키워드는 꾸준함·새로움·소통·맞춤 네 가지다. 

첫째 꾸준함.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지부 활동에서 미조직 사업의 중요성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월 1회 이상 꾸준하게 소식지를 발간했다. 약 30명의 간부들이 5000부 가량의 소식지를 작년 10월부터 거르지 않고 배포해왔다. 거대한 비정규직의 바다에 돌을 던지는 느낌이었지만, 꾸준함은 결국 신뢰로 돌아왔고 이제 현장에서는 정규직 전환 소식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하는 매체로 공신력을 인정받는다. 공사 사장님이 애독자라는 소문도 있다.

둘째, 새로움. 10년 넘게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기존의 방식으로만 접근하는 건 무모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인천공항 주요 출퇴근 노선 버스 15대에 광고를 게재했다. 첫 반응은 의외로 조합원들로부터 나왔다. 미조직 노동자 상담을 권하는 버스광고를 보고 조합원으로써 자부심을 느낀다는 반응이 곳곳에서 전해졌다. 물론 비조합원들의 문의도 3~4배 늘어났다. 버스광고도 30대로 늘어났다.

셋째, 소통. 미조직 노동자들이 쉽게 접근하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통로가 필요했다. 지부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계정을 개설했고 버스광고, 소식지 등 가능한 모든 홍보 수단을 동원해 친구를 모았다. 2016년 10월 시작해 현재까지 1400명의 친구가 생겼다. 24시간 편리하게 상담을 진행하는 수단으로 노조 결성의 계기를 몇 차례 만들어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맞춤. 인천공항에는 수십 개의 직종이 있다. 그 중 가장 큰 부문인 보안검색대 노동자들은 이용객을 상대하는 상황과 업체 내부통제 때문에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20대 젊은 층이 많은 특징에 맞춰 ‘진상승객’, ‘임금 중간착취’ 같은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만화선전물을 배포했다. 새벽 6시 출근하는 공항노동자들의 패턴에 맞춰 선전전 참가자들은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5시 반까지 공항으로 나왔다. 이런 수고를 노동자들은 알아봤고 우리는 신뢰를 얻어나갔다.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다

사업단은 조직 확대와 간접고용 철폐의 계기로 ‘정규직 전환’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 조합원 설문조사로 요구를 모으고, 범야권 대선후보에게 인천공항 비정규직 문제해결에 찬성한다는 정책질의 답변을 받아냈으며, 인천공항 노동자들에게 알렸다. 아직 정규직 전환 국면이기에 평가하고 결론짓기에는 이른 시기이다, 하지만 전략조직사업으로 1700명이던 조합원을 2400명으로 늘려 대표성을 확대하고, 새로운 현장 조직화 방식을 개발하는 등 경험을 쌓아두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본다. 아마 5월 12일 이후 국면을 돌파하는 게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의 첫 사례로서 인천공항은 전 국민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이목과 지원도 집중되고 있다. 그 관심과 지원을 밑거름으로 조직률 50퍼센트를 돌파한 지부의 어깨가 무겁다. 비정규직 확산 20년, 정규직 전환 선언 100여 일,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 모델 수립’, ‘간접고용 적폐 청산’, ‘민주노조 운동의 혁신’이라는 시대의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 1만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한 걸음 나아갈수록 고민도 깊어진다. ●
 
필자 소개

한재영 | 인천공항 전략조직사업 성공을 위해 영종도로 이사까지 갔다. 제대로 된 인천공항 정규직 전환 대책회의 대변인이자,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전략조직사업단 조직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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