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기획
  • 2017/07 제30호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고대사 인식은 왜 잘못됐나

쇼비니즘 역사 서술의 위험을 인식해야 한다

  • 임동민
역사학계와 시민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논란 끝에 임명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고대사 인식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역사 연구자의 대다수는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운동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도종환 장관의 노력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도종환 장관의 고대사 인식에 대한 우려는 진영 논리의 결과가 아니다. 도종환 장관의 고대사 인식이 유사역사학과 매우 밀접하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다.
 
유사역사학과 밀접한 고대사 인식이 왜 문제일까? 도종환 장관의 발언을 통해 그의 고대사 인식을 확인해볼 수 있다. 팩트 체크는 역사 연구자의 숙명과도 같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장관의 발언과 해명 자료 사이의 모순이 없는지 따져보고, 임나일본부 문제, 《삼국사기》 신빙성 문제, 낙랑군 위치 문제를 차례차례 살펴보도록 하겠다.
 
 

앞뒤 안 맞는 도종환의 말

첫째, 도 장관의 발언과 해명자료 사이는 매우 모순적이다. 도 장관은 자신의 고대사 인식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자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그는 “‘유사역사학 추종자’ 등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과 낙인, 가정에 근거한 우려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2015년 국회 동북아역사왜곡특별위원회 회의록에 기록된 도 장관의 발언은 자신의 해명과 충돌한다. 당시 특위는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집이 일본 식민사학 및 중국 동북공정을 그대로 따랐다고 문제 제기했다. 회의록에 따르면, 도 장관은 “이덕일 교수님이 ‘고구려 모본왕 2년에 한나라 북평, 어양, 상곡, 태원을 공격했다’는 중국 후한서에 나오는 것하고 그 다음에 ‘태조대왕이 요서에 10개성을 쌓아서 한나라 군사를 방비했다’ 이런 부분들이 만약에 지도로 표시되면 고구려 영역이 훨씬 더 서쪽으로 간다, 이런 주장을 하고 계시거든요 … 그렇다면 이런 것들이 반영된 지도는 5세기 초 고구려의 지금 있는 이 지도보다 훨씬 더 서쪽으로 갈 지도가 만들어질 텐데”라고 말했다. 이덕일 소장 등 유사역사학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고대 영토를 더 크게 그릴 것을 희망한 셈이다.
 
회의록에는 유사역사학의 주장에만 기대 학계의 연구 성과를 일본 식민사학이라고 비판하는 분위기도 확인된다. 당시 특위는 동북아역사지도집의 낙랑군 위치가 일본의 식민사학이나 중국의 동북공정 연구와 조금이라도 일치하면 무조건 비판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민족적 목적의식이나 선입견을 전제한 뒤에 특정 선행연구를 배제하는 방식은 역사학은 물론이고 모든 학문 영역에서 허용되기 어렵다. 게다가 문제가 되었던 낙랑군의 위치는 일본 식민사학자들에 앞서 이미 조선후기 실학자들도 한반도에 있었던 것으로 고증했다.
 
도 장관의 해명자료에는 “특위에서 고대사 연구가 진영논리나 배타성을 극복하고, 상대방을 이념공격으로 무력화시키는 비학문적 태도를 넘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나온다. 특위 회의록의 도 장관 발언을 종합하면, 장관은 고대사학계가 진영논리와 배타성에 입각한 이념공격으로 유사역사학을 무력화시켰다고 인식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인식은 유사역사학의 주장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위와 같은 해명은 오히려 도 장관이 얼마나 유사역사학에 치우쳐 있는지 스스로 증명하는 발언으로 보인다.
 
도 장관은 “역사문제는 … 정치가 좌지우지 할 영역이 아니”라며, “특정 학설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거나 이를 정부정책에 반영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회의록의 도 장관 발언에는 “재야 사학자들이 주로 주장하는 게 중국 역사서를 근거로 해서 주장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도 충분히 귀를 열고 받아들여서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대상에 넣어 주시기를 바라고요”라는 발언도 확인된다. 따라서 도 장관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된다면, 동일한 논리로 국립 박물관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우려가 존재한다.
 

허수아비 때리기

둘째, 회의록에는 도 장관의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잘못된 이해가 보인다. 예를 들어, “(임나라는 지명이) 《일본서기》에는 나오지요? 그러니까 《일본서기》에 나오는 것을 근거로 이렇게 여러 가지 연구들을 진행하시는 것은 아닌가”라는 발언이 있다. 이것은 《일본서기》 사용 자체를 터부시하는 태도이며, 유사역사학의 접근방식이다. 하지만 현재 한국 학계에서는 《일본서기》에 대한 철저한 사료비판을 통해 임나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즉, 《일본서기》의 왜곡을 분명히 비판하면서, 사료의 이면에 남은 진실의 흔적을 탐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서기》에 보이는 ‘임나일본부’는 백제의 군 사령부, 또는 가야와 왜의 긴밀한 교류를 보여주는 흔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도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이 임나일본부설에서 임나를 가야라 주장했는데, 일본의 연구비 지원으로 이 주장을 쓴 국내 역사학자들 논문이 많다”고 하여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동시에, 국내 역사학자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은 이미 많은 비판을 받았다. 현재 한‧일 학계에서 과거의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학자는 없다. 임나일본부설과 별개로, 임나라는 지명은 《삼국사기》, '광개토왕비' 등에도 등장하며, 한‧일 학계에서는 임나를 가야 지역으로 비정하고 있다. 임나라는 용어가 《일본서기》에 나온다고 하여 ‘임나’를 언급하기만 해도 임나일본부를 주장하는 식민사학자처럼 몰아가는 것은 잘못됐다. “상대방을 이념공격으로 무력화시키는 비학문적 태도”다. 이것은 임나일본부 문제에 대한 유사역사학의 전형적인 접근 방식이다.
 

교차 검증 필요없다?

셋째, 회의록에는 ‘우리 기록’과 ‘남의 기록’에 대한 도 장관의 인식을 보여주는 발언도 확인된다. 도 장관은 “(《삼국사기》에) 성을 쌓았다고 그랬잖아요? … 《삼국사기》에 나오는 기록 아니에요? 그런데 왜 그걸 인정을 안 해요? 우리 거는 인정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다른 것들까지 고려해서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런 말씀이신가요? 이해할 수가 없네요.”라고 발언했다. 우리 기록인 《삼국사기》는 ‘인정해야만 하는 기록’이고, 중국과 일본의 기록은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기록’이라는 인식이 확인된다.
 
역사학 연구방법론의 기본은 사료 비판이다. 사료 비판이란, 사료 작성자와 작성목적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보고, 다른 자료와 교차검증을 하면서 사료의 내용을 검토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것’이라서 믿고, ‘남의 것’이라서 믿지 않는 태도는 역사학에서 결코 있을 수 없는 비학문적 태도다. 현재 고대사학계에서는 다른 자료와의 교차검증을 통해 《삼국사기》의 기록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다.
 
 

무비판적인 유사역사학 인용

넷째, 도 장관은 낙랑군을 평양으로 표시한 지도에 대해서도 엉뚱한 비판을 가한다. “‘독사방여기요’ 17권을 보면 청나라 당시 영평부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요. 이곳은 현재 하북성 노룡지역입니다. ‘수나라에서 노룡현으로 개칭했다. 또 조선성이 영평부 북쪽 40리에 있는데 한나라 낙랑군의 속현이다’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는데요.”
 
도 장관의 논리는 간단하게 말해 낙랑군에 속했던 조선현이 중국 하북성에 있었으므로, 낙랑군도 한반도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유사역사학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그러나 낙랑군은 고구려에 의해 축출된 이후, 중국으로 이름만 옮겨갔다. 당시 중국은 위진남북조 시대의 혼란기였으므로, 특정 지명이 원래 있던 곳에서 전혀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일이 빈번했다. 이것을 ‘교군’, ‘교현’이라고 한다. 위 기록에 나오는 ‘조선’이라는 지명도 ‘교군’, ‘교현’의 한 사례로 생각된다.
 
더 큰 문제는 도 장관과 유사역사학의 주장이 사료를 왜곡한 결과라는 사실이다. 도 장관이 인용한 기록의 뒷부분에는 조선현이 원래 한반도에 있었는데 중국 북위의 군주가 조선민을 이주시켜 중국 쪽에 조선현을 설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다시 말해 ‘독사방여기요’의 저자는 하북성에 있는 ‘조선’ 등의 지명이 낙랑군 멸망 이후에 이동한 것이고, 본래 낙랑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유사역사학에서는 ‘낙랑군이 한반도에 없어야만 한다’는 민족주의적 목적을 위해 사료를 왜곡했다. 유사역사학의 임나일본부, 낙랑군 관련 서술에 대한 비판은 최근 출간된 《한국 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에 자세하게 실려있다.
 

쇼비니즘 역사 서술의 위험

이상의 팩트 체크를 통해, 도 장관의 고대사 인식이 유사역사학과 매우 밀접하다는 의심을 검증해봤다. 그렇다면 다시 ‘유사역사학이 왜 문제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게 된다.
 
유사역사학의 위험성은 그들이 틀린 이야기를 한다는 점에 그치지 않는다. 유사역사학은 쇼비니즘 역사 서술이기 때문에 위험하다. 이러한 걱정은 역사 연구자 사이에서 널리 공유되고 있다. 쇼비니즘 역사 서술은 ‘과도한 민족주의’, ‘광신적 애국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입맛에 맞는 특수한 사료만 선택하거나, ‘우리 사료’만 믿고 ‘다른 나라의 사료’는 믿지 않는 비학문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특위 회의록을 보면, 이덕일 소장은 “조선성이 (중국에) 있고 거기가 한나라 낙랑군 조선현이다라고 했으면 우리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믿으면 되는 거지요. 우리가 중국인입니까, 일본인입니까?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믿으면 되는데 여기에 교군, 교현, 복잡한 이야기, 이게 해석도 안 돼요.”라고 발언했다. 이덕일 소장은 ‘교군’이라는 역사학 개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입장’에서 그냥 사료를 믿는 것이 옳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쇼비니즘, 쉽게 말해 ‘과도한 민족주의’, ‘광신적 애국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과도한 민족주의’, ‘광신적 애국주의’에 기반을 둔 역사 서술은 독일의 나치, 일본의 식민사학, 중국의 동북공정 등에서 엿보인다. 가장 최근의 국정 역사교과서 논란도 근현대사에 대한 ‘광신적 애국주의’로 역사관을 획일화시키려고 했던 시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의 식민사학, 중국의 동북공정, 국정 역사교과서를 반대한다면서, 그들과 똑같은 쇼비니즘 역사 서술을 받아들이는 것은 학문적인 접근이라고 보기 어렵다. 스포츠 경기에서 상대가 반칙을 자행한다고 해서, 우리도 반칙을 해서 이기자는 논리는 스포츠 정신과 거리가 멀다.
 
유사역사학의 쇼비니즘 역사 서술과 연결된 고대사 인식은 도 장관의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 경력, 민주화 경력과 모순된다. 도 장관은 전교조 활동으로 교직에서 해직되는 아픔을 겪었음에도 교육과 문예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20대 국회에선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 문체부 블랙리스트 비판에 앞장섰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전체주의와 쇼비니즘에 맞서 이룩한 성과이지, 쇼비니즘 역사 서술을 역사학의 한 범주로 허용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도 장관은 자신의 공식 웹사이트에서 “특정 세력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있다. 부디 도 장관이 유사역사학의 쇼비니즘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역사 연구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되길 바란다. ●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한 우리의 전망, 오늘보다
정기구독
태그
관련글
유사역사학은 어떻게 대중에게 다가갔는가?
독재 대 민주화 대립의 신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무엇을 노리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