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5/12 제11호

역사교과서 국정화, 무엇을 노리는가

뉴라이트의 역사캠페인과 잊혀진 계급투쟁

  • 홍명교 편집실 미디어국장
 
“지난 1960~70년대는 외국으로부터 한강의 기적이라든가, 새마을운동은 세계개발도상국의 모범이라는 말들로 칭찬하는 평가를 들어왔다. 하지만 왜곡은 단순히 역사의 왜곡이라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아직까지도 나쁜 영향을 주고 있다.”(박근혜, 1990년 <코리아투데이>와의 인터뷰 중)

박근혜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뭘까? “혼이 비정상”(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1월 10일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기상천외한 말을 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 바 있다.)이기 때문에? 떠도는 괴담처럼 ‘무당’의 말을 믿어서? 친일파, 매국노, 독재자라서? 총 맞아 죽은 아버지의 원한을 갚고 “정신과 마음을 새것으로 개조하고 회복하는 정신개조운동”(1978년 7월 15일)을 재개하리라는 일념 때문에?

지난 20여 년의 발언들로 봤을 때 박근혜는 유신시대 군부독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역사적 평가, 그에 따른 민족주의자들의 비판이나 사회운동의 저항이 부당할 뿐만 아니라 ‘부도덕’하다고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는 1989년 작성한 한 글에서 “우리 사회 양상이 개판이 아니면 무엇이 개판이겠는가”라며, 그 근본 원인이 “역사의 왜곡”이며, 아버지의 죽음이 있었던 1979년 이래 10년간 우리 사회가 파괴되어 왔다며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을 정립하고 뿌리내리는 일이 (…) 이 사회를 다시 복되게 살리는 활력소”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사실들, 극우정치인들의 혐오스럽고 공격적인 발언들을 통해서는 사태의 진원을 살피기 어렵다. 요컨대 박근혜의 독특한 정신세계나 가족사에서 그 원인을 찾아 헤매는 것은 분명 한계적이다. 박근혜의 사적 열망 역시 지배권력 한편에서 역사적으로 조직되어온 것이며 보수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를 대변 혹은 상징하는 것이라면, 대체 왜 그들이 2015년에,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값도 지탱하지 못할 행위를 하고 있는지 물어야 할 것이다.
 

뉴라이트의 역사캠페인

일련의 국정교과서 파동은 당연히도 뉴라이트 역사 캠페인의 연장선상에서 살펴야 할 것이다. 역사 다시 쓰기에 드라이브를 거는 보수세력의 가장 가시적인 목표는 장기 집권의 토대를 쌓기 위한 주체 양성의 기획으로서 철저히 반공주의적 관점의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교과서를 둘러싼 공방은 2004년, “역사 교과서들이 좌편향되었다”는 보수 진영의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공세를 처음 시작한 『월간조선』은 “경고! 귀하의 자녀 들은 위험한 교과서에 노출돼 있다 - 대한민국은 때리고 김일성 부자 감싸기”라는 선정적인 기사를 내 근현대사 교과서들이 반미와 친북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고 몰아세웠다. 2005년엔 교과서포럼이라는 학술단체(?)를 만들어 기존의 한국사 교과서와 연구 경향을 ‘좌편향’이라고 규정지었다.

이 무렵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연이어 집권하면서 보수세력이 큰 위기를 느끼던 시점이었다. 자칫하면 정권탈환이 어려워질지 모른다는 위기 의식 속에서 상황을 타개할 대책으로 역사 이념의 공세를 기획한 셈이다.

뉴라이트의 ‘꿈★은 이루어졌’다. 보수세력은 “잃어버린 10년”을 끝내고 이명박 정권을 세웠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교과서포럼의 시각을 바탕으로 교과서의 수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후 교과서포럼은 식민지근대화론을 수용하고 이승만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며 개발독재를 합리화한 《대안 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출간했다. 이후 이 책은 사실관계 왜곡과 논리적 모순 등 200여 개의 결함이 발견돼 논란을 빚은 이른바 ‘교학사 교과서’의 모태가 된다.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친일과 독재를 합리화하는 역사인식, 기본적으로 역사 교과서로서 필요한 수준을 갖추지 못한 부정확한 사실 서술” 등 이미 많은 비판이 있었다. 다행히도 교학사 교과서는 채택률 0퍼센트라는, 뉴라이트로서는 ‘치욕적인’ 결과를 마주했다. 그러자 박근혜 정권과 보수세력은 이런 ‘시장에서의 실패’를 국정화를 통해 일소하려 나선 것이다.
 

시장 근본주의의 또 다른 이름 자유민주주의

뉴라이트 역사 캠페인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일관된 인식을 토대로 하고 있다. 역사에서 ‘저항’을 삭제하고, 시장과 소유권의 절대적 가치를 주장하는 시장근본주의에 기초해 한국의 오늘을 미화하려는 기획이 그것이다. 사실상 전경련의 산하기관 격인 자유경제원의 사무총장 전희경은 “역사교과서는 시작일 뿐이고 사회교과서, 경제교과서가 다음 라운드”라고 으름장을 놓은 바 있다.

교학사 교과서 저자들은 현대사 서술에서 민주주의를 모두 ‘자유민주주의’로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민주주의’의 복합적이고 갈등적인 측면에 대한 이해를 확장시키는 대신, 반공주의적 자유민주주의를 고집하고, 일관되게 역사교과서에 심어 넣으려는 걸까? 

냉전시대 자유민주주의는 한국 사회는 물론이고 서구에서도 공산주의에 대비되는 의미로 사용됐다. 민주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자유주의 이념조차도 반공산주의라는 강박관념 때문에 제한되거나 왜곡됐다. 자유민주주의의 나라로 대표되는 미국에서조차 1950년대 메카시즘이라는 종북사냥이 있을 정도였다. 냉전시대  공산주의를 없애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자유주의의 근본적 형태를 여과 없이 보여줬다. 자유주의의 핵심은 ‘소유의 자유’이고, 공산주의는 이 소유의 자유를 부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 역사에서는 실패했지만 원리적으로 보면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는 소유의 자유보다 넓은 의미의 자유를 위해 노동의 자유를 주장했다. 노동을 통제하는 자본 소유자 입장에서 공산주의가 ‘악마’가 되는 이유다. 해방 후 미국의 개입과 친일파 주도하에 소유자의 자유를 추구하던  한국의 지배권력 역시 공산주의를 추구하던 북한에 대해 극단적 공포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1950~60년대 반공을 절대가치로 한 자유주의적 근본주의가 공산주의 체제의 도전으로부터 왔듯 최근 정권들의 반공주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구조적인 위기로부터 오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세계자본주의는 계속해서 위기를 겪고 있다. 한국은 10년 이상의 저성장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주류 경제학자들 사이의 대체적 합의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혁신이든 전혀 다른 체제로든 당장 새로운 대안이나 이행 전략이 대두되긴 어려워 보인다. 이렇게 위기의 지속이 빤히 예측되는 상황에서, 집권세력의 구조적 무능에 대한 우회적인 솔루션으로서 역사 전쟁이라는 전략을 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실 이는 일본의 아베 정부에게서도 엿볼 수 있는 전략이다. 아베는 ‘역사전쟁’이라고까지 불리는 극우적인 역사 해석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의 행보를 통해 보수 세력을 집결시키고 있다. 교과서에 대한 아베의 태도는 한국 정부의 태도와 흡사하다. 침략의 역사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기존의 역사서술을 ‘자학사관’이라 부르며 역사교과서 검정 기준을 변경하고, 도덕 과목을 정규교과로 지정해 국가주의적 가치관을 가르치도록 지시했다. 요컨대 적어도 동아시아에서는, 한국과 일본 등의 보수주의 정치세력들이 자본주의 위기에 대처하는 정치전략이라고 일반화할 수 있는 셈이다.


모든 것은 끝났는가?

한편 한국에서의 역사 전쟁은 새민련을 비롯한 자유주의자들에게도 그리 불리하지만은 않다. 좀처럼 설득력 있는 언어로 자신의 정치와 방향을 대중적으로 설명하는 데 실패해온 새민련으로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둘러싼 논쟁 국면이 그리 불리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력에 있어서는 열세지만, 여론만큼은 모처럼 우위에 있고, 당의 내홍을 한동안 잠재울 수 있는 포인트로 여겨질 수도 있다. 

동시에 새민련은 ‘폭력시위’ 등의 쟁점에 대해선 선을 양비론적 논리를 내세워 선을 긋고 있는데, 보수세력의 반공주의적 공세나 노동시장 구조개악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의지나 대안 없이 당장 닥친 내년 총선의 이해타산을 점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양자를 재생산하는 쟁점의 전선에서 노동자운동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당연히도 노동시장 구조개악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맞선 광범위한 투쟁에 힘을 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새민련식 논리와는 다른 독립적이고 대안적인 화두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가능하다면 한반도 근대사에서의 노동자운동의 계급투쟁은 어떠했는지, 지난 역사는 우리 사회의 노동자민중을 어떤 방식으로 착취하고 억압해왔으며, 또 노동자들은 어떻게 저항해 왔는지에 대해서도 말해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노동자운동 전반은 아직 국정교과서에 대해서는 국정화라는 형식의 문제나 ‘친일-독재 미화 음모’에 대한 비판 등 진보적 자유주의자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논리로 대응하고 있다.

정권의 강공, 민중총궐기 이후 폭력시위 논쟁과 11월 21일 새벽 경찰의 기습적인 민주노총 압수수색 등 공안 정국 조성으로 인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어느 정도 일단락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쟁점은 쉬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술적으로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고, 또 역사학계 전반이 강하게 반발하는 만큼 간단하게 마무리될 수 있지 않다. 뉴라이트가 건국기-산업화기-민주화기-선진화기 식의 진화론적인 자본주의 발전 도식을 내밀고 추진해온 캠페인은 앞으로도 계속 지배계급의 논리로 떠돌아다닐 것이다.

자본가들은 오늘날 위기의 책임을 청년실업이나 구조조정, 노동조건의 저하 등 노동자민중에게 전가시키려 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이런 공세에 맞서 응집력 있게 맞서야 할 것이고, 보다 멀리는 역사에서 잠시 사라져버린 것처럼 보이는 ‘계급투쟁’을 어떻게 다시 세계의 중심에 서게 할 수 있을지, 운동에 대한 공세에 맞서 어떻게 싸워야 할지 고민과 실천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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