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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 제17호

삼성 노동 탄압에 대한 국제노동기구의 경고

  • 오기형
올해 3월 국제노동기구(ILO) 329차 이사회는 삼성그룹의 무노조경영 전략과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탄압에 대한 결사의 자유 위원회의 중간보고서를 채택했다. 국제노동기구 ‘결사의 자유 위원회’가 개별기업을 특정해 대정부 권고안을 채택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삼성의 무노조경영 전략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이것이 ‘중간’보고서인 것은 이번 권고안 채택이 사건의 종결이 아니며, 향후 지속적인 감시태세를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삼성의 노동탄압에 주목한 국제사회

이번 권고는 세 가지 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째는 국제사회가 삼성의 무노조경영 전략(no-union corporate policy)을 정면 비판했다는 점이다. 국제노동기구는 2013년 폭로된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이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위협한다는 점에서는 문제의 심각성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검찰조사 결과를 요청했다. 검찰조사 결과를 통해 정부의 단결권 보장 의지를 확인하고 이후 추가적인 조치를 촉구하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

둘째는 한국법에 따른 불법파견 여부와 무관하게 하청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은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을 명시한 대목이다. 국제노동기구는 이미 2008년 302차 이사회와 2012년 313차 이사회에서 파견노동자와 사내하청노동자의 단체교섭권 보장제도 마련, 단체교섭을 회피하기 위한 하도급 남용방지책 등을 주문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나아가 “한국법에 따른 불법파견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하청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제도를”, “노사단체의 협의”로 마련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로써 삼성그룹은 더 이상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핑계로 협의 절차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셋째는 노조를 탄압한 삼성에 ‘불기소처분’을 내린 검찰에게 매우 이례적으로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는 점이다.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전국적으로 벌어진 협박과 회유, 탈퇴압박과 표적감사, 징계 같은 노조파괴가 ‘그린(green)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사실과 함께 최종범, 염호석 두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몬 사실을 공적으로 확인한 후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뿐만 아니라 삼성전자서비스 울산센터 노조 간부 납치사건이 불기소 처분으로 마무리된 점, 사건 조사결과를 정부가 제공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통상 구사하는 외교언어를 넘어선 것으로 삼성의 노조파괴 행위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삼성의 초국적 탐욕사슬을 끊자

이런 강한 어조는 삼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분노를 반영한다. 이는 국제노총(ITUC)과 국제통합제조산별노련(IndustriALL)이 작년 10월 발간한 삼성 노동탄압 실태보고서 제목에서도 드러난다. <삼성 - 현대의 기술, 중세의 노동조건>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중국에서 만16세 미만 아동공 활용, 인도에서의 연수생 착취,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노조파괴와 저임금·장시간·무급노동을 체계적으로 고발한다.

샤런 뷰러 국제노총 사무총장은 “삼성이 세계 공급사슬에서도 가장 착취적”이라고 지적하며 “(삼성에서) 저임금과 위험작업이 숨겨져 있는 것은 삼성이 생산을 외주화하면서 사용자 책임도 외부화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래서 국제노총이 진행하는 ‘기업의 탐욕을 멈춰라’(End Corporate Greed) 캠페인은 자회사와 하청이라는 형식으로 감춰진 다국적 기업의 공급사슬을 드러내 공급망을 가시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법 형식이나 계약 명칭에 좌우되지 않고 계층화된 공급사슬 전체로 확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노총과 국제통합제조산별노련의 보고서
<삼성 - 현대의 기술, 중세의 노동조건>
 

하청노동자 권리 인정과 재벌개혁의 만남

삼성전자서비스지회도 이 흐름에 동참하려 한다. 최근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이재용 부회장을 180만 삼성 원·하청 노동자의 사용자로 규정하고 있다. 다소 도발적인 시도다. 하청노동자들까지 포함해 삼성이 생산사슬의 꼭대기에서 통제하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이 이재용 부회장의 판단에 따라 좌우되는 현실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한다는 취지다.

공급사슬을 매개하는 책임의 확장은 지난겨울 광장의 촛불이 요구한 재벌개혁 과제와 상통한다. 재벌적폐에 대한 올바른 진단이 ‘성과독점’과 ‘손실전가’라면, 그 처방은 ‘성과분배’와 ‘책임강화’일 수밖에 없다. 결국 재벌개혁의 핵심은 지배구조 개편이 아니라 재벌책임의 확장이다. 그렇다면 이재용 부회장을 180만 삼성노동자의 사용자로 규정하고, 그에게 공급사슬 전체에 대한 노동표준을 준수할 책임을 부여하는 것은 유효한 재벌개혁의 수단이 된다.

국제노동기구가 요구한 하청노동자 단체교섭권 보장과 촛불이 열망한 재벌개혁은 분명 다른 평면에 있는 과제다. 하지만 이는 오늘의 정세에서는 만날 수 있다. 어쩌면 흔치않은 기회일지도 모른다. “물 들어온다, 노 저어라”는 2017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메인슬로건처럼 오늘의 우리에게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과감함이 필요하다. ●
 
 
필자 소개

오기형 |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정책위원, 하는 일 없이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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