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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4 제27호

신자유주의 엘리트들을 향한 노투사의 일갈

서평: 타리크 알리의 《극단적 중도파》

  • 구준모

세계 정치, 쿠오 바디스?

격변이다. 자고 깨면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난다. 2015년과 2016년 영국 노동당에서는 고집스러운 좌파, 제레미 코빈이 두 번이나 압도적인 지지로 당 대표에 선출되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도 놀라운 뉴스였다. 인종주의적 극우파의 부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쉬이 주류 정치계로 파고들지는 몰랐다. 

지금 극우파는 프랑스에서 대선 후보 지지율 1~2위를 다투고 있고,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에서는 제2의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스페인에서는 2014년 등장한 신생 좌파정당, 포데모스가 급성장하여 선전중이다. 2015년 그리스의 시리자는 많은 좌파들의 기대 속에 집권했지만 트로이카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긴축정책을 수용한 후 인기 없는 여당으로 전락했다. 
 
스페인 포데모스의 광장시위

아메리카 대륙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2016년 버니 샌더스가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예상을 깨고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도 얼마 전의 일이다. 남쪽에서는 베네수엘라의 정치·경제가 대혼란에 빠졌고, 브라질 노동자당은 우파들의 의회 쿠데타로 권좌에서 쫓겨났다. 이 모두가 지난해의 일이다. 

아시아도 요동친다. 일본의 우익화를 이끄는 아베와 중국 자본주의의 향배를 쥐고 있는 시진핑, 러시아의 짜르인 푸틴, 북한의 세습자 김정은이 불안한 긴장을 이어가는 중이다. 동남아에서는 2014년 군부 쿠데타와 헌법 개악으로 태국이 민주주의에 큰 상처를 입었고, 인도네시아에서는 이슬람주의가 성장 중이다. 

물론 가장 놀라운 것은 우리가 이 땅에서 만들고 목도한 지난 5개월 간의 촛불운동이다. 6개월 전만 해도 박근혜의 탄핵과 조기 대선을 예측한 사람이 누가 있었을까.
 

때 늦은 지혜보다 값진

이럴 때 정치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6세기 이탈리아인들이 말하던 대로 “시간은 모든 진리의 아버지”이니, 조급하게 나서지 않는다면 중간은 하고 언젠가는 현자 노릇도 어려운 일이 아닐 게다. 아무 말도 않는 것이 무책임해 보인다면 적당히 거리를 둔 비평을 하고, 옳은듯하지만 모호한 대안을 내놓는 것도 좋은 처세술이다. 

그러나 《극단적 중도파》의 지은이인 타리크 알리는 그런 논평가이기를 거부한다. 파키스탄 출신의 영국 이주민이자 1968년 봉기의 맹렬한 참가자로 청년기를 보낸 그는 영국 정치에 의견을 피력하는 데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투사이다. 《극단적 중도파》는 알리가 2015년 초에 내놓은 정치 팸플릿이다. 그는 정치인들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서슴지 않으며, 새로이 등장한 좌파 정치에 기대감을 드러낸다. 

물론 출판된 지 2년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아쉬운 면도 있다. 코빈의 부상이나 샌더스 열풍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나, 기대했던 시리자의 조락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가 내놓은 분석은 곱씹을만하다. 알리는 중도 좌우파를 망라해 형성된 정치적 신자유주의자들을 ‘극단적 중도파’로 이름 붙이고, 이들의 죄과를 생생하고 세세하게 기록했다. 

그의 초점은 영국이지만 유럽연합과 미국, 중국도 넘나든다. 거기에다 영국 정치에 해박한 번역자의 주석까지 함께 읽으면, 영국과 유럽 정치의 최근 동향과 특징들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좌파의 관점에서 쓴 오늘날 영국 정치에 대한 좋은 해설서이기도 하다.  
 
타리크 알리

 

극단적 중도파, 누구인가

알리가 내놓은 분석과 비판의 열쇳말은 극단적 중도파다. 1980년대에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이 주춧돌을 놓고,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블레어와 클린턴이 지붕을 얹은 신자유주의는 2008년 세계경제 위기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기존의 질서를 양적완화, 새로운 금융규제라는 조금 다른 수단으로 치장을 했을 뿐이다. 

무엇보다 신자유주의적 합의를 이끌고 위기를 초래한 정치·경제 엘리트들이 건재하다. 월스트리트 점거운동, 스페인의 분노한사람들 운동, 그리스의 좌파 집권 등의 파열음들이 들렸으나 만들어진 공간은 급히 사라지곤 했다. 

사민주의, 자유주의 정당들은 자신들이 이끌어온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지키기에 급급했고, 그 틈을 파고든 것이 동유럽과 무슬림 이주민들을 증오하는 극우파의 인종주의 선동이었다. 

신자유주의라는 집이 흔들리고 누수가 생기고 있지만, 이들은 변화를 외면한 채 기존의 벽채와 지붕을 ‘땜질’하는 데 머물렀다. 영국에서 2010년 등장한 보수당-자유민주당 연정은, 전임 노동당 정부가 추진한 복지수당 예산 삭감, 대학 등록금 대폭 인상을 조금 더 진전시켰다. 빈곤층은 절망하고 학생들은 분노했지만, 노동당은 자기 정책을 계승한 새 정부 비판에 나서지 못했다. 이렇게 기존 정치 구도의 좌우를 망라해 형성된 정치·경제 엘리트를, 알리는 극단적 중도파라고 칭하는 것이다. 이들은 기존 질서의 방어에만 급급한 채 민중의 요구에 무감하고 변화를 두려워한다. 
 

스코틀랜드에서 본 희망

알리는 극단적 중도파가 즐겨 쓰는 전술로 ‘공포 선동’을 든다. 그리스에서는 시리자가 집권하면 연금이 고갈되고  슈퍼마켓 진열장이 빈다는 선동이 빈번하게 울려 퍼졌다. 2014년 스코틀랜드의 독립 투표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코틀랜드가 왕국연방(영국)에서 탈퇴하면 엄청난 혼란이 발생하고 결국 변방의 소국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게 잉글랜드 엘리트들의 선동이었다. 

그러나 알리가 보기에, 스코틀랜드 시민들은 대처 때부터 잉글랜드 의회가 자신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느꼈다. 스코틀랜드 시민들은 세 차례 대처에 반대하는 의사를 밝혔으나 철의 여인은 그대로였다. 신노동당도 다르지 않았다. 스코틀랜드 노동당은 런던의 파견 부대 같이 행동했고, 금융계의 이해를 대변해왔을 뿐이었다. 반면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주장한 좌파들은 잉글랜드나 미국보다는 스칸디나비아와의 연계를 희망했다. 신자유주의적 영국에서 벗어나 유럽대륙과 직접 관계를 맺으려 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유럽연합 옹호의 입장에 가까웠다. 
 

알리는 ‘급진독립캠페인’과 스코틀랜드인들의 정치적 각성에 기대를 건다. 군소 좌파들의 모인 급진독립캠페인은 ‘민중의 맹세’라는 문서에서 사회주의적 스코틀랜드의 원칙들을 서술했다(123~126쪽). 중도좌파 스코틀랜드독립당은 대중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는 현명한 캠페인을 펼쳤고, 노동당보다는 훨씬 나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비록 투표에서 55대 45로 독립이 부결되었지만, 알리가 보기에 새로운 정치의 잠재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정치의 변화, 좌파의 변화

알리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등 남미 좌파의 선전을 소개하고 시리자와 포데모스의 부상에 기대를 걸기도 한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 보면 다소 민망해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50년 이상 자본주의 지배질서와 투쟁해온 노투사는 “어떤 변화든 그 출발점으로서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필요하다”고 열정을 내뿜는다. “급진적 사상을 구체화하는 것은 바로 행동, 투쟁 경험, 부분적 성취, 패배, (종종 예상을 뛰어넘는 형태로 나타나는) 이러한 패배의 극복과 크고 작은 승리”(243쪽)라는 것이다. 그는 두려워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실천 속에서 희망을 보고 있다. 

또한 좌파의 변화도 기대한다. 스페인의 분노한사람들 운동에 대한 한 구좌파의 대응은 이랬다고 한다. “난 30년 동안이나 분노했어. 그런데 이 어린애 들이 몰려와서 분노가 도대체 무엇인지 가르친다고?” 알리는 새로운 운동에서 낡은 좌파의 변신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답답한 교착상태에 대한 불만과 그것을 깨부수고 싶은 욕망. 그리고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 알리는 변화를 가로막는 주적을 극단적 중도파로 부르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오늘날 좌파 정치의 타깃을 극단적 중도파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다. 지배질서를 바꾸는 현상 변화가 필요한 건 분명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스코틀랜드 독립을 지지하고 브렉시트를 지지한 알리의 견해는, 대중적 좌파의 재건을 위한 숙고 끝에 내놓은 결론이기 보다는 현실의 변화 자체를 물신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여전히 토론거리이다. 그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열정과 헌신으로 만들어진 노투사의 일갈은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
 
덧붙이는 말

구준모 | 온갖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집행위원, 사회공공연구원 객원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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