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세계
- 2015/04 제3호
우리가 알던 유럽은 끝났다
그리스의 미래, 우리의 오늘
지난 두 달 우리는 아테네 올림픽 이후 가장 빈번하게 ‘그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기세등등하던 시리자(SYRIZA)는 결국 선거에서 승리해 연정을 구성했고, 전후 최초로 유럽에서 집권에 성공한 급진좌파가 되었다. 국제뉴스의 절반이 유럽 변방 급진좌파들의 말들로 채워졌다. 폴 크루그먼이나 스티글리츠, 피케티와 같은 주류, 케인즈주의 경제학자들조차 그리스 채무위기는 EU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 비판하며 획기적인 채무탕감을 옹호했다.
그러나 지난 2월 그리스가 유럽의 채권국가들과 진행한 협상의 결과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시리자의 성공을 기대하는 많은 사람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고, 시리자 내부의 비판자들도 협상 결과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쿠벨라키스는 이번 협상이 ‘각서’의 타도를 바라는 그리스 민중들의 열망을 무너뜨렸다고 비판한다. 유럽중앙은행 등 트로이카가 취한 강력한 협박이 주된 원인이기도 했지만 그리스 측 역시 지나치게 속수무책이었고 어떤 환상에 빠져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지불연기나 유로존 탈퇴 등을 배제하는 시리자 지도그룹의 전략적 선택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지도부의 전략은 처참하게 실패했으니, 지금이라도 제2의 패배를 막으려면, 현실에 대해 정직하게 말하고 전략을 새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이번 협상에서 그리스 재무장관의 조력자 역할을 한 갈브레이스는 “채무 조약을 변화시킬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기회도 없었다”고 협상 결과에 대해 변호한다. 그는 오히려 “그리스는 6개월 전과는 달리 정신과 품위가 있는 모습으로 변하고 있고, 스페인과 아일랜드, 포르투갈에선 다가오는 선거가 있기에 새로운 전선이 열릴 것”이라며, 1년 후에는 “지금과는 다를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2400억 유로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연장함으로써 4개월의 시간을 벌기는 했다. 그러나 이 4개월의 시간도 바람 잘날 없는 시간이 될 것이다. 빈곤선 이하의 가구에 전기요금을 면제하고 식량을 보조하는 법안이나 체납한 세금을 최대 100회 나눠 갚도록 한 조치들을 통과시킨 것만으로도 채권단의 신경을 긁고 있고, 채권단이나 독일 역시 ‘인도적 조치’에 브레이크를 걸며 “긴축정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는 상황이다.
위기 속의 기회
2009년 10월 재무장관 파파콘스탄티누는 그리스의 재정적자가 알려진 수치의 3배를 상회한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채무불이행, 디폴트 가능성이 점쳐지기 시작했다. 국채 이자율은 순식간에 7퍼센트에서 23퍼센트까지 급등했고, 위기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포함한 남유럽 전체로 확산됐다. 이후로 유럽 정세는 쉴 틈 없이 변화했다. 정치적 불안정성은 극심해지고 노동자들의 위력적인 투쟁이 연달아 일어났다.
그리스와 스페인에서 급진좌파가 대두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시리자의 급부상을 일시적인 반사 효과로 간주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시리자의 기원은 1980년대 말 좌파선거연합이며, 당내 그룹들이 갖는 역사적·정치적 뿌리도 깊다. 한 사람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에 의존하며 짬뽕 정당 같은 모습을 보여온 사회당과 달리, 비전과 운영이 체계적이고 마르크스주의적 전망을 견지하고 있다.
시리자는 절망적인 내핍에 맞서 삶의 희망을 갈망해온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 신자유주의하에 고통받은 민중들의 분노를 바탕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것을 승리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가 첩첩산중이기 때문이다.
포플리즘 탓이냐 세계금융위기 탓이냐
그렇다면 그리스가 마주한 위기의 실체는 무엇인가. 매스미디어는 방만한 재정운영, 과도한 복지비용 지출, 필요한 긴축정책의 미시행, 노동유연성의 부족 등을 주로 지적한다. 이에 덧붙여 그리스인들이 게으르며 항상 약속을 어겨 신뢰할 수가 없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리스의 위기가 대륙의 위기로까지 논해지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언론의 논리는 대개 이런 통념에 기초해 있다. 이번 채무위기가 역대 정권의 방만한 재정운영과 복지로 인해 초래됐다며, 위기의 원인을 그리스 안에서 찾는 것이다. 국내 진보언론조차 그리스의 위기가 ‘좌파 포퓰리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민망할 정도로 얄팍한 주장을 버젓이 게재한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가 마주한 위기의 실체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남유럽 채무국들의 경제위기는 역사적으로 복잡하게 누적된 여러 요인들이 상호작용한 결과이며, 동시에 결성부터 지적되어 왔던 유럽연합(EU) 자체가 지닌 모순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실제 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아일랜드와 스페인 등은 유럽의 모범적 성장모델로 분류됐었다. 오히려 독일이 ‘유럽의 환자’로 간주되는 상황이었다. 그 때문에 유럽연합의 위기를 제대로 분석하려면 시야를 EU 구성의 구조적인 한계와 세계금융위기까지 확장해야 한다.
잘못 설계된 EU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영향이 유럽에 전파됐을 때 유럽 금융시장 역시 동요하기 시작했다. 위기는 EU의 태생적 한계와 맞물리면서 시차를 두고 폭발하기 시작했다.
EU는 회원국들의 동상이몽 속에서 탄생됐다. 창립부터 신자유주의의 색깔이 짙었고, 당시 현실사회주의의 몰락, 민중운동의 약화가 주된 동력이었다. EU 집행위원회는 선출된 정부가 아니라서 집행력에 한계가 명백했고, 주요 결정은 정상회의나 각료회의에 집중됐다. 유럽 차원의 고유한 정치의 공간은 존재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런 취약한 구조에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분리됐다. 재정은 개별 국가의 몫으로 남고, 통화정책만 유럽중앙은행에 집중되는 불균형이 발생했다. 각 나라 재정정책에 강력한 통화주의 제약이 가해지면서도 각 정부로부터 독립된 중앙은행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결국 위기 조절이 어려운 조건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틀조차 준수되지 않았다. 위반이 잦았던 독일, 프랑스 등 핵심국가들은 제재를 받지도 않았다.
유로 화폐를 사용하는 유로존 안에서 상이한 경제 특성을 지닌 국가들의 구분이 생겼다. 신흥국붐의 동유럽, 부동산과 소비붐을 겪은 남유럽, 서유럽의 수출의존형 공업국들, 금융과 부동산버블을 겪은 영국 등. 이런 구분은 2000년 이후 더 심화됐고 이질성은 더 벌어졌다.
나라마다 경제 특성과 조건이 다름에도 경기침체를 타개할 수단으로 평가절상이나 평가절하 같은 환율변동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유로화는 유로존 전체의 평균적 상황을 반영해 변동하기 때문에 어떤 나라에선 환율이 저평가됐고, 어떤 나라에선 고평가되는 현상이 지속됐다. 그 때문에 긴축을 기조로 한 독일과 팽창정책이 기조인 그리스 사이에는 상이한 환율 효과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수출시장에서 독일 상품은 실제보다 저평가된 환율 혜택을 누리고 다른 나라들은 고평가된 환율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는 심각한 경상수지 적자를 겪어왔고, 수출지향 공업국 독일은 유로존 이후 흑자가 크게 늘었다. 이런 경향은 그리스로 하여금 점점 더 관광업이나 서비스업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한때 그리스도 제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노동생산성을 높였었지만 대출에 의존하는 악순환의 반복이었고 채무는 쌓여갔다. 몇 차례 긴축을 약속하고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이것으로 재정적자를 해결할 순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하나의 유럽’은 가능한가?
본래 ‘하나의 유럽’은 전후 유럽의 정치·사회·문화·예술 전반을 아우르던 모종의 이상이었다. 민족국가의 틀을 뛰어넘는 새로운 형태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정치적 실험이 20세기 후반 내내 유럽을 관통했다. 과연 유럽인의 실체는 무엇이며 유럽이라는 공동체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과 갈등이 빈발했다. 사회운동은 아래로부터의 대중운동 속에서 ‘사회적 유럽’을 건설하고자 했고, 자본은 ‘하나의 시장’과 ‘하나의 화폐’에만 관심이 있었다.
이런 모순 끝에 자본의 필요로 태어난 유럽연합에서 그리스가 트로이카의 요구를 이행하려면 오직 내부적인 평가절하, 즉 노동비용의 40퍼센트를 절감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실행이 불가능하다. 사회당 정권이 이를 감행하려다 거대한 반발을 만나 실각했던 것은 이런 처지를 드러낸다.
따라서 주류담론 한쪽에서는 한 국가의 위기가 유로 전체의 위기로 확산되지 않도록 유럽경제통화동맹(EMU) 거버넌스를 개혁하고 ‘질서 있는 디폴트’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현재 독일 주도의 구도에선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유럽 통합의 리더쉽을 재구축하기 위해서는 모든 나라가 공동의 재정을 보유하고 은행에 대한 ‘최종대부자’로 기능하는 중앙은행을 갖는 장기적 과정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조세를 징수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시민’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유럽에는 ‘유럽시민’, 유럽 차원의 여론이 부재하다.
이제 그리스인에게 유럽이란 ‘희망’의 기제가 아니라 공포와 적대의 대상이다. 프랑스와 독일 등 서유럽 중심 국가국민들이 ‘유럽연합’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 견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주민의 유입 속에서 국가주의적 우익의 영향이 커지고 있다. 유럽의 노동자운동은 자본과 테크노크라트에 의한 유럽, 퇴행적인 ‘유럽 반대’를 넘어 광범위한 대안-유럽의 정치를 만들어야 하는 과중한 책무가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시리자는 꽤 호기롭게 버티고 있지만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말을 듣지 않으면 집을 홀라당 태워버리겠다며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는 상대 앞에서 정당한 협상을 진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 없다. 정세의 불확실성은 증대되고 있고, 누구도 섣불리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리스는 실패할 수도, 모험을 지속할 수도 있다. 자본에 의한 유럽통합의 차원에서 현재 위기가 지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엄격한 재정운영과 노동에 대한 평가절하를 통한 위기의 지연은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체제의 심화만을 낳을 것이란 사실이다. 강요된 무한경쟁의 사슬은 대중의 불만을 고조시켜 정치의 불안정성을 높이고, 필연적으로 유럽연합 내부를 동요시키고 갈등은 지속된다. 현재의 유럽중앙은행-독일 중심 통합이 단기적으론 성공해도 중장기적으론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재무장관 바루파키스는 “오늘날 정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유럽 자본주의를 그 자신으로부터 구하는 길을 찾는 것”이라 말한다. 그 길은 곧 유럽의 민중들을 위협하고 파시즘의 문을 열려는 자본주의의 자기파괴 경향으로부터의 구출이다. 시리자는 유럽의 근본적 모순과 현 상황의 불가능성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인식하고 있다. 이런 지평을 바탕으로 보다 큰 가능성을 거머쥐기 위해선 “독이 든 성배”에 취해 망연자실 상황의 추락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노동자·사회운동의 국제연대에 대한 중장기 전략을 밑바탕으로 한 저항을 부상시켜야 한다.
발리바르와 메차드라는 ‘우리 스스로 시간을 벌기 위해 어떤 공간을 포기해야 할 상황이 있다’는 레닌의 말을 언급하며, 말 많았던 지난 2월의 협상을 이런 원리로 받아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다가올 스페인 총선에서의 승리와 다른 나라에서의 새로운 정치의 동인이 필요함을 언급하며 무엇보다 앞으로 몇 달간 대중적 투쟁과 정치적 이니셔티브 등 지형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역설한다. 나아가 이것은 유럽 대륙 차원을 넘어 세계적인 대응으로 전염되어야 한다. 멀리 동아시아의 우리에게도 현실적 과제로 인식되어야 하는 이유다.
자본은 구조적인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실패를 반추하며 진화된 전략들을 구사하고 있다. 근본적인 해결을 구하진 못하지만 끊임없이 위기를 지연시키고 ‘손실을 사회화’하며 그것을 민중들에게 전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가올 위기 앞에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명약관화하다. 보다 광범위하고 급진적인 사회운동을 위한 태세가 있어야 하며, 운동의 분열을 매듭짓고 연합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동시에 동아시아를 아우르는 국제연대 네트워크망이 끈끈하게 만들어져야 한다. 아테네가 시급하게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중심지가 되어 각국의 좌파들, 대안세력들이 시시때때로 모여야 한다는 쿠벨라키스의 요청도 귀 기울일 필요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위기는 결코 하나의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은 점점 지역적-세계적 차원에서 기민하게 대응해나가고 있는데 이에 맞선 운동이 그러지 못한다면 패배는 빤하지 않은가.
지난 3월 18일 프랑크푸르트에 새로 지어올린 유럽중앙은행 청사 앞에는 수천 명의 긴축반대 시위대가 모였다. 독일 철강노조와 그리스 시리자 등으로 구성된 ‘블로큐파이(Bloccupy)’는 “은행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외치며, “자본주의와 긴축정책으로 민중의 삶이 피폐해졌다”고 채권단을 규탄했다. 이런 저항들이 빈번하고 폭넓게 기획되어야 하며, 지금으로선 이런 운동들의 활성화가 몰락한 세계를 구할 수 있는 대안의 실마리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