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오늘교육
  • 2017/11 제34호

내일의 교육을 위하여

진보교육의 목표가 꼭 '입시 철폐와 대학 평준화'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 박영진

오늘의 교육

지난 20여 년 동안 전교조 교사와 교육운동가들은 학교를 민주적이고 학생의 삶의 질을 높이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다. 미시적으로는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민주시민의 자질에 필요한 교육을 실현하고자 했고, 거시적으로는 대학체제를 평준화하여 입시 교육을 없애며, ‘특권학교’라 불리는 특목고 및 자사고 등을 없애는 일에 주목하였다. 이를 통해 학교를 민주적인 운영원리가 실현되는 공간으로 만들고,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곳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진보적 교육의 이상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특목고, 특성화고, 자립형 사립고, 자율형 공립고, 마이스터고, 일반고 등등 고등학교 제도는 다양해졌지만, 교육과정의 질을 높이는 데는 실패하면서 고등학교의 서열화는 과거와 다른 형태로 여전히 건재하다. 또한 대학 입시도 기존 학력고사나 수능처럼 지필고사 중심에서, 수시전형의 도입으로 입시 전형이 다양해짐에 따라 지식 획득 중심의 경쟁에서 학교생활 전반의 경쟁으로 확장되고 있다. 심지어 봉사활동까지 입학전형 자료로 활용되면서 학생들은 봉사활동의 참뜻을 느끼지 못하고 대학입시를 위해 거치는 관문으로만 이해하는 실정이다.

과거 엘리트 중심 교육에서 대중 교육으로 교육의 대상과 기간이 확대되었지만, 교육제도가 직업주의와 결합하면서 공부는 오로지 좋은 직업·안정적 직업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되었다. 진로·적성교육을 강조하는 현 교육과정 도입 이후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초등학교부터 자신의 진로적성을 선택하여야 대학입시에도 유리하다고 믿는다. 따라서 학년별 단계에 맞는 기초학력을 얼마나 내실 있게 성취했는지가 아니라, 학생의 진로적성을 얼마나 일찍부터 찾아내고 계발시켜 대학입시에서 얼마나 유리한 고지를 점하느냐를 교육의 성과로 간주한다.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 담론의 영향으로 ‘창의적 인재’를 키우기 위한 교육 담론이 득세한 상황이다. 사실 창의적인 인간이 교육의 중대한 목표가 되어야 하는지도 생각해봐야 하지만, 창의성은 아무것도 없는 무지(無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초학습에 충실해야 창의적인 생각도 나올 수 있다. 그런데도 기초적인 지식의 중요성이 간과된 채 남과 다른 생각만을 중시하는 교육이 유행하고 있다.
 
 

입시 철폐와 대학 평준화의 한계

“한국 사람은 모두가 교육 전문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는 자녀 교육에 대해 민감하다. 국가 차원에서 해마다 새로운 교육정책들이 쏟아져 나올 정도로 교육은 중요한 개혁 대상이다. 하지만 수차례의 교육개혁에도 과거에 비교해 교육이 획기적으로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외형적으로는 학생인권이 강조되면서 비인격적이었던 교육현장에서 교사와 학생의 민주적인 관계를 구현하려는 분위기가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경쟁 논리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과거에는 학교 교육을 잠깐 등한시하더라도 정신 차리고 공부에 열중하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기도 했다. 이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남들과 다른 생각을 해야 하고, 일찍부터 진로를 결정하여 매 순간 자신의 진로와 연결하는 체험학습과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 오늘의 학생들은 더욱 일상적으로 경쟁하며 살아야 한다.

전교조 활동가들은 대학입시로 왜곡된 중등교육을 바로 잡기 위해 ‘입시 철폐와 대학 평준화’를 주장한다. 이는 십 수년간 진보교육운동의 구호였지만, 대중적 호응은 적었다.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선발 기능을 가지는 교육의 입시제도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근본적으로 변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학평준화는 노동력 선발 시기를 대학에서 대학원 이후로 늦추는 방향이며, 동시에 공교육의 문제를 대입 관문을 넓히는 것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때문에 이는 의도치 않게 중등교육의 질적 개혁을 간과하는 효과를 낳는다. 때문에 입시 철폐와 대학 평준화는 실현 불가능할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다.

역사적으로 교육제도는 노동력 재생산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 특히 현대에 들어와 자본 축적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공교육 제도는 대중을 위계적으로 나누는 직업주의의 형태로 변모했다. 이는 현재의 교육제도가 개인의 직업적 경력을 쌓는 수단임을 의미한다. 최근 교육 담론에서 강조하는 창의성 함양, 적성과 소질의 계발, 다양한 선택과목 등은 개인이 선택할 직업과 연관된 지식만 공부하도록 유도하고 나머지 지식과 경험은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는 ‘반지성주의’ 문화의 특징을 공유한다.
 

교육의 상대적 자율성이란?

그렇다면 교육은 직업을 갖기 위한 수단일 뿐인가? 자본주의 체제가 무너지지 않고서는 교육 개혁은 무의미한가? 이에 관해 많은 지식인이 ‘교육의 상대적 자율성’이라는 개념으로 교육의 역할을 설명한다. 교육의 상대적 자율성에 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는 사회를 규정하는 거대한 생산양식과 생산관계가 경제·정치·교육영역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 안에서도 저항과 계급투쟁이 끊임없이 벌어지고, 이때 각 주체에게 저항의 힘을 제공하는 중요한 요소가 교육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가령 나치 지배 아래에서도 양심적인 인간이 존재할 수 있고, 독재 체제에서도 저항하는 주체가 형성될 수 있다. 이 때 이러한 저항하는 주체 형성은 좋은 교육이라는 토양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역사 속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주변에 흙을 두툼히 쌓아야 막대가 잘 설 수 있듯이 좋은 교육이 풍부해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미래를 새롭게 바꾸어낼 수 있는 ‘진정한 시민’이 탄생할 수 있다.
 
 

민주시민을 양성한다는 것은

한국 공교육의 목표는 ‘민주적인 시민양성’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시민교육에 대한 이해는 다르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윤종희 교수는 소논문을 통해 “시민교육을 기존의 ‘시민성 함양’으로 이해하면 도덕적인 윤리교육과 경계가 없을 것이고, ‘다양한 사회문제를 교육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시민단체의 시민교육과 다르지 않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민주시민 양성을 위한 교육은 ‘시민성 함양’이라는 도덕적이고 계몽주의적인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이 처한 사회적·경제적 조건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과학적 사고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위한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유럽 혁명을 비롯한 일련의 현대 시민혁명에서 낡은 체제를 무너뜨린 노동자들은 ‘지식의 평등’을 주장했다. 이는 지배·종속 관계가 단순히 지배집단이 만들어 놓은 제도에 의해서만 재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무지(無知)와 맹신(盲信)에 의해서도 재생산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시민 교육의 핵심은 과학적 사고와 지식을 위한 교육이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이론적 과정과 실천적 과정이 결합하여야 한다.

최근 공교육에서 창의적 체험활동·봉사활동·자유학기제·각종 체험 캠프 등 이론 수업뿐만 아니라 체험하고 실천하는 교육과정이 늘어났다. 하지만 이론적 과정과 결합하지 못하면서 성과가 매우 미비하거나 오히려 사교육 수요만 늘리는 효과를 낳고 있다. 학생들이 체험하고 실천할 기회가 늘어난 것은 바람직하지만, 교육적 효과를 보기 위해선 이론적 과정에서 습득한 지식을 체험해보는 과정으로 체험 자체가 다른 교육과정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야 한다.
 

좋은 교육을 위한 교사의 전문성

이론 중심 교육과 체험 중심 교육과정이 유기적으로 연관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사의 전문성’이 중요하다. 이때 교사의 전문성은 자신이 가르치는 분야의 교육 내용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을 의미한다.

얼마 전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었던 ‘기간제 교사 정규직화’의 반대 논리로 공공연하게 거론되던 것이 ‘기간제 교사는 임용시험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교·사대 졸업생들은 잘 알 것이다. 겨우 4년 대학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임용시험에 통과한다고 해서 교과 내용 및 교수·학습 방법에 대한 전문성을 획득하기 힘들다는 것을 말이다. 오히려 교과 내용을 공부하는 지속적인 노력과 학생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 전문성이 된다는 것도 그들은 잘 알 것이다. 그런데도 ‘기간제 교사 전문성’을 깎아내리는 태도는 ‘시험만능주의’이거나, 힘들게 시험을 통과한 사람과 달라야 한다는 뿌리 깊은 ‘차별주의’에 기인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좋은 교육을 위해서 교사의 전문성은 필수적이다. 대부분 교사는 교사의 전문성이 교과 내용에 해당하는 ‘내용 지식’ 보다는 교과 내용을 학생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방법에 대한 ‘내용 교수법’에서 발휘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학생들을 수업에 집중시키기 위한 다양한 교수법의 활용도 교사가 가르치는 지식에 대한 전문성이 바탕이 될 때 효과적이다. 뿐만 아니라 교사가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져야 교과서의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비판적으로 가르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교사가 교육 내용에 대한 주도권을 가질 수 있다.

교육 내용에 대한 교사의 전문성을 강조하면, 보수주의 입장과 뭐가 다르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교육제도의 변혁이 곧바로 사회 변혁으로 나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자본주의 착취체제를 폐지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교육제도를 변혁하는 일은 중요하다. 교육제도 변혁의 목표는 ‘대중교육의 질’을 높이고, ‘자신을 둘러싼 객관적 조건을 깨닫는 시민을 양성하는 일’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교사 스스로가 집단적인 운동으로 ‘교사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객관적 현실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시민교육’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 교육 구조의 문제점을 내버려 두자는 주장은 아니다. 다만 진보 진영이 제출한 거시적 담론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교사의 일상적인 실천과 교육 구조를 어떻게 변혁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동시에 진행하자는 제안이다. ●
 
덧붙이는 말

앞으로 ‘오늘 교육’ 코너에서는 자기 해방으로써의 시민교육실현, 노동자 자녀를 위한 교육 개혁을 향한 노력에 주목하기 위해 교육 이슈와 담론에 대한 쟁점과 함께 전국 각지의 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교사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필자 소개

박영진 l 사회진보연대 교육운동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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