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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 제30호

고교학점제로 오래된 교육문제 못푼다

  • 박영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지 거의 두 달이 되어 간다. 촛불 투쟁 이후 들어선 정부라 국민들은 어느 때보다 새로운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 새 정부는 발 빠르게 대선 시 제출했던 공약을 하나씩 이행하며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 교육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현 시기 교육 분야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사안은 자사고·외고 폐지, 그리고 여기서 다룰 고교학점제 도입이다.
 

뜨거운 감자 ‘고교학점제’

대선 기간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고등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선 공약이 바로 ‘고교학점제’였다. 뿐만 아니라 교사, 연구원 등 교육전문가들도 고교학점제 실시 이후 학교가 크게 변화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고등학교도 대학처럼 전공과목과 선택과목으로 강의를 나누고 학생들이 각자 원하는 과목을 수강하는 방식을 말한다. 지난 대선에서 각 정당은 유사한 정책을 제안했다. 안철수 후보는 ‘학점이수제도’라는 이름으로, 유승민 후보는 ‘수강신청제와 무학년제’라는 이름으로, 심상정 후보는 ‘선택과목 중심의 무학년제’라는 이름의 공약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정책공약집을 보면, 진로·적성 교육을 내실화하기 위해 고등학교에서 필수 교과를 최소화하고 교과 선택권을 부여하면서 학생이 원하는 강좌를 신청하여 학점제로 운영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무학년제를 지향하지만, 당장은 내년에 시행될 ‘2015 개정 교육과정’과 연동하여 학교 내 개인 맞춤형 선택 교육과정을 두고, 선택 교육과정이 충분치 못한 경우에는 학교 간 연합 교육과정 및 지역사회 연계형 교육과정으로 운영하거나 K-MOOC처럼 온라인 기반형 교육과정으로 확대하겠다고 한다.
 

정부의 찬성 이유

정부가 고교학점제를 실시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2015 개정 교육과정과 연동하여 고등학교에서 진로탐색 과정을 강화하려는 데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독창적인 발상이 아니다. 한국 교육을 대대적으로 개편한 김영삼 정부의 1995년 ‘5·31 교육개혁’ 이후부터 유지되어온 기조다. 핵심내용은 수요자(학생)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데 있다. 급변하는 시대에 맞게 공통이수 과목을 줄이고 선택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이다. 이 내용은 이후 두 차례의 정권교체를 거치면서도 계승되어 왔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특히 청년실업과 노동시장 인력수급의 미스매치를 강조하며 직업계 고교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단적으로 교육부는 2016년 4월, 직업계고 확대 정책을 발표했다. 한국 중등교육 단계에서 직업계고 졸업생 비중은 16.7퍼센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직업계고 졸업생 비중인 49.1퍼센트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그 비중을 2020년까지 30퍼센트로 늘리겠다는 내용이었다.

2015 개정 교육과정도 이러한 인식을 공유한다. 공통이수 과목을 축소하고 적성과 소질을 반영하여 학생 선택교과를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직업계고 졸업생 비중을 늘리려면 기존 직업계열인 마이스터고나 특성화고 뿐만 아니라 일반고에서도 진로·적성 교육과정이 강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학습 병행제’ ‘선취업 후진학’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교육과정’ 등 지난 정부 정책들 역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교사의 찬성 이유

교사들도 고교학점제를 지지하지만 그 이유는 정부의 입장과는 거리가 멀다. 일찌감치 고교학점제를 주장한 교사 이기정은 “현재 학교교육은 입시교육에서도, 시민교양교육에서도 실패”라고 진단한다. 실천교육교사모임, 좋은교사운동도 “한국 교육은 대입 체제에 종속되어 학생들에게 아무런 배움이 일어나지 못하고 무기력만을 학습시키고 있다”고 평가한다. 고교학점제로 교육과정을 다양화하여 학생들의 필요에 맞는 배움이 제공되길 기대한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고등학교가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자사고, 외고, 과학고, 일반고 등으로 다양화되면서 교실이 변했다. 일반고에 진학하기를 원하지 않거나 기초학력에 미달하는 학생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서울의 경우 비(非)강남권 일반고에서는 3분의 1정도의 학생만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학교현장 교사 입장에서 ‘수업파행’은 심각한 문제로 다가온다. 그러나 고교학점제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고교학점제가 교사들의 기대를 달성하려면 모든 과목을 학점제로 운영하는 동시에 학교시험 방식을 절대평가와 교사별(수업별)평가로 바꿔야 한다. 또한 학점제가 이루어지면 학교시험(학생부 교과영역)에서 대입 변별력이 약화되고, 선택과목이 다르므로 수능 절대평가와 대학별 평가가 동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대학입시제도의 개혁 없이 고교학점제만 도입되면 고등학교 교육은 파행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
 

고교학점제를 둘러싼 쟁점들

첫 번째 쟁점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진로탐색’ 중심으로 설계되는 것이 적절한가다. 한국은 중등교육 단계에서 직업·진로가 거의 결정되는 유럽식 학제와 다르다. 마이스터고나 일부 특성화고를 제외하고는 고등학생 대다수가 대학에 진학한다. 고등학교가 대학 진학을 위한 학교로 기능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고에서 ‘진로탐색’이 강조될 근거가 미약하다. 대학 전공과목에 대한 사전탐색을 위해서라도 고교학점제가 필요한 것 아니냐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적절치 않다. 일반고 교육과정은 대학에서 전문적인 공부를 할 수 있는 ‘기본학력’을 쌓는 과정이지 사전학습을 하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단계에서 직업교육이 필요하다면 고교학점제가 아니라 직업계열 학교를 내실화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두 번째 쟁점은 고교학점제가 무기력하게 수업을 듣는 일반고 학생들에 대한 대책으로 적절한 정책인가의 문제다. 무기력한 학생들이 많은 이유는 학습결손의 장기화, 학력 격차의 심화, 입시 제도의 다양화, 문제풀이식 입시교육 등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단기적으로는 수업 개선을 통해 어느 정도 현상을 완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고등학교의 재편과 대입제도의 개혁, 더 나아가서는 대학 개혁까지 포함한 거시적인 교육체제 개편이 준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수학처럼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과목을 모든 학생이 반드시 이수해야 할 필요가 있냐는 문제도 쟁점이 된다. 학생들이 관심 없는 수업을 듣지 않음으로써 그 시간에 잠자지 않고 자신이 더욱 필요한 수업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 고교학점제를 찬성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과연 수학이 민주 시민의 자질 형성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인가 되물어야 한다. 수학은 인류가 사고를 발전시키는데 오랫동안 기여한 학문이며, 수학적 추론이 자연을 탐구하는 효과적인 절차라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즉, 수학을 잘 배우도록 배려하는 정책이 필요한 것이지, 수학을 포기한 학생에게 수학을 배우지 않을 기회를 주는 게 공교육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논쟁의 핵심

고교학점제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에는 고등학교 과정 즉, 후기중등교육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지의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현재의 구도를 단적으로 구분하면 이렇다. 국가 차원에서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초등학교 때부터 ‘진로 교육’을 강조하듯 자본주의의 확대재생산에 도움이 되는 노동력 양성에만 관심이 있다. 이에 반해 진보교육운동은 이른바 ‘민주시민’ 양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민주시민 양성과 더불어 사회유지·개혁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노동자와 지식인 양성이 필요한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대학이나 사회 진출을 앞둔 후기중등교육의 성격에 대해서는 다각도로 접근해야 한다. 후기 중등 교육의 성격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고교학점제를 논하는 것은 현 시점에서 사상누각이다. 특히 단선제에 가까운 한국 교육의 상황에서 진로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직업계열 학교를 확대해야지 고교학점제로 대체할 수는 없다. 물론 후기중등교육에서 직업학교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문제도 쟁점이 많으므로 향후에 논의를 이어나가야 할 것이다. ●
 
 
필자 소개

박영진 | 사회진보연대 교육운동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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