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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6 제29호

트럼프 시대, 미국 노동자들에게 던져진 질문

분열에서 새로운 시도로

  • 임월산

미국 지배계급 내 전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하기 전부터 지배계급 내로부터 일련의 공격을 받았다. 트럼프가 추진한 첫 번째 의료보험개혁 법안은 공화당 극우세력의 반대로 하원에서 철회됐다. 트럼프가 내정한 인물들이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의 비판으로 임명이 철회되거나 임명 후 사임하는 일도 발생했다. 

최근에는 지배계급 내 전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5월 9일 트럼프는, 러시아와 부적절하게 접촉했다는 의혹을 받아 사임한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클 플린에 대한 조사를 담당하던 제임스 코미 미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전격 해임했다. 언론은 트럼프가 코미 국장에게 플린에 대한 조사를 포기할 것을 요구한 사실을 폭로했다. 이후 법무부는 특별검사를 선임하여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의 내통 의혹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민주당에서는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조금씩 불거지고 있다.
 
 

트럼프 반대 투쟁과 노동운동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대중적인 저항이 계속되고 있다. 취임 전부터 미국 전역에서 노동자, 이민자, 여성, 성소수자, 유색인종 등 다양한 미국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시위를 벌였다. 취임식 저지 행동과 다음날 진행된 여성행진, 2~3월 ‘무슬림 국가 출신자 입국 금지’ 행정 명령 반대 시위, 2월 16일과 5월 1일 이민자 없는 날, 4월 29일 민중기후행진 등 의제별 대규모 전국 집회가 여러 차례 진행됐다. 

미국 노동운동 입장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겪는 큰 혼란은 반노동적 정부에 대한 적극적인 반격을 펼치기 좋은 기회다. 그러나 현재 주요 노동조합의 공동투쟁은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에 대해 노동운동 내부의 합의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노동운동 일각에서는, 구체적인 저항의 목소리와 함께 새로운 정치와 조직화 전략을 모색하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주요 노동운동의 협조주의

아쉽지만 현재 미국 노동운동에서 가장 가시적인 흐름은 트럼프 행정부와 협조하려는 움직임이다. 대표적으로 미국노총(AFL-CIO) 내 큰 영향력을 가진 북미건설산업노조협의회(NABTU)가 있다. 1월 25일, 이 노조의 지도부들이 트럼프와 만남을 가졌고, 그 후 숀 멕카비 협의회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우리(건설노조와 트럼프)는 같은 산업 출신이다. 그는 경제 개발의 중요성과 사람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릴 가치를 이해한다.”

건설산업 노조 지도부는 산업 내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하여 트럼프의 환경규제완화 계획, 송유관 건설과 도로 및 인프라 확장 사업, 심지어 멕시코-미국 국경 장벽건설 계획까지 적극 지지하고 있다.

건설노조 지도부의 태도는  미국노총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합원들은 미국노총이 일자리 같은 ‘생계 문제’를 제쳐두고 여성과 이민자의 권리 같은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치게 집중해서 조합원의 불만과 노동운동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많은 조합원이 트럼프에게 투표했다는 것을 알게 된 미국노총과 다른 산별노조 지도부는 이러한 주장에 민감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 지난 3월 미국노총의 트룸카 위원장은 폭스 비즈니스 방송에 출연해 “불법 이민자뿐 아니라 합법 이민자도 임금을 저하시킨다”는 트럼프의 발언에 지지를 표했으며, 이민법 개혁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및 인프라 건설을 통해 미국인을 위한 일자리 창출에 대통령과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미국노총은 최근 트럼프가 추진하는 의료보험제도 개혁과 법인세 삭감을 비판하고 있지만, ‘미국 상품을 구매하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트럼프의 경제적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환영하고 있다. 반면 4월 29일 민중기후행진이나 5월 1일 이민자 없는 날 투쟁에 대해서는 뚜렷한 입장을 발표하지 않았고, 적극적으로 힘을 동원하지도 않았다. 
 
리차드 트룸카 미국노총(AFI-CIO) 의장
 

노동운동 내 균열

이러한 지배적 흐름과 달리 트럼프 행정부와 타협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며 최근 트럼프 반대 시위에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일부 전국노조와 지역지부들도 있다. 이 노조들은 대부분 이념적으로 진보적인 전통을 갖고 있다. 일부는 많은 이민자 조합원을 대표하고 있거나 의료, 공무원, 공공서비스 등 트럼프의 정책으로 큰 피해가 예상되는 부문의 노동자를 조직대상으로 한다.

이러한 노조들 대부분은 미국노총 지도부의 힐러리 클린턴 지지에 반대하고 버니 샌더스 캠페인을 지지하기 위해 작년에 처음으로 한 데 모였다. 올해 초에는 미국 선주민 영토를 통과하는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의 건설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다시 뭉쳤다. 1월 25일 트럼프와 면담을 가진 건설노조 지도부는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건설 재추진을 요청한 바가 있고, 미국노총 지도부도 찬성 입장을 밝혔다.

결국 다코타 엑세스 송유관을 환경 파괴, 인종주의, 화석연료 및 건설기업자본의 권력이 결합된 투쟁의 대상으로 본 노조와 미국 (백인)노동자를 위한 일자리 창출의 기회로 본 노조 사이에 깊은 균열이 생겼다. 전자의 그룹 중 일부는 최근 ‘우리의 혁명을 위한 노동조합’(Labor for Our Revolution)이라는 전국네트워크를 결성하여 중장기 대응계획을 논의하고 있다. 버니 샌더스 지지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하고 있는 6월 초 ‘민중회의’(People’s Summit)에서는 네트워크회의를 통해 사회운동의 강화 전략에 대해 토론할 예정이다.   
 

정치교육 강화

환경, 반인종주의, 이민자 권리 등의 투쟁에 참여하면서 트럼프 정부에 비타협적인 태도를 가진 노조들은 최근 ‘정치교육’(political education)에 더 많은 역량을 투여하고 있다. 여기서 ‘정치’란 ‘정당’ 또는 ‘정치세력화’라는 의미보다 자본주의 경제체계와 인종차별, 환경파괴 등 자본주의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억압적 체계’에 대한 이해 강화라는 의미가 내포된다. 

정치교육은 많은 경우 중앙이 아니라 지역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뉴욕주간호사노조(NYSNA)는 전조합원을 대상으로 기후변화와 경제체제에 대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 교육은 조합원들이 현장에서 치료하고 있는 질환들을 기후변화의 결과로 설명하고, 이를 트럼프의 환경규제 폐기 및 공공부문 지출 삭감정책, 궁극적으로 민간기업의 권력 확대와 연결한다. 미국 북동부지역을 포괄하는 미국통신노조(CWA) 1지부는 인종주의와 사법제도, 교육 및 취업의 기회, 그리고 실업 문제의 연관성을 밝히는 워크숍을 백인과 유색인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노조들은 교육을 통해서 노조와 사회운동에 대한 이해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조합원들이 ‘미국 제품을 구매하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트럼프의 이데올로기에 유혹되지 않도록 이념적 정비를 꾀하고 있다.
 
 

연대 강화 시도

교육에서뿐만 아니라, 일부 노조는 트럼프 행정부에 맞선 전선에서 투쟁하는 주체들과 연대를 강화해나가고 있다. 예컨대 노동조직 연합체인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 노동연합’(Asian and Pacific American Labor Alliance)은 회원조직들이 이민자와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안전망이 되겠다는 공개서약 캠페인을 ‘함께하면 안전하다’(Safe with Us)는 이름으로 조직하고 있다.

이 캠페인의 연장선에서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소속 학교와 병원 노동자를 대표하는 미국공무원노조(AFSME) 3299지부는 소속 사업장을 ‘이민자보호지역’(sanctuary campus)으로 지정할 것과, 유색인 노동자의 고용과 직업훈련을 확대할 것을 단체교섭 요구에 포함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곳곳에서 생기고 있다.

또한 일부 노조들은 트럼프에게 투표한 백인 노동자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있다. 다수 유색인과 이민자 조합원이 속해 있는 북미서비스노조(SEIU)는 그 중 하나다. 북미서비스노조(SEIU)는 최근 3년 동안 유색인 패스트푸드 노동자를 중심으로 최저임금 15달러 쟁취 투쟁을 조직해 많은 관심을 끌었는데, 지금 이 투쟁을 트럼프 지지가 집중된 미국 중북부지역 러스트 벨트로 확대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미국 (백인)노동자를 위한 것으로 포장되는 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 대해 진정한 국제주의적 노동자의 입장을 마련하려는 시도도 시작됐다. 미국 일부 노조 활동가는 캐나다와 멕시코, 사회운동 활동가와 함께 국내산업 보호가 아닌 보편적 노동자의 권리와 초국적 자본 규제라는 원칙을 기반으로 북미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 대한 공동 입장을 논의하기 위해 대륙적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5월 말, 멕시코시티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캐나다, 멕시코, 미국 사회운동 간 회의가 개최될 예정이다. 

위기에 빠진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미국 노동운동의 공동대응은 아직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여러 곳에서 대안 모색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많은 시도는 노동운동의 공식 체계를 넘어 다른 사회운동과의 연대도 도모하고 있다. 긍정적인 측면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사회운동 의제와의 연관성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런 흐름은 더욱 강화되고 통합되어야 한다. 그랬을 때 미국 지배계급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트럼프 반대투쟁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대안적 사회를 위한 새로운 운동을 구축할 수 있다. ●
 
필자 소개

임월산 | 공공운수노조 국제·통일국장, 노동자 국제주의를 고민하고 공부하고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활동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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