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특집
  • 2017/01 제24호

동상이몽 속 촛불의 길을 묻다

탄핵 이후 가시화된 세력별 입장 차이를 중심으로

  • 홍명교 편집실 미디어국장
2016년 11월 12일 민중총궐기가 열린 광화문광장
 
헌법재판소가 늦어도 3월 내 탄핵을 인용하면, 정국은 급속도로 대선 중심으로 흘러갈 것이다. 신문을 펼치면 대선 레이스는 이미 시작된 것처럼 보인다. 탄핵 가결로 잠시 뜻을 모았던 원내 야당들 사이의 갈등과 논쟁 역시 심화될 수밖에 없다. 대권 경쟁에선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이하 ‘퇴진행동’)을 중심으로 매주 토요일 촛불을 잇고 있는 시민단체와 민중운동진영 내에서도 진보정당들이 난립하는 조건 속에서 촛불시위의 방향과 전술, 민주당에 대한 호오와 대선 대응에 대한 견해차, 노동조합운동의 전략과 참여 등을 두고 여러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퇴진 촛불의 물결이 탄핵을 기점으로 숨고르기에 들어간 지금, 민중운동이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숙고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어떤 질문이 필요한가. 우선 기성정치 혹은 민중 중 누가 위기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할지 물어야 한다. 나아가 촛불이 대중운동의 변혁적 에너지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가늠해야 할 것이다.
 

동상이몽 야권

민주당은 현 판도가 불리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수백만 촛불로 표출된 분노한 민심은 이른바 ‘입법’(촛불시민혁명 정책)과 박영수 특검을 통한 ‘처벌’로 정리해 광장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정부·여당에 대한 심판 여론을 정권 교체로 이어가겠다는 계산이다. 대선 이슈가 민주당 주자들 간 경쟁으로 모아질 공산이 크고 지지율이 수위를 기록하고 있는 만큼, 탄핵으로 인한 조기 대선도 나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반면 국민의당은 두 가지 덫에 빠졌다. 일단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지지율이 폭락했다. 총선 직후 25퍼센트에 달했던 지지율은 반토막 났다. 당 내부에선 “비박계와의 재편을 노린다는 근거 없는 모략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있지만 정황상 국민의당이 비박계를 재편 파트너로 여기고 움직여왔음은 쉬이 간파할 수 있다. 게다가 국민의당에는 이렇다 할 대권 주자가 없다. 안철수의 지지율은 점점 내려앉고 있고, 뒷심을 보여주고 있지도 않다. 안철수계와 박지원계가 동상이몽을 품고 있어 이해관계에 따라 내재된 갈등이 폭발할 수도 있다.

원내 유일한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더욱 앞이 보이지 않는다. 광장에서의 투쟁을 외면하지 않았지만, 탄핵 과정에서 ‘야3당 연대’에 지나치게 몰두한 탓이 크다. 정의당으로선 작은 정당이지만 강단있게 질러 머뭇거리던 거대 야당을 탄핵 가결로 이끌었다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결과적으론 민주당과의 차별성이 희미해지는 효과를 낳았다. 원내 진보정당으로서 ‘퇴진행동’에 유일하게 가입되어 있으나, 진보정당이 여러 개로 분열된 상황에서 정치적 대표성을 갖기 어렵다. 또 국정조사 과정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것도 지지율 정체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여러모로 야3당보단 민중운동과의 접점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촛불의 열기는 어디로 향해야 할까

박근혜를 끌어내린다고 세상이 바뀔 리 만무하다는 건 이미 많은 이들이 인식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 만족할 만한 대안과 실천이 나온 것은 아니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온라인 정치플랫폼 와글이 제안한 ‘시민의회’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대표단을 ‘시민의회’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추천받아 구성하겠다는 기획이었다. 기성 정치인에게만 정국을 맡기지 말고 아래로부터의 정치를 구축하자는 게 취지였다. 하지만 이 실험은 실패하고 말았다. 취지에 대한 거부감과 의구심, 시기와 추진 방식 등 여러모로 부적절했다. SNS상에서 비판이 일었고, 이내 철회를 밝히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이와 다른 방식으로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다. ‘퇴진행동’ 산하 시민평의회가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매주 토요일 열리는 광화문 시위를 전후로 열리는 이 토론회는 누구나 참여해 이 투쟁을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지, 포스트 박근혜 시대의 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8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12월 17일에도 오후 2시 시청 지하에 모여 5명씩 조를 꾸려 20분씩 주제별로 의견을 모은 뒤, 이를 발표하는 식으로 3시간 동안 토론을 펼쳤다. 이전의 대중 투쟁과는 사뭇 다른 시도이며, 참여도 활발한 편이다.
 

나아가 대중 투쟁을 계기로 노동조합, 지역 주민모임, 협동조합 등 다양한 대중조직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목소리에 그칠 뿐 조직적 차원의 실험과 도전은 보이지 않는다. 민주노총 등 대중조직이 촛불을 든 시민들에게 노동조합의 필요성과 노조할 권리를 적극적으로 알리면서 저변을 늘리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노동자운동은 어디로?

노동운동 내 논쟁도 일고 있다. 민주노총은 오는 1월 중순 열리는 대의원대회에서 정치 방침을 확정하겠다는 계획하에 토론안을 도출했고, 이에 대한 논쟁도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당장 민중단일후보 전술을 채택할지, 채택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지 등이 주요 쟁점이다. (민중단일후보란 진보정당을 포함한 노동운동, 사회운동 등 진보진영이 추천과 경선을 통해 하나의 후보를 세워, 대선을 통해 기성 정치권을 벗어난 민중운동의 의제를 대중적으로 설파하는 전술이다.)

무엇보다 지난 시기 노동자민중 정치세력화와 진보정당운동의 실패에 대한 반성적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실패에 대해 설득력 있게 정리하고 공유한 바가 없다. 나아가 촛불 시위에서의 많은 헌신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중적인 지지가 형성되지 못했으며, 대중적 분노를 일터에서의 촛불로 잇는 실천도 미미하다. 이런 조건에서 상층 논의만으로 후보전술을 펼치는 것은 대중적 동의를 얻기 어렵다.

그 때문에 노동운동이 일터의 실천을 만드는 노력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노조 없는 사업장의 비루한 현실에 개입하고 바꾸는 노력이 없다면, 아무리 박근혜가 물러간들 노동자의 삶이 바뀌진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직장 내 다양한 실천, 공단 앞 촛불집회 등 여러 시도가 벌어지고 있다. 11~12월에 지속된 촛불의 열기가 유의미한 변화로 이어지려면 이런 시도가 보다 빈번하고 전방위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 차원의 지원과 투자도 절실하다.
 

대선 수렴 노리는 기성정치

한편 기성정치는 촛불이 점차 수그러들 것이라 진단하고 열기를 대선 구도로 수렴시키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정책 입법 중심의 제안들도 봇물처럼 쏟아졌다. 12월 20일 민주당 정책위원회는 ‘12월 촛불시민혁명 입법 정책과제’를 발표했다. 이를 2대 당면 과제, 7대 단기 과제, 3대 중·장기 과제로 나누고, ① 박근혜 정권이 강행한 일방적 국정 중단 및 시급한 민생활력 제고, ② 권위주의·부패와 정경유착 청산, ③ 시민의 정치경제적 권리 확대를 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정작 촛불 시민들의 핵심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문제, 백남기 농민 사망 책임자 처벌,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석방 등 박근혜 정권 내내 큰 문제를 형성했던 사안들이 죄다 빠졌다. 지난 2년 노동자들을 괴롭혀온 쉬운해고·비정규직 양산을 위한 노동법 개악 철회도 제외됐고, 1월 시행을 앞둔 공공기관 성과퇴출제 언급도 빠졌다. 촛불 시위를 주도해온 ‘퇴진행동’은 이런 취지의 비판 논평을 내고 민주당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그렇다면 속 빈 강정을 ‘촛불혁명’이란 수사로 포장해 입법 과제로 제시한 이유는 뭘까? 우선 거대 정당들은 언제나 선거 직전에는 온갖 개혁 공약을 남발하고, 당선 후에는 입 싹 씻고 돌변했다는 사실부터 기억할 필요가 있다. 둘째는 두 말 할 것 없이 촛불 시위의 열기를 자당 후보에 대한 지지로 수렴시키려는 포석이다. 이런 경향은 본격적인 대선 국면이 열리면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진짜 쟁점은 무엇이어야 하나

탄핵 이후 진정한 쟁점은 광장의 의제를 좁히고 대선 정국을 통해 수습하려는 이들과 의제를 노동과 인권, 민주주의 등 전방위적으로 확장하고 대중운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려는 이들 사이에 놓여있다. 마지막까지 탄핵 인용 여부를 두고 예의주시해야겠으나, 어떻게든 탄핵을 막으려는 이들의 뜻대로 가는 것은 쉽지 않다. 새해와 함께 열릴 새로운 국면에서 남다른 전략과 태세를 다지고 도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탄핵이 언제 이뤄질 것인지’보다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박근혜만 빠진 박근혜 체제’의 지속을 원하지 않는다면, 촛불 시위의 힘을 이어가면서도 의제 역시 확장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느냐가 쟁점일 수밖에 없다. 87년 6월의 시민 항쟁이 7~9월 노동자대투쟁과 조우하지 못했던 역사를 되풀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선 정국으로 흡수될 위험이 농후한 현 정세에서 대중투쟁의 열기를 이어가면서 사회 변혁적 활로를 열 계기를 만들 수 있느냐는 미지수다. 수다한 논쟁들 속에서도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이 무엇인지 거듭 되묻는 게 필요한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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