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보다

  • 칼럼
  • 2016/12 제23호

낯선 얼굴이 희망이 되는 순간

  • 여영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학생
11월 26일 이재용-최순실 게이트 시민법정에 참여한 황상기 님
 
경찰이 삼성서비스노조 염호석 열사의 시신을 탈취하던 날, 나는 학교 과제로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써야 했다. 죽음에 관해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내게 강제 시신 탈취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제서야 염호석 열사의 유서, 삼성서비스노조의 투쟁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했다. 평소 노동 문제에 관심이 많지 않았기에, 그들의 이야기는 다소 낯설었다. 하지만 죽음까지 내몰리는 상황에 맞선 정직한 투쟁의 기록은 강력했고, 나는 어려운 걸 알면서도 삼성서비스 노동자에 관한 글을 썼다.
 
노동운동에 대한 대략의 지식만으로, 아무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은 상태에서 투쟁 현장에 가 보는 것은 나에게 흔치 않은 일이었다. 글을 쓴 이후 삼성서비스노조 투쟁에 가보고 싶기도 했지만, 멀리서 소식만 들을 뿐이었다. 목소리를 내는 게 어색했다. 가능한 만큼 후원계좌에 입금하고,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반올림에 관해서는 영화나 만화로 접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는 내용은 많지 않았다. 이번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의 관심이라고 생각했다.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건 솔직히 말해 ‘주제 넘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나는 아예 목소리를 잃어버렸다. 생명을 죽이는 사회 문제들에 계속 조금씩 관심을 가져 왔음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이후에는 그럴 의욕마저 잃어버렸다. 사건의 면면이 밝혀지면서 나는 완전히 무력해졌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는 나는 무력했다.
 
무력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박근혜 게이트가 터졌을 때도, 다시 시위에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거리에서 만난 낯선 얼굴들은 나름의 걱정과 기대에 휩싸여 있었고, 얼핏 느껴지는 동지애에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목소리를 낼수록 나 자신이 회복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한계를 느꼈다. 좀 더 날카롭게 문제를 들춰내는 목소리를 낼 수 없을까, 고민이 생겼다.
 
‘이재용-최순실 게이트 시민법정’을 준비하는 회의에 갈 때도 나는 망설였다.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회의에서 삼성서비스노조 간부의 낯선 얼굴을 봤을 때, 나는 이미 변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연대는 어렵지 않았다. 고민은 함께 풀 수 있었고, 친구들과 내가 충분히 도울 수 있는 일들이 있었다.
 
드디어 11월 26일 아침. 인쇄소에서 전단지를 찾아 시청역에 내렸다. 태평로 삼성 사옥 방향 출구로 걷다가 방진복을 입은 두 사람이 짐을 끌고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반올림 활동가분들이구나, 하고 알아챘다. 나도 저 사람들과 함께 투쟁한다니, 그때 황상기님의 얼굴을 보았다. 눈이 많이 오는 추운 날이었지만 겨울 햇살이 비친 황상기님의 얼굴은 밝고 해맑았다. 어떻게 그렇게 해맑을 수 있었을까. 그 얼굴을 보며, 나는 더 이상 낯설음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위 현장에서 삼성서비스노조와 반올림의 발언을 들을 때, 나는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시민 재판에서 마침내 이재용은 구속되었다. 우리들은 이재용 구속을 외쳤다. 구속 영장을 뿌렸고, 국민의 이름으로 삼성을 압류했다. 압류 스티커가 붙여진 삼성 건물을 보니 우리의 목소리가 실감되었다. 이재용이 구속되고 삼성이 국민을 위한 기업으로 바뀐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대란 어렵지 않구나. 나는 조금씩 무력감에서 벗어나는 것을 느꼈다. 함께 했던 낯선 얼굴들 덕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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